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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29> 국가 비전으로서의 야심 찬 문화 프로젝트의 필요성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3월04일 16시00분
  • 최종수정 2024년03월04일 12시50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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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석유 강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울라(AlUla) 사막 지역에서 대규모 국제 대지 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이 지역은 사우디아라비아 서북부의 메디나 지방으로 기실 오랜 역사와 멋진 풍광을 가진 오아시스 도시이다. 과거 인도와 아라비아를 잇는 실크로드 상의 거점 도시로 향신료 교역의 중심지였다. 이 지역은 사암 지대로 사막과 멋진 바위와 협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0여 년 전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한 건축물 유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헤그라(Hegra)가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지난 2월 9일부터 오는 3월 23일까지 개최되는 이번 행사는 <Desert X AlUla 2024>라는 프로젝트로 한국의 김수자를 비롯해 쿠웨이트, 멕시코,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의 작가 15명이 웅대한 자연 속에 <부재의 존재>란 주제로 대형 작품들을 선보인다. 현대미술과 관련한 국제무대에서 마이너리그라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되는 이 행사는 격년제 행사로서 벌써 3회째를 맞고 있다. 이는 2017년 캘리포니아에서 설립되어 특별한 사막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Desert X’라는 조직과 알울라 왕립위원회(RCA)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특별히 2026년에 시작되는 획기적인 프로젝트인 ‘와디 알판(Wadi AlFann)’의 초석을 놓는 의미가 있다. ‘와디 알판’은 알판 계곡에 형성될 예정인 기념비적이고 영구적인 대지 예술의 글로벌 허브 프로젝트로 예술적 표현의 경계를 넓히고 미래 세대 관객의 관심을 끌 것으로 기대된다. ‘Desert X AlUla’는 현대미술의 플랫폼일 뿐만 아니라 문화 및 교육 참여의 촉매제 역할도 하고 있는데. 이 전시회는 알울라 예술축제의 일부이며 방문객과 지역 사회 모두를 대상으로 아티스트 토크, 워크숍, 음악 이벤트 등 광범위한 이벤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알울라 지역에는 몇 년 전부터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를 만들어 전 세계 작가들에게 새로운 창작 환경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국제미술 무대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곳에 퐁피두 아트센터를 유치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등 이 지역을 대규모 문화단지로 조성하여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문화 산업적 프로젝트를 착수하고 있다. 사실 이 지역은 종교적 이유로 지역민들에겐 저주받은 땅이란 인식이 깊은 곳이어서 이러한 문화적 프로젝트를 통해 이 인식을 지우려는 의도도 깔려있다. 파리 퐁피두 센터의 로랑 르봉(Laurent Le Bon) 관장은 알 울라 왕립위원회(RCU)와 북서부 사막에 지역 및 국제 현대미술을 위한 대규모 뮤지엄을 건립하기로 협약을 체결했고, 2028~29년 개장을 계획하고 있다. 뮤지엄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방문한 2021년부터 공사가 진행 중이라 한다. 컬렉션은 서남아시아, 북아프리카, 남아시아의 예술을 중심으로 하며 다양한 매체를 대상으로 대지 예술과 새로운 디지털 형식에 중점을 둘 예정이다. RCU는 또한 자국의 예술가와 해외 작가들에게 몰입형 설치물과 공공 예술 작품을 의뢰할 예정이다. 

 

  이러한 계획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전 2030>의 일환이기도 한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비전 2030>은 석유 수출만으로 국가의 재정을 감당하던 과거와 달리, 탈석유, 산업 다변화로 사우디의 경제와 산업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야심 찬 계획이라 할 수 있다.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여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려 하고 있다. 나침반 역할을 하는 <비전 2030>의 일환으로 왕국은 문화를 되살리고 경제를 다양화하는 것을 목표로 새로운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실제로 수도 리야드는 2030년 세계 엑스포를 유치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세계 엑스포 유치를 놓고 경쟁했던 우리의 부산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가프로젝트와 비교할 때 초반부터 경쟁이 되지 못하는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이 <비전 2030>은 전 국토를 대상으로 지역적 특성을 달리하는 종합프로젝트로 단순한 지역만의 특성을 강조한 부산의 경우와는 규모 면에서도 큰 차이가 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문화 르네상스 프로젝트로는 2028년 개장을 목표로 디리야(Diriyah)에 노르웨이 건축회사인 스노헤타(Snøhetta)가 건립 중인 왕립오페라 하우스를 들 수 있다. 또한 건립 중인 제다 타워(Jeddah Tower)는 높이가 1km에 달하여 현재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두바이의 브르즈 칼리파(Burj Khalifa)를 추월할 것이다. 활성화된 문화 센터로 전환된 제다 담수화 공장이라든가 영국건축 설계회사인 포스터+파트너사가 진행하는 해안 프로젝트부터 스카이라인을 재정의하는 도심의 고층 빌딩에 이르기까지 건축 환경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례에서 보듯, 최근엔 국가마다 경쟁적으로 문화를 산업과 경제를 위한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다. 문화는 높은 수준으로부터 낮은 수준으로 흘러가는 물이나 공기와 같은 것임을 생각할 때, 문화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국가들은 이를 해외로부터 수입하고, 문화강대국들은 자국의 문화를 수출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소프트웨어의 수출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차원의 국제적 브랜치를 구축해 가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같은 하드웨어를 활용한 방식은 대표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국제적으로 뛰어난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소장품을 수장고에 묵혀두지 않고 여러모로 활용할 수 있어 좋고, 이를 유치한 국가에서는 이를 통해 관광객 유치와 지역의 뮤지엄 문화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 구겐하임과 루브르, 퐁피두 센터 등이 그 대표적 선두 주자들이다. 

 

  우리에게도 2000년대 초반 빌바오 구겐하임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부천시에서 구겐하임의 브렌치를 유치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지방자치단체인 부천시로서는 매우 야심 찬 발상이었지만 유치를 위한 재정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었다. 물론 백남준 작가의 추천까지 동원해 정부에 국고 요청을 했지만, 문화적 인식 부족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이러한 정책적 인식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최근 부산이나 인천광역시에서 해외 유수 미술관 유치를 계획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가시화된 내용은 없다. 다만 민간기업인 한화그룹 산하 한화문화재단이 퐁피두 측과 ‘퐁피두 센터 한화 서울’(가칭)을 설립 운영하는 데 합의하는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유치장소는 서울 여의도 63빌딩으로 2025년에 분관을 열 예정이다. 한화는 개관일로부터 4년간 한국에서 퐁피두 센터 운영권을 보장받으며 한화문화재단이 운영을 맡게 된다. 이를 통해 많은 국내외 관람객을 유치와 새로운 문화산업의 모델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대부분 이미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 대중음악 등 문화콘텐츠의 생산과 수출 등에 대해서만 강조되고 있지 좀 더 다양한 내용이 검토되지 못하고 있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지역으로의 인구 분산을 위해 다양한 개발 계획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 역시 대개는 대단위 주거단지, 산업단지 조성 등 관습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유사한 것들의 반복과 나열에 그치고 있어 괄목할 만한 성공적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비전과 상상력의 고갈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중동 산유국들의 사례에서 보듯, 국가의 발전 전략 속에 좀 더 야심 찬 비전의 문화 프로젝트를 반영하여 수준 높은 문화산업 개발과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한 담대한 특화 전략을 수립하는 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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