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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태평양전략 협력과 한·중 관계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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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7월12일 16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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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1-7월호-21](2021.7.2.)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태전략과 신남방정책 접점 찾기: 한미동맹을 위한 전략적 고려?

 

트럼프 대통령이 201711월 아시아 5개국 순방 시 인도-태평양전략(이하 인태전략)의 본격적인 추진을 선언하였지만, 한국은 미국 인태전략 동참에 유보적이었다. 특히, 미국 인태전략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을 기치로 전개되었는데, 한국은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법의 지배FOIP과 관련된 규범과 원칙에 원론적인 지지입장을 표명했을 뿐, 미국이 FOIP을 명분으로 주도한 군사훈련에는 불참해왔다. 이는 미국의 인태전략이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한 지역 전략으로 인식되면서, 미국과 중국 중 미국 편에 서는 듯한 모양새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과 2019년 점차 인태전략을 구체화해나가면서 우리와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타진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역 및 글로벌 안보에 관한 관심과 기여를 늘려왔으나,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당면 과제로 인해 우리 안보역량의 대부분을 한반도에 집중시켜 왔다.

 

그러나 한미동맹 관계가 삐걱거릴 때 한반도를 둘러싼 우리의 안보 이익에만 집중하고 미국의 지역 및 글로벌 차원의 안보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한미동맹이 비대칭 동맹이라고 하더라도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20192월 하노이 북·미 대화가 실패한 후 대북 접근에 있어 한·미의 이견이 분출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가적 접근으로 동맹비용 분담이 쟁점화 된 상황에서 우리가 미국의 인태전략 동참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 문제로 미국 조야에서 한·일 관계 경색에 관한 우리의 책임론도 (부당하게) 팽배해 있었다. 정승조 한미동맹재단 회장,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 등 양국 보수 인사를 중심으로 한미동맹을 관리하기 위해 한국이 미국의 인태전략에 협조해야 한다는 발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시기에 20196월에 개최되었던 한미 정상회의를 비롯하여, 한미동맹의 현안 이슈를 논의한 양국 외교부와 국방부의 다양한 고위급 회담에서 인태전략 협력도 함께 논의되었다.

 

한국은 신남방정책과 인태전략의 접점을 찾는 것으로 미국의 협력요구에 대응하였다. 한국은 신남방정책 이전에도 다양한 지역 정책을 펼쳐왔으나, 신남방정책이 기존 정책과 차별성을 갖는 것은 경제중심이고, 아세안과 인도를 중점 대상 지역으로 설정한 것이었다. 전자는 중국 외 지역으로 경제 수출의 다변화를 꾀하기 위한 것이었고, 후자는 미·중 간 경합적 안보 이슈에 연루되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양국이 201911월에 발표한 한미 양국 지역 내 협력에 대한 공동 설명서202011월에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신남방정책 간 협력에 관한 공동 설명서에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한국은 접점을 찾기 위해 신남방정책의 영역을 안보 이슈로까지 확장하고, 중점 대상 지역을 남태평양으로 확대하였다.

 

두 번의 공동 설명서(fact sheet)’에서 가장 부각된 협력 이슈는 인프라 투자였다. 신남방정책이 경제 중심이었고, 미국이 안보 위주였던 인태전략에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한 인프라 투자를 가미했기에 접점을 찾기 쉬웠다. 그런데 공동 설명서에서 양국이 남태평양 지역에 대한 공동 인프라 사업에 합의하였는데, 이는 신남방정책의 중점지역이 아세안과 인도에서 남태평양까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남태평양 지역은 중국이 바누아투 등에 군사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미국과 호주가 파푸아 뉴기니의 롬브럼 해군기지를 군사거점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미·중 전략적 경쟁이 첨예한 지역이다. 또한, 중국이 인프라 투자를 늘려감에 따라, 미국과 호주도 대응적 인프라 투자를 늘리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과 남태평양 인프라 투자에 협력하기로 합의한 것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고려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전통안보 영역에서의 해양안보도 두 번의 공동 설명서에 협력할 이슈로 제시되었다. 신남방정책의 추진 방향은 사람 공동체(People), 상생번영 공동체(Prosperity), 평화 공동체(Peace)를 지향하는 것인데, 신남방정책이 출범한 2017년부터 지난 3년간은 세 번째 ‘P’보다는 첫째와 둘째 ‘P’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한국이 2021년부터 신남방정책 2.0을 추진하면서 평화 (Peace)’ 영역의 정책 비중을 늘려간다는 방침을 명확히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경제, 사회·문화 분야뿐만 아니라 평화·외교 분야에서도 한·아세안 관계를 주변 4강 수준으로 격상시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신남방정책이 출범한 2017년 이후 남중국해에서 미·중 군사적 긴장이 더욱 악화하고 있고,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한국이 신남방정책의 정책 방향을 경제 중심에서 비전통안보 영역의 해양안보로까지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은 한미동맹을 위한 전략적 고려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인태전략 협력을 통한 한·중 협력 공간 창출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네트워크의 단점 중 하나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할 지경학적 기제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중국 자본이 초래하고 있는 채무의 덫을 부각하면서, 일본, 호주, G7 국가 등과 함께 공동으로 대안적 자본을 제공하려 하고 있다.

 

미국, 일본, 호주가 201911월에는 공공-민간 파트너쉽(PPP)’ 방식의 인프라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파란점 네트워크를 결성하였고, 20216월에는 G7 국가와 함께 40조달러 규모의 ‘B3W(Build Back Better World)’ 계획을 발표하였다. 실제로 거대한 규모의 자본이 조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 크지만, 미국의 인태전략이 안보전략에서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한 지경학적 요소를 갖추어 가면서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인프라 투자는 반드시 미·중이 충돌하는 이슈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 일본, 호주 등의 인프라 투자가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보충하거나, ‘일대일로와 함께한다면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유럽국가, 일본, 미국과 제3국 시장에서 협력하기도 한다. 중국의 유연한 대응은 중국이 실제로 동원 가능한 자본의 규모에 있어 미국, 일본, 호주 등의 국가보다 월등한 우위에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인프라 협력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는바, 한국은 한·미 양자 협력을 넘어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소()다자 인프라 협력에 일본, 호주, 인도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 미국, 호주, 일본, 인도 등과 함께 인도-태평양 지역 기술 선진국이므로, 첨단 기술이 필요하거나 보안 문제 등이 중요한 인프라 사업에 이들과 공동으로 입찰하거나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 등 쿼드 국가와의 협력이 전제되면, 한국이 중국에 경도된다는 미국의 오인을 방지하면서 중국의 일대일로사업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게 된다. 일례로 일본은 미국, 호주, 인도와의 소()다자 인프라 투자 조율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뒤 중국의 일대일로에 조건부 참여를 선언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20201019일 화상으로 개최된 제16차 한·중 경제장관회의에서 양국이 신북방신남방정책과 일대일로 간 연계 협력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해나가기로 합의한 것은 고무적이다. 동 회의에서 양국은 한·중 기업의 제3국 공동진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협력 채널을 강화해야 한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구체적 방안을 지속해서 협의하기로 하였다.

 

한국이 미국의 인태전략에 협조한 뒤 중국과의 협력을 끌어낼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은 해양안보이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개별적으로 인·태 지역 해양안보에 기여해 왔는데, 최근 이들 쿼드 국가 간 양자, 삼자 협력이 점증하고 있다. 특히, 4국은 동남아 거점 국가의 해양능력 배양해양 상황인지제고를 위한 장비 및 정보 지원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4국이 역내 해양능력 배양에 공헌하는 명분은 비전통안보 의제에 대한 대응이나, 비전통안보 영역에서 축적된 상호 운용성과 신뢰는 전통안보 영역의 협력에 투영될 수 있다. 따라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쿼드 국가의 해양안보에 대한 기여는 역내에서 중국의 공세적 해양정책에 대한 헤징임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이 쿼드 국가의 해양안보 영역에서 협력하면, 궁극적으로는 한국이 미국의 안보적 이익에 협조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한국은 역내 비전통안보에 기여한다는 명분도 쌓고 방산 수출의 실리도 취하게 된다. 그런데 인프라 투자와 마찬가지로, 역내 해양능력 배양해양 상황인지제고를 위한 우리의 기여를 미국과 조율하고 상호 협력한다면, 우리가 중국에 경도된다는 미국의 오인을 미리 방지하면서 해양안보에 있어 중국과 접촉의 면을 넓혀 나갈 공간이 생길 수 있다.

 

일례로, 중국이 참여하는 오세아니아의 코와리(Kowari)’ 군사 교육 훈련, 동남아시아의 코브라 골드(Cobra Gold)’ 및 중국-아세안 군사훈련처럼, 동북아에서도 중국이 미국, 일본, 한국과 함께 비전통안보 영역에서 군사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한국이 적극적인 소집자(convenor)’ 역할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동북아 지역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 강화: 미국과 중국 사이 한국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은 한미동맹을 관리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협력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과의 인프라 및 해양안보 협력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미국 인태전략의 방점은 궁극적으로는 중국을 견제하는데 맞추어져 있다.

 

그렇다면 한국이 향후 미국의 인태전략에 좀 더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국이 미국의 안보네트워크 강화에 얼마나 협조할지에 달려 있다. 미국 인태전략의 핵심에 미국이 동맹국 및 안보 우호국과의 양자 및 중층적 소다자 연계를 통해 꼼꼼하게 짜나가고 있는 안보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한··일 안보협력에 대한 태도가 향후 한국이 미국 인태전략에 적극적으로 협조할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다.

 

일본군 성노예, 전시 강제노역 문제 등 역사적 구원으로 인해 현재 한·일 안보 관계가 매우 악화되었고, ··일 안보협력은 정체되어 있다. 더군다나 일본이 미국 안보 네트워크의 중심 지역 국가로 부상하고 있는바, 한국이 한··일 안보협력 강화에 협조하는 것이 더욱 민감한 쟁점이 되었다.

 

일본은 최근 인도, 호주, 동남아 국가 등 역내 국가는 물론이고 영국, 프랑스 등 유럽국가와의 안보협력도 급진전시키고 있다. 준동맹의 관계로까지 발전한 호주와는 202011상호접근협정(Reciprocal Access Agreement)’을 체결하였다. 따라서 호주가 대규모 군대를 일본에 파견하여 군사훈련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이 각각 항공모함, 핵잠수함, 전투함을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 동해에 전개했거나 전개할 예정인 가운데, 20215월에는 일본, 미국, 프랑스, 호주가 일본 영토에서 ‘ARC-21’로 명명된 군사훈련을 수행하였다. 이처럼 쿼드 국가 x + 유럽국가조합이 동북아에서 실시하는 군사훈련의 수와 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이를 위해 일본에 위치한 유엔사 후방기지가 매개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이미 미국 안보네트워크 상의 국가들이 동북아에서 시행하는 군사훈련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만약 한국이 그러한 군사훈련에 참여하게 되면, 중국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의 동북아 축에서 한국은 일본의 하위 노드(node)’로 전락할 수 있다. 한국이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 상에서 일정한 위상을 정립하는 것과 중국의 안보 이익을 고려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남중국해, 대만해협, 인도양이 아닌 한반도 주변에서 먼저 발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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