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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어라, 그날이 다가온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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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3월05일 19시42분

작성자

  • 하지원
  • (사)에코맘코리아 대표·지구환경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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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후 산책 겸 동네를 걷다가 슈퍼를 들렸다. 싱싱해 보이는 가리비가 있어 밤참으로 온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데... 그 중 한 녀석이 끝까지 입을 열지 않는다. 달달이 살이오른 가리비를 맛나게 먹었지만 수북한 껍질에 비해 양은 아주 작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 안벌린 그 녀석을 억지로 열었다. 역시나 썩어 있었다.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이치를 거슬러서 굳게 닫은 껍질의 입을 억지로 벌려 가리비를 먹는다면 어찌 될까?  

 

우리는 줄 곧 그래왔다. 자연을 이용하기에 바빴다. 자연은 늘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대상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입을 벌리지 않는 녀석들이 나타난다. 문제가 있다고 신호를 준다. 그런대도 우리는 더 먹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문제는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우리에게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배탈나는 정도로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죽음을 가져온다거나 더 나아가 한 마을 또는 한 나라가 몽땅 사라질 수도 있다. 이미 지진, 태풍 등의 피해로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고,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나라를 잃은 투발루도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독을 가지고 있는 개구리는 아마존에 살고 있는 화살촉 독개구리이다.  아주 조그맣지만 엄청 화려한 색을 뽐낸다. 그래서 작지만 멀리 있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왜 그렇게 화려하게 티를 내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나는 독이 강하니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이다. 그래서 이 녀석보다 수십 배 큰 뱀도 조용히 지나간다. 절대 잡아먹지 않는다.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 원주민들은 이 개구리의 독을 이용해서 독화살을 만든다. 그들은 개구리는 살려두고 그 독만 취해서 독화살촉을 만든 뒤 사냥을 해서 먹이를 취했다. 서로가 윈윈(win-win)이다. 만약 그 개구리를 잡아먹었다면, 뱀도 원주민도 모두 루저(loser, 패자)가 된다. 똑똑한 현대인은 위너(winner, 승자)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일까? 루저가 되고 싶은 것일까?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순리에 따른다면 우리는 승자가 될 수 있다. 답을 아는 대도 안하고, 스스로 패자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는 무지한 것일까?   

  

생각해보니 자연은 늘 그랬다. 우리에게 늘 신호를 준다. 분명히 말해준다. 이젠 감당하기 힘들다고. 계속 지금처럼 살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감사하게도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안정된 지형에 위치하고 있어서 다른 나라처럼 해일도, 지진도, 토네이도도 거의 없는 편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보다 자연의 위험신호가 더디다. 그래서 우리는 기후변화의 위협에 대해 무뎌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한민국에도 신호가 오고 있다. 벌써 5년전(2011. 7. 27), 엄청난 폭우로 올림픽대로로 출근하던 차들이 차를 버리고 대피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또한 우면산의 산사태로 엄청난 양의 토사가 몇 분 안에 도심을 덮쳤다. 15명이 사망했고, 1,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재산피해가 있었다. 가장 살기 좋은 지역이라 생각했던 서초구민들은 내가 사는 곳이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으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가 더욱 컸고, 바로 다음달 서초구는 대통령공고 제231호로 특별재난지역이 되었다.    

 

요즘 대학입학시즌이다. 2년전 대학에 막 입학한 우리 자식들이 부픈 가슴을 안고 참여한 첫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폭설로 건물천정이 무너져서 10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부상을 입는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건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을 수 있으나 근본적인 이유는 백년동안 한번도 오지 않았던 가장 많은 눈이 한꺼번에 내렸다는 것이다. 백년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으므로 그 누구도 그 눈이 지붕을 무너트릴 만큼 강하리라 예측하지 못했으리라.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예측을 불허한다. 단 30분만에 1년간 내릴 눈이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기도 한다.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불과 얼마 전 제주는 32년 만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설로 도시가 마비되었다. 비행중단으로 9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난민이 되었고, 외국인들 사이에 안전하지 않은 위험한 도시로 낙인되었다. 갓난아이와 늙은 노모를 모시고 종이박스를 펴고 공항 바닥에서 잠을 자는 사람에서 부터 입사 최종 면접을 앞둔 사람, 그리고 거액의 수출 계약을 놓치게 된 사람 등 그 사흘 동안 말못 할 엄청난 사연들이 넘쳐났고, 3일간 528편의 제주비행기가 취소되었다.  

 

전 세계가 똑같다. 전지구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이다. 이번 발렌타인데이(2.14)는 40년만에 가장 추운 발렌타인데이였다. 미국 국립기상청(NWS)은 이번 한파에 대해 “위험할 뿐 아니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고, 보스톤은 체감온도가 영하 37도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요즘의 자연현상을 늘 최초를 갱신한다. 아주 위험한 현상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수라장이 되고 시민들이 울부짖는 모습들이 낯설지 않다.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니다. 2004년에 개봉된 기후재난 영화 ‘투모로우’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수년째 지구 곳곳에서 부분적으로 또는 여러 대륙을 거치며 나타나고 있다. 영화 ‘투모로우’의 홍보 카피를 기억하는가? ‘깨어있어라, 그날이 다가온다!’였다. 12년 전 그 영화의 주인공은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결국 지구전체가 빙하로 뒤덮이는 거대한 재앙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비웃음만 샀을 뿐이었다. 오늘의 우리는 어떠한가? 입을 다문 가리비를 계속 먹어야하는가? 독이 있다고 자태를 뽐내는 독화살촉 개구리를 잡아먹어 함께 죽는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일까?  

 

‘투모로우의 미래’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기후를 미치게 만드는 원인을 안다. ‘사람에 의한 온난화, 기후변화(IPCC 5차 보고서)’가 그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음에도 파국을 막을 기후행동을 국가정책과 우리생활의 우선순위 앞자리에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짜 문제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답을 알면서도 계속 거꾸로 가고 있는 기후변화정책이고, 우리자신이다. 막연히 문제없을 거라는 헛된 몽상과 게으른 실천이다. 분명한 것은 패자의 잘못된 길을 걷지 않는 것이다. 계속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다면 얼마 전 제주의 악몽은 몇 십 년 주기가 아니라 일상이 될 것이고, 나를 기억할 후손들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깨어있어라, 그날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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