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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의 역사해석] 통합이냐 분열이냐, 국가 흥망의 교훈 #17 : 광개토대왕과 후연(15)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1월30일 17시00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8

본문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84) 후연-북위의 호타하 전투(AD397년 2월)

 

신도가 북위에게로 떨어지자 후연 주군 모용보는 심택(하북성 심택)에 주둔하며 조왕 모용린을 양성(하북성 순평)으로 보내 함락시켰다. 신도를 함락시킨 탁발규는 2월 초하루 군대를 북으로 몰아서 양성 주변에 주둔했다. 북위의 병주 감군이자 몰근의 조카인 추제는 삼촌 몰근이 후연으로 도망간 것(AD396년 12월)이 화가 될까 두려워 본국으로 돌아와 반란을 일으켰다. 탁발규는 추제의 반란도 걱정되기도 하고 또 쉽게 업이나 중산이 함락되지 않자 회군을 할 생각으로 후연에게 재상 탁발섭연을 보내 화해를 청하면서 동생을 인질로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모용보는 북위 내부에 혼란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는 탁발규의 요청을 거절했다. 가지고 있던 전군, 즉 보졸 12만 명과 기병 3만 7천을 모두 발동하여 곡양으로 모아 호타하 북쪽에 진을 쳤다. 탁발규는 호타하 남쪽에 진을 쳤다. 모용보의 군사 1만여 명이 밤을 타고 몰래 호타하를 건너 바람을 이용해 북위군영에 불을 지르고 습격하도록 했다. 놀라서 도망가는 탁발규의 옷과 신발을 습득하였고 북위진영은 큰 혼란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후연 군사들 가운데 놀라는 혼돈이 일어나면서 서로 도끼나 활로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募兵无故自惊,互相斫射). 이 틈을 이용하여 탁발규가 군사들을 추슬러 반격에 나서 혼란을 잘 수습할 수 있었다. 다음 날 탁발규의 대군은 강을 건너 후연을 공격했다. 모용보의 대군은 서둘러 중산으로 퇴각하려 했으나 쫓아오는 북위군에게 거의 전멸 당하였다. 모용보는 겨우 2만 기병을 데리고 퇴각하면서 북위군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하여 모든 무기와 갑옷 수십만 점을 버리도록 명령하고 단검조차 소지하지 못하도록 하고서 도망갔다. 후연의 사졸은 물론 많은 신하들이 북위에 항복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85) 모여호와 모용린의 반란시도(AD397)

 

북위에게 참패하여 중산으로 황급히 모용보가 돌아 온 다음날 밤 후연의 상서랑 모여호가 무능하게 패전한 모용보를 시해하고 그의 동생 조왕 모용린을 세우는 모의하다가 실패하여 북위로 도망가는 일이 발생했다. 모용린은 이 일에 직접 간여하지는 않았지만 몹시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AD397년2월) 

모용보의 뒤를 바짝 쫓아온 탁발규는 본국에서 여러 소란한 일들이 발생했지만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중산을 포위해 버렸다. 중산이 북위에게 포위된 지 다섯 달이 되어가자 장수와 무사들은 차라리 나가서 결전을 벌이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북대장군 모용륭이 모용보에게 말했다.

 

  “ 북위군이 오랫동안 전쟁터에 나아와
    많이 죽기도 하고 부상도 많이 당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고향을 생각하며 빨리 돌아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부에도 여러 크고 작은 반란들이 있어서
    지금이야말로 저들을 깨뜨릴 절호의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이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둘러 저들을 공격하자는 전의로 불타있습니다.
    이 날카로움을 이용하면 이기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만약 계속해서 신중함만 지키시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으시면
    사기는 날로 떨어질 것이고
    함께 곤궁과 결핍만 더해질 것이니
    그 때에는 변란이 안에서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을 이용하고 싶어도 못 할 것입니다.“ 

 

모용보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출병하려는 것을 모용린이 네 번이나 막으면서 반대했다. 궁지에 몰린 모용보는 마침내 탁발규에게 화해를 요청했다. 후연에 인질로 잡혀있는 동생 탁발고를 돌려보내고 또 상산(하북성 정정) 서쪽을 할양한다는 조건이었다. 탁발규는 얼른 조건을 받아들였다. 모용보는 얼마 있지 않아서 화해 요청을 후회하고 번복했다. 탁발규는 풀었던 포위를 다시 되돌렸다. 후연의 장수와 군사 수천 명이 모용보에게 간청했다.

 

 “ 지금 앉아서 궁색한 성을 지키다가는 곤핍하고 지쳐서
   저절로 쓰러지고 맙니다.
   저희들은 강력히 원하지만 폐하께서
   지난 번 번번이 억누르시는 바람에 날로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오랑캐들은 결단코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한 번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마침내 모용보가 출병을 허락하였다. 모용륭이 물러 나와서 보좌관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 황상이 위엄이 떨치지 못하고
    오랑캐들이 안으로 업신여기고 있으니
    신하된 자로써 수치를 금할 길이 없소.
    의로움이란 살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 했소.
    다행히 살아 돌아온다면 좋은 것이나
    만약 죽는다 하더라도 신하의 절개와 뜻을 펼쳐 보이는 것이니
    나쁠 것이 없소.
    경들 중에 만약 북쪽(용성)에 계신 나의 어머니를 뵙거든
    나의 이런 마음을 꼭 전해주시오.“

 

모용륭이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타 출병 명령을 기다리는 와중에 모용린이 또다시 강력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출병은 지체되었다. 대부분이 화를 내고 분개해 했는데 모용륭이 눈물을 흘리며 되돌아갔다.

 

그날 밤 모용린은 군사를 이끌고 북지왕 모용정을 위협하여 그의 휘하에 있는 금병을 거느리고 가서 모용보를 시해하도록 했다. 모용정과 금병들이 반발하자 모용린은 모용정을 죽이고는 성을 빠져나가 이민족 정령족들이 살고 있는 서산(태행산)으로 숨어들었다.  


(86) 모용보의 중산 포기 문제(AD397)

 

모용보는 모용린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용린이 북경에 있는 모용회의 군사를 빼앗을 것이 두려워진 모용보는 모용륭과 모용농을 서둘러 빠져나가 용성으로 보내 그곳을 장악하도록 했다.

모용보가 어쩔 줄 몰라 당황해하자 모용륭이 나아와 말했다.

 

  “  선제(모용수)께서 즐풍목우(栉风沐雨:바람에 멀리 빗고 빗물로 목욕하다)로
     중흥의 업을 달성하셨습니다.
     그러나 돌아기신지 일 년이 채 안되어 천하가 무너졌으니
     어찌 저희들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왜구들이 다시 쳐들어와 골육이 서로 떨어지고
     백성들은 의심과 겁으로 인해 적을 대적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북쪽으로 옮기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용천지역은 땅이 좁고 가난합니다.
    만약 중국을 아우를 생각을 가지고서 거기에 만족하신다면
    조석으로 다시 일어나 큰 공을 세우는 것은 어렵겠습니다.
    그렇지만 백성을 아끼시고 절용하시며
    농사를 기르시고 병사를 훈련시킨다면
    수년 안에는 공사가 다 충실하여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옛 조나라든 북위 나라든
    우리 후연 조정을 흠모하면서 모두들 반기를 들고 우리에게 올 것이어서
    옛 대업을 다시 이룰 것입니다.
    혹 이것이 안 되더라도 험난한 곳을 기대어 스스로를 튼튼하게 
    유유자적하면서 예기를 기를 수가 있습니다.“

 

모용보가 이렇게 말했다.

 

   “ 경의 말이 다 옳소. 한결같이 경의 말을 따를 것이요.”

 

모용륭이 황제를 뵙고 나오자 점을 잘 보는 측근 요동사람 고무가 이렇게 말했다.

 

  “ 전하께서 끝까지 북으로 가지 못하십니다.
    어머니 또한 뵐 수 없을 것입니다.
    주상께서 홀로 가시게 하고 전하께서는 이곳을 지키신다면
    반드시 큰 공로가 있을 것입니다.“   

 

모용륭이 황제도 모시지 말고 어머니 곁에도 있지 못하게 건의하는 고무를 크게 꾸짖었다. 모용륭이 부장들을 모아놓고 떠날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는데 대부분이 머무르자고 했고 오직 사마 노공과 참군 성급만이 황제를 따라 북으로 가자고 했다.

 

모용농의 부장 곡회구가 모용농에게 말했다.

 

  “ 성 안의 사람들은 모두가 참합피 대전에서 죽은 사람들의 부모형제 들입니다.
    원한이 뼛속 깊이 박혀있습니다.
    누구와 싸우든 죽기로 덤벼들 것입니다.
    지금 다들 북쪽으로 옮겨 가자고 하는데
    대왕께서는 이곳에 계시면서 무리들의 원한을 풀어주신다면  
    북위 군대를 물리치시고 동시에 나중에 편안히 대가를 모시게 될 것이니
    큰 충신이 되시지 않겠습니까?“

 

모용농이 곡회구의 말이 참람하다고 생각하여 죽이려 하다가 재능을 보고 살려 주었다.

 

  “ 이와 같이 하면 살수는 있을지라도 죽는 것만 못하다.”

 

3월 14일 모용보는 태자 모용책, 요서왕 모용농, 고양왕 모용륭, 장낙왕 모용성과 함께 1만 군사를 대동하고 중산성을 빠져나와 북쪽 계성에 있는 모용희에게로 갔다. 황제의 어린 아들 하간왕 모용희, 발해왕 모용랑, 박릉왕 모용감이 빠져 나오지 못하자 모용륭이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영접하면서 에둘러 말했다. 말안장을 타 보느라 나갔다 왔습니다.(骳乘)


(87) 황제가 빠져나간 중산성의 수비(AD397)

 

중산성에서 황제와 측근들이 대거 빠져 나가자 백성들이 당황했고 황제가 빠져나간 성 동문은 사람이 없어서 아예 닫히지도 않고 열려 있었다. 탁발규가 밤에 중산성으로 들어가려다가 왕건이 자신이 노략질 할 것에 뜻을 두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자고 해서다음날로 입성을 미루었다. 동문을 닫아걸고 모용보의 사촌동생 모용상을 주군으로 세워서 방어에 힘을 쏟자 탁발규는 며칠 동안이나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탁발규가 사람을 시켜서 성안 사람들에게 외치도록 했다.

 

  “ 너희 주군은 너희를 버리고 도망가지 않았느냐.     
    헛되이 죽으려고 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해 죽으려 한단 말이냐?“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이 말했다.

 

  “ 무리는 적고 무식하지만
    다시 참합피처럼 몰살당할까봐  두려워서 그런 것이다.
    단 며칠만이라도 연명하기를 원해서 그런 것이지
    우리도 살 것을 희망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탁발규는 왕건 얼굴에 침을 뱉고는 모용보 무리를 추격했지만 따라 잡지 못하고 돌아왔다.

모용보가 중산을 탈출하여 북으로 가다가 정형에서 조왕 모용린을 마주쳤다. 조왕 모용린은 갑작스런 만남에 당황하여 자신의 무리를 포음(하북성 순평)으로 도망시켰다가 망도(하북성 망도)에 주둔했다. 지역 사람들이 모용린에게 양식과 물자를 공급하였으나 모용상이 추격해 오는 바람에 처자식은 모두 붙잡히고 모용린은 다시 산 속으로 도망갔다.


(88) 계의 모용회(AD397)

 

원래 모용보는 청하왕 모용회를 용성에 주둔하게 했었다. 모용회는 지방에 주둔할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북위가 쳐들어오자 모용보에게 북위를 막겠다고 자처했다. 급한 모용보도 그것을 승낙했다. 모용회는 정남장군 고녹관위와 건위장군 여숭을 선봉으로 삼아 5천 군사로 용성에서 남쪽으로 진격했다. 고녹관위의 군대가 노룡(하북성 천서 북쪽)에 100여일 머무르면서 군마와 소에게 먹일 식량과 군량고갈로 나아가지 못하자 모용보가 크게 꾸짖었다. 고녹관위가 할 수없이 움직였으나 군장들을 준비한다고 또다시 한 달 가량 미적거리다 출발했다. 없는 길을 뚫고 또 미리 첩자를 앞으로 보내 적군의 동정을 염탐하면서 가느라 매우 느리게 진군했는데 사실 군사들이 전쟁에 뜻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본 여숭이 크게 꾸짖었다.

 

  “ 거대한 도적이 하늘까지 넘치고
    경도(중산)는 위험이 닥치고 있어서
    필부라도 목숨을 던져 주군을 살리려고 하는데
    여러분들은 주군의 총애와 신임을 받아온 처지에
    어찌 자신의 생명을 그리도 아낄 수가 있단 말이요.
    만약 사직이 무너지고 신하들의 절개가 짓밟히면
    죽어서도 치욕을 떨칠 수가 없을 것이요.
    여러분은 여기 이렇게 계시지요.
    나는 혼자라도 나서서 그것을 감당하겠소.“

 

여숭이 분연히 나서자 고녹관위가 기쁜 마음으로 500여 기병을 붙여 주었다. 여숭은 그 군사를 이끌고 어양(북경시 밀운현)까지 다다랐다. 북위 병사 천여 명을 마주쳤는데 여숭이 외쳤다.

 

  “ 저들은 우리보다 숫자가 많으니
    공격을 먼저 하지 않으면 승산은 없다.“

 

곧바로 북을 치며 직접 공격해 들어가 십여 명의 목을 날려버리자 북위군이 놀라서 뿔뿔이 흩어졌다. 여숭이 기병이 그들을 쫓아가 전멸시키고 돌아왔다. 고녹관위와 모용회의 군사들사기가 한층 높아지면서 의기양양하게 계(북경)방면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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