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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 진흥 이대로 좋은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3월18일 21시46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01분

작성자

  • 김경근
  •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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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인성교육 진흥 이대로 좋은가

 

  최근 교육부는 인성교육진흥법 시행령 초안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2015학년도 2학기부터 전국 1만2000개 학교가 1년 단위로 인성 중심 교육과정을 수립해 운영하고 그 성과를 교육청으로부터 평가받는다고 한다. 아울러 648만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인성 수준도 측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교육부가 인성교육 진흥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심도 있는 고민과 치밀한 전략도 없이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성과에 대한 조급증 때문에 실패로 귀착된 교육정책이 적지 않음을 상기해볼 때 작금의 상황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심각한 인성 문제와 그 배경   

 우리 청소년의 인성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례로 지난 2012년 7월에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실시한 인성교육 실태조사에서 교사 10명 중 8명은 학생들이 나눔과 배려와 같은 ‘더불어 사는 능력’이 미흡한 것으로 지적했다. 학생들 인성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과 관련해서는 교사들의 45.6%가 ‘부모님의 잘못된 교육관’을 지목한 반면, 학생의 33.4% 및 학부모의 27.6%는 ‘성적 위주 학교교육’을 지적했다. 주체별로 인식 차이는 있지만,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된 부모나 학교가 인성교육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 셈이다.    

 

 현실도 암울하지만 앞으로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2013년 9월에 경희대와 중앙일보가 16개 시․도의 중학교 교사 2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교사들의 절반(48.3%)은 학생들의 인성이 앞으로도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부모들이 성적과 입시에만 관심을 보이는 상황에서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인성교육이 설 자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교사들의 93.1%는 성적보다 인성이 중요하다고 응답했지만, 인성교육을 위한 문화․풍토가 양호한가에 대해서는 41.4%만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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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에 못 미친 설익은 시행령 

 이러한 계제에 교육부가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그 시행을 위해 발 빠른 행보를 보이는 것은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시행령 세부안은 인성교육과 관련된 행정절차와 규정만 잔뜩 나열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방법은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실효성 있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구안해 착근시키는 것이 일선 학교로선 지난한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교육현장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고민이나 성찰의 흔적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일선 학교로선 실효성 있는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데 필요한 실제적인 도움은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성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오롯이 떠안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같이 설익은 시행령이 제시된 이유와 관련해선 교육당국이 문제의 배경, 본질, 해법에 대한 광범하고 포괄적인 분석이 결여된 상태에서 여론에 떠밀려 급히 인성교육 진흥에 나서게 됐을 가능성을 상정해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인성 함양을 학력 증진과 유사한 방식으로 추진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개연성이 매우 크다. 매년 인성을 측정하고 추진 성과를 교육감에게 보고하도록 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인성교육을 행정편의주의에 기대어 추진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재고되어야 할 인성 측정 

 시행령 초안에서 드러난 내용 가운데 가장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은 학교 단위로 매년 학년별로 학생들의 인성 수준을 측정하고 그 성과를 교육감에게 보고한다는 것이다. 인성 수준 측정은 2014년에 한국교육개발원이 개발한 70개의 인성문항을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일선 학교가 인성교육에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추동력을 제공하고 단기간에 교육성과를 확인하고자 하는 배경에서 이러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현실성이나 타당성을 결여한 황당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가치관이나 윤리의식은 단기간에 바뀌기 어렵고 그 수준이나 변화를 측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사회조사에서 직면하게 되는 대표적인 난제 가운데 하나는 솔직한 답변을 꺼리게 하는 질문의 경우 사회적 소망성 편향(social desirability bias)이 나타나기 쉽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비난의 소지가 있는 민감한 질문들에서 이러한 문제가 자주 불거지는데, 인성 측정에서도 심각한 응답편향이 나타날 공산이 크다. 특히 학생들이 인성 측정 결과가 어떤 형태로든 상급학교 진학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 편향 정도는 매우 우려할 만한 수준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 경우에는 학생들의 실제 인성과 점수로 측정된 인성 간에 심각한 괴리가 존재하는 이중적 인격이 양산되는 사태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울러 인성 측정에 대비하기 위한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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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이고 실효성 있는 전략 필요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격언이 있다. 인성교육 진흥을 도모하는 데는 이보다 적합한 경구를 찾기 어렵다. 아동의 인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가정, 학교, 사회가 모두 고유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며 힘을 보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동의 인성은 무엇보다도 부모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동은 부모의 행동을 본보기로 삼아 관찰하며 배우기 때문이다. 또한 아동은 대중매체, 어른들의 대화와 같은 창을 통해 성공한 기성세대의 면면을 바라보며 자신의 됨됨이를 형성하며 성장한다. 때문에 만인 환시리에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거나 명백한 편법과 불법을 자행하고도 고위직에 오른 인사들을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면 정직한 사람만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 쉽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인성교육이라는 무거운 짐의 대부분을 학교에만 떠맡겨서는 기대하는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따라서 인성교육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학교교육과 평생교육을 망라하여 좀 더 큰 틀에서 포괄적이고 실효성 있는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정직이 가장 가치 있는 덕목이고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사람이 궁극적인 승자가 된다는 명확한 시그널을 확산시킴으로써 사회의식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다시 시행령으로 돌아와 대안을 제시한다면, 무엇보다도 학교를 좀 더 인성 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의지와 방략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교육환경을 방치하고는 인성교육이 착근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성교육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인성 측정이 불가피하다면 전수조사가 아닌 표본조사를 실시하여 일선 학교나 교사가 불필요하고도 비교육적인 선택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교원 임용 과정에서 전문적 지식 이상으로 소명감이 중시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인성교육은 주입식이 되어서는 성공할 수 없으며 인간적 감화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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