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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은 구호의 제창이 아니라 과학적 과정이어야 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5월09일 15시43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0시29분

작성자

  • 한만수
  •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변호사

메타정보

  • 33

본문

규제개혁은 구호의 제창이 아니라 과학적 과정이어야 한다

 1. 규제의 개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국가적 동물이고, 따라서 국가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고대국가의 개념과 달리 근대국가는 “특정 지역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평화, 질서, 복지와 같은 그들의 삶의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그들이 행하여야 할 일을 그들 중의 일부의 사람들(공무원)에게 위임(agency)하거나 그들이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권리의 일부를 그 일부의 사람들에게 신탁(trusteeship)함으로써 형성되어 그 특정 지역과 그 속의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 비개인적(impersonal), 추상적(abstract) 조직체”라고 정의되고 있다.Kenneth Dyson, The State Tradition in Western Europe, Martin. Oxford(1980), pp.29, 270-271.

 국가를 자연적 존재로 보든, 인위적 존재로 보든 국가는 그 구성원들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고 그 권력의 행사방법은 대표자들에 의해 제정된 법률에 의한 지배이다(rule of law). 법률에 의한 지배는 구체적으로 보면 국민으로 하여금 어떤 행위를 하거나 하지 말도록 강제하는 개개의 규범의 총합이다. 이처럼 국민의 행위를 형성하는 개개의 규범을 우리는 ‘규제’라고 부른다. 따라서 국가가 존재하는 한 규제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형벌과 세금의 부과는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최대의 규제이지만, 통상 우리가 규제라고 함은 이를 제외한 경제활동에 대한 직.간접적 제약을 말한다.

 

2. 규제대상 행위의 구분 - 외부효과 유발행위와 내부적 행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근대 민주국가의 기본 사상이다. 그러나 사인의 행위가 아무런 반대급부도 치르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집에서 쓰레기를 태우면 공기를 오염시켜 이웃 사람들에게 피해를 가져다주고, 동종 제품을 취급하는 두 개의 기업이 가격을 담합하면 많은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가져다준다. 타인에게 대가없이 안겨다 주는 이러한 피해를 강학상 ‘외부효과’(externalities)라고 부른다. Joseph Stiglitz, THE ROARING NINTIES, Allen Lane, p. 307.

 국가는 이러한 외부효과를 유발하는 행위(“외부효과 유발행위”)를 방치함이 없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방지할 의무가 있다.

 

한편, 사인의 행위 중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아무런 피해를 가져다주지 않는 것들도 많다. 건강을 다지기 위해 등산을 열심히 하는 행위, 자신이 재배한 농산물을 유통점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행위, 자신이 판매하는 재화나 용역을 많이 구매해 주는 고객에게 장려금을 지급하는 행위 등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외부효과 유발행위’에 대비하여 ‘내부적 행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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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부적 행위’에 대한 규제는 과감히 철폐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유해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내부적 행위에 대해서는 규제를 가할 이유가 없다. 인간 본래의 권리에 따라 자유롭게 행위하거나 거래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지금 시행 중인 우리나라의 각종 법령에는 이러한 내부행위에 대한 규제가 무수히 많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해 5월에 제정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에서 이동통신용역의 가입기간 등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고객에게 단말기 구매대금의 일부를 지원하는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이는 단말기 보조금의 실체를 망각한 채 전형적인 ‘내부적 행위’를 불필요하게 규제하는 것이다. 이동통신서비스 가입과 함께 단말기를 구매하는 고객에게 이동통신회사가 지급하는 보조금은 이동통신회사가 장래 장기가입 고객으로부터 받게 될 이동통신요금의 일부를 단말기 구매시에 미리 되돌려 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동통신사, 장기가입 고객, 단말기 판매회사 어느 누구도 그 지급에 의해 피해를 입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왜, 무엇을 위해 이러한 내부적 행위를 규제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4. ‘외부효과 유발행위’에 대한 규제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외부효과 유발행위를 규제함에 있어서도 규제의 효율성을 높이고, 규제에 따른 사회적 손실의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원칙이 엄격히 지켜져야 할 것이다. 

 

첫째, 과잉금지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과잉금지의 원칙). 즉, 규제로 인해 얻어질 이익과 국가 전반에 초래할 불이익을 비교형량하여 규제의 부과여부, 규모 및 지속기간이 정해져야 한다. 사회구성원 간의 자율에 맡겨도 될 일에 대해 원자폭탄식의 규제를 가하면 그 일은 없어져 버릴 것이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쓰는 가사도우미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한다고 하면 가사도우미 일자리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둘째, 규제의 방식을 다양화하여야 한다(다양성의 원칙). 현행 절대 다수의 규제들은 특정 행위의 금지와 그 위반시의 처벌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단속적 방식의 규제는 단속에 걸려들지 않으면 그만이고, 우연히 단속에 걸려드는 사람만 피해를 입는다는 인식을 줌으로써 그다지 높은 효과를 얻지 못한다. 경제활동에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규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속적 방식 외에 다른 다양한 방식이 이용되어야 할 것이다. 자율적 관리 기구의 설치와 운영, 자기교정 기회의 부여, 교육기회의 제공 등이 대표적 방식이다. 예를 들면, 성분과 원산지를 속이는 상행위를 간헐적으로 단속하는 것보다는 상인협회를 통해서 그러한 기망적 상행위가 장기적으로 자멸의 길임을 교육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셋째, 규제의 내용이 명확하여야 한다(명확성의 원칙). 규제대상 행위가 무엇인지 불분명하거나 불투명하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법규 외의 방식으로, 즉 관계 행정청의 내규 형식으로 규제를 가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심스러울 때는 국가의 이익으로’라는 공무담임자들의 일반적 심리에 따라 목적 달성에 전혀 필요가 없는 규제나 필요한 정도를 넘어선 규제가 가하여지기 십상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국민들이나 기업들은 과도한 compliance 비용을 지출하게 되고, 공무담임자들의 부패행위를 유혹하게 된다.

 

넷째, 규제는 여건의 변화에 맞추어 항시 재편되어야 한다(항시재편의 원칙).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규제대상인 행위의 양상도 여건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외부효과 유발행위’가 단순한 ‘내부적 행위’로 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유발하는 외부효과의 양이 증가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규제의 방식과 정도가 수시로 바뀌어야 할 것임에도, 한 번 형성된 규제는 그대로 유지되는 관성을 가진다. 경제여건의 변동에 따라 끊임없는 기업구조재편이 필요하듯이 규제도 여건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늘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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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맺음

규제는 국가의 존재를 실증하는 징표이다. 그런데, 국가는 국민의 복리를 위해 존재하고 기능한다. 따라서 규제도 국민 복리의 총량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부과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리에 반해 행정 공무원들의 권한양산 본능, 포풀리즘에서 연유하는 입법기관의 졸속입법경쟁이 맞물려 ‘내부적 행위’에 대해서는 불필요한 규제가, ‘외부효과 유발행위’에 대해서는 도넘은 규제가 거의 매일 양산되고 있다. 과학적 연구와 검증, 현장에서 활동하는 국민들과의 대화와 소통, 다수결 원리에 따른 합의의 존중을 통해 최소한의 규제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부과되어야 한다. 속박이 아닌 자유에서 지적가치가 창출되고, 개인과 국가의 부가 창출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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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5월09일 15시43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0시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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