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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자본주의 체제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2월07일 17시13분
  • 최종수정 2024년02월05일 10시23분

작성자

  • 안석교
  •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명예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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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K. 마르크스를 지난해 제1호의 표지 특집인물로 선정했다.  시사적 사건을 다루는 잡지가 이미 사망한지 100여년이 되는 한 혁명사상가를 21세기에 진입한 오늘날 재조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사라진 것으로 간주한 마르크스는 현대 자본주의에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가.

 

자본주의 체제는 산업혁명 이후 급속한 생산력의 발전을 통하여 물질적 풍요를 실현하는 데 있어 어느 다른 경제체제보다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그 도정은 결코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부단한 경기변동을 겪으면서 인플레와 실업의 압력에 노출되었으며, 분배 몫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가의 갈등 역시 자본주의 발전의 상수로 등장하였다.  21세기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개관해보기로 한다.  

 

자본주의 국가들 중 대표주자로 간주되고 있는 영국의 이른바 「영국병」은 그러한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성장은 정체되고 파운드화는 급락하였으며, 지난 40여년만에 가장 높은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다. 빈곤선 아래로 추락하는 저소득층과 비정규노동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대규모 파업은 정치 사회적 불안정을 유발하고 있다.  어느 영국 정치인은 현 영국의 상황은 「수치스럽고 충격적」이라 하였다.  연금개혁과 농업정책을 둘러싼 프랑스의 경우도 상황은 심각하다.  EU의 경제성장을 주도하던 독일 역시 성장률이 심각하게 둔화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럽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심각한 체제의 질환을 안고 있는 것이다.  

 

매우 역설적인 사건에서 출발해보기로 한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것으로 간주되는 거부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슈피겔에 따르면 세계 최대의 헷지 펀드를 설립하여 자본주의의 최대 수혜자로 간주되는 레이 달리오(Ray Dalio)가 자본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투자은행에 대한 성공의 지침서로 간주되던 「성공의 원리」라는 저서로 2백만부 이상이 팔리는 인기를 누렸던 그였다.  이미 여러해 전부터 G. 소로스 역시 체제의 도덕성에 신랄한 비판을 가해 왔다.

 

이들의 지적대로 현대에 들어서면서 산업자본주의가 금융자본주의로 전락하고 「돈 놓고 돈 먹는 식」의 투기소득이 범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결과 금융부문과 실물경제간의 연계성이 약화됨으로써 결국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성장잠재력이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많은 기업들은 이윤을 기술혁신, 신제품 개발 등에 투자하기 보다는 주식 등과 같은 금융소득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주주자본주의 하에서 주주는 상대적으로 장기투자가 필요하고 위험이 높은 기술개발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국제금융시장의 대변인으로 알려진 「Financial Times」가 신자유주의의 퇴장을 요구하고 국가의 보다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더 이상 자유시장경제 내지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의 자율기능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적, 제도적 규제장치를 통한 정부∙국가 개입이 요구되는 이유이며, 따라서 우리는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두번째 위협은 2차대전 이후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힘겹게 가꾸어 온 자유무역질서의 붕괴현상이다.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수많은 국가들의 발전은 바로 개방체제 하에서 얻어진 성과들이다.  그러나 근년에 들어서면서 자유무역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자기중심적, 미국우선주의적 정책과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전략에 따라 무역과 투자부문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간 거래의 자유가 훼손되고 있다.  이른바 경제안보, 공급망의 확보 등과 같은 전략은 국제 냉전체제가 고착화되면서 21세기의 핵심적 국제질서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 결과는 승자 없는 갈등의 양상을 보일 것이며 모든 당사국들이 패자가 될 것이다.

 

이와 동시에 국가 간 경제외교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최근에 전기자동차나 반도체 등의 첨단산업에서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대한 관련국들의 협상능력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그에 대한 한 반증이다.  대외경제에 있어 국가 (외교)의 기능이 자유시장기능을 대체해 가고 있는 것이다.  자유무역의 세계주의가 붕괴되면서 시장기능이 약화되고 그 대신 국가 간의 힘겨루기가 잡초처럼 번져갈 것이다.

 

셋째, 자본주의 체제의 생성과 함께 고질적 문제의 하나로 간주되어 온 소득분배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과제이다.  이 문제 역시 시장의 자율기능만으로 해소가 어렵다는 점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대기업의 CEO를 포함한 경영진들에 대한 보상 수준은 이미 「보통사람들」이 건전한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세금으로 적자를 보전하는 기업의 보상잔치 역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느 저명한 하버드의 경제학자는 일반 노동자의 100배, 150배에 달하는 보상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아들의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했다.

 

대부분의 주요 자본주의 국가에서 소득이나 재산의 분배는 악화되었다.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를 통하여 국가의 사회정책적 기능을 강화시켜온 독일의 경우 역시 예외가 아니다.  1995-2019 기간 구매력 기준 하위 10%의 소득이 5% 미만의 상승에 그친 반면 상위 10%는 40% 이상 크게 증가했다.  재산의 집중도는 더욱 심하여 상위 10%가 재산의 2/3를 소유한 데 반하여 하위 50%는 겨우 1.3%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많은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성장이 분배공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분배에 관한 한 신자유주의 시장질서가 결함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국가의 「보이는 손」에 의한 시장개입이 더욱 필요한 실정이다.

 

분배와 관련된 장기정책과 국가의 재분배 기능을 정립하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점은 한국을 포함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중∙장기적으로 저성장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지적한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문제와 특히 출산율의 저하에 기인하여 생산력이 약화될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이나 골드만 삭스 등과 같은 기관의 예측에 따르면 2050 이전 우리 경제는 0%의 성장률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률의 저하는 장기적으로 국가의 재분배, 복지정책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 분명하다.  조세수입이 제한되고 사회적 노령화에 따른 복지수요의 증가,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재분배 정책을 위한 재원 마련 등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들이 중첩되고 있기 때문이다.

 

슈피겔지는 같은 호에서 최근 미국의 한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풍요사회의 실현에도 불구하고 미국 청소년(18-29세)의 49%가 사회주의에 대하여 긍정적 의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젊은 세대의 신뢰도가 크게 저하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체제의 안정성을 크게 위협할 수 있다. 

 

위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녹색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책수단이나 단기적, 고립적 정책처방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적 「최소통치」의 정부라는 기존의 이상모형에서 탈피하여 적극적 국가의 기능에 기초한 경제질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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