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60) 어디에나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뽕나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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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우리 주변 가까운 어디에서나 자라는 너무나 흔한 나무인데도 거의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서 뽕나무는 조금 서운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옛날에는 이 나무만큼 우리 생활에 가까이 다가와 있었던 나무가 있었을까 싶은 데 말입니다. 그래서 전해 오는 나무들을 노래한 정다운 동요 속에도 단골 손님으로 들어가지요. “오자마자 가래나무, 덜덜 떠는 사시나무, 하느님께 비자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
우선 뽕나무는 누에가 그 잎을 먹고 자라서 오랜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장 고급의 천연섬유로 손꼽히고 있는 비단 즉 실크를 만들어내는 원료로 인식되어 온 나무이기에 사람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 이 나무들이 재배되어 왔던 것이지요. 제조업의 수출이 크게 늘기 시작한 1960년대와 1970년대에도 우리나라 주요 수출제품 중의 하나로서 생사와 견사·견직물 등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을 정도였던 것을 기억해 보면 뽕나무는 우리 가까운 곳에서 대량으로 재배되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래서 누에를 치던 지역으로서 이름을 남긴 잠실, 잠원동 등의 수변 산책로를 거닐면서 (석촌호수, 올림픽공원, 반포천 등이 대표적인 수변 산책로이지요.) 그 옛날 뽕나무의 후예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뽕나무는 번식력도 제법 강해서 사람들이 굳이 다시 심지 않아도 서울과 수도권 도시들을 흐르는 천을 따라 곳곳에서 어린 개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필자가 거주하는 분당을 가로지르는 탄천이나 서울 도심을 흐르는 청계천 주변 산책로에서도 수많은 개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뽕나무는 그 열매 오디 때문에 우리 생활에 참 가까웠던 나무였지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거의 모두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산에서 잔뜩 따먹고 입 안팎이 꺼멓게 되어서 돌아다녔던 기억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디는 곧잘 시와 소설에서도 등장하는 소재였지요. 지금도 조금 잘 갖춘 큰 슈퍼마켓 과일 전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열매이지만 이 열매가 우리 산책로에서 만났던 그 뽕나무의 열매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뽕나무라는 나무와 살마들의 일상생활과 연결되었던 고리들이 자꾸만 멀어지는 현상 자체가, 현대인의 삶이 자연과 멀어지고, 그에 따라 나무나 식물에 대한 현대인의 이해도가 극히 낮아지는 현상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뽕나무는 잎을 늦봄 즉, 5월이 되어야 겨우 내미는 조금 게으른 나무입니다. (실은 추운 북쪽에는 잘 적응을 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곧바로 5월에 꽃을 피우고 6월에 열매를 익혀가는 정도의 속성 삶을 보냅니다. 그런데,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눈치채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기실 오디는 이즈음에는 빨간색 정도로 익었다가 조금 더 지나면 까만색으로 익어가는데 5월에 꽃이라고 불러야 하는 초록색의 꽃 모양 그대로 익어가므로 언제까지 꽃이라고 불러야 하고 언제부터 열매라 불러야 할지 실로 난감한 나무입니다.
수목 전문가들에 의하면 뽕나무 중에서 예로부터 우리 자연 속에서 자라던 나무는 산뽕나무라 불러야 하고, 양잠을 위해 들여온 뽕나무는 저 멀리 그리스로부터 유럽과 중국 등을 거쳐 들어왔으므로 구분해야 한다고 합니다만, 국립수목원장을 지낸 이유미 선생이 설명하듯이 두 나무의 차이가 그다지 뚜렷하지 않아서 그냥 산에서 만나면 산뽕나무, 우리 주변 산책로에서 만나면 뽕나무 정도로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뽕나무 잎은 보통 가장자리에 작은 톱니가 있지만 부드러운 달걀 모양을 한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가끔 주변에 있는 수변 산책로를 걷다가 유달리 잎의 결각이 심한 개체들을 발견하여 필자에게 묻는 지인들이 많습니다. 기형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매우 독특한 형이상학적인 모양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도 보일 수 있는 이 뽕나무들은 가새뽕나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필자가 관찰해 온 바로는 보통 뽕나무도 잎 모양에 비슷한 결각이 (가새뽕나무보다는 심하지 않지만) 생기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으니 이렇게 구분하는 것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뽕나무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세계 어느 곳에서나 발견되는데 (열대 지방이나 한대 지방은 예외로 해야 하겠지만) 필자가 프랑스 파리에서 머물 때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떼섬을 산책하다가 쉴 장소로 택한 벤치 위로 그늘을 만들어준 나무들이 뽕나무인 것을 보고 다소 놀랐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누에에게 먹이기 위한 나무로 자연에서는 오디를 선물하는 나무 정도로 인식되어 있던 뽕나무가 이렇게 훌륭한 그늘을 제공하는 싱그러운 나무로 채택되고 있는 모습은 필자에게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우리 조상들은 뽕나무의 큰 효용을 기려서 실용적으로 재배하는 한편으로 좋은 나무로서 가까이 두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창덕궁, 덕수궁, 경복궁 등 궁궐 안에서도 뽕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고, 남원의 관광명소인 광한루원에서는 150년 된 뽕나무를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뽕나무와 친척 사이이지만 (같은 뽕나무과 소속) 동글동글한 열매들을 매다는 구지뽕나무는 그 열매의 약효 때문에 많이 재배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필자의 산책로나 자연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고, 일본 동경을 방문했을 때 들렀던 고이시카와 수목원 안에서 좋은 개체를 발견하여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그 열매가 마치 산딸나무에 달린 열매와 닮아서 신기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누에와 오디를 통해 우리의 삶과 가까웠던 뽕나무가 사람들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받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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