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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56) 갈등의 원조: 등나무와 칡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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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5월14일 17시00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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葛藤(갈등)의 시대입니다. 모든 일이 얽히고설켜서 작은 일에서도 큰 갈등이 일어나는 시대이지요. 여야의 갈등은 물론이고,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지역 갈등, 중앙과 지방 사이의 갈등 더 넓게 보면 세계를 계속 긴장시키고 있는 미중 갈등이 대표적인 얽히고설킨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두가 갈등이 없는 세상을 꿈꾸어 보겠지만 유한한 자원을 나누어 써야 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갈등은 일어나기 마련일 것 같아서 갈등이 없는 세상은 아마도 상상 속에서나 있을 에덴동산, 무릉도원 같은 이상향에서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 갈등이라는 말은 한자로 葛(갈)이라고 불리는 칡과 藤(등)이라고 불리는 등나무를 결합한 말이지요. 자신들의 힘으로 곧추설 수 있는 강한 줄기를 가지지 못해서 무엇이든지 휘감거나 기대고 올라가서 광합성을 하기 위해 더 좋은 높은 자리를 확보해야 하는 덩굴식물들은 숙명적으로 다른 식물들과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호사가들은 칡은 오른쪽으로 등은 왼쪽으로 휘감고 올라가기에 이들 둘이 만나면 더욱 크게 얽혀서 참으로 큰 갈등이 일어난다고 합니다만 나무학자들은 칡도 왼쪽으로 등도 오른쪽으로 감아올라가는 개체들이 있다고 합니다. 여하튼 이들 덩굴식물들이 (넝쿨식물이라고도 불리고 한자로는 蔓莖植物(덩굴식물)로 표기) 다른 나무나 식물들을 휘감고 올라가서, 가끔 그 숙주가 되는 나무나 식물들을 뒤덮고 있는 장면을 보면 조금 섬찟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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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5일 세종시 원수산의 등나무가 다른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서 꽃을 피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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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17일 뉴코리아CC 등나무가 다른 나무를 뒤덮고 있는 모습

 

그래서 이들 덩굴식물들은 대체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필자의 애독서 ‘궁궐의 우리 나무’를 쓰신 박상진 선생도 우리 조상 특히 선비들이 이런 덩굴식물을 대단히 멸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남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지요. 박상진 선생이 언급한 글만 인용하더라도, 조선 중종 32년(1537년) 홍문관 김광진 등이 올린 상소문에 ‘대체로 소인들은 등나무 덩굴과 같아서 반드시 다른 물건에 의지해야만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라는 언급, 중종 34년(1539년) 전주 부윤 이언적의 상소문에도 ‘간사한 사람은 등나무나 겨우살이 같아서 다른 물체에 붙지 않고는 스스로 일어나지 못합니다.’라는 언급, 인조 14년 (1637년) 부수찬 김익희가 올린 상소문에 ‘빼어나기가 송백과 같고 깨끗하기가 빙옥과 같은 자는 반드시 군자이고 빌붙기를 등나무나 담쟁이 같이 하는 자는 반드시 소인일 것입니다.’라는 표현 등은 모두 덩굴식물을 천시하는 글들이지요. 어쩌면 1년 이상 ‘나무사랑 꽃이야기’를 써오면서, 흔히 보는 덩굴식물을 한번도 다루지 않은 필자도 이런 조상들의 태도를 이어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갈등의 대명사가 되는 등나무와 칡은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고, 나름대로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등나무는 여름철 그늘이 필요한 곳에는 어디에든지 즐겨 심는 인기 높은 조경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대학 캠퍼스, 공원의 넓은 공터, 아파트단지 내의 쉼터, 심지어는 공공기관의 넓은 마당의 쉼터 등 어디에나 많이 심겨 있는 것 같으니까요. 물론 이 등나무들이 타고 올라가야 할 구조물을 만들어주어야 하지만, 때로는 그 구조물과 잘 어우러져서 운치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운치를 느낄 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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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3일 산책한 서울시립대 정문 근처의 구조물과 어울린 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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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학자들은 등나무가 멋진 보라색 꽃들을 주렁주렁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을 찬양하면서도 묘하게 이 멋진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잘 안 띄는 이유는, 막상 그늘이 간절히 필요해서 그곳을 찾게 되는 여름철이 되면 등나무는 꽃 대신에 굵은 꼬투리를 늘어뜨리게 되어서 그 운치가 사라져 버려서라고 합니다. 나무사랑에 빠진 필자가 가끔 가던 길을 벗어나 등나무꽃 사진을 찍으러 다른 곳으로 향하면 의아해하는 동반자들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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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17일 경희대 수원캠퍼스 등나무가 늘어뜨린 열매꼬투리들

 

등나무 꼬투리는 나무 크기와도 비례해서 매우 굵게 드리워지는데, 이 나무가 콩과식물임을 드러내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안에 들어 있는 콩을 볶아서 식용하기도 했다는데, 요즈음은 그런 목적으로 수확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또 옛날에는 등나무 굵은 등걸로 만든 소형가구들의 가치를 매우 높게 쳤다고 합니다만, 최근 등나무 가구라고 광고하는 가구들은 열대 덩굴식물 라탄 (Rattan)이라는 녀석을 가공한 것이라고 하니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필자가 읽은 나무 책들의 등나무 편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경북 월성 오유리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등나무 네 그루가 팽나무를 감고 올라가며 자라고 있는 것을 둘러싼 전설이지요. 옛날 이곳에 살던 예쁜 두 자매가 이웃집 청년을 사모하고 있었는데 그 청년이 전쟁에 나가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연못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고, 소문과 달리 늠름한 화랑이 되어 돌아온 청년도 역시 연못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청년이 팽나무로 환생하고 자매가 등나무로 환생해서 서로 몸을 기대며 죽어서나마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기록에 의하면 이 팽나무와 등나무가 만든 넓이는 자그마치 동서로 20미터, 남북으로 50미터에 이른다고 하니 그런 전설이 깃들만하다고 여겨져서 필자의 버킷리스트에 들어가 있습니다. 

 

등과 갈 모두 한자로는 머리 위에 풀초변을 이고 있습니다만, 우리 조상들은 등나무는 나무로 보면서도 칡은 풀로 취급하는 경향을 가졌다고 합니다. 아마도 칡의 덩굴이 더 가늘고, 그 가는 덩굴은 겨울이 되면 말라 버리기 때문에 그랬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다른 나무를 뒤덮어서 거의 질식시키거나 산 아래 유휴지를 완전히 점유해 버리는 경향은 등나무보다 칡에게서 더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칡이야말로 사랑받기 힘든 덩굴식물인 것 같습니다만, 그 칡도 나름 가치가 있는 식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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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18일 경기도 광주시 영은미술관 근처 숲에서 칡덩굴이 나무를 뒤덮고 있다.

 

‘나무백과’를 쓰신 임경빈 선생에 의하면, 예로부터 칡의 질긴 속껍질을 활용해서 의복, 두건 등을 만들어 썼는데, 아직도 葛布(갈포), 葛巾(갈건) 등의 표현이 남아 있고, 칡으로 만든 의류를 이용하는 생활을 속세를 벗어나서 일부러 찾는 여유롭고 청빈한 생활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이 칡 섬유가 인기를 얻어서 한동안 우리나라 대일 수출품목에 들어가기도 했다고도 하네요.

뿐만 아니라 칡은 필자와 같이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과거 어릴 때의 군것질 대상으로서의 칡뿌리로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이 칡뿌리는 건강보조식품으로 인식되어 도시 외곽 도로변에서 인기 좋게 팔리는 칡즙의 원료가 되고 있지요. 이 칡뿌리 즉, 葛根(갈근)은 5월 5일에 캔 것이 가장 좋다고 하고, 칡 생즙을 먹으면 消渴(소갈), 傷寒(상한), 壯熱(장열)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여름이 되면 이 칡을 이용한 칡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있는 것 같습니다. 칡의 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바로 제법 볼만한 꽃을 피운다는 사실인데요. 이 칡꽃이 완전히 피기 전에 따서 말렸다가 뜨거운 물에 데친 칡차도 식욕부진, 구토, 장출혈 등에 좋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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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12일 용인 고기리 낙생저수지 근처 칡덩굴과 칡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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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29일 청계산 칡꽃

 

갈등의 원조인 등나무와 칡이 진짜로 서로 얽힌 모습을 어디서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가 대마도에 대학동기들과 함께 놀러갔을 때, 숙소 근처 시골길로 새벽 산책에 나섰다가 두 나무가 이웃하고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지만 진짜로 얽히고설키는 것만은 서로 삼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조금 실망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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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19일 대마도에서 만난 칡(오른쪽)과 등나무(왼쪽)가 얽히려는 모습: 
아래는 두릅나무 개화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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