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주주의 위기와 대외정책의 딜레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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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과 민주주의
최근 인태지역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바이든 정부들어 정상급 안보 협의체로 모양을 갖춘 쿼드(QUAD)와 함께 바이든 정부가 구상해 출범시킨 오커스(AUKSUS)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 주도로 개최된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도 바이든 정부의 주요한 대외정책 성과다. 이 회의에서 한미일은 북한 미사일 정보 실시간 공유, 3국 합동군사훈련 연례화 등에 합의하면서 3국 안보협력을 한층 더 강화하기로 했다.바이든 정부는 이러한 안보연대가 필요한 이유가 법과 규칙에 기반한 평화, 번영, 인권을 구현하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안보를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 이념과 가치의 문제와 연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안보 협의체의 주요 안건이 미국이 이끄는‘민주주의 정상회담(Summi tfor Democracy)’의 핵심 건과큰 틀에서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도 이러한 평가는 설득력이 있다. 인태지역 밖에서도 안보를 민주주의 핵심 가치와 연계해 이해하는 미국의 모습이 발견된다. 바이든 정부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1960년대 이후 해외지원 규모로는 최대 수준인 미국 GDP의 0.33%(2022년 기준)를 지원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대규모 지원에 대해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은 ‘민주주의를 구하는 것(We will save Democracy)’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 사회의 갈등과 불평등
그런데 정작 바이든 정부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구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미 국민의 안전, 번영 그리고 인권을 둘러싼 문제가 심각하다. 먼저 2023년 한 해 동안 총기사고가 크게 늘었다. Gun Violence Archive의 발표에 따르면 2023년을 3달 이상 남겨둔 9월 19일을 기준으로 올 한 해 4명 이상이 사망한 총기사고, 즉 매스 슈팅(massshooting)이 벌써 501건을 넘어섰다. 이는 2022년 한 해 동안 발생한 400건에 비해 이미 100건 이상이 많은 수준이다.
국내 안보, 즉 치안에 대한 우려가 큰 이유다. 게다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소외계층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총기사고는 미국 사회의 양극화와 불평등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 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안이다. 불법 이민자를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이민정책을 비판하며 출범한 바이든 정부지만 올 10월 초에 트럼프 정부 동안 확보된 예산으로 멕시코와 미국 사이의 국경에 추가 장벽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인도적 차원에서 추방을 미루던 베네수엘라 불법 이민자도 추방하기로 했다.
이렇게 민주당의 대표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포용적 이민정책을 폐기하자 민주당 내에서조차 비인권적 조치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실업률이 안정되고 국민총생산(GDP)이 증가하고 있다는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체감경기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으면서 경제 불평등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말, 바이든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전미 자동차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 시위에 참여해 기업과 경영진이 자신들의 배만 채운다고 비난한 것은 미국 사회가 처한 이러한 경제 불평등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물론 민주주의에 반하는 폭력, 소수인종 및 이민자 차별, 그리고 경제불평등은 미국의 오랜 문제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이러한 문제를 더욱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이유는 다름에 대한 관용 그리고 타협을 통한 의사결정이라는 미국정치의 전통이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민주주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정의의 공통분모를 모아 보면 민주주의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정치지도자를 선출하고, 폭력의 배제 속에서 언론,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 법치, 관용, 인권 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정치체제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미국의 대내외정책의 핵심 가치이자 목표로 추구되어 왔다. 트럼프 정부 시절 미국의 민주주의가 크게 훼손되었다는 비판의식에서 출발한 바이든 정부도 민주주의 회복을 대내외정책의 핵심 가치로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다. 이러한 평가는 1월과 10월 두 차례 이루어진 하원의장 선출, 5월의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적용 협상, 3월과 8월에 있었던 1.6 미 의사당 난입 및 성추문 관련 트럼프 기소, 10월의 2024년 예산안과 관련한 셧다운 위기와 하원의장 해임 과정에서 미국이 보인 모습으로 뒷받침된다. 입법부 수장의 선출 과정은 양당의 힘겨루기로 인해 표결과 부결을 반복하면서 의정을 마비시켰다. 나라 살림인 국가 부채와 예산안 협상 과정은 정부와 상대당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거 결과가 부정되었는데도 관련한 사법부의 심판은 정쟁화되었다. 그 사이 타협, 관용, 신뢰라는민주주의 작동원리는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다.
특히 10월 3월 미 하원의장 케빈 매카시(KevinMcCarthy)의 해임은 극단적인 이념 편향성으로 인해 타협과 신뢰가 상실된 미국 민주주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기본적으로 선출직에 있는 사람이 정치적, 법적, 윤리적 큰 과오를 범했을 때 적법한 절차에 따른 해임이나 탄핵 등을 통해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민주주의가 온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의회 역사상 초유의 사태인 이번 미 하원의장의 해임은 이러한 경우라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번 해임은 의회 내 프리덤 코커스(Freedom Caucus)라 불리는 극우 성향의 공화당 소수파가 예산안에 자신들의 견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상대당 의원들과 합세해 벌주기식으로 자당 출신의 하원의장을 ‘몰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하원의장 ‘축출’은 협의를 통한 다수의견 존중 또는 중도 수렴이라는 미국정치의 전통에 균열을 가져왔다. 또한 이번 해임은 정치적 승리만을 추구하는 정치인이 민주주의 핵심 가치인 신뢰를 어떻게 훼손하는지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민주당은 타협을 통해 그들의 견해를 수렴해준 매카시 하원의장을 해임하는 데 동참함으로써 정치적 합의를 위한 양보가 ‘손해’라는 인식을 강화했다. 이러한 민주주의 위기는 국민의 다양한 정책적 요구와 선호(preference)를 모아 정책화해야 하는 정당의 고유 기능 약화가 그 큰 원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당 기능 약화 이면에는 이념에 경도된 정치인들이 선거의 승리를 위해 지지가 확고한 강경파 유권자에만 집중하는 편향된 동원((mobilization)행태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정당 정치인이 이념에 경도되어 균열하는 사이 미국민들은 ‘감정’에 기반해 양극화되고 있어 더욱 우려스럽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Carnegie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이 최근 발표한 미국 양극화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민은 정치인들에 비해 이념적 양극화가 심하지 않다. 하지만 감정적 양극화의 골은 더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념에 기반한 정책선호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반대 진영의 사람과 서로 매우 다르다고 느끼며 서로에 대한 반감을 느끼고 있다. 한마디로 다른 진영의 사람이 그냥 싫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적 반감은 다른 진영과 거기에 속한 사람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키우고 결과적으로 합리적 토론, 이성적 비판 그리고 양보를 통한 협의를 어렵게 한다. 이념이 감정이 되면서 미국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민주주의 위기와 대외정책의 딜레마
이러한 민주주의 위기는 국제무대에서 미국이 민주주의에 기반한 정책을 추구하는 데 3가지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첫째 미국이 정작 민주주의 가치를 전파해야 하는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국가와의 관계에서 인권, 자유 등 민주주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지 못하는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이러한 소극적인 자세에는 국익을 고려한 전략적 이유도 있다, 즉 권위주의 국가들이 미국이 민주주의를 구실로 내정간섭을 한다고 비판하면서 관계 전반을 악화시키는 것에 대해 미국이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민주주의 리더로서 미국의 위상이 약화하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한 예로 정치 인사 구금, 소수 인종 탄압과 같은 인권침해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는 중국이 미국의 민주주의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가짜 민주주의를 버리라는 비난을 하며 미국의 인종차별, 총기사고, 경제 양극화를 지적한 것이다. 국내 민주주의 위기로 인해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관련 정책의 신뢰와 실효성이 약화 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딜레마는 미국이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할수록 국제무대에서도 이념과 가치의 양극화가 심화하는 것이다. 미국은 권위주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민주주의 연대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민주주의를 강조할수록 국제무대에서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 양상은 뚜렷해지고 있다. 다시 말해 국제사회에서 권위주의가 약화하기보다 서로 다른 진영 간 타협과 양보가 구조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세 번째 딜레마는 국제무대에서 미국이 민주주의가 상정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를 일관되게 추진하지 못하면서 관련한 국내 갈등이 심화하는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 충돌은 미국의 이러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워싱턴의 초당적인 이스라엘 지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응을 이스라엘 감싸기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젊은 층과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이들은 미국이 특정국을 지지할 것이 아니라 평화, 인권, 종교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전쟁 지원을 통한 평화는 민주주의 가치와 모순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 지원 규모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진영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이 직면한 이러한 딜레마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곧 시작될 2024년 미 대선 경선이 진영 간 대립과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면에서 더욱 그렇다. 현재 연방의회 상하원 모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의석차가 크지 않다. 내년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양당의 인물들에 대한 지지도도 큰 차이가 없다. 미국의 정치 여론조사 웹사이트 파이브서티에잇(Five Thirtyeight)의 10월 25일자 발표에 따르면 민주당 유력후보인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approval ratings)이 40.4%이다. 공화당 유력후보 트럼프의 선호도(favorability)도 거의 같은 40.5%이다. 퓨 리서치(Pew Research) 조사에서도 미국민은 현재 거론되는 양당 대선후보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승리를 위해 양당과 대선 후보자들이 균열을 과장해 확실한 표심을 공략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타협, 양보, 신뢰의 미국 정치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결과적으로 미중 경쟁이라는 국제질서의 구조적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미국이 직면한 민주주의에 기반한 대외정책의 딜레마도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딜레마는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글로벌 중추 국가를 국정 목표로 하는 한국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한국 역시 최근 이념과 지지 정당을 중심으로 한 국민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구체적으로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국내적으로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동시에 가치 외교는 유연하게 적용해야 함을 보여준다. 민주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글로벌 강국인 미국도 대외정책에서 가치외교로 인한 국내외 딜레마로 고전하고있다. 국제무대에서 영향력 있는 선진국으로 부상을 시작한 한국은 스스로 외교적 운신의 폭이 좁아지지 않도록 가치 외교에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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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료는 세종연구소가 발간한 [정세와 정책 2023 11월호 제57호(통권 368호)]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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