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시평 <46> 블록버스터(blockbuster) 전시의 빛과 그림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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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는 세계 2차 대전에 영국 공군이 쓰던 4.5 톤의 거대한 폭탄의 이름이지만, 헐리우드의 대히트작들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된 후 많은 예산을 들여 흥행에 성공을 거둔 공연이나 전시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지난 11월 초부터 예술의 전당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몇 개의 세계적 거장들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의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과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의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전이 그것이다. 블록버스터 전시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근자에 들어서는 그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하지만 종래의 전시들은 대개 제목만 그럴듯한 속빈 강정 같은 것들이 많았다. 유명 작가의 이름을 건 전시지만 정작 수준 높은 작품은 별로 없고 드로잉이나 도자기 그림 같은 비 본질적인 작품들로 채워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점차 그 내용이나 수준도 향상되고 있다. 이들은 대개 일반 관객들에게 인지도와 관심이 높은 작가들의 전시로 꾸려지게 되는데 국민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과 예술적 소양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두 곳은 공공 전시 공간이면서 국내의 대표적 블록버스터 전시 전문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세 개의 전시 중 고흐나 클림트와 달리 이번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전시는 상대적으로 다소 일반 관객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내용일 수 있는데, 이런 전시가 소개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국내 전시 문화의 수준이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카라바조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거장으로 베르메르, 렘브란트, 꾸르베, 마네 등 서양의 많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천재적 작가이다. 이번 전시는 한-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서 카라바조의 작품은 <의심하는 도마>,<그리스도의 체포> 등 우피치 미술관 소장 작품 3점을 포함한 10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밀라노 출신인 그는 빛과 그림자를 강렬하게 대비시킨 테네브리즘(tenebrism) 스타일의 창시자이다. 그는 성서의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예수나 사도들의 모습을 성스럽게 처리하지 않고 시장이나 거리의 평범한 인물들로 표현하며, 전쟁과 질병 등 재해로 인해 어지러운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 다양한 인물들을 다루었다. 밑그림 없이 캔버스에 직접 그림을 그렸던 뛰어난 역량의 작가였지만 다혈질에 약간의 광기까지 있어 살인을 저지르며 불안한 도망자의 신세로 활동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다. 그를 후원하는 귀족들의 도시들을 돌며 창작활동을 했지만 아깝게도 39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번 고흐의 작품전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과 오털루의 크뢸러뮐러 미술관에서 가져온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과 ‘아이리스’ 같은 명작들을 선보인다. 또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는 빈의 뮤지엄 콰르티에에 있는 레오폴트 미술관의 소장품들로 오스트리아의 문화적 전성기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전시 개막 시에는 미술관의 관장이 내방하여 전시와 관련한 강연을 하는 등 매우 알찬 내용의 전시를 준비했다. 물론 특별한 애호가들은 해외 여행시 미술관에 들러 해당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반 관객들에게 국내에서 유명한 작가들의 원화 작품을 관람하게 된 것은 우리의 문화적 역량이 점차 높아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블록버스터 전시들은 대개 외부의 전문기획사들을 통해 유치, 추진하게 되는데 많은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대개 언론사나 기업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면서 기업의 광고나 홍보비를 지원받는 형태를 취한다.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미술관에서 유치한 전시를 순회전 형식으로 들여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전시들은 국민들에게 수준 높은 작품의 관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의미가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 자체의 전시 수준이나 학예역량을 높이는 데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미술관 내에 학예직이 없는 경우는 물론이고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해외 기획사의 전문인력에 의존하며 전시가 진행되기 때문에 미술관 내부의 연구 능력은 고사하고 실질적인 행정이나 디스플레이와 같은 전시공학적 훈련조차도 그들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학예직을 소유하고 있는 국공립 미술관에서 이런 형식의 전시가 유치될 경우, 내부적으로는 국내미술관의 학예 및 전시 역량과는 무관한 외부 기획사의 역량으로 치러지게 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대개 국공립미술관에서는 블록버스터 전시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공립미술관의 경우, 왕왕 미술관의 경영마인드 도입과 관련하여 블록버스터를 적극 유치함으로써 미술관의 수입 창출과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적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문제는 현재로선 하나의 딜레마이다. 블록버스터 전시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상업적 요소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미술관이 학술적, 교육적 역할보다는 수익 창출에 치중하게 되어 본연의 사명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 미술관의 공공성에 비추어 블록버스터 전시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비춰질 경우 공공의 신뢰를 잃을 가능성과 미술관의 정체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대규모 전시는 제작, 운송, 보험, 홍보 등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러한 재정적 부담이 지속되면 미술관 운영의 다른 영역, 특히 영구 컬렉션 관리나 지역 예술가 지원에 대한 투자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블록버스터 전시는 일시적으로 관람객 수를 늘릴 수 있지만, 이는 단기적 효과일 뿐이며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하기 어렵고 장기적인 관람객 개발 전략에 소홀해질 위험도 있다. 일반 관객들도 유명한 해외 거장들의 전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피카소나 고흐나 세잔, 클림트, 뭉크 또는 르네상스나 바로크의 거장 등등의 전시에는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에 관심이 높은 관객들의 경우, 해외 여행 기회가 많아진 관계로 해외 현지에서 훨씬 더 수준 높은 전시를 관람하고 있기 때문에 왠만한 작품들을 가져와봐야 별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점점 더 인기있고 유명한 작가들의 전시를 유치해야하는 상황은 재정적 측면에서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블록버스터 전시는 주로 유명한 작가나 국제적 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국내 작가나 지역 작가들의 전시 기회가 줄어들 수 있어 지역 문화 생태계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저해할 위험도 있다. 또한 대규모 관객 유입으로 인해 미술관 시설이 과부하 상태가 되거나, 인력 부족으로 인해 서비스 품질이 저하될 수도 있어 일반 관람객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공공 미술관이나 전시공간에서 지속적으로 블록버스터 전시를 유치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유치한다 하더라도 많은 장단점이 공존하기 때문에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단점과 부작용을 완화하려면 공공미술관이 해외 유수 기관들과 공동기획전 형태로 기획함으로써 국내 미술계에 필요한 학예역량을 키우며, 블록버스터 전시를 유치하면서도 지역 예술 지원, 공공 교육 프로그램 강화, 영구 컬렉션 관리 등 미술관의 본래 역할과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구현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바람직하진 않지만, 현재로선 예술의 전당과 같이 특화된 전시 공간에서 블록버스터형의 전시를 추진하되 단순히 기획사의 전시콘텐츠를 위한 대관 공간으로서의 소극적 기능보다는 기획사들과 기획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네트워크와 경험을 나누어 가지는 적극적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공공미술관의 경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문제는 아니지만 우선 인력,재원,시스템 등 미술관의 기본 여건을 충실히 해야 하며, 블록버스터 전시를 개최할 경우, 단순한 유치가 아니라 해외 미술관들과의 대등한 차원의 공동 기획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재정과 전문성을 키워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해외 전시들만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 한류의 관심 증대에 부응하는 블록버스터형 해외 한국미술전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전략도 적극적으로 착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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