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죄의 기소 남용과 무죄 판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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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에서 비서실장 등을 지낸 이병기, 현기환, 안종범 등이 직권을 남용해 특조위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업무에 관한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실무를 맡은 공무원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면서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죄로 불구속 기소한 사건에 대해 1심 법원이 엊그제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들은 2020년 5월에 불구속 기소됐으니 2년 반 만에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런 뉴스를 전해 들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무죄판결을 받았구나 하고 흘려듣기 쉽다. 하지만 이병기 안종범 등은 수사를 당하고 기소되어 1심 재판을 받을 동안 변호사를 고용해서 힘든 투쟁을 해야만 했다.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이 감당한 변호사 비용은 적어도 수억 원에 달할 것이다. 이들의 수난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검찰은 항소할 수 있고 2심에서도 무죄가 나오면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이들은 계속 변호사 비용을 지출해야만 한다.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가 나오면 검찰이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다. “대법원의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범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직권남용죄와 권리행사방해죄는 구성요건이 너무 추상적이라서 과거에는 이것을 들어서 검찰이 기소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 박근혜 정부 시절의 고위직을 직권남용죄로 수사하고 기소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장, 정무수석, 대법관 등이 직권남용죄 등 여러 죄목으로 기소됐다. 하지만 직권남용죄로 기소한 경우는 대부분 무죄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무죄판결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당사자들은 수억 원에서 10억 원이 넘는 변호사 비용을 감당해야만 했다. 검찰이 기소권을 남용한다는 비판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같은 기소권 남용은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을 내걸고 이루어졌다. 엊그제 무죄판결이 나온 세월호 특조위 방해 혐의 사건이 기소된 시점은 2020년 5월이며, 당시 검찰총장은 윤석열이었다. 이보다 앞선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을 할 때 기소가 이루어졌다. 검찰은 독립적인 기구이기 때문에 이런 기소는 청와대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법무장관에게 지시할 수 있고 법무장관은 검찰총장에 대해 개별사건에 대해 수사를 지휘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법체계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무리한 수사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
박근혜 정부의 고위직에 대해 이처럼 직권남용이니 뭐니 하는 죄목을 걸어서 기소한 민주당 정권은 대선에서 실패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검수완박법’을 통과시켰고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종료를 며칠 앞두고 이 법안에 서명을 했다. 자기들은 전 정권 사람들을 직권남용죄를 걸어서 제멋대로 기소하더니 이제 정권을 내놓게 되니까 검찰의 수사권을 아예 박탈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참으로 구차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악순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직권남용죄로 전 정권을 기소했던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어 역시 전 정권하에 있었던 탈원전 등 여러 가지 정책 결정과 집행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제 문재인 정권의 고위직과 공무원들을 직권남용죄로 기소할 기세다. 하지만 직권남용죄는 다른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죄목이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한 것(abuse of power)은 탄핵의 사유는 되지만 기소 대상이 아닌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직권남용죄가 요술 방망이처럼 쓰이는 우리나라이지만 이 죄목이 적용되지 않는 공무원 집단이 있다. 바로 검찰이다. 기소편의주의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영미법계에선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면 검찰은 원칙적으로 항소를 할 수 없다. 그것이 이중처벌 금지 원칙(Double Jeopardy Rule)이다. 대법원까지 상고를 보장하는 3심제는 피고인을 위한 보장이지, 검찰을 위한 보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 등 대륙법계에선 1심 무죄 판결에 대해 이론적으로 검찰은 항소를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1심에 무죄 판결이 나와도 검찰이 대법원까지 무조건 항소/상고해서 재판결과에 관계 없이 당사자를 완전히 파멸시키는 경우는 적어도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나라에선 우리를 제외하곤 보기 드물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비례대표로 나와 함께 당선됐던 박선숙은 이른바 리베이트 사건으로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으나 결국 무죄가 확정됐다. 검찰의 수사, 영장 청구와 영장 기각, 불구속 기소와 1심 무죄, 검찰 항소와 2심 무죄, 검찰 상고와 대법원 무죄까지 국회의원 임기 4년 내내 고생을 했다. 박선숙 의원이 변호사 비용으로 얼마나 지출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4년 동안 받는 급여를 한 푼 안 쓰고 모으면 3억 원이 조금 넘는다. 영장실질심사에서 대법원 상고심까지 가는데 들어가는 변호사 비용은 얼마나 됐을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생각해 보기 바란다.
검찰권을 남용했다는 이명박 정권하의 검찰도 직권남용죄를 남용하지는 않았다. 직권남용죄가 전성기를 구가한 시절은 문재인 정부 시절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윤석열 정부를 검찰공화국이라고 부르는데, 적어도 민주당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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