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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이냐 분열이냐,국가흥망의 교훈#20 : 잔학한 황제로 이어진 북제北齊(O)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4월02일 17시05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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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

 

         

<92> 고연의 쿠테타(AD560)

 

(양음의 선수 : 고연을 집으로 내 침)

누태후는 고양이 죽었을 때 고연에게 황위를 계승시키고 싶었다. 능력도 뛰어났고 인품도 입증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은 또한 이미 나이가 열다섯이나 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친람할 수 있는 나이였다. 다만 상중에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조서를 내려 대소사 모든 정사를 삼촌인 고연과 고담에게 맡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고양의 심복이자 유조를 받은 양음은 고연과 고담 형제가 사이가 매우 가까워 장차 황제 고은의 정치에 큰 난관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결국 양음은 황제를 움직여 고연을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어떤 사람이 고연에게 이렇게 말했다.

 

  ” 사나운 맹금류가 둥지를 비우면 

    반드시 알을 노리는 우환이 있게 마련입니다.

    오늘 어찌 왕께서 궁을 비우고 나가십니까?“

 

중산태수 양휴지가 고연을 위로하려고 집으로 찾아왔으나 고연은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양휴지가 왕희에게 말했다.

 

  ” 옛날 주공은 아침에 책을 100편 읽고

    저녁에 선비 70명을 만나고도 부족하다고 했는데

    녹왕(녹상서사이자 상산왕 고연)께서는 

    무엇이 두려워 빈객도 끊고 단절하시는 것입니까?“

(고연의 친구 왕희의 쿠테타 종용)

고연은 막역한 친구 왕희만을 불러 담소를 나누었다. 고연은 새로운 황제가 온화한 정치를 펴니 신하들이 모두 편안해하고 만족해하는 것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왕희가 말했다.

 

  ” 황제가 동궁으로 계실 때 흉노사람(강호아)이 스승이 되어 가르쳤습니다.

    이제 나이도 어린 형편에 황제가 되셨으니 

    전하(고연)께서 조석으로 곁에서 도와드려야 할 텐데 

    이렇게 유폐되어 계시니 비록 지방으로 나가고 싶어도 그렇게 되겠습니까?

    허심탄회하게 살고 싶어도

    스스로 한 집안을 잘 보호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으십니까?“

 

고연이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왕희가 대답했다.

 

  “ 주공이 성왕을 끌어안고 섭정한 것이 7년입니다.

    그런 다음에 돌려주었으니 전하께서는 이것을 생각하십시오.”

 

고연이 되물었다.

 

  “어찌 나를 주공과 비교하는 것인가?”

 

왕희가 말했다.

 

  “전하께서 가지고 계신 위치와 명망으로 볼 때

   주공이 되고 싶지 않으셔도 그렇게 되겠습니까?”

 

(황제의 고민)

황제 고은은 두 친왕 고연과 고담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었다. 중요방어지인 병주를 지키게 두자니 반란을 일으킬 것이 걱정되었다. 결국 고은은 고연과 고담을 모두 데리고 도읍지 업으로 귀환하기로 했다. 왕희만 병주의 장사로 임명했다. 고연은 진양을 떠나 업으로 가면서 몰래 왕희에게 행동을 조심하라고 일러두었다.

 

양음은 칙서를 내려서 황군 5천을 진양에 남겨두고 만일에 대비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당시 황군은 고귀언이 책임을 맡고 있었는데 양음이 자신의 군대 5천을 따로 진양에 두고 오게 한 것으로 인해 몹시 화가 났다. 영군대장군 가주혼천화는 가주혼도원의 아들인데 황제 고은의 고모 동평공주(즉 고양의 딸)의 남편이었다. 그는 평소에 늘 이렇게 말했다.

 

  “ 두 왕(고연과 고담)을 죽이지 않으면 

    어린 군주는 편안할 방법이 없다.”

     

네 명의 고명대신 중의 하나인 연자헌은 누태황태후가 정권을 휘두르기를 원했다. 얌음은 그동안 너무 많은 작위가 내려졌음을 고치기 위해 스스로 개부와 개봉왕을 벗어 버린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공도 없이 관작을 얻은 많은 훈신들의 공훈을 삭감했다. 양음의 이런 조치들은 당시의 어려운 조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졸지에 훈작을 잃게 된 많은 사람들은 양음을 원망하며 두 왕에게로 마음을 돌렸다. 또 다른 고명대신 고귀언도 처음에는 양음-연자헌과 한 마음이었으나 황군동원으로 이미 양음과 틀어진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고연-고담 측으로 기울고 있었다. 

 

시중이면서 황제의 동궁 선생이기도 했던 송흠도가 황제에게 다그쳤다.

 

  “ 두 친왕의 위엄과 권세가 이미 무거우니 

    당장 그들을 제거하셔야 사직이 튼튼해집니다.”

 

황제는 허락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 양음과 함께 그 일을 살펴보도록 하시지요.”

 

양음은 두 왕을 내보내 자사로 삼기를 원했지만 어진 황제가 반대할까 걱정되어 고양의 부인인 이태후와 그 문제를 상의했다. 궁인 이창의가 그 일을 알게 되었다. 궁인 이창의는 고중밀의 아내인데 이태후(고양의 부인)가 서로 성이 같아서 그를 매우 아끼며 많은 일을 알려 주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다. 이창의는 양음과 이태후가 서로 의논한 내용을 이태후에게 듣고서 누태황태후에게 고해바쳤다. 

 

(고담의 쿠테타 실행계획)

조정에서는 두 친왕을 동시에 외지로 내 보낼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고담에게 진양을 방어하게 하고 고연은 조정 최고직인 녹상서사로 임명하기로 결정했다. 두 친왕이 임명 조서를 받고 관직을 제수 받았다. 두 친왕은 상서성의 백관들을 초치하여 축하연을 베풀기로 했다. 양음이 그 초청에 응하려고 하자 고명대신 정이가 막아서며 말했다.

 

  “ 아직 일을 헤아릴 수 없으니 

    가볍게 운신하는 것이 옳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양음은 이렇게 말했다.

 

  “ 지금까지 우리는 지극한 정성으로 나라를 보필해 왔소.

    상산왕 고연이 관직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요.”

   

장광왕 고담은 집안 노복 수십 명에게 지시하여 연회장에 매복시켜 두었다. 그리고 고관대신인 하발인과 곡률금과도 사전 계획을 약속하고 알렸다.

  “ 술을 돌리다가 양음에게 이르면 내가 두 잔을 권할 것인데 

    그는 반드시 사양할 것입니다.

    내가 술잔을 받으시라고 두 번 권하고 그가 두 번 모두 거절하면

    세 번째로 내가 왜 술잔을 안 받으시는 것이지요 라고 물을 때

    행동에 나서기로 계획이 서 있습니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어 양음이 붙잡혔다.

 

  “ 여러 친왕들이 반역을 일으켜 

    충성되고 선량한 사람들을 죽이는구나.  

    천자를 높이고 제후의 힘을 깎아서  

    붉은 마음으로 나라를 받드는 우리가 무슨 죄가 있느냐?”

 

상산왕 고연은 그들을 느슨하게 대하고 싶었지만 고담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양음과 가주혼천화와 송흠도는 모두 붙잡혀 이리저리 몽둥이로 맞아서 머리에 피가 흐르고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연자헌은 도망가다가 곡륙률광에게 체포되었고 정이는 상약국에서 붙잡혔다.

 

고연과 고담은 피투성이 양음 등을 데리고 궁궐로 들어갔다. 황궁으로 들어가자 황제와 태황태후와 황태후가 나란히 서 있었다. 고연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 신과 폐하는 서로 뼈와 살을 나눈 지척인데

    양음이 조정권세를 독단하여 사직을 흔들었습니다.

    신과 고담은 국가의 일이 중하다고 생각하여

    하발인, 곡률금과 함께 양음 등의 무리를 잡아들였습니다.

    아직 형벌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독단으로 처리한 죄는 백번 죽어 마땅합니다.”

 

황제는 말이 어눌했으므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태황태후가 무기를 거두라고 명령했지만 수천 명 군사 중 아무도 무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누태황태후가 고함을 질렀다.

 

  “노복 녀석들의 머리가 떨어지고 나서야 무기를 버릴 것이야?”

 

태황태후는 양음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하발인이 눈알이 하나 빠졌다고 말하자 기겁을 하며 말했다.

 

  “ 양음이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기에 그 지경이 되었는가.

    살려두어서 일을 시키면 잘 할 것 아닌가?”

 

그리고는 태황태후는 황제를 나무랐다.

 

  “ 이들이 반역으로 내 두 아들 고연과 고담을 죽이려고 했는데     

    황상은 그동안 무엇을 하셨소?”

 

황제는 아무 말도 없었다. 태황태후는 아들인 고은을 살피지 못한 이황태후도 나무랐다.그리고는 이렇게 고연을 두둔했다.

 

  “ 우리 아들이 일어난 것은 오직 압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런 것일 뿐이요”

 

황제가 마침내 말했다

 

  “ 이 어린 목숨을 맡기고 스스로 황위를 내려갈 것이니

    숙부에게 처분을 맡기겠습니다. ”

 

고연은 고은은 남겨두고 그의 무리들을 모두 베어 죽였다. 태황태후는 처형된 사위 양음의 빠진 눈에 금구슬을 넣어 주었다. 홍려소경 양휴지라는 사람이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 장차 천리를 가야 할 텐데

   기린을 죽이고 절뚝거리는 당나귀를 채찍질해야 하다니

   슬프고 가련함이 크구나!”

 

고연은 대승상, 도독중외제군, 녹상서사가 되고 고담은 태부 경기대도독이 되었다. 

 

 

<93> 고연의 등극(AD560)

 

북제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한 상산왕 고연은 대승상에 도독중외제군사에 녹상서사가 되어 군권과 행정권을 모두 꿰찼다. 주변에서는 고연에게 서둘러 황위에 오르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고연 스스로는 그럴 필요나 의욕이 별로 없었다. 양음 세력을 제거한 것은 그들의 전횡을 막자는 것이지 자신이 황제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고연의 친구 왕희는 고지식하기만 한 고연이 딱했다. 승상부의 육묘라는 사람이 사자로 파견되면서 왕희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 대승상께서 서둘러 보위에 오르도록 재촉하십시오.”

 

왕희는 육묘의 말을 고연에게 전해주었다. 고연이 이렇게 되 물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대위에 오르라고 한다는데

   어찌 조언심은 애초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가?”   

 

조언심은 양음이 죽고 나서 양음의 일을 맡아하던 중서령이었다. 왕회가 틈을 내어 조언심에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조언심이 이렇게 대답했다.

 

  “ 나도 그 예기를 여기저기서 들었네만

    입 밖으로 내기가 조마조마했었네.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입도 열리지를 않았어.

    마침 그 예기를 자네가 꺼냈으니 나도 용기를 내서 

    죽기를 각오하고 말씀 올리겠네.”

 

조언심마저 황위에 오르기를 촉구하자 고연은 그 문제를 태황태후에게 말씀드렸다. 곁에 있던 조도덕은 골육간의 황위찬탈이 되는 것이라고 말렸다. 태황태후도 그렇게 판단했다. 한 참 지난 뒤 고연은 그 문제를 다시 태황태후에게 가져갔다.

 

  “ 천하 사람들이 인심이 안정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갑자기 어떤  변고가 어디서 발생할지 몰라서 두렵다고 합니다.

    서둘러 명칭과 지위를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태황태후가 마침내 결정을 내려 고은 황제를 폐위시키고 그 자리에 고연을 올려놓았다. 고은은 제남왕으로 깎여 별궁에서 거주하게 하였다. 태황태후는 고연에게 당부했다.

 

  “제남왕에게 다른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라.”

 

죽이지 말라는 말이었다. 고연은 진양(태원)에서 등극했다. 누태황태후는 누황태후로 깎이게 되었고 이씨황태후는 문선황후로 부르게 했다.

  

 

<94> 고연의 최측근 삼인방 : 왕희, 양휴지, 최할

 

고연이 황제가 되면서 오랜 왕희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고연이 말했다.

 

  “ 경은 어찌 자주 볼 수가 없게 되었는가?

    지금부터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종이에 적어 두었다가

    틈을 내어 즉시 내게 달려와서 올리도록 하라.”

 

고연은 조칙을 내려서 상서 양휴지와 홍려정 최할과 왕희 세 사람이 매일 직무가 끝나면 황제의 침전으로 달려와서 역사, 정책, 조세, 예술, 문학 등 모든 문제를 같이 의논하고 토론하도록 했다.     

 

고연은 식견이 높고 도량이 넓었으며 사무를 정확히 이해하고 더욱 부지런하게 정사를 돌보았다. 고양의 나쁜 정책들을 과감히 혁파했고 재정을 튼튼히 하려고 노력했다. 다만 너무 세밀한 것 까지 간섭하여 자잘하다는 비판이 따라다녔다. 고연이 그런 세평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 정말 그렇다.

    생전 처음 만기를 다루다보니 

    빠뜨리는 것이 없을지 항상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소홀함이 있으면 

    그 때에는 또 소홀하다고 비판이 있지 않을까 두렵다.”

 

고연의 고종사촌 고적현안에게 고연이 이렇게 물었다.

 

  “ 고적현안은 나의 고모의 아들인데

    신하로써가 아니라 가족으로써 허심탄회하게 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적현안이 이렇게 말했다.

 

  “ 폐하께서는 허망한 말씀을 많이 하시는 편입니다.“

 

고연이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고적현안이 답했다.

 

  ” 폐하께서 예전에 문선황제(고양)이 말채찍으로 사람을 때리는 것이 

    잘못이라고 항상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지금도 똑같이 그렇게 하시니 허망한 말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고연이 고적현안의 손을 붙잡고 사과하면서 물었다.

 

  ” 또 다른 할 말은 없으신가?“

 

고적현안이 말했다.

 

  ” 폐하께서 너무 자잘하시니 황제가 아니라 동네 말단 관리 같으십니다.“

 

고연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법도가 무너져서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고연이 왕희의 의견을 물어보자 왕희 또한 고적현안의 말이 맞다고 지적했다. 고연은 그제서야 고집을 꺾고 자잘하다는 주변의 비판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누태후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으며 황제의 격의를 좇지 않아서 신하들이나 가족들과 사이가 매우 편하고 좋았다. 

 

<95> 왕희라는 사람(AD560)

 

고연은 왕희를 매우 존중하고 높게 생각했다. 당연히 그에게 시중이라는 조정의 최고 중책을 맡기고 싶었지만 왕희가 번번이 그것을 거절했다. 왕희가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젊었을 때부터 정부요직에 오른 사람을 많이 봐 왔는데

    젊었을 때의 의지를 끝까지 뒤집지 않고 간 사람을 보지 못했소.

    내 원래 성격이 허술하고 느려서

    국가 정책을 맡아 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런데도 주군께서 은혜를 내려서 맡기시려고 하니 

    어떻게 보은해야 할지를 모르겠소.

    일을 하다가 만일 미치기라도 한다면 벗어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요직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드러질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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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4월02일 17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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