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계기로 ‘예술 한류’를 확산시키자 <하> 문화정책적 지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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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해진 ‘예술 한류’의 흐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류는 대중음악과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콘텐츠)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이 같은 ‘콘텐츠 한류’에 못지않게 음악 미술 문학 등 기초예술 분야 한류(‘예술 한류’)도 이젠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 파리오페라발레단과 마린스키발레단에서 현재 각각 주역 무용수로 활동하는 박세은과 김기민, 월드뮤직 분야에서 세계를 누비고 있는 잠비나이와 블랙스트링 등 국제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늘고 있다. 또, 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8살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한 임윤찬을 비롯해 같은 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최하영, 역시 같은 해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한 양인모 등 최근 클래식 분야의 성과는 눈부시다. 미술계에서도 한국의 단색화(單色畵) 열풍이 불면서 박서보의 그림이 2015년 세계적인 미술 경매사인 크리스티의 개막작에 선정된 이래 해외 미술경매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9월 세계 최고의 미술관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정면 외벽에는 우리나라 설치미술가 이불의 작품 4점이 설치돼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격이 달라진 한국의 문화예술
오랜 세월 세계 예술계의 중심이었던 북미와 유럽 국가들에서 볼 때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예술의 열풍은 낯설 수 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장인 이은정 교수(61)는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노벨문학상이 발표되었을 때 내가 독일에서 교수를 하면서 가장 많은 축하 인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오스카상을 받았을 때도 축하 인사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격이 달랐다”고 소개했다. K팝의 인기에 대해 유럽 지식인들은 ‘젊은 아이들의 문화’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는데, 영화가 한국 콘텐츠를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됐고, 이제 노벨문학상까지 받으면서 한국 문화의 위상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예술 한류
하지만, 콘텐츠 한류에 비해 예술 한류는 아직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예술 한류가 더 넓고 깊게 확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메세나 제도 개선을 통한 기업의 예술 후원 확대(12월13일자 본란 칼럼 참조)와 함께 국가의 문화정책적 지원이 절실히 요구된다. 창작(생산) - 교류(유통) - 향유(소비)의 단계별 문화정책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기초예술가는 진정한 코즈모폴리턴이 되어야
우선 창작 면에서 우리 기초예술가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니라 진정한 선구자(first mover)로서의 면모와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 한국 전통문화와 문화유산 등 K헤리티지(K-heritage)뿐 아니라 국가를 초월한 동시대의 다양한 지구촌 이야기를 소재로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와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초예술가는 진정한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초예술은 콘텐츠 한류와 섞이거나 혼융(混融)되어야
다음은 교류 단계의 정책이다. 현재 유럽과 북미 중심으로 치우친 예술교류에서 벗어나 아시아 아랍 아프리카 남미 등 다양한 국가들과의 예술교류를 펼쳐야 한다. 지속 가능한 교류와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예술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예술가들을 체계적으로 해외에 소개하는 방안도 중요하다. 해외 교류 확산을 위해 기초예술은 콘텐츠 한류와의 섞임이나 혼융(混融)을 고려해야 한다. 문체부 산하 국제문화교류 전담 기관인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이 2024년 올해 파리올림픽이 개최된 프랑스에서 5월부터 11월까지 총 6개월간 선보인 ‘코리아 시즌’이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으로 파급력이 큰 국가를 선정해 한국의 문화예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코리아 시즌은 K팝이나 K드라마를 넘어 한국의 문화예술을 선보이며 예술교류의 기반을 다지는 사업이다. 올해 프랑스의 코리아 시즌은 17개 문화예술 기관 및 단체가 참여해 공연 전시 공예 콘텐츠 관광 체육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그램 34개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우수한 예술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앞으로는 올림픽 등 스포츠행사뿐 아니라 세계적인 유명 축제나 관광 무역 행사 등에서도 코리아 시즌을 엮어 참가하면 좋을 것이다. 또 이런 기회를 통해 예술 한류와 콘텐츠 한류가 섞여지고 혼융되는 일들이 더 많이 기획되고 실행된다면 예술 한류의 확산은 더 공고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 문체부 산하기관들의 역할 재편도 필요하다. 현재 국제 예술교류사업을 맡은 문체부 산하기관들은 KOFICE,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으로 다양하고 역할 분담도 모호하다. 예술 한류 진흥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새로운 역할 분담과 네트워킹이 필요하다.
전 세계 한류 팬들과 협업해야
다음은 향유 단계의 정책이다. 콘텐츠 한류가 국내 애호가층(팬덤)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 차츰 아시아 팬덤을 형성하고, 나아가 북미와 서유럽 시장을 두드렸음을 참조해야 한다. 예술 한류의 세계 진출과 확산에 앞서 국내 팬덤부터 확보하는 일이 긴요하다. 이는 기초예술가가 자기만족을 벗어나 애호가 및 사회와 폭넓게 소통하고자 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아울러 기초예술은 그동안 콘텐츠 한류가 쌓아 놓은 세계적인 네트워킹과 팬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K팝이나 K드라마를 통해 ‘한류동호회’에 가입한 전 세계 한류 팬들(2023년 말 기준 2억 2500만 명)은 점차 한국의 역사와 철학, 문화예술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 세계 35개 재외 한국문화원에서 예술행사나 문화이벤트 등을 끊임없이 기획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팬덤 거버넌스에 입각해 작지만 주요한 활동들이 전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펼쳐지도록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
예술 한류와 콘텐츠 한류는 서로 벤치마킹하고 협업하면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의 문화정책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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