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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정치리더십-외천본민(畏天本民) <56> 국가위기와 행정개혁 IV. 식례상정소(式例詳定所)가 필요하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1월27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01월24일 10시14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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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IV.1 음식을 줄이겠다.(감선,減膳)

 

세종 22년 경신년 4월에 전국이 한참 동안 가물었다. 4년 전 세종 18년의 병진년(1436) 대가뭄 이후 2년 연속 큰 가뭄이 없는가 싶더니 세종 21년에는 병진년 이후 최악의 가뭄이 왔고 올해에도 심각한 가뭄이 들 징조가 역력했다. 세종은 백성들이 근신하게 할 목적으로 금주령을 내리고 감옥에 갇힌 죄수 중 일반사면에 제외되지 않는 자와 잡범 수형자들을 모두 풀어주라고 명했다. 그리고 궁핍한 사람들을 먹이고 장례를 못 치른 사체를 후히 장사지내도록 하였다. 세상이 이렇게 가문 것은 항상 자신의 정치 잘못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세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몸소 근신함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줄이겠다는 선언이었다.

 

   “마르고 가뭄이 너무 심하여 앞으로가 걱정이다. 내가 음식을 줄이고자       한다.(旱暵太甚 將來可慮 予欲減膳 : 세종 22년 4월 22일)” 

 

신하들은 말리고 나섰다. 아직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므로 음식을 줄이지 말것을 요청하였다. 승지의 말을 다 듣고 나자 세종이 이렇게 말했다.

 

   “천기를 천천히 보고 난 뒤 감선을 결정하겠다.

   (徐觀天氣 乃減膳矣 : 세종 22년 4월 22일)”

 

감선을 미루기 바로 전날 세종은 호조판서 김맹성을 불러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옛 사람 말이 생명과 재물은 유한하므로 허망하게 낭비하면 안 된다고

    했다. 유안은 큰일을 이루려 하는 자는 작은 비용에도 구애받지 

     않는다고도 했는데 이 말들로 논하자면 허망하게 낭비해서도 안 되고 

     또한 아끼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금 국가의 

     씀씀이가 낭비되는 것이 있지 않을까 염려되니 상세하게 밝은 관리를  

     택하여 각 기관의 필요한 경비와 식례를 낱낱이 결정하여 보고하라.    

     (古人曰 生財有數 不可妄費 劉晏曰 成大事者 不拘小費 以此論之 不可妄   

     費 亦不可吝惜 今國家調度 慮或有濫費 其擇詳明官吏 詳定各司經費式例    

     以聞 : 세종 22년 4월 21일) ”

 

하늘의 재앙이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재물의 낭비, 특히 국가 기관의 낭비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기관의 씀씀이가 어떠한지 실상을 파악하는 관리를 선정하고 각 기관 내에 그런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를 설치하도록 지시를 내린 것이다. 무작정 경비를 줄인다고 서두르기 전에 어디에 얼마가 왜 들어가야 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IV.2 식례상정소(式例詳定所) 설치

 

세종의 지시에 따라 국가 관청의 경비와 각종 예식 및 제례절차(式例)에 들어가는 비용을 명확하게 산출하기 위한 식례상정소가 세종 22년 (1440) 5월에 설치되었다. 이때 내린 지시를 보면 식례상정소의 기능과 역할이 잘 나타나 있다. 무엇보다도 모든 관공서에서 사용되는 물건들은 민간으로부터 나왔으니 마땅히 절약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세웠다(皆出自民間 所當撙節也). 그동안에는 여러 예식이나 제례 절차에 명문화된 식례가 없는 관서가 많았다.따라서 장인들의 말만 듣고 임의로 정한 숫자를 전례라고하며 조달하다보니 계속해서 비효율적인 지출행태가 반복되었다. 또 혹 식례가 있는 관서라도 그 소용되는 물건을 제조할 때 혹은 더 많이 생산하기도 하고 혹은 덜 생산하기도 하며 관사마다 들어오는 물건 숫자가 다 달랐다. 같은 건의 비용이 때로는 2, 3건 비용의 배가 되기도 했다. 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금은 등의 물건들도 너무 많이 사용되므로 현재 국가의 용도에도 불충분할 뿐더러 장래에도 지속하기가 어려울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과감한 혁신이 필요했다. 식례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모든 기관이 새로운 식례를 상세히 밝혀 따지고 고쳐서 시행하라는 것이 세종의 명령이었다(세종 28년 1월 19일). 그리고 그 일을 위해 각 기관마다 식례상정소를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각 관서에 있는 식례상정소가 관서의 비용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여 절감하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세종 25년 12월 규정을 다소 고쳤는데 다음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식례상정의 예외를 두었다.

 

  (i) 일지, 월지, 세지 등과 같이 매번 정기적으로 나가는 비용과 

     항상 연속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아닌 것 중에서 오래 제공되는 물건,

 

  (ii) 선왕 선후의 진전 전물과 진상찬구, 대소연회에 소용되는 잡물과 술

   

위 (i)에 해당되는 물건은 시설이나 기계와 같은 일종의 고정재이므로 식례상정을 통한 경비절감의 필요성이 그만큼 적다고 할 수 있고, (ii)는 선왕이나 선후와 같이 엄격한 예를 갖추어야 할 경우이므로 너무 엄격하게 비용을 아끼다 보면 쓰다 남은 술이나 음식을 다시 사용하는 것과 같이 예법을 근본적으로 어길 수가 있기 때문에 예외로 하였다.

 

 

IV.3 식례상정소(式例詳定所)의 경비절감 효과

 

식례상정제도를 도입하여 절감한 경비내역을 보면 중국 통신사가 들고 갈 표문의 통 제작에 들어가는 금은 4전 6푼에서 2전 8푼으로 39%가 줄었고 대가의 의장에 들어가는 첩금은 60%가 줄었으며 첩은도 59%나 줄었다. 악기에 사용하는 주홍 물감은 종전에는 1근 9량 이상이 들었으나 식례상정소가 설치되고 나서는 5냥 1푼 밖에 들지 않아 절감률이 80.1%나 되었고 응고(세워서 틀에 넣은 북)의 경우에도 절감률이 95.8%나 되었다. 이외에도 면포나 저포 마포와 같은 각종의 포 종류, 목기류, 철물 류 등 거의 모든 물건에서 절감률은 80-90%에 달하였다고 실록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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