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아 도는데’와 ‘테스형’이 위로한 대한민국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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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공연으로 국민적인 존재감을 알린 나훈아는 올해를 관통하는 인물이다. 추악한 정치권에 대한 뼈있는 한 말씀까지 더해져 과거 “상남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진사나” 즉, “진짜 사이다는 나훈아”라는 말까지 나왔다. 당시 발표된 노래 ‘테스형’은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표적인 노래는 <물레방아 도는데>가 아닐까. 전문가들은 광복 후 한국 트로트에서 딱 한 곡을 꼽는다면 ‘물레방아 도는데’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등 다른 노래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평론가들은 대체로 이 노래를 꼽는다.
1970년대 초 발표된 노래는 이농현상으로 서울에 몰려든 어린 노동자들의 노스탤지어를 형상화한 노래다. 두고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 슬픔이 잘 녹여져 있다. 노래는 그 시절 ‘공순이’나 ‘식모’로 불리던 수많은 이 땅의 어린 소녀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공순이’들은 서러웠다. 가난하니 못 배웠고, 못 배웠으니 무식했다. 대부분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은 ‘남존여비’의 유산 속에 남동생이나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자신의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떠난다. 속옷에다 작은 돈주머니를 달아 주던 어머니의 눈물을 뒤로 하고 서울로 떠밀려 간 것이다.
70년대 여공들 중에는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주로 오늘날 화려한 구로디지털단지로 탈바꿈한 구로공단에서 일했다. 국졸 혹은 국교 중퇴가 대부분. 영어로 된 라벨을 다는 것조차 한글도 모르는 소녀들에게 고역이었다. 때때로 M과 W를 혼동해 작업반장에게 따귀를 맞는 일도 허다했다고 한다. 그런 그들이 천리타향에서 듣고 부르던 망향의 노래는 지금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그래서 개발 시대 한국인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게 된다.
‘물레방아 도는데’는 그 당시 라이벌격인 남진의 ‘님과 함께’와는 여러 가지로 대조적이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단 둘이 살고 싶다’는 ‘님과 함께’는 고향을 떠나온 어린 노동자들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과 이상향을 노래했다. 불가능할지 모르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 틀림없는 미래를 노래를 통해 상상하곤 스스로를 위무했을 것이다.
‘물레방아 도는데’는 슬프고 비장감이 살아 숨 쉬는 노래다. 그 시절의 슬픔, 쓰라림 등이 구석구석에 꾹꾹 숨겨져 있다. 노래에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패티 김의 ‘서울의 찬가’와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 “종이 울리고 꽃이 피고 새들의 노래가 즐거운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 노래는 그 시절의 상황으로 보자면 가식적인 노래일 뿐이다. 명절날 서울에서 한 아름 선물을 안고 내려온 누나, 여동생의 얼굴은 하얘져 있다. 아름다운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이 아니다. 졸음을 바늘로 찔러가며 공장의 창백한 형광등 불빛아래 밤샘 근무덕분에 몰라보게 하얘졌던 것이다.
이는 곧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여도’ 오로지 미싱을 돌려야 했던 ‘노찾사’의 ‘사계’ 풍경 그대로다. 사실 산업화의 진정한 공은 그 시절 공화국을 담당했던 정치인도, 경제관료도, 민주화 운동가들도 아니다. 인간에게 배고픔만큼 잊혀 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한다. 지긋지긋한 배고픔과 대물림 가난이 싫어 서울로 떠나 공순이 공돌이란 이름아래 사라져간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공이 있지 않을까.
이 같은 이촌향도 정서를 담은 노래는 역시 나훈아가 부른 ‘고향역’으로 정점을 찍게 된다. ‘물레방아 도는데’가 떠난 이의 노스탤지어라면 ‘코스모스 피어있고 이쁜이 꽃분이 모두 나와 반겨주는 고향역’은 어렵게 찾은 고향에 대한 짧은 순간의 환희를 노래한 것이다. ‘흰머리 휘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얼싸안고 바라보았네. 멀어진 나의 고향역‘이란 노랫말은 고향을 찾았지만 곧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산업화시대 한국인들의 숙명을 암시하고 있다.
올 한해, 나훈아의 등장이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그 옛날 ‘물레방아 도는데‘가 산업화 시대의 슬픔을 에둘러 표현했다면 ’테스형‘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2020년 정치권에 대한 하나의 죽비쯤 된다. 그래서 보통 한국인들은 ‘물레방아 도는데’를 들으며 아득한 시절, 가난했던 삶을 추억하게 되고 ‘테스형’을 들으며 추악한 정권에 피폐해진 스스로를 위로받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아쉬움과 미련이 많은 올해도 간다. 아, 이렇게 한해가 저무는구나. 탄식이 절로 나오는 2020년 세모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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