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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05월29일 16시59분
  • 최종수정 2018년05월30일 08시27분

작성자

  • 이상빈
  •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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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015년에는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 간의 합병에 대해 엘리엇의 발목잡기가 있었다. 올해에는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간의 합병에 대해 엘리엇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삼성 및 현대차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들이 추진하는 합병 건에 대해 엘리엇이 간섭하자 이를 우려하는 주장에서부터 지금까지 무시되어 온 소액주주들의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까지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고 있다. 작금 기업경영환경이 어려워지는 시점에서 기업을 압박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엘리엇이 등장하고 있어 더욱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문제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벌그룹에 속한 계열사 간의 합병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본래 독립적인 두 회사 사이에 이루어지는 합병은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두 회사 주주들 간의 문제이며 이에 대해 외부에서 왈가왈부할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재벌그룹에 속한 계열사 간의 합병은 불공정한 행위가 개입될 소지가 있다. 그룹 총수가 계열사를 모두 지배하고 있어 합병비율 등에 개입할 유인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을 예로 들면 그룹 총수의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을 비싸게 평가하고 지분이 적은 삼성물산을 저평가해 합병비율을 정하면 삼성물산 주주들의 권익을 침해해 그룹 총수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 있다. 합병비율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주가에 의하기 때문에 그룹 총수가 주가조작을 하지 않는 한 합병비율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룹 총수는 제일모직에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고 삼성물산의 악재만 부각시키면 주가는 이에 따라 흘러 갈 개연성이 높다.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장부가는 13조 4,000억 원이고 제일모직의 장부가는 4조 7,000억 원이었다. 그러나 합병비율은 1:0.35로 삼성물산 약 3주가 제일모직의 1주와 교환되었다. 장부가만 가지고 합병비율을 정하면 제일모직 3주가 삼성물산 1주와 교환되어야 한다. 만일 삼성물산이 재벌 총수의 영향력이 없는 독립적인 회사였다면 이와 같이 불리한 합병은 이루어 질 수 없을 것이다.

 

이번 현대차 그룹의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도 이와 유사하다. 현대모비스를 분할해 이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현대차 그룹의 계획도 따지고 보면 현대글로비스를 고평가하고 분할되는 현대모비스를 저평가하고 있다. 삼성의 경우와 다른 점은 삼성물산의 가치는 시장에서 결정되었지만 분할되는 현대모비스의 가치는 여러 가지 가정에 근거하여 현대차 그룹에서 결정하였다. 그만큼 현대차 그룹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현대차 그룹 계열사 사이의 합병도 현대모비스 주주의 희생 하에 현대차 그룹 총수의 이익을 우선시 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외 의결권 자문업체들이 합병비율을 문제 삼아 합병 반대를 권고했고 이에 따라 현대차 그룹은 합병 계획을 철회하였다.

 

엘리엇은 소액주주를 위한다는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하지만 어디 까지나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펀드일 뿐이다. 주주들을 위한다는 배당확대와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은 주주들에게 반드시 유리하지 만은 않다. 배당을 통해 주가를 상승시키려면 일시적이 아니라 영구적 배당확대가 필요하다. 주가는 기업의 가치를 주식수로 나눈 것인데 일시적인 현금 배당은 기업이 보유한 현금을 주주들에게 이전하는 것으로 이는 주가의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배당 증가가 주가상승으로 이어지려면 기업의 현금흐름이 일시적이 아닌 장기간 배당확대로 이어질 만큼 견실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배당의 신호효과(signaling effect)라고 일컫는다.

 

자사주 매입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의 미래 투자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한다면 기업의 미래성장 동력을 상실해 주가 상승에 유리하지 않을 수 있다. 현대차 그룹은 삼성동 한전 부지를 감정가의 3배인 10조 5,500억에 매입했다. 이러한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였기 때문에 주주들의 신뢰를 상실하였다. 10조 5,500억을 기술개발 대신 토지 구입에 사용한다면 차라리  주주들에게 환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액주주를 등한시 하고 재벌 총수의 이익만 우선시 한다면 소액주주들은 투기펀드라고 낙인이 찍혔지만 엘리엇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소액주주들은 현 경영진의 의사 결정에 불만이 있으면 주식 매각이라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즉 현대모비스의 주주들은 합병으로 인해 불이익을 본다면 주식을 매각하고 나오면 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없다는 우리의 속담도 있다. 이렇게 되면 대주주의 횡포를 견제할 수 없다. 합병이 소액주주들에게 불리하면 이를 적극적으로 부결시켜야 하나 모래알 같은 소액주주로서는 힘이 부친다. 따라서  비록 투기자본이라도 소액주주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구심세력이 있으면 이에 동조하게 된다.

 

엘리엇과 같은 해외투기 자본이 알토란같은 한국기업들을 공격해 국부를 유출시킨다고 이를 규제하자는 움직임이 사회일각에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선후관계가 뒤 바뀐 경우이다.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재벌 총수의 부당한 사익 추구행위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을 시정하는 것이 먼저이지 이를 내 버려두고 해외 투기자본의 잘못된 행태만을 비난할 수 없다. 애국심으로 재벌 총수의 부당한 행위를 덮고 갈 수는 없다. 헤지펀드는 기업의 장기성장에 관심이 없고 단가 이익만 추구할 뿐이다. 같은 논리로 재벌 총수의 사익추구행위도 기업의 장기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기업의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다. 세계 유수의 기업을 살펴보아도 지배구조는 가지각색이다. 한국 재벌은 적은 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하고 있다. 달리 보면 그 만큼 경영권 보호가 취약하다. 차등의결권 등으로 경영권을 보호해 기업의 성과가 높아진다면 이를 허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 경영자에 대한 보호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독단적인 경영이 나타날 개연성도 충분히 있다. 시장경제의 요체는 경쟁이다. 적은 지분 때문에 경영권 보호가 취약하다면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경영성과 뿐이다. 효율적인 경영으로 주식가치를 제고시켜 준다면 소액주주들도 현 경영진에 동조하게 된다.

 

현대차 그룹이 무리수를 둔 이유로 현 정부의 지나친 기업지배구조 간여에 있다는 주장도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적은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기 위해 순환출자가 일반화되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주회사 방식 등이 경영의 투명성이라는 이유로 정부에 의해 권고되었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기업들이 무리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 지나친 상속세로 인해 기업경영 승계가 어려워진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계열사 합병 등을 통한 사익추구 행위가 필연적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일감몰아주기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정부에 의한 지나친 기업 지배구조 간여가 원죄일 수 있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강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강한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보호하기 보다는 노동조합 자신을 위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의 수를 늘리는 방법이다. 기업들이 서로 노동자를 고용하려고 할 때 노동자의 권익은 최대로 보장된다. 마찬가지로 엘리엇과 같은 투기자본이 한국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대주주들이 소액주주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다시 말해 사익보다 주주이익을 우선시할 때 엘리엇이 사라지지 경영권 보호 장치를 강화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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