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vs. 안심소득 : 복지철학과 사회철학의 차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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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은 5월 27일 ‘안심소득’ 시범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안심소득은 연(年)소득이 일정액에 미달하는 가구에 대해 미달소득의 일정 비율을 현금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그 다음 날 이재명 지사는 ‘안심소득’이 저소득자와 부자·중산층을 차별하는 낡은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국민 개개인에게 일정액을 매달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이재명 지사는 29일과 30일에도 ‘안심소득’의 재원을 밝히라고 공격하며 자신의 기본소득 재원방안, ‘단기, 예산조정; 중기, 세금감면 폐지; 장기, 목적세 신설’을 환기시켰다.
지난 주 내내 이어진 정치인들의 논쟁은 언론인과 전문가들을 바쁘게 만들었다. 일차적으로 언론인들은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의 차이를 개념, 지급규모, 재원을 도표로 정리하였고, 전문가들은 그 도표를 보며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점차 일부 언론들은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의 지향하는 바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안심소득’의 이론적 근거는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마이너스 소득세’인데, 결과적으로 기본소득과 동일하다는 것이 서구 학계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다.주1)
주1) 두 제도의 동등성에 대해서는 옥동석, “기본소득·기본자산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News Insight, 국가미래연구원, 2020. 11. 26 참조. 그리고 Widerquist, Karl, Yannick Vanderborght, José A. Noguera, and Jurgen De Wispelaere eds., Basic Icome: Anthology of Contemporary Research, Wiley Blackwell, 2013, pp.xv∼xⅶ 참조.
미국의 기본소득 네트워크가 기본소득과 ‘마이너스 소득세’를 모두 ‘기본적 소득보장(basic income guarantee)’이라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의 집행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갑, 을, 병 세 사람의 소득수치를 보여주는 <표>를 활용하기로 한다. <아래 표1 참조>
갑, 을, 병의 시장소득은 각각 8천만원, 5천만원, 2천만원이라고 하자. 기본소득제A에서는 정부가 기본소득 4백만원을 각각 지급한 후, 그 재원 1천2백만원을 확보하기 위해 갑에게 8백만원, 을에게 4백만원의 세금을 부과한다. 그러면 가처분소득은 각각 7천6백만원, 5천만원, 2천4백만원이 된다. 반면 안심소득제A에서는 갑으로부터 세금 4백만원을 징수하여 병에게 지급하면 가처분소득은 기본소득제A와 완전히 동일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만약 기본소득제A에서 세금수입 1,200만원을 전부 안심소득으로 지급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동일한 금액의 재원을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으로 골고루 나누지 않고 빈곤층에 집중 지원하는 방식이 안심소득이다. 이 경우는 안심소득제B와 같은 수치로 귀결되는데, 빈곤층 병의 소득이 3천2백만원이 된다. 갑과 을은 기본소득을 받지 못하니 기본소득제A보다 가처분소득이 4백만원씩 줄어들고, 이 사회의 최저소득 보장금액은 2천4백만원에서 3천2백만원으로 대폭 늘어난다.
만약 안심소득제B와 같은 효과를 기본소득제로 달성하려면 기본소득제B가 채택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1천2백만원씩 지급된다. 만약 가처분소득이 안심소득제B와 같아지려면 세금이 갑에게 2천만원, 을에게 1천6백만원 부과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제B에서는 갑, 을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지만 그 금액을 다시 세금으로 모두 환수하는 셈이다.
결국 안심소득제B는 세금으로 빈곤층을 지원하면 끝나지만, 기본소득제B는 중산층과 고소득층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그 전액을 다시 세금으로 환수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과 오세훈 시장의 ‘안심소득’을 비교하기로 하자.
오세훈 시장의 시범사업은 이제 그 시작단계에 있기에 이재명 지사의 재원방안을 기준으로 그 차이를 분석한다. 대선 후보인 이재명 지사는 단기에(아마도 집권 5년간) 예산조정을 통해 26조원을 확보하여 국민 모두에게 연간 50만원을 나눠주고, 중기에(아마도 그 다음 정권 5년) 조세감면 폐지를 통해 60조원을 확보하여 연간 1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며, 10년쯤 후에는 본격적인 증세를 통해 매월 일정 금액의 현금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하였다.주2)
주2) 2021년 2월 7일 이재명 페이스북 참조.
만약 이들 재원을 국민 모두에게 나눠주지 않고 저소득층에 집중한다면 그것이 곧 ‘안심소득’이 된다.
이재명 지사의 계산에 의하면 서울시의 모든 가구에 중위소득, 즉 4인 가구 기준 월 488만원을 보장하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안심소득 공약에 필요한 금액은 17조원에 달한다. 만약 이 금액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면 서울시민 1인당 월 14만원(연간 170만원)을 지급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17조원의 재원으로 가구당(4인) 월 488만원을 ‘보장’할 것인가, 아니면 서울시민 1인당 월 14만원을 ‘지급’할 것인가의 선택문제에 직면한다.주3)
주3) 그런데 이러한 수치계산은 결코 정치인들에게 맡겨선 안된다. 정치중립적이고도 전문적인 기관이(굳이 예를 들자면 국회예산정책처) 객관적인 수치를 분석, 생산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의 철학적 차이를 간파할 수 있다.
첫째,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은 복지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재명 지사는 비록 중위소득 이하의 빈곤층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기본소득이라는 권리를 채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복지의 궁극적 목표는 빈곤층 구제가 아니라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이라고 보는 것이다. 반면 오세훈 시장은 빈곤층에 집중적인 소득지원을 제공하여 시민들에게 최소한으로 보장되는 소득의 금액을 높이고자 한다. 이재명 지사는 빈곤층 구제보다 기본소득이라는 근본과 원리를 중하게 여기는 반면, 오세훈 시장은 빈곤층 구제라는 실질적인 목표를 우선하고 있다.
둘째, 이재명 지사의 재원 조성방안은 ‘선(先)혜택 후(後)고통’의 순차적 접근을 채택한다. 단기의 예산조정 방안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경기도 재난지원금에서 채택한 방안을 미루어 짐작할 때 각종 기금의 자산을 허물어 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주4)
주4)이재명 지사는 미래의 우발적 상황을 대비하는 기금들을(지역개발기금,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재난관리기금, 재해구호기금) 재난지원금 재원으로 사용하였다. 경기도청, “이재명, 2차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도민 1인당 10만원씩 지급,” 보도자료, 2021년 1월 20일 참조.
이렇게 함으로써 현재의 국민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그 고통을 미래로 이연할 수 있다. 중기의 재원방안 ‘조세감면 폐지’와 장기의 재원방안 ‘목적세’는 국민들에게 당장의 고통을 주는 방안이다. 이재명 지사는 국민들이 일단 기본소득의 혜택을 누리고 나면 기꺼이 이러한 고통을 감내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는 차기 대통령의 집권기간 5년 이후의 일이 된다.
반면 안심소득이 지향하는 ‘마이너스 소득세’는 중산층과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이 빈곤층에 대한 소득이전과 곧바로 대응되기에 ‘혜택과 고통의 동시성’이 나타난다. ‘마이너스 소득세’를 지향하는 또 다른 제도로서 ‘근로장려세제’에서는 종합소득세 신고와 동시에 국세청이 저소득층에 소득이전을 하기 때문이다.주5)
주5)‘근로장려세제’는 근로소득이 0인 사람에게는 아무런 지원금도 제공하지 않는다. 반면 안심소득은 근로소득이 0인 사람에게도 지원금을 제공한다. 이 두 제도가 결합될 때 완전한 ‘마이너스 소득세’가 구현될 수 있다.
<표1> 의 안심소득제B에서는 부과된 세금을 재원으로 안심소득이 지급되지만, 기본소득제B에서는 막대한 금액의 기본소득이 지급된 이후에 순차적으로 세금 부과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는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이 복지철학뿐만 아니라 사회변화에 대한 접근의 방식, 즉 사회철학에서도 중요한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기본소득은 순차적인 접근을 약정하면서 혁명적인 변화를 선호하고 있다. 과감하게 기본소득을 지급하여 모든 국민들이 기본소득의 혜택을 누리고 나면 증세의 강력한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조세와 소득이전을 연계하는 안심소득은 사람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점진적인 변화를 도모한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점진적인 진화의 여지를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적으로도 이렇게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 유권자들의 투표행위를 바라보는 정치인의 선거전략에서도 심각한 차이가 존재한다. 중간층이 사실상 투표의 결과를 좌우한다는 중위투표자(median voter) 이론을 여기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위투표자, 즉 중산층은 미래에 부과되는 세금의 고통보다는 당장의 기본소득 혜택에 더 열광하며 지지를 보낸다.
만약 중산층이 이러한 선택을 한다면 기본소득은 유효한 선거전략이 된다. 반면 중산층이 자신의 이익에 초연하며 빈곤층 구제를 위한 안심소득에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중산층이 이러한 투표행위를 한다고 믿는 정치인들은 안심소득을 지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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