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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소통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7월12일 17시43분

작성자

  • 나은영
  •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학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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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포스트잇 소통이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재수 시절을 거쳐 우리 학교에 입학한 한 수강생의 리포트가 떠오른다. ‘내게 가장 큰 감동을 준 미디어’에 관한 <미디어심리학> 과목의 리포트였다.

그는 지방의 모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아주 잘 했었다. 그러나 첫 해 입시에 실패해 서울 근교에서 재수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에게 배달된 소포! 고3 담임선생님이 보내신 소포 안에는 수능 공부에 도움이 되는 참고서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 참고서로 수능 공부를 해 나가던 도중에 발견한 담임선생님의 포스트잇 메시지! 여러 해가 지나 지금은 정확한 문구가 생각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쯤 공부가 힘들어지는 계절이지. ○○이는 잘 할 거야.” 그런 메시지에 감동하여 또 공부를 계속 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또 다른 포스트잇이 붙어 있곤 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되겠구나. 끝까지 힘낼 수 있지?”

이처럼 포스트잇을 활용해 참고서 사이사이에 붙어 있던 이와 같은 메시지는 그에게 재수 생활 내내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어떤 첨단 미디어보다 더 큰 감동을 준 미디어가 바로 고3시절 고생을 함께 했던 담임선생님의 포스트잇이었다.

 

□ 아픈 상처를 아물게 하는 반창고와 같은 포스트잇

 

이러한 사례 이외에도 최근에 우리는 두 건의 강렬한 포스트잇 소통을 목도했다. 지난 5월 17일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발생한 23세 여성 살인 사건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 쪽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에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와 같은 추모에서 시작하여, “어쩌면 내 친구였을지도 모르는 친구야, 내가 미안해. 많이 아팠을 텐데...”와 같은 미안함과 안타까움, “우연히 살아남았다.”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와 같은 분노, “아름다운 그대여 편히 쉬시길... 그곳에 차별도 없고 미움도 없고 항상 따뜻하길...”과 같은 위로와 희망사항 등이 담겨 있었다.

정확히 11일 후 구의역 9-4 승강장 스크린도어 수리 중에 발생한 19세 비정규직 청년의 사고사 이후 붙어 있던 추모 포스트잇에는 “그 곳에서는 컵라면이 아닌 맛있고 따뜻한 밥 드셔요. 미안합니다. 나는 또 다른 당신입니다.” “지하철 진입할 때 나는 굉음이 너의 비명소리처럼 들려 가슴이 아프다. 그 곳에선 컵라면 말고 고기 먹어.” 또는 “청춘은 쓰고 버려질 기계가 아니다.”와 같이 청춘의 입장에서 공감하며 안타까워하는 내용부터 “배고파하며 일했을 당신에게 미안합니다. -아저씨”와 같이 기성세대로서의 미안한 마음까지 온 국민의 마음이 집결되어 있었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위로, 마음에 붙여 주는 반창고의 역할을 포스트잇 소통이 해내고 있다. 그 두 사람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 삶의 많은 부분이 지금 살아남아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공감을 주기에 그러한 살인이나 사고가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컵라면’이라는 단어의 상징성은 시간과 돈이 부족할 때 얼른 한 끼를 때우는 식량의 하나로서 비정규직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아무 잘못도 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희생된 데 대한 분노의 마음을 담아, 어떤 방식으로든 희생자를 위로하고 싶었던 마음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 압축적 표현, 응축된 마음의 시간차 소통

 

포스트잇 소통은 아날로그적이다. 짧지만 강렬하다. 표현은 압축적이지만 마음이 응축되어 있다. 짧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 짧게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압축적이지만, 그만큼 강하게 마음이 응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강렬하게 전달된다.

사실 포스트잇은 필요한 핵심 내용만 담을 수 있다는 점, 예컨대 오늘 처리해야 할 일, 사야 할 물건 등을 기억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일종의 메모 역할을 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더 나아가, 같은 물리적 장소에 시간차를 두고 들르게 될 다른 사람을 위해 필요한 내용을 메모해 전달하기도 하는, ‘시간차가 있는 소통’에 적합한 수단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래서 강남역과 구의역에 ‘현재, 내가’ 포스트잇에 내용을 적고 있는 순간에는 그 내용을 수신자가 읽을 수 없지만, ‘언젠가는 (또는 하늘나라에서 영혼이라도), 이 자리에서 희생되었던 사람이’ 그 내용을 마음으로 느끼고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직접 소통이 어려운 순간에 익명의 짧은 글로나마 그동안의 본인의 삶에 비추어 쌓여 왔던 공감의 마음을 표현하고, 이렇게 표현한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또 다른 사람들도 많이 공감하는 과정에서 포스트잇 소통이 그렇게 많이 쌓여 ‘외침의 광장’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포스트잇 소통은 상대를 위로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위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첨단 미디어 형식보다 진심을 담은 내용이 중요

 

‘강남역 10번 출구’와 ‘구의역 스크린도어 9-4 승강장’은 이제 페이스북 페이지로도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사회적 현상이 있을 때 사람들은 SNS 공간에 모인다. 사람들의 힘 모으기와 마음 모으기가 용이해진 SNS 환경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소통을 위해 첨단 미디어라는 ‘형식’의 활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 ‘내용’이다. 정성스럽게 담은 도시락 밥에 연두색 완두콩으로 쓴 ‘사랑해’라는 말이 스마트폰으로 쉽게 뿌리는 스팸성 메시지보다 훨씬 더 감동적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록 도시락을 열 때까지는 의미공유가 안되니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리고 비록 밥을 콩과 함께 먹어버리는 순간 그 메시지가 물리적으로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지라도, 그 도시락을 먹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남아 있을 내용이자 그 도시락을 싼 사람의 노고가 들어간 진실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짧은 포스트잇 소통이라도 응축된 진심이 담길 때 감동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진심을 담은 내용의 공유가 참된 소통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공감적 분위기가 이 사회를 지탱하는 에너지의 흐름이다. 포스트잇 소통 속에 우리 국민이, 우리 젊은이가 희망하는 사회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포스트잇 소통의 행간을 읽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책무가 우리 모두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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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7월12일 17시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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