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사의 인터넷은행 설립도 허용해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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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변방에서 이뤄진다고 합니다. 변방이었던 서유럽이 지금은 문명의 중심이 된 것처럼요.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전기자동차가 단적인 예입니다. 전기차 하면 테슬러입니다. 그 구설 많은 CEO인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는 전기차 외의 자동차는 생산해 본적도 없는 회사입니다.
반면 전기차에서는 도요타와 벤츠 등이 오히려 변방입니다. 전기차가 자동차의 대세가 되면 변방인 테슬라가 자동차의 중심이 될 겁니다. 도요타와 벤츠 같은 회사가 전기차에서 왜 밀려났을까요? 전기차가 대세가 될 것라는 걸 몰랐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보다는 오히려 기존 인력들의 저항일 겁니다. 전기차 시대가 오면 자신들의 핵심 기술과 기업내 위상이 무용지물이 될 것으로 생각해서입니다. 결국 지금의 도요타를 만들었던 핵심동력이 자동차의 IT플랫폼화로의 변신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건 금융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돼서입니다. 금융의 IT플랫폼화가 대세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금융사들도 말입니다. 가령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나, 블록체인 같은 신기술이 대세입니다. 그러면서 금융도 엄청난 혁신 중입니다.
급성장하고 있는 디파이(DeFi, 탈중앙화 분산금융)가 단적인 예입니다. 가상 화폐로 만든 온라인 금융 상품입니다. 여기서는 금융사가 필요 없습니다. 블록체인 상에서 스마트 콘트랙트 기능을 이용해 자동으로 굴러가는 금융상품이기 때문입니다. 예금과 대출은 물론 외환, 보험, 신탁 등 거의 모든 형태의 금융서비스로 확장 중입니다.
송금과 결제가 고작이었던 가상화폐의 이용 분야가 기존 금융 서비스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는 겁니다. 이런 변혁 속에서 은행 역시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시 기존의 오프라인 금융이 변화의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달 금융지주사들이 인터넷은행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금융위원회에 전달했습니다. 정부가 인터넷은행을 추가로 인허가할 계획이 있다면 사업자 획득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KB,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BNK, JB, DGB금융지주 등 8개 지주사들입니다.
총대는 이들을 회원사로 둔 은행연합회가 맸습니다. 그러자 내외적으로 반대가 심합니다. 아니, 은행들의 디지털화가 상당한 수준에 와 있는데 또 인터넷은행이냐고 합니다. 일리 있습니다.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와 같은 인터넷 전문은행처럼 기존 은행 역시 디지털화가 많이 진전돼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은행만큼은 아닙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예컨대 은행도 앱을 통해 비대면 금융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조직으로는 비대면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인터넷은행의 서비스에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또 기존 은행 앱은 예금·대출·외환 등 여러 다양한 비즈니스를 담아야 하지만 인터넷은행의 앱은 주력 상품을 소비자들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기존 은행 앱은 보안 위주로 설계돼 있는 반면 인터넷은행의 틀은 자유로운 편입니다. IT시스템도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새로 시작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비대면 거래의 확산에 따른 디지털금융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은행이 급성장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예컨대 한국거래소에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를 청구한 카카오은행의 경우 증권업계에서 자산가치를 10조원 안팎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6월 7일 기준으로 KB금융지주의 시가총액(24조1천억원)보다는 작지만 우리금융지주(8조4천억원)보다는 많습니다.
기존 은행업계의 경쟁을 자극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인터넷은행이 지금은 전통은행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금융지주사들의 위기의식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JB금융지주 등 지방은행들도 적극적입니다.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KB등 5대 대형은행을 따라잡는 건 불가능합니다.
특정 지역에 특화돼 5대 대형은행보다 점포 수가 적고, 사용자 기반이 제한돼서 입니다. 인터넷은행으로 변신하면 신규고객 유치의 장애물이 사라집니다. 전국적으로 크게 도약할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런데도 반대는 상당합니다. 또 다른 이유를 듭니다. 인터넷은행 설립 취지인 금융혁신과 무관하다고요. 단지 전통 금융사들에 판로를 하나 더 열어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긴 합니다. 2015년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하기로 했을 때 IT 기업 등 혁신적인 경영주체의 금융 산업 진입을 활성화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럼으로써 침체된 금융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어 금융개혁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은행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경쟁자 혹은 차별화된 사업모델이 출현함으로써 은행 간 경쟁을 촉진하고, 기존 은행의 인터넷뱅킹 서비스 개선 등을 촉발시킴으로써 경쟁력을 향상시킨다는 목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IT기업이 금융산업에 들어와 혁신을 주도하라는 얘기였습니다. 사정이 이런 데도 기존 은행에 인터넷은행을 허용해주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심지어 기존은행들의 인터넷은행은 카카오뱅크에 뺏긴 우량고객을 다시 찾아오는 경쟁에 집중한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반대는 또 있습니다. 내부 구조조정 차원이라는 얘기입니다. 문 닫는 점포가 속출하고 대규모 감원이 일어나면서 고용시장이 악화된다는 우려입니다. 노조 등 은행 내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모두 일리 있는 비판과 우려입니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이보다는 순기능이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인터넷은행을 도입할 때 혁신이 촉발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신통찮습니다. IT기술을 바탕으로 정교한 신용평가를 통해 중금리 대출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성과가 미흡한 실정입니다.
인터넷은행 역시 고(高)신용자 위주의 대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수료를 인하하고 금리 우대 등 서비스 경쟁이 활성화되고 있나요? 그렇지 않다면 금융지주사들의 인터넷은행 설립이 대안이 될 겁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한 소비자 이익의 증대는 언제나 옳기 때문입니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를 견제하기 위해 중금리 대출을 활성화하고 수수료 인하와 금리 우대 등 서비스 경쟁에 나설 게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점포와 인력 구조조정은 일어날 겁니다. 금융지주사들은 장차 조직의 중심을 인터넷은행으로 옮길 겁니다. 그러면서 기존 은행 사업을 축소하고 오프라인 점포를 줄여나갈 것 같습니다. 저도 이 부분은 걱정입니다.
하지만 이는 인터넷은행을 설립하지 않아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기존 시스템으로는 안 된다는 건 모두 알고 있습니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구조조정은 불가피합니다. 구조조정을 막으려고 하면 그럴수록 기업은 더 어려워집니다. 그렇다면 변화의 물결에 동참해야 합니다. 경착륙을 피하려면 인터넷은행 설립은 불가피합니다.
그렇다고 금융지주사들이 인터넷은행을 설립할 수 있을지 불확실합니다. 정부가 허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니까요. 사실 기존 금융사들이 인터넷은행을 설립하려 한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카카오뱅크 등이 설립되기 훨씬 전부터 숙원사업이었습니다. 단지 정부가 허용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번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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