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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재정운용> 국가채무는 민간의 자산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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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1월09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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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동석
  •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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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동석 인천대학교 교수 1)

 

“외국 빚에 의존하지만 않는다면 정부의 적자는 민간의 흑자이고 나랏빚은 민간의 자산이다.” 2)


이는 우리 학계의 국가채무 토론에서 가장 논쟁적인 이슈 중 하나다. 한 부류의 학자들은 일본의 국가채무 비율이 230%를 상회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대척점에 있는 학자들은 일본의 장기불황이 국가채무 때문이며, 우리 경제는 일본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고 주장한다. 국가채무에 대한 인식과 경험들은 수세기에 걸쳐 진화 발전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이들을 자세히 조명하며 이 주제를 분석하고자 한다. 

 

중상주의의 국가채무 이론

 

국가채무가 민간자산이라는 사실은 국민경제의 T계정에서 잘 드러난다. <그림 1>의 a)는 조세부과 100조원으로 정부의 현금이 100조원 증가하고 민간의 현금이 100조원 감소하는 현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림의  b)는 국채발행으로 민간에서 정부로 현금 100조원이 이전됨과 동시에 민간자산(국채)과 국가채무(국채)가 각각 100조원씩 증가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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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경제는 정부부문과 민간부문을 통합한 개념이기에, 발행 국채는 민간부문과 정부부문의 내부거래로서 상계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상계가 가능하다면 그림 b)의 점선 아래 차변과 대변이 일대일로 대응되어 사라지기 때문에 국채발행은 조세부과와 완전히 동일한 모습을 가진다. 그런데 여기서 중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아무런 경제·사회적 비용도 없이 국가채무가 기계적으로 민간자산과 단순 상계될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절대왕정을 상정하고 있다면 이러한 상계가 국가에 아무런 부담도 주지 않을 것이다. 절대주의에서는 국왕이 곧 국가이고 국왕의 재정이 곧 국가의 재정이기 때문이다. 국왕이 국채의 상계처리를 명하면 백성들은 그대로 추종해야 하고, 국왕은 백성들이 부담하는 비용을 감안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절대왕정 시대에 등장한 경제이론, 즉 중상주의(mercantilism)와 관방주의(cameralism)는 “국가채무는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넘겨진 채무인데, 그렇다고 하여 신체가 저절로 약화되는 것이 아니다.”고 인식하였다.3)

 

리카도의 비-대등성 정리

 

1688년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나며 국왕을 대신하여 의회가 재정권을 장악하였다. 더구나 1760년부터는 국왕의 재정과 국가의 재정이 완전히 분리되면서, 국가재정은 더 이상 국왕의 재산이 아니라 국민들의 조세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4)

 이러한 민주정 하에서는 국민들과 별도로 존재하는 국가라는 실체가 없기에 국채발행의 T계정은 <그림 2>와 같이 변화한다. 국가채무는 민간이 부담하는 추가적인 조세부담으로 상환될 수밖에 없기에 민간의 추가적 조세부담 현재가치, α가 민간자산(국채)에 대한 공제항목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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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 속에서 등장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중상주의의 시각을 맹렬하게 비판하였다. 그 중에서도 리카도(David Ricardo)는 국가채무에 대해 거의 완벽한 분석을 제공하였다.5)


 만약 민간이 국채상환을 위한 추가적 조세부담의 현재가치(α)를 완벽하게 인지한다면 그 금액은 국채 금액 100조원과 완전히 동일할 것이다. 국채의 발행조건, 즉 매년 이자만 영구적으로 지급하는 영구채이건 매년 원리금을 갚아나가는 방식이건 관계없이 이러한 사실은 성립한다. 따라서 민간자산(국채)의 공제금액이 100조원이 되므로 국채발행은 조세부과와 동일하여 ‘리카도 대등성(Ricardian Equivalence)’이 성립한다. 

 

그러나 리카도는 민간이 ‘추가적 조세부담 현재가치’를 완벽하게 인지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α의 값을 100조 이하로 인지하기 때문에 국채발행은 민간으로 하여금 부(富;wealth)가 증가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공공채무 환상(public debt illusion)’ 때문에 국가채무는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들어 실제의 상황을 보지 못하고 낭비하도록 만든다고 설명하였다. 이 때문에 리카도의 진정한 의도는 ‘대등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非)대등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6)

중상주의에 대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강력한 비판들이 이어지면서 1860년대에 이르러 영국의 글래드스톤(William Gladstone) 국정개혁에서 수지균형의 재정준칙은 비로소 자리를 잡았다. 7)


 그러나 그로부터 60여년 뒤인 1936년에 케인스(John M. Keynes) 이론이 등장하면서 단년도에서의 수지균형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정부는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도록 총수요를 관리해야 하는데, 불황기에는 재정적자를 호황기에는 재정흑자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채무를 정책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인스 자신은 국가채무를 무한정 증가시켜도 무방하다는 러너(Abba L. Lerner)의 ‘기능적 재정’을 ‘사기(humbug)’라고 비판하며 국가채무 증가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였다.8)

 

재정공유지 이론의 등장

 

케인스 이론이 휩쓸고 있던 1970년대 초반, 배로(Robert J. Barro)는 재정지출의 경기확장 효과를 비판하고자 ‘국가채무는 민간의 순자산인가?(Are government bonds net wealth?)’라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9) 

그는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대중첩모형을 활용하여 현재세대는 국가채무로 인해 후손들이 부담할 조세를 미리 감안하여 자신의 경제행위(상속 등)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그림 2>의 ‘추가적 조세부담 현재가치’를 ‘후손의 조세부담 현재가치’로 대체하며, 그 값이 100조원이 된다고 하였다. 결국 배로는 국가채무가 민간의 순자산(net wealth)을 변동시키지 않는다고 하면서 리카도 대등성이 현실적으로 성립한다고 주장하였다. 

 

뷰캐넌(James M. Buchanan)은 배로의 논문이 α의 값을 결정하는 문제와 재정지출이 총수요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문제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였다.10) 그는 전자에 초점을 맞추어 정치인들의 계산에서는 α의 값이 거의 0에 가깝다고 주장하였다. 정부지출을 국가채무로 충당하는 경우 현재의 유권자들은 어떠한 부담도 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채무를 통한 재원조달을 정치인들은 더 선호한다고 주장하였다. 국가채무의 현재 편익은 당장 실현되지만 미래 부담은 ‘미래의 경제상황에 대한 상상’, ‘미래 경제상황에서의 개인 손익에 대한 상상’을 유권자들에게 요구하기 때문에,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였다. 11)

 

α의 값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비단 정치인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α의 값이 100조원에 미달한다는 것은 ‘인지’ 채무와 ‘실제’ 채무의 괴리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괴리는 거의 모든 유권자들에게서 나타난다. 인지(perceived) 가치와 실제(actual) 가치의 구조적 괴리는 ‘공유지의 비극’으로 곧잘 표현된다. 공유지의 초원에서는 개별 주민들이 자신의 방목으로 기대하는 ‘인지’ 편익과 초원의 황폐화로 나타나는 ‘실제’ 편익 사이에 큰 괴리가 존재한다. 국가채무에서도 이러한 괴리가 나타나기에 경제학자들은 ‘재정공유지(fiscal commons)’의 은유를 곧잘 사용한다.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많은 연구들은 대의민주주의의 적자편향적(deficit-biased) 재정운용을 재정공유지 이론으로 실증하고 있다.12)

 

저금리 시대의 국가채무

 

2008년 이후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국가채무에 대한 주류경제학계의 비판적 시각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2019년 미국경제학회장 블랑샤르(Olivier Blanchard)는 경제성장률이 실질이자율을 초과하면(즉, r-g<0) 국채차환(rollover)이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국가채무의 이자비용은 매우 낮고, 또 GDP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계속 하락한다고 지적하였다. 13)

<그림 2>에서 ‘민간자산(국채)’ 100조원을 새로운 국채로 차환할 때 100조원 이하의 금액이 소요되기 때문에 GDP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점점 낮아지는 것이다. 블랑샤르의 지적은 <그림 2>에서 ‘민간자산(국채)’의 공제항목(α)이 ‘차환용 국채의 현재가치’가 되어 100조원 이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블랑샤르의 지적에 대해 비판적인 반론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성장률이 이자율을 초과하는 현상이 최근에 나타난 것만은 아니며, 또 과거의 경험에서 볼 때 저금리가 미래의 위기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Mauro and Ahou(2021)). 국가채무가 높을수록 성장률이 이자율을 초과하는 기간이 짧아지고 반전의 가능성은 더 높아지기에 경제적 위기에 매우 취약해진다(Lian, et al(2020)). 민간채무의 누적,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 자연재해의 증가 등 다양한 위험요인들이 근래에 급증하고 있기에 재정운용은 미래의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 (Rogoff(2020)).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정부가 의도적으로 이자율을 성장률 이하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인하트(Carmen M. Reinhart)는 1945~1980년 기간 중 국채의 사후적 실질이자율이 대부분 음을 기록하여 GDP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였음을 보여주었다.14) 


그리고 이러한 저금리는 정부의 의도적인 금융억압(FR, financial repression)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15) 

금융억압은 금융시장이 자유롭게 작동했다면 다른 곳으로 향했을 자금을 정부가 개입하여 금융시장을 억압·왜곡하는 현상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국채의 강제인수, 국채이자율 제한, 공공금융기관의 설치, 다양한 정책금융, 외환시장 개입 등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에 착안하여 라인하트는 역사적으로 국가채무비율의 감축은 ①높은 경제성장, ②엄격한 재정긴축, ③불이행 또는 채무조정, ④급격한 인플레이션, ⑤지속적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 등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하였다. 물론 주권평등과 영토보존이라는 UN의 원칙이 국제적으로 준수되지 않는다면, 국가채무 불이행은 ⑥식민지로서의 주권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1907년 우리 국민들이 전개한 국채보상운동은 바로 이러한 결과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가채무가 개별 국가의 부침과 명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유력한 실증연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가채무에 대한 역사적 경험과 이론의 발전을 전반적으로 종합할 때, 국가채무란 결국 ‘인지 채무’와 ‘실제 채무’의 괴리를 유발하는 일종의 신용창조 과정이다. 그리고 국가신용은 개별 국가의 정치·사회·경제적 위험도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라인하트는 또 다른 논문에서 국가채무가 높으면 높을수록 높은 경제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1800~2011년의 200년간 통계치를 활용하여 우리에게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1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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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자료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참고문헌들의 서지사항은 옥동석, “국가채무의 정치경제학,” 한국국제경제학회 동계학술        대회 <전체세션> ‘가계부채와 국가부채, 통제 가능한가?’, 2021년 12월 22일, 서강대학교 참조. 

2)  임명수 기자, “이재명, ‘나랏빚은 민간 자산이라는데…기재부 반박해보라’”, 한국일보, 2021. 1. 24.

3)  Melon, Jean-François(1734) 참조.

4)  국왕이 왕실재정을 위한 출연금을 의회로부터 받기 시작하면서 국왕의 재정과 국가의 재정은 분리되었다. 

5)  David Hume(1752), Adam Smith(1776), Jean-Baptiste Say(1803), David Ricardo(1820) 참조.

6)  O′Driscoll, Gerald P., Jr., “The Ricardian Nonequivalence Theorem,”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February 1977, pp.207~210. 

7)  Buchanan, et al.(1978), pp.39-44.

8)  Aspromourgos(2014) 참조. 

9)  Barro(1974)는 국가채무가 민간의 순자산을 증가시켜 총수요가 증가한다고 보았다.

10)  Buchanan, “Barro on the Ricardian Equivalence Theorem,”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April 1976, pp.337~342 참조. 

11)  Buchanan, et al.(1978) 참조.

12)  Weingast, et al.(1981), Wagner(1992), Brubaker(1997), Velasco(2000), Elgie and McMenamin(2008), Raudla(2010) 참조. 

13)  Blanchard(2019) 참조. 

14)  Reinhart and Sbrancia(2015) 참조. 

15)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은 국가채무 비율이 260%를 상회하였다. 1946년 3월 일본 정부는 예금봉쇄와 함께 옛 지폐의 유통을         금지하고 새로운 엔화로 교환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가구당 예금인출 금액을 제한하였다. 그와 동시에 부동산, 예금 등 금융자산에       대해 25∼90%의 높은 세금을 부과하여 국가채무 비율을 50%대 수준으로 낮추었다. 真壁昭夫, “終戦直後のような預金封鎖は本当       に起きるのか?” 2014. 7. 1. 참조. 

16)  Reinhart, Reinhart and Rogoff(20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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