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공급망 확충 계획,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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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8일 발표된 미국의 주요 분야 공급망 확충 계획은 바이든 행정부 나아가 미국의 의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하였다.
이 공급망 확충 계획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경제의 미래에 핵심적인 영향을 가진 것으로 판단한 반도체, 대용량 전지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 (전략물자) 등 이른바 ‘4대 핵심 품목’에 대해 100일간에 걸친 공급망 점검을 지시한 이후 그 점검의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미국의 산업/경제 정책적 의지와 함께 정치/외교적 정책 의지까지도 엿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미국의 공급망 확충 계획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국의 전통적 산업/경제정책 기조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나, 바이든 대통령의 곧 이은 정치/외교 행보와도 연계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여기에 대한 세계 주요국의 반응도 다양하지만, 이 공급망 확충 계획에서 일종의 적대적 세력으로 인지되고 있는 중국이 부담을 안은 대응을 하고 있는 점도 이 확충 계획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4대 핵심 품목들 모두에 깊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특히 우리 산업의 미래를 열어가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등에서 경쟁력 확보와 글로벌 공급망 참여에 명운을 걸다시피 한 우리 산업으로서도 이 공급망 확충 전략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하는 동시에 적절한 대응책을 세울 것을 촉구 받고 있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 의지 확고
이미 잘 알려져 왔지만, 이번 공급망 확충 계획을 통해 미국의 중국 견제 의지는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미국은 왜 이렇게 집요할 정도로 중국에 대한 견제 의지를 지속적으로 선언하고 있을까?
우선 바이든 정부가 많은 분야에서 트럼프 정부의 외교/통상 정책 기조를 뒤엎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견제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강화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 눈에 띈다. 미국은 근본적으로 중국이 불공정한 시스템으로 (국영 자본주의, 노동자의 인권 탄압, 기후변화 대응 미흡 등) 세계의 공정한 무역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고, 더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경제적 파워를 이용하여 불공정한 방법으로 산업/기술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를 단순히 바이든 행정부의 의지로 보기보다는 미국의 근본적 경제 및 외교정책 기조가 점점 더 확고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미국의 중국 견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더욱 심화된 측면이 있다. 미국은 아직도 코로나19 팬데믹 발생의 원인에 대한 중국 당국의 불투명한 태도에 의구심을 풀지 않고 있다. 특히 이러한 팬데믹 진행 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발생한 각종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 현상과 (자동차, IT 분야 부품 중심) 그에 이은 중국 정부의 희토류를 무기화하려는 움직임 등이 이른바 4대 핵심 품목은 물론 주요 경제 분야에 대한 공급망을 안정시키는 정책, 더 구체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든 셈이다.
나아가 중국의 기술굴기 의지 표명과 불공정한 방법을 동원한 중국의 미래 기술력 확보 행보가 중국을 견제할 필요성을 더욱 높인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화웨이의 차세대 통신 기술에 대한 지배력 확보 추세를 막으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한 바 있고, 중국 테크기업들이 마구잡이에 가까운 방법으로 전개한 세계 곳곳의 기술력 중심 스타트업을 타깃으로 한 M&A 노력과 불공정한 방법의 기술 탈취/도용 등을 통한 기술굴기 노력은 막아야 한다는 미국의 의지도 한층 더 높아지고 있다.
핵심 품목들에 대한 중국 혹은 동아시아에 편중된 공급망에 대한 불안감 고조
이러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불신감과 그에 따른 공급망에 대한 불안감은 이른바 4대 핵심 품목 중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된 의약품을 제외한 나머지 3개 품목, 즉,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의 공급망이 지나치게 중국에 직접 의존하고 있거나 중국의 영향 아래에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 편중되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중된 측면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 희토류의 경우에는 중국이 거의 독점력을 가지다시피 한 상황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고 미국은 자국 내의 생산 가능성과 우호국가들로 부터의 수입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기술력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심을 가진 반도체, 배터리 분야에서 조차도 중국 중심으로 공급망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은 불안감을 증폭하기에 충분했다고 판단된다. 2020년 현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보면 (미국 반도체협회 조사) 대만 22%, 한국 21%, 일본 15%, 중국 15%에 이르고 있고 미국은 12%에 불과하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는 더 심해서 (SNE리서치 조사) 중국 37.5%, 한국 34.7%, 일본 19.9%로 90%가 동아시아 국가들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일본이 중국보다는 미국에 더 가까운 경제/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는 달리 대만, 한국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안심할 수 없었던 셈이다.
공급망 확충의 순서는 미국 내 생산, 우호국가 생산 順
따라서 미국이 100일 간의 시간을 들여 이들 품목들에 대한 미국 내의 공급망을 찬찬히 점검하려 한 것은 매우 당연한 조치였고, 이와 함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자국 내 생산을 늘리려 하는 조치들을 다각도로 취한 것도 쉽게 이해된다.
미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결정적인 생산 경쟁력을 가진 한국산업의 미국 내 생산을 늘리려고 하는 의지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관철한 바 있다. 그 이전에 이미 트럼프 정부 시절부터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은 물론, 반도체 파운드리 세계 1위 기업인 대만의 TSMC 등에 압력을 가해서 미국에서의 반도체 생산시설을 늘리게 한 것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100일 간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국과 대만의 주요 기업들 이름을 수없이 거론한 것도 곧바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주목되는 점은 미국 내 생산시설을 확충하는 노력 다음으로 미국이 우호적인 동맹국가들에서 이들 핵심 품목들의 생산시설이 늘어나는 것도 공급망 안정에 기여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외교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8일 공급망 확충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곧바로 가진 바이든의 외교 행보는 G7 정상회담 (6월 11-13일 런던 개최) 참석이었는데 여기서도 이들 핵심 품목들의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위한 공동보조를 강조하였고, 이어서 나토를 통해서도 이러한 목표를 위해 공동 노력을 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G7 정상회의에 우리나라가 초청되었고, 이러한 공동노력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받은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EU 역시 배터리 및 반도체 공급망 안정을 위한 EU 차원의 공동 노력을 추진하고 있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견제 정책 기조에서 트럼프 정부와의 차별성을 보인 점은 바로 이러한 동맹 혹은 우호적인 국가들과의 공동보조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점이라고 하겠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 위주의 공급망 안정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과는 조금은 궤를 달리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산업정책 기조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
미국의 이번 공급망 확충 정책 기조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미국이 전통적으로 강조해 온 시장 특히 산업에 대한 정부의 非개입주의를 버리고 적극적인 개입주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바이든 정부는 2월 24일의 행정명령을 통해 4대 핵심 품목의 공급망을 점검하는 한편, 이러한 점검과 확충 노력을 이른바 6대 산업 즉, 국방, 조선, IT, 에너지, 운송, 농산물 등으로 확대하여 향후 1년 이내에 공급망 검토 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지시한 바 있는데, 그 결과를 반영하여 공급망을 확충하기 위한 여러 가지 지원정책을 동원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반도체 분야에서는 지난 1월 제정한 미국 반도체법 (CHIPS for America Act)을 통해 미국 내 반도체의 생산, 연구, 개발을 장려하기 위한 지원 예산을 370억 달러 규모로 확보한 바 있고, 향후 2024년까지 반도체 장비 및 시설 투자에 대해 최대 40%의 투자세액 공제 조항을 신설하였으며, 반도체 제조 시설 구축 시 제공되는 주 및 지역 보조금에 매칭되는 100억 달러 규모의 연방 지원 프로그램도 신설하였다.
배터리 분야는 에너지 기술 속에 포함시켜 저탄소 친환경 에너지 투자 확대를 위한 지원 예산 규모 80억 달러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희토류와 의약품의 경우에도 비슷한 형태의 보조금이나 지원 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보이고 향후 6대 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한 지원정책도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기조로의 전환은 당연히 EU는 물론 견제 대상이 되는 중국 등의 산업 지원 노력을 강화시킬 가능성이 큰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보조를 금기시해 온 WTO의 국제무역질서 유지 노력에 큰 손상을 입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에 대한 다방면의 견제를 담은 G7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하여 중국이 정치/외교적인 지적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반박하고 내정 간섭과 개입을 중단하라고 반발했지만, 글로벌 경제의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을 저해하는 중국의 비(非)시장 (Non-market) 정책을 문제 삼은 것과 관련해서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지적”이라고만 대응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도 미국의 공급망 확충 노력의 배후에 깔려있는 정서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고, 미국의 공급망 확충 노력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산업에는 다소 혼란스러운 신호를 주는 상황
미국의 공급망 확충 노력 중에서 우리 산업과 연관성이 깊은 분야는 역시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일 것이다.
이 분야와 관련해서 우리나라도 공급망 안정 문제와 관련해서 여러 차례의 어려운 고비를 넘겼으므로 미국과 EU 등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미국 국내 공급망 확충 노력에 이미 많은 우리 기업들이 상당 수준의 투자 계획을 표명하였으므로 공급망의 다변화와 함께 우리 산업의 판매망의 다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기실 반도체의 경우 우리나라는 2020년 총수출 중에서 대(對)중국 수출이 (홍콩 수출 포함) 전체의 62.2%에 이르고 있는 데 비해, 베트남 11.2%, 미국 7.3%에 머물고 있는 점은 지나치게 편중된 판매망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배터리의 경우는 다행히 미국 16.3%, 중국 15.0%, 독일 13.5%, 베트남 9.1%, 일본 5.1% 등으로 판매망이 다소 다변화되어 있어 다행이지만 이 산업에서의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은 만큼 미국의 공급망 확충 노력에 대한 참여 압박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산업으로서는 미국의 공급망 확충 노력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중국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의존도를 조금씩 다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미국, EU 등이 반도체, 배터리 등에서 공급망 확충 노력 가운데 기술개발 노력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 산업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어쩌면 이들 선진국들의 공동 기술개발 노력에 우리 대표기업들이 기업 차원에서의 참여 방향을 모색하는 것 또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공급망 확충 노력과 그에 따른 적극적인 산업정책 기조로의 변화가 가져올 국제무역질서에의 후폭풍에는 우리 산업은 물론 정부의 통상정책 측면에서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 산업으로서는 자유롭고 공정한 국제무역질서가 유지되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므로 가능한 한 주요 선진국들의 공급망 확충 노력에는 적극 참여하는 한편, 이런 노력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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