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상회의와 우리의 기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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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지구의 날(4월22일)에는 국제사회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화상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미국의 주도로 전 세계 40여 명의 정상들이 초대되어, 날로 심각해 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주요 국가별 노력과 국제 사회의 공조를 다짐했다. 특히 중국 및 러시아 등 미국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국가의 정상들까지 참석해, 기후 위기 앞에서는 모든 국가가 하나가 되어 긴박하고 절실한 대응이 필요함을 천명했다.
먼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선도적 역할을 다짐했다. 미국의 2030년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50~52%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구촌 리더로서 미국의 귀환을 알렸다. 이는 2015년 오바마 행정부가 약속한 2025년까지 26~28% 낮추겠다는 목표보다 매우 공격적인 수치다. 미국이 2005년 대비 2019년까지 15년 동안 12%를 감축했기 때문에 앞으로 10년 내에 추가로 40%가까이 감축해야 한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과 국제사회 기후리더쉽 재건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새로운 목표를 과감히 제시한 것이다.
목표 만큼이나 다른 국가들에게 시그널을 주는 것은 실행계획이므로 올해 내로 발표될 ‘국가기후전략’의 상세 내용을 주목해야 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는 미국이 돌아온 것에 대해 환영 입장을 밝혔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미국의 목표를 게임 체인저로 지지했다. 앞서 존슨 총리는 탄소배출을 2035년까지 78% 감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른 국가들도 기존 보다 상향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발표하며 공조 의지를 피력했다. 일찌감치 기후리더를 자청했던 유럽연합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EU가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기존보다 약 1/3 정도 높인 수치이다. 주목할 점은 EU는 기후정상회의 하루 전날 새벽에 이 상향된 감축 목표를 ‘기후법’에 반영하여 법적으로 의무화하는데 합의했다. 국제사회의 기후리더 자리에 어울리는 행보다. 말로 선언이 아닌 법제화를 바탕으로 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EU가 처음으로 제시한 탄소국경조정이나 친환경분류체계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란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2030년 감축 목표를 2013년 대비 기존 26%보다 2/3 이상 높인 46%를 선언했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강화된 목표로 2005년 대비 40~45% 감축을 제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탄소가격제 도입 등의 제안을 내놓기도 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앞으로 새롭게 추진될 해외 석탄발전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 중단 방침을 언급하며, 2030년 감축 목표를 추가 상향해 연내 유엔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지난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 대비 24.4% 감축한다는 목표를 유엔에 제출한 상태다.
한편,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1/4을 차지하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9월 선언한 2060년 탄소 중립 실현 이라는 장기 목표를 다시 천명하면서, 2025년부터 5년 동안 석탄 소비를 감축(phase down)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 리더가 석탄소비 감축을 약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노력을 어필하며, 유엔 체제 하에서 합의된 파리기후협약, 기후변화협약(UNFCCC) 이행을 강조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의 입장을 개진하며 미국에 견제구를 날렸다고 대립 구도를 그리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회의임에도 참석하여 기후 위기에 대한 공조에 공감했음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개발도상국 정상들도 기후 위기 대응에 동감하면서도 공정한 정환을 위한 선진국의 원조 필요성을 역설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선진국이 저소득국에게 약속한 석탄발전 대안마련 자금(수십억달러)의 집행을 요구했고,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도 부유한 나라가 배출한 탄소의 대가를 가난한 나라가 치르고 있다며 원조 필요성을 강조했다.
세계의 허파 속에 위치한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2030년까지 아마존 열대우림에 대한 불법 벌채를 종식하겠다며 공정한 대가를 요구했고, 콩고민주공화국의 펠릭스 치세케디 대통령은 열대우림이 제값을 못 받고 있다며 숲의 탄소배출권 거래 가격 인상을 촉구했다.
국제사회리더십, 관련기술선점, 경제성장기회, 기후위기완화 등 나라마다 속내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두 기후위기가 심각하고 이는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는 그 어느때 보다 동의하고 있다. 특히, 금번 기후정상회의는 미국, 중국, EU, 일본,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가들이 적극 동참하고 있어 지구촌에서 탄소배출이 편안한 곳은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르다.
지금이라도 이런 정상회의가 반갑고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실행과 속도다. 지구촌은 지금 밀린 숙제를 하는 중인데, 이제 막 숙제시간표만 발표했기 때문이다. 보다 높은 확률로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미국이 4년 전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하는 대신 지구에 날 이 정상회의를 소집 했어야 했다. 그 만큼 미국의 행보가 국제사회 공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기후를 주요 의제로 다루는 정상회의가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5월 P4G(녹색성장)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었고, G7 및 G20를 거쳐 제26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영국에서 열릴 예정인데, 11월 회의에서 각 국가별 감축목표 및 국제협력 방안이 구체화될 예정이다. 밀린 숙제를 벼락치기로 하는 스케쥴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시한이 있는 공동 목표가 중요하다. 10년 걸리는 백신을 1년내 만들어 낼 만큼 벼락치기도 유용할 때가 있지만, 기후위기의 대응은 더 어려운 숙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난 5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제시한 ‘2050 넷제로 - 글로벌 에너지 부문 로드맵’을 보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IPCC(유엔산하 정부간 협의체)가 2050년까지 기후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온실가스(주로 탄소) 순배출을 어떻게 제로화해야 하는지 제시하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산하기구로 에너지 분야에 국제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IEA의 발표는 국제사회 및 각 국의 에너지 정책에 중요한 참고서 역할을 해 왔다.
그 동안 매년 에너지 수급 전망을 발표해 오면서 기후변화 대응에는 다소 소극적 목소리로 비판을 받아왔기에 이번에 처음 발표한 넷제로 로드맵은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산업에 더욱 경종을 울리고 있다. 로드맵에 따르면, 2050 넷제로에 도달하려면 전 세계 전력 수요는 계속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은 2035년까지, 나머지 국가는 2040년까지 발전 부문 넷제로를 달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2030년을 기준으로 저효율 석탄발전의 퇴출과 더불어 가스발전의 지속가능성까지도 경고하는 이유다. IEA가 기존과 달리 화석연료 산업으로부터 돌아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화석연료 사용의 효율증대 및 수요감소를 감안하면 더 이상 새로운 화석연료 공급 사업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진단한 점이다. 이는 로드맵이 제시하고 있는 2050년 넷제로 목표 달성을 위한 분야별 경로는 재생에너지가 에너지의 중심이 된다는 것으로, 화석연료 자리를 재생에너지가 채워 나가는 것이다. 예컨대, 2050년에 약 90%의 전력은 풍력, 태양광, 수력 등 재생가능한 원료로부터 나올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태양광과 풍력의 경우 10년 간 빠르게 확장해 2030년에는 현재 시장규모의 4~5배에 달하는 수치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전 세계 연간 에너지 부문 투자액도 현재의 2.3조 달러에서 2030년 5조달러 수준으로 증가해야 한다는 전망이다. 수송 부문도 현재는 1%인 전기차 비중을 2030년 20%, 2050년 86%까지 늘려야 하고, 건물 부문도 재생에너지 및 단열 설비를 갖춘 에너지 제로 빌딩 비율을 2030년 25%, 2050년엔 85% 이상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한 기술 중 50%는 아직 개발 중이라고 분석했다.
어느 한 부문도 만만치 않은 넷제로 로드맵의 실행 여부는 국제사회의 협력을 기반으로 한 정책 의지에 달려있고, 이것이 상술한 기후정상회의의 개최 배경이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목표와 이를 위한 기후금융의 중요성을 언급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의 성공적인 기후정상회의 개최에 이어 5월말 한국이 주최하는 P4G(녹색목표연대) 정상회의를 통한 국제사회의 의지 결집을 강조했다. 두 정상은 시대와 환경 변화에 부합한 세가지 새로운 분야 협력을 약속했는데, 코로나와 첨단분야공급망에 이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글로벌 협력을 꼽았다. 국제사회내 기후위기에 대한 긴박감과 시급한 정책시그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상술한 넷제로 로드맵과 정상회의에 반복되는 공통 키워드가 있다. 목표와 투자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적절한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투자가 핵심으로 등장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기사회견에서 기후목표 달성을 위한 기후금융의 동원을 강조했고, IEA 넷제로 로드맵도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2030년 투자금액 중 재생에너지 공급에만 1.3조 달러가 투자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역사상 화석연료 공급 관련 연간 투자가 가장 많았던 2014년 1.2조 달러를 상회하는 수치다. 새롭고 거대한 장이 서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둘러싼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생각 보다 큰 시장이 출현할 확률이 높다.
정상회담이 거듭되면서 목표 및 투자에 대한 정책시그널이 지속 강화된다면, 탄소가격이 상승하고 이를 통상과 연계하는 탄소국경조정에 대한 논의도 가속화될 것이다. 예컨대, 4월 22일 기후정상회담 이후 5월초 EU 탄소배출권가격은 역사상 처음으로 50유로를 넘었고, 다음달 전세계가 주목하는 EU 탄소국경조정 법안이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이와 같은 탄소와 통상의 연계는 다시 목표 달성을 위한 정책과 투자를 가속화하는 순환 고리를 갖고 있고, 이 과정에서 금융의 흐름이 바뀌면 새로 생기는 거대한 장터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갈릴 것이다.
작년 말 MSCI(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가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재무건전성을 평가했는데, 기후변화 대응 관련 국제목표 달성 과정에서 경영환경 변화로 인한 기업가치의 변화를 예측했다. 6년 전 파리협약에서 합의된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아래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경우, 환경 규제가 가장 강력한 유럽을 기준으로 사업전환 비용, 자연재해 등 물리적인 리스크, 새로운 사업 기회 등을 합산했다.
이에 따르면 에너지, 교통과 운송, 소재, 유틸리티산업은 50% 이상 기업가치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지만, 유틸리티산업의 경우 환경 규제에 적극 대응했을 때 기업가치가 4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분석된 가운데, 주목할 점은 자동차 업종의 경우 10% 이하의 기업가치 하락을 예상하면서도 적시 대응할 경우 오히려 친환경 자동차 등 새로운 시장이 생겨 20% 이상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MSCI는 목표달성 과정에서 새로운 정책 및 시장 형성에 따른 승자와 패자의 구분을 예시하면서, 기후변화가 투자에 미칠 영향력이 막대하므로 투자자들은 이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로벌에서 이미 기후변화로 화석연료 자동차나 석유산업의 빠른 재편이 시작된 상황에서, 수출 비중이 절대적이고 글로벌 공급망과 밀접한 우리 기업도 위기를 감지하고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 다시 자동차 업종의 예를 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신차 판매량이 내연기관차를 추월하는 시점이 2030년대로 예상되고 다양한 국가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나 도심운행을 규제하는 법이 추진되는 가운데, 한국 전체 수출액의 10%를 넘게 차지하는 핵심 업종의 지속가능한 경쟁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글로벌 30대 전기차 기업 중 국내 업체는 단 한 곳 뿐인 점, 전기차로의 전환으로 2차전지 및 반도체 등 다른 업종과의 상호 영향력이 커진 점 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자동차 업종 뿐만 아니라 에너지업종내 태양광발전 설비공급, 풍력단지 건설, 녹색채권 발행, 가상발전소 IT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목표 및 투자 흐름을 감지하고 기회 선점을 위해 늦지 않게 움직여야 한다. 추가로 탄소와 통상의 연계도 우리가 기회로 활용할 요소는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2050년까지 전력사용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글로벌 기업들의 자발적인 캠페인에서 시작된 RE100에 대해 우리는 지금까지 글로벌 기업의 요구 대응에 급급했다.
하지만 올해 산업부가 녹색요금제 및 인증서구매 등 이행수단을 마련했고 국회는 재생에너지 직접구매 법안을 준비한 바, 글로벌 공급망에 얽혀 있는 한국 기업들은 그간 해외 고객사들로부터 받은 요구 대응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를 적극 활용하여 이해관계자 소통에 활용함으로서 시장 선점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해관계자는 해외구매사 뿐만 아니라 투자자, 정부, 소비자, 평가사 등 다양하고, 소통의 시점이 올해 개최될 정상화의들의 시점 및 맥락과 연결된다면 소통 효과는 더 클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ESG경영이기도 하다.
또한, EU가 역내 탄소 감축 노력으로 발생한 추가 부담을 수입 상품에도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을 2023년부터 실시할 예정인데, 철강 및 석유화학 등 수출기업의 영향을 최소화 함은 몰론, 국내에서 이미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탄소배출권거래제도를 활용해 주 경쟁사인 중국기업과의 차별화를 병행해서 고민해야 한다.
이제 기후변화에 의한 산업 재편이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조건이 되었고, 나아가 승자와 패자의 중간이 없어 생존하려면 승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임을 인식하면서, 생각보다 거대한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 회사 개별차원이 아닌 업종 및 산업 연합차원에서 체계적 변화를 도모하면서, 정부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와 다른 지속적 위기감을 바탕으로 새롭고 거대한 시장이 얼마나 절박한 기회인지 인식하는 것이 기반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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