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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간의 외교는 모순이 중첩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서로가 B급 외교대상이다. 과거에는 각자의 중국관계가 A급 외교관계였고, 지금은 미국이 A급 외교대상이다. 양국은 지금도 이들 강대국의 무게를 의식한다. 한국에는 여전히 피식민지 트라우마와 반일적 감정, 일본식 프레임의 잔재가 남아있다. 일본에서는 한국에 대한 혐한과 질시적 심리가 있다. ‘강한 자는 규범을 무시해도 되고, 약한 자는 규칙을 잘 준수하고 순응해야 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규범이다.
한·일간의 외교행태와 방식에는 그런 일본식 프레임이 여전히 작동한다. 그래서 외교상식이나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법과 개념, 규범, 외교관례, 보편적 가치가 잘 적용되지 않는다. 재일한국인의 영주권문제, 일본군위안부, 강제징용피해자, 한국인원폭피해자 문제등 수십년 간의 외교갈등이나 후쿠시마오염수방출 문제 등 최근의 외교현안에 관한 대화나 협상에는 늘 그런 면이 있다. 국제법과 보편적 규범은 오히려 상대방을 비난하는 수단으로 더 많이 활용된다. 인근국간 장기간에 걸친 비문명적 외교갈등은 모순을 더 뒤틀리게하고 부정적 고정관념을 더 깊게 고착시켰다.
한국정부의 외교와 학계의 부조화
일본에 대해서 역사든 외교든 직접 논쟁하며 시시비비를 따지는 한국학자는 거의 없다. 학계가 침묵하며 일본 지식프레임에 순응하거나, 타협하며, ‘학계 외교’를 하면 반일여론은 더 악화되고 정부가 대신 싸우게 된다. 외교와 관련되는 일에서는 객관적이라는 개념은 없다. 어떤 역할자든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자신이 속한 국가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애국이 아니면 당장 매국이 된다. 한·일 간 역사문제가 첨예한 외교갈등이 된 데에는 따지지 않는 학자와 전문가들의 책임이 크다.
법과 개념의 혼란이 갈등을 심화시켜
한·일관계의 갈등은 대부분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협정〉의 성격과 내용이 애매하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애매함(ambiguity)은 일본 프레임의 전형이다. 법적 용어도 오용된다. 보편적인 가치와 개념에 대한 공유 의식이 없다면 아무리 외교적 타결을 해도 언제든 다시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배상’은 불법행위로 입은 손해를 변상하는 것이다. 반면 ‘보상’은 합법적 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복구해주는 것이다. ‘변제’는 밀린 임금이나 부채를 상환하는 것이다. 2018년10월30일 대법원 재심은 ‘식민지지배가 불법이니 그에 따른 일본기업의 징용노동력 이용도 불법’이므로 그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불법행위가 없었다”며 ‘배상’은 거부한다.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이 임금 등 ‘변제’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일본은 ‘배상’ 판결에 대해서 청구권협정으로 다 해결되었다며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한다”고 강변한다. ‘배상’ 문제를 ‘변제’ 개념으로 물타기하는 것이다.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게 옳바른 법적 대응이다. 일본이 이미 ‘배상’했다는 의미라면 식민지지배가 불법이라고 인정하는 셈이 된다. 일본은 태연하게 말을 잘 바꾼다. 독도영유권 주장의 근거도 여러번 바꿨다.
한국과 일본의 정부나 학계에서 ‘사과’의 개념을 확인한 적도 없다. 사과의 일반적인 정의(定義)는 ‘잘못된 행위를 확인하고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는 미안함을 표명하고 배상을 하는 행위이고, 사과는 피해자에게 직접 전달되고 피해자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돼야 진정성이 입증된다’는 것이다. 즉 “불가역”이라는 말은 가해자인 일본이 사과를 번복하지 말라는 의미다. 가해자인 일본이 피해자인 한국에게 “불가역”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식한 행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정부는 물론 학계전문가들도 아무도 법리적 반박을 하지 않는다.
한국이 일본의 불법행위를 주장하는 한 ‘보상’이라는 용어는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기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2005년 8월 한국정부의 민관대책위원회는 생존하는 강제동원피해자들에게 최대 2천만원씩 ‘보상’한다고 했다. 이제까지 그런 식으로 국내에서 싸우고 일본과 협상했다.
한일외교는 곧 국내정치적 담론이다
한국에서는 일본과 관련된 모든 외교사안이 국내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초래한다. 반일과 친일은 일상적인 진영대립이 되었다. 모든 일본 관련 논쟁과 대립은 일본이 한국지배에 이용한 오리엔탈리즘의 잔재다.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민족사관도 일본의 역사프레임을 역이용한다. 마치 ‘오리엔탈리즘을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비판한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식민지근대화론’은 대표적인 대립담론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은 다시 1948년 8월15일이 건국절 주장으로 이어져서 건국절이냐 정부수립일이냐 논쟁이 일어났다. ‘식민지근대화론’은 1950년대 말 냉전기에 미국이 일본에 선사해준 ‘일본근대화론’을 식민지조선에 투영한 오리엔탈리즘적 복제판이다. ‘일제 강점기 한국인의 국적이 일본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도 있다. 당시 일본의 국적법이 조선인을 일본국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으니 일본국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본은 법적으로 식민지조선을 ‘일본국’으로 통합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패망 당일부터 ‘재일조선인’을 즉시 외국인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여론을 무시한 갈등의 편의적 봉합은 새로운 갈등을 낳는다
당장 눈에 보이는 외교적 해결만을 추구하면 국민이 반발한다. 그래서 한일 역사현안 해법을 제시하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할 국내적 선결 조건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징용피해자배상을 우리가 부담하고 일본과 관계정상화를 추진한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제3자변제방식에 관해 사전에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하지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정부가 아무리 역사적인 외교성과라고 자평해도 야당과 국민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역사 갈등을 외교협상만으로 치유하기는 어렵고 외교가 과거사문제만 집중할 수도 없다. 한·일간에는 협력이 필요한 분야가 많아졌다. 그러나 한‧일관계를 일신하는 데 필요한 전환적 사고는 국민의 지지기반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민이 수긍하고 동의할 수 있는 국내정치적 환경을 조성하는 큰 정치가 우선적인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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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5년03월23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22일 12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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