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제품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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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가 무엇이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역사상 가장 더운 6월, 7월, 8월, 9월의 기록에 어울리게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확률이 높다. 구글코리아가 밝힌 2022년 사람들이 전년대비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는 예상과 달리 ‘기후변화’였다. “환경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라고 구글코리아는 설명했는데 이 관심이 올해에도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예년보다 강력한 폭우, 태풍, 산불 등을 경험한 국민들이 그 원인이 기후변화라는 것을 체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상기후로 인한 기후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하는 가운데 관련 정보에 대한 요구도 증가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작년 8월 115년만에 중부지방을 침수시킨 기록적 폭우에 이어 올해 7월 충북에서도 산사태 및 제방 붕괴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태풍의 경우도 작년 힌남노 및 난마돌에 이어 올해에도 여러 태풍들이 한반도를 강타했는데, 발달 초기 예상과 달리 가까이 접근하면서 초강력급으로 예보를 수정했거나 태풍의 경로를 임박해서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발달 초기 이후 태풍이 세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것은 해수면 온도인데, 태풍의 경로상 해수면 온도가 예년 대비 높았다. 과거와 달리 10월은 물론 11월에도 태풍이 올 수 있다고 예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후변화가 태풍을 과거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고, 앞으로 더 강하게 발달시킬 것이라는 과학적 연구는 많다. 2021년 10월 한국대기환경학회에서 발표한 ‘관측자료에 기반한 한반도 영향 태풍의 기상요소 극값 변화’ 연구에 따르면, 2020년까지 30년 간격으로 과거보다 풍속 및 강수량은 모두 증가했다고 한다. 또한, 2019년 미국 기후저널에 게재된 ‘북서태평양의 미래 태풍 활동 변화’ 연구에 따르면, 지금과 유사한 온실가스 배출을 지속할 경우, 약 30년 후에는 한중일 등 동아시아 인근으로 향하는 태풍의 수가 17% 증가하고 그 에너지도 45.9%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점차 심화되는 기후변화를 사람들이 체감하면서, 폭우 및 태풍을 포함한 다양한 기후위기 관련 기업에 대한 요구도 과거 대비 확연히 강해졌다. MZ세대 소비자의 등장이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전체 인구의 1/3을 이미 넘은 MZ세대는 강력한 태풍은 물론 폭우 및 산불 등 심화되는 이상기후를 이전 세대보다 자주 목격하며 자라면서 비교적 기후위기에 민감하다. 더욱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결된 커뮤니티에서 피해를 간접 경험하며 끔찍한 피해의 정도를 가늠하게 되면서 위기감도 커졌다. 그러자 그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은 도대체 어디서 발생하는 것이고 이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빈번하게 사용하는 ‘제품’의 친환경성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게 되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MZ세대의 소비자 지출은 2030년까지 32조달러(4경40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미래 소비를 주도할 소비자의 제품 선호도는 기업에게는 변화의 시그널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면, 자동차를 사거나 탈 때 이 제품과 관련된 온실가스 배출량을 파악한 후 되도록 배출을 최소화하는 자동차나 교통수단을 선택함으로써, 기후위기 대응을 부분적이라도 실천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작년 9월 한국소비자원은 구매(계획 포함) 경험이 있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공개해 이를 뒷받침한다.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고 구매하는데 소비자원의 환경성 평가정보가 도움됐다고 답한 737명 중에서 친환경 정보를 확인하고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로 '환경보호를 실천할 수 있어서'라는 응답이 588명(79.8%)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한, 같은 달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설무조사 결과에 따르면, ESG(환경사회지배주고) 중 환경이 기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답한 사람 중 60%는 기업의 친환경 기술·제품 개발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고 밝혀 탄소저감 및 재활용이라고 답한 20%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친환경 기업에 대한 일빈인의 인식 기준으로 ‘제품’이 단연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소비자의 행동은 기업에 대해 친환경(저탄소) 제품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도록 요구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제품에 필요한 부품이나 원료가 얼마나 친환경적인지까지 체크하거나,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얼마나 친환경적일지 체크하는 등 제품의 친환경성을 생애주기에 걸쳐 요구하기도 한다. 자동차를 예를 들면, (자동차 제조 과정은 물론이고 자동차 회사가 구매한) 철판이 얼마나 친환경적인지, 그리고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를 판매한 후) 소비자가 자동차를 타는 동안 얼마나 친환경적일지도 체크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이 부품이나 원료를 구매해 단순 조립 및 가공을 통해 제품을 만들 경우, 제조 과정에서의 온실가스 배출 보다 부품 및 원료 생산이나 소비 단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비중이 더 크기 때문에 제품 생애주기에 걸쳐 친환경성을(온실가스를 얼마나 덜 배출하는지) 체크하지 않으면 의미가 적기 때문이다.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가 이미 2020년에 2039년까지 전 제품에 대하여 탄소배출 제로화(넷제로)를 선언했고, 2021년 3월에 판매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탄소발자국을 소비자와 공유하는 기후전환행동계획을 발표한 이유다. 글로벌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는 한 발 더 나아가, 2011년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에 맞춰 뉴욕타임스(NYT)에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를 냈다. 연 중 가장 잘 팔릴 날에 비싼 광고 비용을 내가며 유명 매체에 자사 제품을 구매하지 말라는 내용을 선전한 의도는 물건 구매시 신중하게 생각하고 되도록 적게 소비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이었다.
파타고니아는 수익보다 환경을 우선시하는 회사로 “지구는 목적이며 사업은 수단”이라는 사명을 갖고 있다. 작년 9월 창업주인 이본 쉬나드 회장 일가가 30억달러 상당의 소유 지분 100%를 기후위기 대응 단체에 양도했다고 밝혔고, 이사회에서 “우리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다”라는 언급도 나왔다. 이런 메시지는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MZ세대 소비자에게 빠르고 깊게 전달되는 모양새다. 유니레버의 경우 폴 폴먼 전임 CEO 10년 재임기간 동안 매출과 이익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주가도 200% 이상 올랐고, 2015년부터 타깃 고객층을 4050에서 2035로 변경한 파타고니아코리아의 매출은 2018년부터 연평균 3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기후위기 대응 관련 기업에 대한 핵심 이해관계자의 요구가 변화하고 있다면 우리 기업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이라면 대부분 공장 배출을 떠올렸지만 이제는 제품 배출을 고민해야 한다. 제품의 생애주기적 배출을 감축하면 공장 배출의 감축은 따라오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까지는 온실가스 감축을 잘 하면 비용을 절약하고 못 하면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앞으로는 온실가스 감축을 잘 하면 매출이 늘고 못하면 매출이 줄어드는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비록 스마트폰이 바꿀 세상을 미리 예측하거나 스마트폰을 발명하지는 못했지만, 10년 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마트폰을 파는 기업은 우리나라 기업이다. 10년 후 저탄소제품이 바꿀 세상이 잘 그려지지 않더라도, 아픈 지구에 더 오래 살아야 하는 MZ세대 소비자의 요구는 더 거세질 것은 자명하기에, 기업은 기후위기 대응에 제품으로 승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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