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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언어모델 시대의 킬러 문항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6월28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06월27일 10시02분

작성자

  • 윤기영
  • 한국외대 경영학부 미래학 겸임교수, 에프엔에스미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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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수능시험에서 킬러 문항 배제를 거론했다. 대통령 공약이라고 하나 시기적으로 뜬금없고, 무의미한 갈등으로 국력을 낭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거대언어모델 시대의 교육을 논의해야 하는데 방향을 잃은 듯하다. 이번 글에서는 거대언어모델 시대의 교육이 어떻게 변화할 지에 대해 진단하고, 교육 전환에 대한 정책 의제를 제안한다. 이를 통해 킬러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무의미하고 쓸모 없음을 비판하겠다.

 

참고로 거대언어모델이란 ChatGPT와 같이 그 규모가 큰 언어모델을 의미한다. 최근 거대언어모델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구글은 PaLM-2를 최근 공개했으며, 메타는 거대언어모델 오픈소스의 중심이 되었다. 오픈소스인 Vicuna-13B 모델은 특정한 작업에서 GPT-4 대비 92%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알리바바는 올 4월 매개변수 규모 10조개에 달하는 거대언어모델 Tongyi Qianwen(通义千问)을 발표했다. GPT-4는 1조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PaLM-2 중 가장 큰 모델인 Unicorn은 3,400억개 수준이다. 최근 성과에 따르면 거대언어모델의 규모가 크다고 반드시 성능이 좋은 것은 아니다. 

 

교육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 거대언어모델로 인한 미래전개도를 가져왔다. 미래전개도란 특정한 일이 발생하면 그 다음 어떤 일일 발생할 지를 전망하는 연쇄적 가설추리 기법이다. 역사적 경험, 인류의 심리법칙과 물리법칙 등으로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추론한다. 가설추리의 결과가 반드시 일어나지는 않으나,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미래의 위험과 기회를 찾는 데는 충분히 의미있는 기법이다. 아래 거대언어모델 미래전개도는 트렌드 분석, 이머징 이슈(emerging issue)와 위크 시그널(weak singal)을 문헌분석을 통해 확인하고 가설추리로 작성한 것이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월간SW중심사회에 올 4월과 5월에 연속 게재했다. 참고로 거대언어모델은 미래예측기법인 Futures Wheel을 한글로 번역한 것으로, 첨부한 미래전개모델의 표기법은 필자가 제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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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미래전개도에서 교육과 관련 있는 미래 이벤트를 굵은 글씨에 짙은 회색 배경으로 표시했다. 교육이 사회전반에 영향을 미치므로 위의 미래전개도가 모두 교육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된다. 논의 간결화와 시선 집중을 위해 관련성이 높다고 주관적으로 판단한 것만 표시했다. 이들 교육과 중점 관련 있는 이벤트를 정리하여 미래 교육 의제를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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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출된 미래교육 의제 중 대학 재정비는 반복적으로 등장한 의제다. 미래전망에서도 다시 도출된 것으로 그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것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네 개의 의제는 내용상 일부 중복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것이 빠졌을 수도 있다. 그런 것이 있다면 독자께서 적극적으로 덧글이나 필자에게 메일로 의견을 주시가 바란다. 각 의제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다루겠다.

 

지식에 관한 역량을 키워야 한다.


거대언어모델은 지식반감기를 급격하게 단축시킬 것으로 보인다. 거대언어모델은 특허 분석에 활용될 수 있으며, 품질 높은 동시 통번역 자동화로 지식의 전파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학습 효율성을 높여서 지식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거대언어모델은 언어뿐만 아니라 단백질구조예측, DNA 분석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생명공학, 의약품개발, 정밀의료에 기여할 수 있다. 이들 지식 생산성의 향상은 지식반감기를 지속적으로 단축시킬 것이다. 

지식반감기란 알고 있는 지식의 반이 쓸모 없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20세기 말의 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에서 배운 지식의 반감기는 6년에 불과했다. 이는 더욱 짧아질 것이다. 학교에서 특정한 전공을 배워봤자 그 지속기간이 길지 않다. 이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지식에 관한 역량이다.

 

지식에 관한 역량으로 과학, 수학, 철학, 역사/미래학에 대한 학습이 포함된다. 지식을 탐색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역량, 인지과부하 관리 역량, 타인과의 협업 역량 또한 지식에 관한 역량에 해당한다. 지식에 관한 학문인 인식론(epistemology) 혹은 지식학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배워야 한다. 지식 다음의 지혜도 지식에 관한 역량에 포함시켜야 한다. 지혜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그 중에 지혜를 선량할 수 있는 힘으로 정의하는 것이 맥락적으로 유의미하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신과 같은 힘을 가진 호모데우스에게 선량함이 없다고 상상해보라. 왜 지혜가 선량함인지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와 미래학을 묶어서 지식에 관한 역량으로 둔 것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역사란 인류, 사회와 개인의 역사적 변동에 대한 이해를 위한 학문이다. 과거 역사학은 과거를 단순하게 기억하기 위한 것도 있겠으나, 본질적으로는 미래학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추세외삽법으로 미래를 전망하지 못함에 따라 역사학은 미래학으로서의 기능을 놓쳤다. 미래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며,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거대언어모델을 포함한 생성인공지능의 가능성과 이것이 일으킬 미래변화에는 깊은 불확실성이 있다. 참고로 불확실성이란 위험을 뜻하지 않는다. 미래의 위험과, 가능성을 모두 포함한다. 미래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역사를 통해서 인류의 한계와 제약을 이해하고, 미래학을 통해서 미래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지식에 관한 역량에 해당한다.

 

대학을 재정비해야 한다.


거대언어모델을 이용한 의약품 개발 효율성 향상, 개인의 유전자와 생활습관에 따른 초정밀의료의 등장은 인간의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을 극단적으로 높일 가능성이 크다. 건강수명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면 생애주기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생애주기는 교육 시스템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기대수명이 60세라면 빨리 공부하고 빨리 대학을 나와서 빠르게 사회생활을 하고 신속하게 애를 낳아서 그의 사회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어린 나이에 높은 성적을 받았다고 그의 사회적 기여가 높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인생 60세 사회라면 그를 높게 중용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 그런데 인생 100세라면 그러한 교육 시스템과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는 당위성을 잃는다. 오히려 사회의 건강성과 생산성 및 창의성을 낮추는 결과를 만든다.

 

지식반감기 단축은 주기적 집중교육을 필요로 한다. 나노 학위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10년에 2년간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지식이 급격하게 바뀌는데 특정 전공 학위나 자격을 평생 유지하게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지식에 관한 역량을 키워 지식반감기 단축에 대응하고 지식의 복잡성을 관리할 수 있다고 하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3차와 4차산업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도 대학을 재정비해야 할 이유다. 올 3월에 발표된 골드만삭스의 생성인공지능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에 대한 보고서와 OpenAI와 펜실베니아 주립대 연구원이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은 그 방법은 다르나 결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를 발표했다. 거대언어모델과 이를 포함한 생성인공지능으로 3차와 4차산업 일자리에 큰 영향일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법률 서비스와 의료 서비스까지, 공학에서 사무직까지 일자리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산업별로 변화의 속도가 다르겠으나 기존 일자리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3차와 4차산업 일자리에 변화가 있는데 대학 전공 체계가 그대로 유지되기 어렵다. 

 

우리나라 대학은 교수에서부터 교직원까지, 학생선발에서부터 전공까지 전환적 변혁이 필요하다. 대학에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권은 전환을 주도할 것인가 아니면 전환을 당할 것인가이다. 교육 이해관계자는 입장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르다. 미래에 대한 추동력은 분명한데 과거로부터의 인력이 작지 않다는 의미다. 경영학에서 이야기하는 Self-cannibalism이 필요하다. 

 

어학 비중을 낮춰야 한다. 


거대언어모델을 이용한 번역 품질이 높다. 전문적인 학술지나 책을 번역하는 경우에도 용어집을 활용한다면 탁월한 번역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구글 번역기과 파파고 번역기와는 그 품질이 다르다. 앞으로 구글번역기와 파파고 번역기도 거대언어모델 기반 번역기로 전환할 것이나, 현재는 ChatGPT, Bard나 범용 거대언어모델이나 DeepL과 같은 전문 번역 거대언어모델의 품질이 탁월하다. 조금 과장을 보탠다면 전문 통번역가가 필요한 경우가 많지 않을 것이다.

거대언모델번역기의 앞뒤로 STT(Speech-To-Text)와 TTS(Text-To-Speech)를 붙이면 동시 통역이 가능하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하는 동시 통역기로 기능하는 바벨 피시가 이제 공상이 아니다. 의사소통, 지식의 획득과 전파를 위해 굳이 어학을 배울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한국인이 한국어와 영어를 잘하면서 수학과 자기전공을 잘할 수야 있겠으나, 이는 한정된 자원인 뇌의 시냅스를 낭비하는 것이다. 체계가 완전히 다른 언어를 배우면 시냅스가 새롭게 구성된다. 창의성과 전공 지식을 내재화하는데 투입해야 할 시냅스를 기껏 어학에 투자하는 셈이다. 일본 노벨상 수상자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배경에 일본의 번역청이 있다. 굳이 영어를 잘하지 않아도 최신 지식과 논문을 배울 수 있으므로, 영어에 투자할 시간과 시냅스를 전공에 투입할 수 있다. 한국사회가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어학 학습으로 인한 낭비를 줄여야 한다.

 

어학을 배울 필요는 다른 문화권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다른 문화권의 암묵지를 습득하기 위하는 것으로 제한해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어학교육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입시나 자격시험에서도 어학시험을 제외하거나 단순 선택과목으로 두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다가올 신 바벨 시대에 한국사회는 어학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인공지능 문해력을 가르쳐야 한다.


인공지능은 다양한 가능성과 한계를 지녔다. 생성인공지능과 관련한 한계만 간략하게 나열하면, 환각(Hallucination), 낮은 논리력, 편향, 윤리, 문화의 독과점 등이 있다.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공지능을 사용하면 위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환각은 생성인공지능의 구조적 문제로, 아직 이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기술적 대안이 나오지 않았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대언어모델을 사용한다면 사용하지 않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인공지능을 블록처럼 조립하여 사용해야 한다. 거대언어모델로 시나리오,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으로 주인공 인물 이미지, 목소리 생성 인공지능으로 매력적인 목소리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종합하는 인공지능으로 동영상을 만들 수 있다. 앞으로 1인 크리에이어터가 넘쳐날 것이다. 이러한 생태계를 만들려면 다양한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오픈 소스 거대언어모델이 뜨고 있고, 거대언어모델 학습비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대학에서 과제로 자기 전공분야에 도움이 되거나 혹은 비즈니스 모델에 사용할 거대언어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대언어모델 생태계가 성숙할수록 간단한 대화를 통해 필요한 거대언어모델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언어모델 개발 도구는 워드나 파워포인트까지 단순하지는 않더라도,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정도의 복잡성만 가지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인공지능 문해력이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문해력은 비판적 사고, 인공지능 개념 이해, 인공지능 활용역량, 인공지능 윤리, 인공지능 미래전망, 데이터와 정보 문해력으로 구성될 것이다. 고등학교학생과 대학생까지, 초중고 선생과 대학교수 및 일반인까지 인공지능 문해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킬러 문항에 대한 논의 = 과거지향


킬러 문항에 대한 논란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킬러 문항에 대한 논의는 학생을 줄 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인생 100년의 시대에 부모의 재력과 학생의 호르몬 분비, 주변의 친구와 환경이라는 요인으로 학생을 줄세우기 하는 것을 고집할 수 있을까? 학벌과 메리토크라시가 주는 과도한 혜택과 반칙으로 인한 현상이 줄세우기다. 이는 학생 개인의 경쟁력, 한국사회의 경쟁력과 공정성에도 반한다. 따라서 킬러 문항을 제외하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시점이 문제다. 수능시험 5개월을 앞두고 해야할 주장이 아니다. 중3의 마음으로 힘을 과시하여 킬러 문항을 없애거나 그런 시늉을 낼 수야 있겠으나, 대통령이 해야 할 말도 정부여당이 고민해야 할 일도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고민하고, 야당이 주장해야 할 일은 앞에서 거론한 미래 교육 의제에 포함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거대언어모델로 지식의 의미가 변화하고, 교육의 필요성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지금 기껏해야 킬러 문항으로 국가적 역량을 낭비할 것이 아니다. 급격한 변화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응하여 교육시스템의 전환에 대하 당사자가 모여서 논의하고, 싸우고, 얼굴 붉히고, 양보하고, 합의해야 한다.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교육 전환을 잰걸음으로 서둘러야 한다. 킬러 문항 같은 과거 지향적 논의에 발목 잡힐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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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04-05). 거대언어모델 미래전개도: STEEP 프레임으로 기회와 위험 탐색. 월간SW중심사회 2023 4월,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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