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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이 고장났나, 왜 말이 없는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7월30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7월30일 13시57분

작성자

  • 김동률
  • 서강대학교 교수. 매체경영. 전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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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아 중국을 다녀왔다. 구체적으로는 리장, 샹그리라 등으로 유명한 중국 서남부 히말라야산맥 끝자락 윈난성 일대. 차마고도의 출발점이다. 이 일대는 황하의 지류격인 금사강이 구비구비 흐르고 있다. 황하는 청해성 곤륜산맥에서 시작해 사천성, 감숙성 등을 거쳐 발해만으로 유입되는 전장 5,464㎞의 강이다. 중국에서는 장강 다음으로 길며, 길이로 세계 5위다. 중원을 가로질러 유장하게 흐르며 수많은 신화와 전설을 낳았다. 그래서 종종 중국인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인정된다.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 자주 등장하는 만절필동(萬折必東)도 바로 황하에서 유래한다. 황하(黃河)가 수없이 꺾여 흘러가도 결국은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으로 중국 황제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의미하는 말로 널리 이해된다. 

 

나는 최근 들어 이 네 글자에 대해 큰 슬픔을 느끼고 있다. 현 집권 여당의 핵심인사들이 원인이 된다. 우선 문희상 국회의장이 그 대상이다. 나는 그동안 의회주의자로 자처하는 문 의장에게 상당한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봄을 계기로 내 마음을 정리했다. 문 의장은 지난 봄 미국 공식방문 기간 때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에게 '만절필동'이라고 자필로 쓴 족자를 선물했다. 다음 날 조간신문에 실린 커다란 사진을 본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못나게도 우리말 한글로 쓰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건 약과다. 커다란 한자 고사성어를 들고 활짝 웃는 사진을 보며 우리는 엄청난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만절필동, 앞서 설명했지만 '황하가 수없이 꺾여 흘러도 결국은 동쪽으로 간다'는 의미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에서는 엄연히 다른 뜻이다. 사학자들은 이 네 글자는 선조가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나라의 고마움을 표현한 말로 중국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는 지독한 사대의 의미라고 설명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회의장의 처신이 고작 이 정도이면 개탄스럽지 않은가. 뒤늦게 논란이 되자 북한 핵 문제가 반드시 해결된다는 의미였다고 강변하지만 솔직하지 않은 그의 태도 또한 치졸하다. 그러나 청와대와 집권 여당은 물론 야당조차 대수롭지 않다며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일부 보수신문을 제외한 대다수 언론 역시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곧바로 잊혀졌다. 

 

문제는 문 의장의 이번 행태가 해프닝이라기 보다는 계획된 의도에 가깝다는 것이다. 비서실장으로 자리바꿈한 문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노영민 실장도 그랬다. 년전 주중대사가 신임장 제정식 때 문 의장에 앞서 이미 ‘만절필동(萬折必東)’을 힘주어 말한 바 있다. 신임장 제정식에서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지금까지의 어려움을 뒤로하고 한중관계의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나가기를 희망합니다)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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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치권과 역사학계 역시 만절필동이 천자를 향한 제후들의 충성을 의미하며 결국 대한민국이 중국의 종속국인 제후국이고 문 대통령이 시진핑 천자를 모시는 제후라는 것”을 인정하는 비굴한 행태라며 논란이 된 바 있다. 따라서 노련한 문 의장이 이를 모르고 실수로 인용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정치 9단이자 정치권에서는 겉은 장비, 속은 조조로 불리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어온 인물이다. 

 

문재인 정권의 실세들의 중국에 대한 굴신은 도를 넘었다. 조국 전 수석의 페이스북 정치에서 보듯이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를 들먹이며 거칠게 사사건건 날을 세우다가도 중국에 대해서는 비굴함 그 자체다. 사드를 빌미로 온갖 협박을 일삼아도 묵묵부답이다. 현대차 광고판을 하루밤새 부셔버려도 논평 한마디 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선 특위까지 구성하더니 중·러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과 영공을 침범해 오자 "기기 오작동이라더라"며 오히려 앞장서 변명해 준다. 

 

유람선 사고 때는 새벽부터 네 차례 청와대 긴급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야단을 떨었고 "중요한 것은 속도"라며 선박충돌사고에 뜬금없이 외교부 장관 현장급파를 지시했던 대통령이다. 시민단체도 마찬가지. 아베규탄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1백여 개 단체도 중·러의 도발엔 조용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스스로를 작은 나라 운운했던 참담한 현실에 이어 오늘 우리는 영토를 침해당해도 말 한마디 못하는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앞장서 감정을 부추기던 문대통령도 조국 전 수석도 중·러의 영공침해에 대해선 꿀 먹은 벙어리다. 페이스 북이 문제인가? 왜 말이 없는가?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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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7월30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7월30일 13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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