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갈등 심화와 한국의 포지셔닝(positioning)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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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세종논평 No. 2020-34] (2020.12.21.)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한국의 안보이익과 경제이익의 충돌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증가하는 이유는 양국의 무역 수지 불균형,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과 세계에 대한 영향력 증대, 양국의 국가 통치 이데올로기의 차이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많은 갈등 중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타협 또는 해결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과거 일본과 독일의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 문제를 미국은 플라자 합의 등 다양한 압박과 협상을 통해 해결한 바 있다.
현재 미국은 저가의 생활용품을 대량으로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미국처럼 큰 시장에 저렴하면서 표준화된 제품을 단기간에 공급할 여력을 가진 국가는 중국이 거의 유일하다. 미국이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는 미국민이 소비를 줄이고, 부수적으로 중국이 일정 수준의 미국산 상품 수입을 의무화하는 정책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현재로서는 시행이 어렵다. 장기적으로는 양국의 무역이 수직분업에서 수평분업으로 전환하는 정책이 대안일 수는 있다. 미국에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중국의 비공식적 첨단기술 탈취와 같은 불법 경제행위나 중국 정부의 불공평한 산업정책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과 중국의 경제협력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미·중 갈등의 문제는 중국의 국력이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정치, 외교, 군사 부문 등에서 세계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사상적 우위를 점하려는 중국의 자신감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미국 내에서는 미국의 세계 영향력 하락에 대한 많은 염려와 함께 중국공산당 통치에 대한 반감도 증대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규제도 중국공산당과 국민을 분리해서 적용하기도 한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미국이 자국의 갈등 문제를 중국에 전가하여 압박한다는 논리도 등장하고 있다.
이런 미·중 갈등의 내면에는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민주주의 가치와 중국의 권위주의 가치의 충돌이 존재한다. 한국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해 큰 폭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한미 양국은 군사동맹 관계를 맺고 있고, 정치체제와 경제체제가 동질성을 지니고 있어 양국 간 갈등은 매우 작다. 이 차이는 한국과 미국은 국가 정체성으로서의 민주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의 이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 사태 이후 한국에서는 반중 인식이 확산되었다. 사드 사태에 대해 대부분 한국민은 사드 배치의 주목적은 북한을 견제하는 것이며, 중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려는 조치라고는 전혀 인식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증가하면서, 중국은 사드 문제를 미국과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한국에 일종의 징벌적 부담을 요구하는 형태로 활용하였다. 성주 부지를 제공한 롯데마트에 대한 압박이 대표적 사례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북한의 핵 개발과 군사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시도된 한미 군사적 조치가 오히려 한국과 중국의 군사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의 충돌로 전개되었다. 현재 사드 문제가 한중 양국이 서로 양해하는 선에서 균형을 찾은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최근 미·중 갈등 폭이 커지면서 향후 한중 간에 한미 군사협력과 관련하여 긴장이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런 사안에 대해 대부분 한국민은 오랜 한미 동맹이 한국 안보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지만, 직접 중국과 사업을 하는 기업이나 상공인들의 경우에는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기도 한다. 동시에 한국 내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특히 중국민 전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중국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최적 포지셔닝은?
미국과 전방위적 협력을 하는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사이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안보가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의 경제적 이득은 상당히 유동적이면서 불안하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은 확률이 낮지만, 발생한다면 결과는 치명적이다. 한미군사 합동훈련은 한반도 전쟁 방지를 위해, 전적으로 북한 때문에 실시한다는 사실을 주변 국가들에 주지시켜야 한다.
반면 한중 경제이익은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만, 이익이 대폭 감소하더라도 전쟁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한중 경제협력은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어, 한중 경제 관계가 악화되면, 중국도 큰 손실을 보게 된다. 즉, 한중 경제협력은 제로섬 게임이 될 수가 없다. 오히려, 한국과 중국은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가입으로 한국과 중국의 경제협력은 계속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포지셔닝은 분명해진다.
한국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경제문제는 대안이 가능하지만, 안보문제는 대안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한미 경제협력 규모도 한중 경제협력 규모보다는 작지만 상당한 수준이다.
한미 군사협력 강화는 단순히 한미 군사동맹에 의한 연합군사력 강화가 아니라, 같은 이념을 공유하는 국가와의 친밀한 관계의 강화이다. 한국으로서는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와 국가안보의 가치를 훼손, 포기할 수는 없다. 안보가 확립되지 않은 경제협력은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다. 안보가 굳건할 때 경제적 이익도 증가하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의 경제협력은 대부분 정경분리의 원칙에서 진행됐고, 실제 양국은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미국은 인도, 태평양 지역 안보를 강조하면서 강력한 대중 견제와 개입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중국을 의식하여 QUAD PLUS 등 역내 안보 협력에 대한 한국의 소극적 태도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중국은 지금까지 북한의 비핵화를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해왔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제고되어 한반도에서 긴급사태 발생 확률이 낮아질 수는 있겠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한중관계는 경제적 이득과 안보적 이득 모두를 실현할 수도 있겠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데에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로 힘든 북한에 식량도 지원하고, 항미원조 70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하는 등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외세 배격과 자주를 주장하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다. 일례로 중국은 북한이 일대일로에 참여하기를 원하지만, 북한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염려, 열악한 인프라시설 등 정치·경제적으로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현실이다. 현시점에서 한국은 미·중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하여 북한의 핵 문제 해결방법을 논의하는데 관심이 높다. 거의 방치 수준에 있는 북한 비핵화 해결을 위해, 한국으로서는 한·미·중 3자 대화를 통해 북한 핵 해결방법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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