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경쟁 시대 한중일 협력의 의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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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 여부는 2023년 하반기 한국 외교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다. 아세안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 후에 개최된지난 9월 12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중일 정상회의의 개최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한국 정부가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추진 중이라는 관측은 올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으나, 대통령의 공식적 입장 표명으로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는 한국 정부의 외교 과제로 명확해졌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의 올해 의장국인 한국의 개최 추진 의사에 대해 일본과 중국이 모두 부정적이지 않은 가운데,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에 대해 많은 관심이 제기되고 있다. 25년여의 역사를 지니는 한중일 정상회의의 통시적 성격 분석, 2023년 한중일 정상회의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동아시아 지역협력과 한중일 협력의 진전
한중일 3국 협력을 상징하는 한중일 정상회의는 1999년 시작되었다. 1999년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3차 ASEAN+3 정상회의를 계기로 하여 조찬회동을 실시하였고, 이때부터 한중일 정상회의는 시작되었다. 한중일 정상회의가 ASEAN+3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한중일 협력이 동아시아 지역협력과 함께 진전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중심 기제는 ASEAN+3이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한 지역적 차원의 대응 필요성 공감대 속에서 ASEAN 정상회의에 한국, 중국, 일본의 정상이 초대되며 ASEAN+3 정상회의는 시작되었다. ASEAN+3 정상회의는 1999년 마닐라 제2차 모임에서 공식적으로 제도화되고, 동아시아 지역협력 제도화의 중심이 되었다. 1990년대 지역협력의 틀이었던 APEC을 대체하는 새로운 틀로서 동아시아지역협력 나아가 동아시아 지역통합의 제도 기제로 기대되었다. ASEAN+3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작된 한중일 정상회의는 ASEAN+3 정상회의의 하위 모임으로 시작된 것이다.
1999년 조찬 모임 이후 ASEAN+3 정상회의를 계기로 하는 한중일 정상회동 정례화가 2000년 합의되고 2002년에는 3국 정상회의 공식화에 합의하였다. 2003년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3국 협력 증진에 관한 공동선언’은 3국간 최초의 3국 협력에 관한 공동문서로서, 무역·투자, 환경, 과학기술, 국제문제 등 14개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에 대한 합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후속조치 이행을 위한 3자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제도화의 길에 들어섰지만 한중일 정상회의는 ASEAN+3 정상회의를 계기로 하는 정상회의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한중일 3국에게 한중일 정상회의의 전략적 접근은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대한 정책 지향과 차별화되어 있지 않았다.
한중일 3국에게 2000년대 초반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포섭적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대한 전략적 선호와 한중일 3국협력에 대한 선호는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대한 역내 국가들의 관심은 빨리 사그라들었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대표적 성과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의 다자화는 중일 양국의 주도권 경쟁 속에서 쉽사리 진전하지 못했다. 무역자유화 지역협정의 대상 범위에 대한 중일 간의 대립 구도 속에서 무역자유화지역다자화 논의는 공전하였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제도화가 진전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한중일 정상회의의 독자적 제도화가 200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는 점은 한중일 정상회의가 동아시아 지역협력과 별개의 의미로 발전하였음을 암시한다.
2008년 11월 후쿠오카에서 개최된 한중일 정상회의는 ASEAN+3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렸던 기존의 한중일 정상회의와 차별화된다. 2007년 싱가포르에서 ASEAN+3 정상회의와 별개로 3국 정상이 만나기로 한 약속이 합의되었고, 2008년에 실현된 것이다. 2008년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한중일 동반자 관계를 위한 공동성명’이 채택되었고, 2009년 베이징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한중일협력 10주년 기념 공동성명’이 채택되었다. 2010년 정상회담에서 서명한 ‘3국 협력 사무국 설립협정’이 2011년 5월 발효되어, 2011년 3국협력 사무국이 출범하였다. 3국협력사무국은 한중일 협력의 제도화 진전이 2000년대 후반 이후에 꾸준히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ASEAN+3와는 별개로 한중일 협력이 제도화의 길을 들어서는 때가 지리적 근접성에 입각한 포괄적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대한 관심이 저물고 선별적 소다자주의 붐이 시작되던 시점이라는 점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TPP, QUAD 등과 같은 2010년대 미중경쟁 시대에 강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소다자협력 틀은 1990년대 후반 이후의 포괄적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정체 및 부진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대한 역내 핵심 국가들(특히 일본)의 전략적 선호가 떨어지는 가운데, 한중일 3국 협력은 다른 차원의 전략적 의미를 지니고 발전해 가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2000년 후반은 중일 간의 배타적 지역질서 경쟁의 기점이라고 볼 수 있으며, 미국을 대리하는 일본이 중국 주도성이 갈수록 강화되는 포괄적 동아시아 지역협력 기제에서 이탈하는 흐름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던 시기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00년대 후반 이후의 한중일 정상회의는 전략적 고려와는 무관한 의례적 관행의 지속으로 볼 수도 있으나, 배타적 소다자주의 경쟁속에서 배타성을 헷징해 주는 기능을 새롭게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 네 차례 중단
한중일 3국 협력은 정상회의 레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관급 및 그 하위 레벨의 정부간 교류와 1.5 트랙까지 고려하면, 한중일 3국 협력은 중단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한중일 정상회의가 예정대로 개최되지 않는 것은 한중일 협력에 장애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매년 개최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한중일 정상회의가 개최되지 않았던 사례는 크게 보면 네 차례로 구별된다. 첫번째는 2005년이다.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지속 문제로 인해 한중일 정상회담은 무산되었다. 두 번째는 2012년과 2015년 정상회의 사이의 2013년과 2014년의 미개최였다. 2012년 5월 베이징에서의 한중일 정상회담 이후 그해 여름의 한일간 그리고 중일간의 영토 갈등이 정상회의 미개최 이유이다. 또한 2015년 11월에 서울에서 3년만에 정상회의가 개최되었으나, 2018년 5월 도쿄에서 재개될 때까지 다시 3년간의 공백이 존재한다. 2015년과 2018년 사이의 세 번째 중단도 중일간 과거사 문제, 센키쿠/댜오위다오 분쟁 등의 갈등 사안이 그 이유가 된다. 2005년, 2013-2014년, 2016-2017년 세 차례모두 역사인식 문제와 영토 문제를 그 기본적 원인으로 한다.
네 번째는 2018년과 2019년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의 중단 상태이다. 2020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담은 아직 재개되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정상회의 중단의 원인이긴 하나, 중단의 장기 지속을 모두 설명해주진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중단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본 방문 및 한국 방문이 아직 다시 실현되지 않은 것과 한중일 정상회의의 재개가 되지 않는 것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와 맞물린 미중경쟁의 고조는 지역질서의 진영 대결 구도를 강화하였고, 한중일 협력은 미중경쟁의 강한 영향력 하에 있는 상태이다. 한중일 정상회의 중단의 과거 사례가 해당 국가들 사이의 역사 및 영토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면, 지금 현재 한중일 정상회의의 중단 상태와 재개 문제는 미중경쟁과 직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네 번째 중단 시기에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강한 반발도 한중일 정상회의가 작동하지 않게 만든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인식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증폭되던 2018년과 2019년에 한중일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던 것은 역사 문제가 한중일 정상회의 미재개의 주된 원인으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국립외교원 조양현 교수가 분석한 바 있듯이 2018년과 2019년 한중일 정상회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동아시아 3국의 집단적 헤징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2021년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이 지속되면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방기되던 동맹 협력 강화는 재강조되는 가운데 지난 3년여 동안 한미일 협력 강화가 동북아 지역질서의 중심적 동학이었으며, 이에 대한 중국의 대립적 자세 속에서 한중일 협력의 계기가 잘 마련되지 않았다.
미중관계와 한중일 협력
2023년 현 시점에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3국 모두에서 긍정적으로 논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의 의미는 2018-2019년의 한중일 정상회의 때와 기본적으로 상이하다. 2018-2019년의 한중일 정상회의는 미국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3국의 집단적 헷징이었다면, 2023년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한 한중일 3국의 수용적 자세는 미중간의 대화 가능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번달(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될 APEC 정상회담에서 개최가 논의 중인 바이든-시진핑 정상회담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접근은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한 중국의 우호적 태도의 바탕을 이룬다. 또한 미중 대화의 재개는 한국과 일본에게 중국과의 관계를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고이 과정에서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가 이벤트로 발견되어 부각되고 있다.
한중일 협력의 전망은 미중관계의 진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중 양국 간의 단기적 화해무드 속에서 한중일 협력의 재개가 모색되고 있으며, 한국 입장에서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3년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추진은 그러한 차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장기적 차원의 한국 국가 전략에서 한중일 협력을 미중관계 개선의 영향 하에 남겨두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미중경쟁 속에서 양국의 커뮤니케이션을 중개할 수 있는 무대로 한중일 협력 플랫폼을 활용하겠다는 도전적 전략 구상도 고민해 볼 수 있다. 미중간의 선택이나 전략적 모호성 논의를 넘어 미중경쟁 시대의 한국의 적극적 외교 구상에서 한중일 협력이 가지는 전략적 의미에 대한 숙고가 더욱 필요해 보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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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료는 세종연구소가 발간한 [정세와 정책 2023 11월호 제57호(통권 368호)]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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