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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가 메모한 여의도의 모든 것 <24> 꼰대 정치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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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11월27일 16시35분
  • 최종수정 2023년09월12일 11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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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구시대 정치인의 상징처럼 된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되돌아보면 놀랄 정도로 의식 있고 깨어있었던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꼰대, 구시대 정치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모 전 의원도 젊은 시절에는 6·3 한일국교정상화 반대 투쟁을 주도한 혐의로 100일간 투옥됐고, 김영삼(YS)·김대중(DJ) 진영이 만든 그 유명한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민주화 투쟁을 했다. 한국 정당사에 유례가 없는 ‘친박연대’를 만들고, 이후 친박의 좌장으로서 보인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정치인이 초심을 잃고, 자신과 소속 정당, 진영의 이득을 위해 양심과 상식을 잃은 결과는 무섭다. 처음에는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횟수를 거듭하면서 양심의 가책은 무감각해졌을 테고, 그만큼 자신과 자신의 이익집단에 대한 옹호 강도는 높아졌을 것이다. 이쯤 되면 옳고 그름은 더 이상 판단의 기준이 아니다. 오직 나와 우리 당에 이득이냐 손해냐 만이 기준이 된다. 이득을 향해 한 발 한발 나아갈수록, 뒤로는 그만큼의 오명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지금 숱한 견강부회(牽强附會), 아전인수(我田引水), 곡학아세(曲學阿世),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들도 끝에 가서는 오명 외에 무엇이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더불어민주당 ○○○ 의원님이 계시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내가 열린우리당, 민주당을 출입할 때 그도 정치부 기자여서 이름은 많이 들었다. 어쩌면 당 대표 등의 큰 오찬에서 인사 정도는 나눴을지도 모른다. 신문에서만 보던 그의 이름을 TV로도 보게 된 건 그가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고위직이 되면서부터였다. 재직 중에 옮겼으니 바람직한 선례는 아닌 게 분명하고 (그 전에 다른 언론사에서 유사 사례가 나왔을 때 가장 비판적인 기사를 쓴 곳이 그가 몸담았던 신문사다), 또 박근혜 정부 시절 KBS 9시 뉴스 민경욱 앵커(민 앵커와 나는 같은 시기 민주당을 출입했다)가 청와대 대변인이 되자 민주당이 권언유착이라고 그렇게 비난하던 걸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은 크게 문제 삼고 싶지 않다. 어쨌든 기자 경력을 잘 살려 잘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자 출신이란 게 무색한 모습을 자꾸 보이더니, 결국 ‘○○ 선생’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애칭까지 얻었다. 


 아무튼 납득이 안 되는 여러 말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소위 ‘경찰 사칭’ 옹호 발언이다. 2021년 여름 MBC 취재진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의 박사 논문 관련 취재를 하며 경찰을 사칭한 사실이 드러났다. 윤 후보 측은 경찰에 고발했고, MBC는 취재 윤리 위반으로 정직 6개월 등 중징계를 했는데 정작 기자 출신인 이분은 같은 해 7월 12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저희들, 나이가 든 기자 출신들은 사실 굉장히 흔한 일이었다. 제 나이 또래에서는 한두 번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경찰 사칭을 사실상 옹호했다. 또 “심지어 전화번호가 뜨니까 상대방이 경찰이 한 것처럼 믿게 하려고 경찰서의 경비 전화를 사용한 경우도 많았다”라고 했다. 물론 “(MBC가)잘못한 것은 맞는데”라고 덧붙이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칭 옹호였는데, “윤 전 총장(윤 후보)이 이걸 고발한 것은 너무 심했다고 생각한다. 윤 전 총장이 벌써부터 기자들의 입을 막으려는 것인가, 아니면 벌써부터 겁을 먹은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라고 하는 데서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그는 나보다 5년 정도 선배였으니 비슷한 시기에 취재 현장에 있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출입처에는 그보다 더 연배가 높은 선배들도 수두룩했으니까. 그런데 ‘경찰 사칭’은 내가 입사했을 때도 못 보던 행태였다. 경찰을 사칭을 해서라도 뭘 알아내라고 가르치거나 지시하는 선배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묻기 굉장히 곤란하거나 욕을 먹을 게 뻔한 취재를 할 때 '조선일보 기잔데요'라고 한 적은 있다. 이 자리를 빌려 조선일보 측에 진심으로 사과한다.) 물론 내가 다 아는 건 아니니 어느 구석에선가 벌어졌을지는 모르지만, 그의 말처럼 ‘굉장히 흔한 일’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도 사실과 많이 차이가 나는 점인데, “전화번호가 뜨니까 상대방이 경찰이 한 것처럼 믿게 하려고 경찰서의 경비 전화를 사용한 경우도 많았다“는 부분이다. 아마 경찰에서 전화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경찰서 경비 전화로 취재원(일반인)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경찰 경비 전화로는 일반 전화로 전화를 걸 수가 없다. 경찰 경비 전화는 내부망인데, 경찰서 내 각 부서와 파출소, 정문, 회의실 등에 설치돼있고 각각 번호가 있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서 기자실은 619번, 삼성1파출소는 414번 이런 식이다. 경비 전화도 취재할 때 쓰기는 한다. 단, 내부 회선이라 일반인이나 외부 다른 기관으로는 걸지 못하고, 경비 전화가 있는 경찰 부서에 걸때 사용한다. 예를 들어 강남경찰서 기자실에서 강남서 형사계에 건 다던가, 아니면 경찰청 경비과에 건다든가 할 때다. 1997년부터 PCS 핸드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까지는 개인적으로 휴대전화를 가진 기자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사건이 터지면 늘 일반전화가 붐볐기 때문에 경비 전화는 주요한 취재 도구였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경찰 내 조직에 걸때만 사용이 가능하다. 경비 전화번호가 뜨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고? 일반전화로 연결이 안 되는데 어떻게? 


 나도 옛날 기자고, 가재는 게 편이다. 그래서 윤 후보가 기자를 고발까지 한 것은 좀 과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경찰 사칭은 취재가 아니라 심문이다. 옹호하고 싶어도 “잘못한 건 맞는데 대선 후보가 고발까지 해야 했는지 아쉽다” 정도 했으면 될 일을 “윤 전 총장이 벌써부터 기자들의 입을 막으려는 것인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경찰 사칭에 대응한 걸 ‘기자 입을 막으려는 행위’로 강변하다니… 사칭은 취재 기법이 아니다. 


 기차를 타고 있으면 계속 직진만 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한참을 간 뒤에 뒤를 돌아보면 내가 달려온 길이 사실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그렇게 변해간다. 나의 이익, 우리 편의 이해관계만 보고 하루하루 직진만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옳고 그름은 사라지고, 처음의 초심은 온데간데없는 괴물만 남는다. 변해가는 과정에서 숱한 사람이 조언하고, 누군가는 혀를 차고, 더러는 손가락질하는데도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정의와 진실’(?)만 말하고 있는 나만 보일 뿐. 일반인 중에도 이런 사람은 많지만 정치인 같은 사회 지도층의 그런 행동과 비교할 수는 없다. 일반인은 혼자 그러고 말지만, 사회 지도층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모을 힘이 있고, 그 힘으로 집단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국 수호를 외친 서초동의 그 많은 함성은 그렇게 형성된 게 아닌가 싶다.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인 2022년 2월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소가죽을 벗기는 굿을 직접 한 무속인 이 모 씨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부인인 김건희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코바나컨텐츠 행사에 참석해 축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체 김건희 씨와 이들 무속인은 얼마만큼 가깝고 특별한 관계인지 밝혀야 한다”라고 했다. 이쯤 되면 정말 누구 말대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인데, 자기 자화자찬과 달리 그가 기자 생활을 제대로 했는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다. 구산초등학교 6학년 3반 학급신문도 기사를 그렇게 쓰지는 않는다. 최순실처럼 연설문을 미리 검토했다거나, 청와대를 무시로 드나들었다던가 이런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팩트들이 있어야 의혹도 제기하는 것 아닌가. 그가 기자일 때 그런 식으로 기사를 썼다면 아마 무지하게 혼났을 것이다. 역시 이런 행태도 ‘여의도’에 있기 때문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정말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달리기가 멈춰졌을 때,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고 있을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PS.1 ― 2022년 2월 이분이 무속인 축사 의혹을 제기하자 국민의힘은 그를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분은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내 자랑이라 쑥스럽지만 30년 가까이 기자 생활하면서 언론중재위원회에 딱 한 번 불려 갔고, 소송은 딱 두 번 당해봤다. 모두 다 내가 이겼다”라고 했다. 또 “근거 없이 고소·고발을 할 경우 무고죄에 해당이 된다. 무고죄 공소시효는 10년”이라며 “(국민의힘이) 예닐곱 번 나를 고소 고발했는데 딱 하나 안 하는 게 있다. 뭔지 아느냐. (윤 후보의) 병역면제 부동시 문제인데 왜 그럴까. 구린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니냐”고 했다.


 PS.2 ― 그로부터 나흘 후, 당시 행사 생중계 영상이 언론에 공개됐다. 이 무속인은 참석은 했지만, 축사를 한 것은 아니고 잠시 단상에 올라가 사진을 찍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이분은 “이 씨가 단상에 섰으니 당연히 축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질은 축사가 아닌 참석”이라며 여전히 무속인과의 관계를 밝히라고 주장했다. 또 “영상만으로는 단상에서 무엇을 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이 씨가 단상에서 연설하지 않고 무엇을 했는지 조선일보와 김건희 씨는 증명해 달라”고 했다. 대체 기자 생활을 어떻게…. 궁금하다.

<ifsPOST> 

 ※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23년 8월 펴낸 책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도서출판 북트리 刊>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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