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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거수의 디자인 시선 <10> 국가와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의자 – 공공 디자인이 곧 브랜딩이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5년03월19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20일 13시12분

작성자

  • 김거수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미술대학원 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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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공공의 의자, 국가와 도시의 감성을 담아내는 가장 일상적인 브랜드-

도시를 방문한 관광객이 처음 접하는 것은 의외로 화려한 랜드마크가 아니다. 공항에서, 버스 터미널, 택시 정거장 거리 곳곳에 자리한 공공시설, 가로등, 표지판, 그리고 의자 같은 작은 요소들이 모여 도시의 첫인상을 만든다. 

 

이 중에서도 공공 의자는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면서도 가장 자주 경험하는 공공 디자인이다. 걷다가 지친 이들이 자연스럽게 앉아 쉬는 곳곳의 공간이면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생각에 잠기는 반가운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의자가 단순한 가구의 기능을 넘어설 수 있는 힘있는 존재라면 어떨까? 디자인이 세련되고, 그 안에 도시의 개성을 담아 표현할 수 있는 의미있는 존재라면 어떨까? 공공 의자를 앉는 공간의 의미를 넘어, 도시의 감성과 스토리를 전달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귀한 소재로 바라 보자.

 

일관성의 비밀?

 

이번에는 일관성을 통한 브랜딩, 도시의 공공 의자가 브랜드가 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세 도시의 사례를 살펴보며, 우리가 배울 점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모색해보려 한다.

 

1. 캐나다의 빨간 의자(Red Chair) – 빨간 일관성과 만들어낸 강력한 브랜딩 경험

캐나다는 캐나다의 지속적인 빨간 의자 디자인을 활용해 공공 디자인을 하나의 브랜드 자산으로 만든 대표적인 사례다.

캐나다의 공원, 등산로, 관광지, 심지어 실내 기념품 숍을 비롯한 온 나라 곳곳에서는 눈에 띄는 빨간색 공공 의자가 없는 곳을 찾을 수 없다. 

 

이 의자는 단순한 벤치가 아니다. ‘자연에서 즐기는 쉼’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캐나다 국립공원과 자연 보호 구역 전역에 걸쳐 동일한 디자인과 색상으로 배치되었다.그 효과도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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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은 이 의자에 앉아 아름다운 캐나다 대 자연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으며 매력넘치는 캐나다를 경험한다. 캐나다의 빨간 의자에서 찍은 사진만 봐도, 그때의 공기와 바람이 떠오를 것 같다. 이 의자가 있는 곳이라면, 다음에도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유도했을 것이다. 이 의자는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캐나다’를 각인시키는 브랜드 장치이며, 자연과 공공 디자인이 결합한 가장 감성적인 도구인 셈이다. 

 

이 의자를 매일 보는 캐나다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지속적인 빨간 의자를 보면, 본인이 캐나다에 살고 있음을 실감할 것이다. 이곳에 앉아 자랑스런 나의 나라, 캐나다인으로서의 소속감과 로열티를 만끽하는 국민이 될 것이다. 캐나다의 빨간 의자는 캐나다를 떠올리게 만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본질을 완벽하게 구현한 디자인이 되었다. 

 

2. 스위스 루체른의 공공 의자 – 도심 속 우아한 디자인 전략

루체른 도심을 걷다 보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거의 50미터 간격으로 세련된 타이포그래피가 새겨진 공공 의자가 자리하고 있다. 단순한 벤치가 아니다. 하나의 디자인 오브제처럼 도심 곳곳에 배치되어 도시의 품격을 은은하게 드러낸다. 저렇게 예쁜걸 누가 거리에 가져다 놨을까? 이 의자들은 2019년 루체른 시와 상점 협회가 공동 기획한 프로젝트의 일부다.

 

200개의 철제 의자가 도심 곳곳에 배치되었으며, 사람들이 쇼핑과 산책을 더욱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각 상점들이 ‘의자를 관리하는 주체'가 되어 설치와 유지 관리 청소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시민이 공공에 매일 기여하도록 유도했다. 즉 시민 참여형 공공 디자인의 훌륭한 사례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도시가 단순히 시설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시민과 상점 주인들이 함께 공공 디자인을 가꾸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루체른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이 의자에 앉아 자연스럽게 이곳의 품격을 경험하고, 상점들은 더욱 따뜻한 루체른 도시 환경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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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디자인은 한 수 앞과 전후 좌우를 아우를 수 있는 치밀한 계획이 중요하다. 도시는 편의를 제공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시의 감성을 전달하고, 방문객들은 이 작은 배려 속에서 루체른이라는 브랜드를 편하고 행복하게 경험할수 있게 계획해던 것이다.


공공 디자인이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가치와 정체성을 전달하는 가장 세련된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루체른이 단 하나의 의자로도 충분히 증명했다. 홍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도시의 가치를 경험하게 하는 가장 세련된 방식을 보여줬다.

 

당시 vielfaltig. trendig. einzigartig.을 해석 할 수는 없었지만. city-luzern.ch는 분명 루체른 도시의 주체를 암시하고 있었으며, 도시가 우리에게 서비스를 하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의자 등받이에 사용된 감각적인 스위스 타이포그래피에 디자이너로서 부러움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3. 독일의 접이식 캔버스 공공 의자 – 실용성과 일관성이 만든 브랜드 아이덴티티

스위스 루체른이 디자인을 활용해 도시의 우아함을 강조했다면, 독일의 공공 의자는 실용성을 통해 도시의 디자인 문화와 철학을 전달한다. 흥미롭게 독일은 거의 모든 도시를 둘러봐도 똑같은 디자인의 접이식 캔버스 공공 의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의자의 프레임은 단순한 목재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좌석과 등받이는 캔버스 천으로 제작되어 그 곳은 다양한 이미지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홍보 플랫폼 공간으로 활용된다. 환경 보호 캠페인, 공공 예술 프로젝트, 도시 홍보 메시지를 비롯하여 기업 브랜드 홍보까지 다양한 콘텐츠가 적용될 수 있는 유연한 디자인이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점은, 독일 전역에서 동일한 형태의 의자가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공 의자 디자인의 일관성이 만들어낸 브랜드 아이덴티티다.

 

독일 어디를 가든 동일한 디자인의 의자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독일 도시들이 공공 디자인을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브랜드 경험의 일부로 보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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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에게도 ‘대표 공공 의자’가 있을까?

현재 한국에서는 특정 도시를 대표하는 공공 의자가 없지 않은가? 만약 전국 각 도시마다 그 지역의 개성과 철학을 담은 대표적인 공공 의자를 개발하고, 이를 국가 차원에서 통합한다면?


서울의 모던한 금속 프레임과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세련된 디자인 의자, 부산 도시 브랜드 철학을 담은 26.5도 B체어에 바다와 16개 시구군을 홍보하는 흥미로운 의자를 왜 만들지 못했을까? 영주에 선비들의 유유자적, 안빈낙도의 풍요를 담은 의자, 이제는 정말 용감하게 시작해 보자. 각 도시의 정체성을 반영한 대표적인 공공 의자를 디자인하고, 이를 도시의 브랜드 요소로 황용해 보자. 

 

도시의 공공 의자는 관광객들에게 ‘그 도시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각적 매체’가 될 것이다. 공공 의자를 기념품이나 미니어처로 제작하여 관광 상품화해 보자. 스위스 루체른, 독일, 캐나다에서 배웠다. 이제 우리만의 방식으로 더 나은 공공 의자를 기획할 차례다. 단순히 벤치를 놓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의 감성과 이야기를 담아낸 공공디자인이 필요하다. 이제 한국도 공공 디자인을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브랜드 구축의 핵심 요소’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하나의 작은 의자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우리도 과감하고 용감하게 서울시의 명품 의자, 부산시의 감성 의자, 광주시의 친절의자, 그리고 영주시의 선비 의자가 할 수 있는 크고 거대한 힘을 기대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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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5년03월20일 13시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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