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정보공개 규정의 가시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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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이나 서학개미의 증가로 해외 금융시장이 멀지 않게 느껴지는 가운데, 새로운 규정 도입이 가시화되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ESG정보공개 관련 규정이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로 투자자가 투자의사결정시 고려하는 비재무적 요소다. 재무적 요소 이외에도 장기적 투자 수익을 위해 고려해야 하는 ESG가 경영의 새로운 표준이자 전략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고 비교가능한 ESG정보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코로나로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ESG 경영에 박차를 가하며 이를 의사결정에 반영하려는 기업은 물론이고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불완전한 ESG정보의 교환은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들이 ESG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며 ESG경영을 요구한다는 점과 바이든 시대를 맞이해 국제사회의 친환경 정책 공조가 가속화된다는 점에서, ESG정보 관련 새로운 규정 도입이 현실화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EU가 먼저 움직였다. 2014년 기업의 비재무정보의 공개를 의무화하는 지침(Non-Financial Reporting Directive, NFRD)을 제정하고, 역내 종업원 500명 이상의 대형회사 등을 대상으로 환경, 사회, 노동, 인권, 반부패 등에 대한 정책 및 리스크 관련 정보 공개를 이미 규정하고 있다. ESG가 지금처럼 급부상하기 이전부터 ESG 정보공개를 일부 강제하고 있는 것인데, 지난 4월 NFRD 개정안(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초안이 발표돼 공개범위 및 대상 확대를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EU의 지속가능금융(Sustainable Finance) 확대를 목적으로 2019년 12월 유럽의회와 이사회가 채택하고, 2020년 7월에 발효된 택소노미 규정(Taxonomy Regulation)이 추가됐다.택소노미 규정은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을 분류 하는 것으로 일명 녹색분류체계라고도 한다. 이는 투자나 자산운영 등 경제활동이 얼마나 지속가능한지(ESG에 부합하는지) 정의하고 판별하는 분류체계로 우선 환경(E)부터 시작됐다.
예를 들면, EU 분류체계는 환경목표로 온실가스감축, 기후변화적응, 물관리, 자원순환, 오염방지, 생태계보호를 설정하고, 상기 환경목표 중 하나 이상의 목표달성에 기여하는 기술선별기준을 만족하면서도 다른 환경목표에 중대한 피해를 주지 않는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ESG에 부합한) 경제활동으로 인정한다. 즉, 경제활동의 명확한 친환경 정의를 내려 지속가능한(ESG에 부합한) 투자를 확대함과 동시에, 대규모 개발사업 등의 경제활동 중 말로는 지속가능하다고(ESG에 부합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질은 다른 Greenwashing(위장환경주의)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EU 집행위원회는 각 목표별로 기여도를 결정할 기술선별기준 등 상세기준을 위임법률(Delegated Act)로 2021년 12월까지 제정(우선 기후변화부터)할 예정인데, 이 경우 역내 금융기관은 12월까지 기후변화 관련 목표기여도를 자산비중으로 공개해야 하고, 비금융 대형회사는 목표기여도를 매출비중 및 자산비중으로 공개해야 한다. ESG관련 구체적 정보공개를 통해 어떤 금융기관이나 기업이 얼마나 지속가능한(ESG에 부합한) 투자 및 자산운영을 하고 있는지 비교가 가능해 지는 것이고, 기준에 미치지 못한 금융기관이나 기업은 대세적 자본 흐름에서 서서히 제외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발전소의 경우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정 수치 이하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발전소만이 친환경 목표에 부합하는 자산으로 인정해 주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즉, 경제활동별로 명확한 친환경 정의를 내려 ESG투자를 확대함과 동시에, 말로만 ESG라고 주장하는 위장자산을 구별하기 위함이다. 텍사노미 규정에 따르면, 오는 12월까지 역내 금융기관은 친환경 목표에 부합하는 투자자산 비중을 공개해야 하고 비금융 대형회사는 매출비중으로 공개해야 한다.
2021년이 EU ESG정보 관련 규정의 변곡점인 이유는 NFRD나 분류체계규정만이 아니다. 금융기관의 투자나 상품 관련 ESG정보의 공개를 의무화하는 지속가능재무공개규정(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 SFDR)도 처음 시행된다. 금융상품의 지속가능성(ESG)관련 정보공개를 의무화하여 투자자들의 올바른 의사결정을 돕는 목적이다 예를 들면,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지속가능성(ESG) 리스크를 투자의사결정 및 보상방법에 어떻게 반영했는지 공개하도록 하고, 금융상품에 대해서는 ESG특성 및 ESG목표연계성을 공개하도록 한다.
물론 이 금융기관들은 택소노미 규정에 의해 기후변화 관련 목표기여도를 자산비중도 공개해야 하기에, 회사/상품/투자대상의 ESG 정보를 모두 공개해야 하는 셈이다. 즉, 금융기관의 ESG정책, 금융상품의 ESG특성, 자산의 친환경성 모두 2022년부터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 3월 EU는 역내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인권 및 환경 등 ESG 실사의무(Due Diligence)에 대한 의회 입장을 담은 보고서를 채택했다. 6월 EU 집행위원회의 지속가능한기업지배구조(Sustainable Corporate Governance) 법안 제출에 앞서, 공급망 실사의무에 관한 법안에 의회의 입장을 반영토록 요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공급망 실사의무 관련 소송에서 의무위반 입증책임을 기업이 지게 하거나, 역외 공급망에서 발생한 ESG 피해자가 피해구제를 위해 EU 사법기관에 제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원회는 중소기업 배려 방안 및 1차 공급망을 넘는 실사의무 범위, 그리고 기업규모 비례나 업종위험도 비례 등도 고려중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회사는 전 공급망에 걸쳐 잠재적 ESG 부정영향을 들여다 보고 이를 완화하거나 예방해야 하며 실패시 제재가 예상된다. 이는 한국회사를 포함한 EU 역외 회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럽에 직접 진출한 회사는 물론 유럽에 제품을 공급하거나 유럽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회사까지 대상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친환경을 우선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급반전 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후 정보 공개 규정을 10년 만에 개정하겠다고 밝혔고,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 지명자도 3월 초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기업들이 앞으론 기후 리스크 정보를 숨겨서는 안 될 것"이라며 정보의 비교가능성과 일관성을 강조했다. 이어 같은 달 상장기업의 기후변화 정보공개 관련 규정 중 개정이 필요한 사항을 공개했는데, 90일간 공개 의견 수렴 후 이를 개정안에 반영할 계획이다.
이 날 발표된 15개 수정필요 사항에는 기후정보 공시를 연례 정기 보고서에도 포함할지 여부, 기후 리스크 정보를 계량화 하는 방법, 감사를 위한 필수 자료로 기후 리스크 분석 정보 제출의 의무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의하면, "이날 SEC가 규정 개정을 위한 피드백 수렴에 들어가면서 수정이 이뤄질 부분들을 사실상 공개했다"며 "기업들에 기후변화 대응의 책임을 부여하겠다는 가장 강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SEC 위원장 권한대행도 "지금은 기후 정보를 기업들로부터 어떻게 얻을지 집중해야 할 때로 기후와 ESG를 SEC의 규정틀에 반영하고 있다”라고 밝혀, 규정 변화의 방향을 명확하게 했다. 주주제안에 관여하는 SEC의 규정 변화는 향후 주주총회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의 반발이나 국제ESG기준과의 협력도 예상된다.
국내에서도 ESG관련 제도가 변화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기업공시 제도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ESG관련 정보공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기로 했다. 먼저 정보공개 의무화가 시행된 G(지배구조)와 더불어,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2030년부터는 전체로(코스닥제외) 확대한다는 것이 골자다. 또한, 국내 약 300개 기업의 대주주로서 시장영향력이 큰 국민연금도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등을 발표하면서 각 기업의 ESG 수준을 평가하고, 총 자산의 50%까지 ESG를 고려해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환경부도 최근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EU 분류체계 및 ISO 분류체계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하여 한국형 녹색금융 분류체계(K-Taxonomy)를 개발 중이다. 한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11년 만에 ‘ESG 모범규준’ 개정안을 마련했다. ESG 모범규준은 상장회사들이 ESG 경영을 하려면 어떤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나열한 일종의 지침서이자 상장사를 대상으로 매년 시행하는 ESG평가의 근거다. 상술한 국내의 변화도 해외 ESG 규정 도입의 배경처럼 정확하고 비교가능한 ESG정보를 시장에 제공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러한 국내외 ESG규정 변화는 우리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서 언급한 해외 ESG정보공개 규정의 경우, 해당 국가내 법인이나 공장을 설립한 기업은 물론이고, 해외법인이나 기업과 거래 관계가 있는 경우 ESG 관련 정보를 제공하도록 요청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ESG 성과를 비교가능하게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올바른 지표들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예컨대, 친환경 분류체계에 따른 보유 자산의 ESG목표기여도를 따져보거나, 회사의 ESG관련 정책 및 리스크를 점검해 과연 투자자가 요구하는 것과 얼마나 부합되는지 체크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예상되는 규정에 맞게 ESG정보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실질적 개선을 병행한다면 경쟁사 대비 자본조달비용을 낮출 수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 ESG 정보공개의 양이 증가하면서 늘어날 오류 및 불성실과 누락 관련 시비에 대비해야 하고, 회사에 맞는 적절한 개선 및 공개 범위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자의 고민이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ESG정보 요구가 빨리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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