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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이 어리석다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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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5월12일 20시56분

작성자

  • 김동률
  • 서강대학교 교수. 매체경영. 전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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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옛날 한 사내가 집앞 산의 흙을 퍼내 멀리 나르기를 거듭한다. 산신령이 놀라 그 연유를 묻자 건너편 아들 집에 가는데 산 때문에 둘러가야 하는 등 여러 가지로 걸거적거려 옮기려고 한다고 대답한다. 어느 세월에 다 옮기겠느냐며 산신령이 그 어리석음을 한탄하자 제 생애에 다 못하면 대대손손 할 것이니 결국 산을 옮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그러자 산신령이 놀라 스스로 산을 멀리 옮겨 갔다는 얘기다. 끈질기게 노력하면 성취못할 일이 없다는 뜻의 고사성어가 된 이 말은 동양적인 사고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얘기는 필자가 미국 대학에서 강의때 인용했다가 쏟아지는 질문에 몹시 혼난 기억이 있다. 곧잘 인용되는 이 얘기가 그들 눈에는 황당하거나 어리석게 보여지는 모양이다. 이처럼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은 너무나 달라, 비록 오랜 세월 각기 다른 문화권에 살아본 사람조차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동아시아 국가의 경제성장으로 주목대상이었던 이른바 동아시아적 가치 (East Asian Value) 에 대한 논란이 서서히 종언을 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동아시아적인 가치에 대한 논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져 전개돼 왔다. 급속한 경제성장의 비밀을 풀려는 노력과 개발독재 형태의 아시아적 정치체제의 정당성과 그 효용성을 둘러싼 논란 등이다. 이 논쟁의 기본 바탕은 일본과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국가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있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경제가 장기간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동아시아적인 가치에 대해 냉소하는 분위기다. 특히 미국의 지식계는 더이상 아시안 밸류에 집착하지 말고, 서구식 정치, 경제모델을 따르라고 충고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시아적인 가치가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서구 사회는 사회해체의 징후, 첨단과학 문명의 역기능 등의 문제에 당면해 있다. 급속한 발전으로 말미암아 위험사회로 가고 있다. 그래서 아시아적인 가치는 서구모델의 결함을 보완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아시아적인 가치가 그동안 서양 중심주의에 매몰된 아시아 국가들의 아이덴터티를 되찾는 데 한 몫했음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NYT의 저명 칼럼리스트이자 진보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동아시아 경제의 고도 성장은 단지 생산요소의 집중투입에 의한 양적 확대였을 뿐,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은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주장해 왔다. 크루그먼 교수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동아시아적인 가치가 저물어가고 있다는데 부인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 물론 동아시아 국가들이 인류의 중심국가로 자리매김하는 미래에 대해 나이스비트나 후쿠야마와 같은 확신론자가 있기는 하지만 크루그먼 같은 회의론자의 견해가 최근 들어 더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흔히 동양은 서양에 대비된다. 정신지향의 동양이 이상적, 내향적, 종합적이라면, 물질선호의 서양은 현실적이고 외향적이며 분석적이다. 동양에서는 굴을 파려면 이쪽 저쪽 양쪽에서 파고 들어온다는 말이 있다. 중간에 만나면 좋고 엇갈리면 굴이 두개가 되니 후세를 위해 더욱 좋다는 말이 있다. 이 말 역시 필자가 미국대학 학부생 강의에서 인용했다가 당황한 적이 있다. 정확하게 설계를 한 뒤 굴을 파야지 도대체 왠 정신나간 소리냐는 게 당시 학부생들의 반응이었다. 필자는 아시아적인 가치가 서구의 합리주의나 개인주의보다 우월하거나 그것들이 가지는 모순을 커버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는 감히 주장하지는 못한다. 일본과 한국은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 있고 많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개발독재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이유로 최근 들어 하루가 다르게 평가절하 되는 동아시아적인 가치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적인 가치는 진정 저물어만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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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5월12일 20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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