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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어쩌다 이 지경까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12월30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12월30일 17시19분

작성자

  • 이계민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前 한국경제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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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己亥)를 보내는 심정 … “짠하고, 거시기하다”

 

기해를 보내는 마음은 너무 우울하고 어둡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 지경까지 몰려있나 처참한 심정뿐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최고 권부나 정치인 기업인은 물론 춥고 배고픈 서민들까지 모든 사람들이 “짠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떤 연유인가? 문제는 짠하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서럽고 안타까우면서도 특정하기 어려운 ‘거시기한’ 심정까지 번지고 있으니 큰일이다.

‘거시기하다’는 낱말의 뜻은 국어사전에 “적당한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행위를 언급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풀이돼 있다. 여기서 ‘거시기’는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에 해당하는 것 같다. 적당한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는 것은 너무 많은 용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짠하다’의 사전적(辭典的) 의미는 “안타깝게 뉘우쳐져 마음이 조금 언짢고 아프다”<표준국어대사전>는 것이다.

 

기해(己亥)를 보내는 마음이 즐거울 수 없음은 ‘너와 나’ 모두가 느끼는 공통된 감정이다. 나아가 ‘안타깝게 마음이 언짢고 아픈 것’도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형용사인 ‘짠하다’는 생각이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 때문에?, 그 감정의 크기는?,……” 등등에 대한 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극한 대립으로 인한 분열과 뒤죽박죽의 모순이 뒤엉켜 나라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가장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정치권을 보자. 멀리도 볼 것 없이 어제 오늘 벌어진 국회의 모습을 보면 분노해야 할지, 가엾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여야를 막론하고 꼼수에 꼼수가 더해지고 듣도 보도 못했던 ‘4+1’이라는 협의체가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야당의 필리버스터에 여당의원들이 참여해 반대토론에 나서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진풍경은 한국의 여의도 의사당에서만 볼 수 있는 코미디이다. 정치권의 ‘내로남불’은 이제 토론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죽기 살기로 대결하면서 뒤죽박죽인 국회 운영

 

정기국회는 ‘예산국회’다. 새해 나라살림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회기다. 그런데 예산심의는 뒷전이고 기상천외한 ‘비례연동제’라는 선거법 개정으로 여야가 드잡이를 하고, 당초 법제정 의도와는 달리 수정에 수정을 거친 결과 누더기 괴물법으로 변해버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설치법을 놓고 찬반으로 갈려 사생결단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착잡하기만 하다. 오죽하면 국회의장 주도로 강행된 국회본회의에서 새해예산을 뒷받침해야 할 ‘부수법안’도 처리하지 못한채 ‘새해 예산안’을 ‘4+1’이라는 야합으로 통과시켜 법안처리가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특히 집권여당 국회의원들을 보면 참으로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바른 ‘내 생각’은 간절한데도 최고 권력에 대항할 수 없고, 당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어 동원된 거수기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여당 국회의원들이 ’가엾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은 더 참담할 것 아닌가. 야당은 법안처리에서 숫자로도 안 되고, 힘으로도 안 되고, 그것도 4+1이라는 야합이 빚어낸 결과이니 얼마나 속상할까? 그러나 누구 때문인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리더십이 실종된 가운데 원외로 나가 반대를 위한 반대집회로 일관하고 있으니 국민들의 신뢰를 받기는 역부족이다. ‘내 편’의 극성팬만으로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가? 착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모든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처지도 아닌 마당에 그 속에서도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져 분탕질하고 있으니 ‘불쌍하다’고 해야 할 듯싶다. 문제는 이런 모욕도 조금 지나면 잊어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공천싸움으로 드잡이가 계속될 것 같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으로 ‘거시기하다’.

 

검찰과 맞서는 최고권부 청와대, 조국사태로 양극화된 민심

 

최고권부 청와대는 기해(己亥)를 보내는 세모(歲暮)에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즐거운 분위기일까?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한 현실 앞에 문재인대통령인들 마음 편할 리 없을 것이다. 외교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눈치를 봐야하는 신세이고, 일본과는 또 다른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정부는 김정은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호의를 보내는데도 엉뚱한 반응을 보이거나 되레 욕을 하고 나서니, 문 대통령의 마음인들 오죽하시겠는가? 짠하기로는 이 나라 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해야 분이다. 문재인대통령은 김정은을 향해 평화경제를 외치지만 그 메아리는 먹구름이 되어 되돌아오고 있으니 더욱 참담한 일 아닌가.

 

어디 그 뿐인가? 조국 전 민정수석을 둘러싼 사건들은 갈수록 태산이고, 그것도 점점 청와대 경내로 진입할 태세이니 문 대통령의 마음이 착잡하기는 여야 정치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조직의 하나인 검찰과 대통령이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한심할 뿐이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 아니던가. 조국 전 민정수석의 유재수 감찰중단 압력사건은 물론 지난번 지방선거에서의 청와대 개입의혹, 총애했던 조국 전 법무장관의 가족비리사건 등 어느 한 가지도, 또 한 시도 방심할 수 없는 일들뿐이니 한 해를 보내는 대통령의 마음인들 편안할리 만무하다.

 

최후 보루 법원조차 이데올로기와 정권 속성에 따라 재판 안정성을 잃으면……? 

 

입법·사법·행정 3부의 한 축인 법원은 어떤가? 혹자는 새 정부 들어 법원의 안정성이 떨어졌다고 걱정한다. 이데올로기에 따라 재판을 하고,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재판결과는 국민들을 우롱하고 슬프게 만드는 일이다. 국민들이 믿어야 할 최후의 보루는 법원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 법원이 안정성을 갖지 못하고 정권의 속성에 따라 달라진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겠는가. 특히 최근의 사건이 되고 있는 조국민정수석 가족 재판이나 유재수감찰 중단 사건 등은 이 정부 들어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처단된 박근혜정부 시절의 ‘판박이 사건’인데도 재판진행은 다소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다.

 

 엊그제 법원 재판에서 판사와 검사들 간에 고성이 오가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이라는 게 법조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오죽했으면 재판에서는 최소한  ‘을(乙)’의 위치인 검사들이 갑(甲)에 해당하는 판사들을 향해 거친 항의를 했을까? 현 정부와 관련된 조국 전 법무장관 가족의 재판이란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끄는 사건이었다. 검사들이 재판과정에서 거론한 이의제기(異議提起)를 재판기록에 남기지 않았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판사들의 재량이라고는 하지만 권력자들의 재판이란 점에서 ‘재판기록’을 거두절미하거나 남기지 않은 것은 잘못이란 의견이 법조계의 다수의견이었다. 억울한 국민들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법원이 이런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을 수 있는 사건들로 신뢰를 잃어버리면 나라의 법질서가 무너질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한 것이다. 비정상이다.

 

힘없는 가난뱅이가 소주성의 최대 피해자라는데 …

 

국민들이 맞고 있는 지금의 형편은 어떤가? 세계경제환경의 악화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기업들은 매출과 이익이 반 토막 나는 곳이 적지 않고, 서민들은 서민들대로 일자리가 줄어 힘들고, 소득은 늘어나지 않는데 세금이나 연금보험료 등이 올라 실제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은 줄어드는 형편이니 ‘짠하다’는 표현이 걸맞다. 소주성(소득주도성장)으로 대변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취지인데, 그 효과는 알바생 일자리를 없애거나 부실한 자영업자들에게 비용가중으로 파산을 강요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자리를 지킨 근로자들에게는 최저임금인상의 혜택이 주어졌지만, 그 보다 일자리를 잃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 어려운 처지로 빠져들게 했으니 득(得)보다 실(失)이 많은 정책 아닌가. 정부는 최근 들어 취업자 수가 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60대 이상의 노인일자리가 늘고 40대 일자리, 그리고 제조업 일자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으니 우리 경제의 앞날이 ‘한심 할’ 따름이다. 

 

올해의 사자성어 ‘공명지조(共命之鳥)’ 

 

지난 12월 17일에 교수신문은 올해(2019년)의 사자성어(四字成語)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해 발표했다. 공명지조는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비롯한 많은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鳥)로, 글자 그대로 ‘목숨을 함께 하는 새’다. 서로가 어느 한 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 같이 생각하지만 실상은 공멸하게 되는 ‘운명공동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당과 야당이 상대를 죽이면 자기는 횡재를 할 것처럼 극한대립으로 나서고 있지만 결과는 공멸(共滅)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작금의 정치상황을 이 보다 정확히 묘사한 사자성어도 드물 것 같다.

 

 부(富)와 권력(權力)의 갑질, 경제성장이란 그늘에 가려진 노동자, 빈곤층의 권리와 복지를 위하는 선진국으로 연착륙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범한 것이 문재인 정권이다. 이른 바 ‘촛불혁명’이라 자칭했다. 과연 그런 목표는 얼마나 이뤄가고 있는가. 그러나 부(富)를 나누고 복지(福祉)를 늘리는 것은 싸워서 쟁취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시장의 질서와 규율을 가다듬고, 나라의 부를 축적하면서 함께 나눠 갖는 ‘플러스 섬’게임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어느 한쪽에서 뺏어서 다른 한 쪽에 나눠주는 ‘마이너스 섬’게임을 즐기고 있다.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면 ‘그대로’인데 왜 마이너스가 되나? 뺏기는 쪽은 더 이상 돈을 벌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받는 쪽도 필요한 돈을 편하게 얻을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땀 흘려 일하겠는가? 결국 나눠먹을 파이(國富)가 줄어드니 갈수록 뺏고 뺏기는 양(量)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벌써 “물러가라”는 외침 나오는 연유(緣由), 청와대는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나?

 

대한민국, 이대로 무너지고 말 것인가? 무엇보다 최고 권부(權府)인 문재인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가 대오각성(大悟覺醒)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 본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일을 서슴치않았다. 이제라도 더 이상 나서지 말고 당초의 생각대로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그나마 살 길이 보일 것 아닌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싸움도 이제는 질릴 대로 질렸다. ‘나만 살기 위한’ 사생결단이 아니라 나라가 살 길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오죽하면 대통령 임기가 절반을 약간 지났을 뿐인데 “물러가라”는 소리가 터져 나오는 지, 그 연유(緣由)를 최고권부 청와대는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묻고 싶다. 현 정부 출범당시의 시대정신은 ‘통합(統合)’이었다. ‘소통해 통합 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약속 아닌가? 그런데도 통합은커녕 의도했든 아니했든 좌(左)와 우(右)의 틈새를 더욱 크게 벌려놓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가장래가 걱정되는 이유다.

 

지금 우리는 머리가 둘 달린 ‘공명조(共命鳥)’처럼 좌우(左右)간은 물론 노사(勞使)간, 빈부(貧富)간, 세대(世代)간, 성별(性別)간의 ‘두 머리 투쟁’이 생사(生死)를 건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중이다. 대화와 타협이 아닌 극좌와 극우의 대립, 부유층과 빈민층의 갈등, 노(老)와 소(小)의 대립, 남녀 간의 갈등 등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상황이다. 함께 살아가야 할 좌우(左右)의 운명공동체가 생사를 걸고 서로 싸운다면 결과는 공명조처럼 공멸(共滅)뿐이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세월에 매듭은 없지만 ‘送舊迎新’ … 경자(庚子)를 맞이하는 경건한 자세를

 

이제 기해(己亥)를 보내고 경자(庚子) 새해를 맞는다. 물론 세월(歲月)에 매듭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고 한다. 경자년(庚子年)은 쥐띠의 해이다. 그것도 아주 힘이 센 ‘흰 쥐의 해’라고 한다. 육십갑자의 37번째 해다. 쥐는 12지(支)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는 동물이다, 쥐는 다산(多産)과 풍요(豐饒), 영민(英敏)과 근면(勤勉)을 상징하는 동물로 흰 쥐는 그 중에서도 가장 우두머리 쥐이자 매우 지혜로운 동물이라고 한다.

 기해(己亥)를 보내는 마음은 “짠하고, 또 뭔가 말하기 쉽지 않은 착잡하고 거시기한 심정”들이 뒤따른다. 심지어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 지경까지 몰려있나 하는 자괴감(自愧感)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단절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려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입법·사법·행정 등 3부 우두머리들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어떻게 각성해야 하는 것인가? 최우선 과제는 최소한 이 시대가 요구하는 ‘통합의 한 해’를 이뤄나가는데 진력(盡力)해야 하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통합을 준비하는 한 해”라도 만들어 나갔으면 싶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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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12월30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12월30일 17시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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