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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의 ‘판당고’ - 볼턴 회고록에 드러난 북한 비핵화 협상의 민낯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7월07일 10시06분
  • 최종수정 2020년07월07일 11시19분

작성자

  • 장성민
  •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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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그 일이 있었던 방』 (The Room Where It Happened)이 출간 일주일 만에 79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조만간 판매 부수가 100만 권 (밀리언셀러)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화제를 낳고 있는 볼턴의 회고록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부분 중의 하나는 바로 2018년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으로부터 시작된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과정이다. 볼턴이 백악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재직했던 2018년 3월부터 18개월 동안의 기간은 연쇄적인 남·북·미 정상들 간의 톱다운 외교로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대전환기였다. 하지만, 이후 북미 핵협상은 장기간의 교착 상태에 빠졌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북미 핵협상의 최일선에서 정책 및 전략 수립과 집행을 총괄해온 볼턴 전 보좌관은 이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남·북·미 정상 간의 연쇄적인 양자 정상회담 및 3자 회동은 왜 실패했는가? 이 협상에 임하는 각국 정상들의 기본 입장과 전략은 무엇이었나?

 

볼턴은 이 책에서 북미 간 협상을 스페인 춤인 ‘판당고’(fandango: 본래 캐스터네츠를 들고 추는 스페인 전통춤을 의미하지만, 어리석거나 쓸모없는 행동이나 물건을 의미하기도 한다)라고 칭한다. 그는 “이 모든 외교적 ‘판당고’는 한국의 창조물(South Korea’s creation)이었다”며 “김정은이나 미국의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어젠다와 보다 관련이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북한 비핵화 조건에 대한 한국의 이해는 근본적인 미국의 국익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며 “그것은 실질적인 내용이 아니라 위험한 연출이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권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미끼로 미국을 끌어내서 북미 핵협상을 시작하고, 이를 통해 대북제재 해제와 체제보장 및 경제적 지원, 한미연합훈련 중단 및 주한미군 철수 등과 같은 북한의 목표를 이루는 것을 돕는 ‘이중플레이’를 했고, 미국이 여기에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한편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북미정상회담이라는 극적인 이벤트를 통해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자신의 외교적 치적을 홍보하겠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앞선 나머지 충분한 준비나 내부 조율 없이 한국의 제안을 수용해서 김정은을 만났고 결국 비핵화 협상이 실패했다고 파악한다.

또, 볼턴에 따르면, 애초에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김정은은 비핵화를 진전시킬 미국의 협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자신의 재선만을 생각하는 트럼프의 독단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측면을 자극해서 최대한 유리한 협상 결과를 이끌어내는 전략에만 집중하다가 협상 결렬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결국, 볼턴은 이 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치적으로 자랑해 온 북미 핵협상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트럼프의 대북 외교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남·북·미 정상 간의 북한 비핵화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협상의 본질적 내용보다는 각자의 독립적인 정치적 필요성과 이해관계에 따라 진행된 ‘공허한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고,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판당고’

 

우선, 볼턴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수차례 홍보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북한과의 ‘톱다운 정상외교’에 나서도록 적극적으로 추동했다고 주장한다.

 

볼턴은 1차 북미정상회담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인물은 김정은이 아니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는 “(2018년) 3월에 집무실에서 정 실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만나자는 김 위원장의 초청장을 건넸고 트럼프 대통령은 순간적인 충동으로 이를 수용했다”며 “역설적으로 정 실장은 나중에 김 위원장에게 먼저 그런 초대를 하라고 제안한 것은 자신이었다고 거의 시인했다”고 전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과정을 한국이 창조한 ‘외교적 판당고(fandango)’로 파악하는 볼턴은 이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다음 날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풍계리 핵 실험장 폐쇄를 포함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했으며, 또 “(자신이) 김정은에게 1년 안에 비핵화하라고 요청했고, 김정은이 이에 동의했다”고 전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보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 대통령의 ‘1년 내 비핵화 보증’을 믿고 미국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 임했지만, 북한은 미국의 ‘비핵화 방식’을 거부했다. 그리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이라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거듭 주장했다. 이후 문 대통령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는 점만 반복할 뿐, 그것이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인지 아니면 미국이 요구하는 CVID(Complete Verifiable Inevitable Disarmament)인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애초부터 없었던 얘기를 가공한 것인지, 아니면, 김정은의 ‘조선반도 비핵화’ 구호에 속았거나 알면서 ‘묵인’한 것인지, ‘강한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면서 협상의 끈을 이어가려는 문 대통령의 집요한 노력은 결국 볼턴의 맹렬한 비판에 직면한다. 그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며칠 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문 대통령의 ‘조현병 같은, 정신분열적(schizophrenic) 생각’을 전했다”고 원색적으로 혹평했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행동 대 행동 제안(action for action formula: 북한이 핵 프로그램 중 일부를 포기하면, 미국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면서 단계별로 비핵화를 하자는 제안)을 미국이 거절한 것은 옳았다고 하면서도, 영변을 해체하려는 김정은의 의지는 아주 의미 있는 첫걸음으로 북한이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단계에 접어든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 것을 두고, 볼턴은 “명확히 정의된 적이 없는” 김정은의 영변 해체 제안 자체가 ‘행동 대 행동 제안’인데, ‘행동 대 행동’은 안 된다면서 영변 해체 제안은 높게 평가한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

 

또한, 볼턴은 2019년 6월 남·북·미 정상 판문점 회동에 앞서 열린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판문점이나 미 해군 함정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히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끼를 물지 않고, ‘북한 핵무기를 제거하는 협정이 있은 후에 또 다른 정상회담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볼턴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회담 말미에 “내가 서울로 돌아가면 북측에 6월 12일과 7월 27일 사이에 3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북측에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든 괜찮지만 사전에 협정이 있어야만 된다”고 답했다. 여기서 문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의 진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못을 박아 놓고, 정상 간의 만남을 연출하는 이벤트를 통해서 주목받기 좋아하고 즉흥적인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해제 등 일방적 양보를 할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쌍방의 입장을 고려한 ‘중재자’라기 보다는 일방에 기울어진 ‘대리자’의 면모가 또 한 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볼턴의 회고록이 역설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노력이 일정한 역할을 했음을 입증하는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재자’란 협상 당사자들 간의 입장 차를 조율하면서 타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존재를 지칭함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정의(定意)’, 비핵화 의제 및 실천 방안에 대한 조율 등에 있어서 어떠한 긍정적 기여도 하지 못했다. 대신, ‘북한의 확고한 비핵화 의지’만을 무슨 교시(敎示)라도 되는 듯 맹신하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합의를 위한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 내기 위한 이벤트 연출에만 골몰해 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통미봉남’(通美封南)과 나홀로 왕따 외교였다.

 

볼턴은 이 책에서 북미 핵협상의 ‘중재자’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가 북미 정상 간 만남의 주요 이벤트마다 북미 양측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참석을 애걸한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볼턴은 “문 대통령은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 동참하기를 마지막까지 원했다”며 “이런 구상을 무산시킨 것은 북한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이 백악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건 북미 회담이고 남한은 필요없다고 잘라 말했다”며 “북한이 (남북미 간) 3자 회담엔 관심 없다고 한 것이 트럼프와 김영철 간 만남의 유일한 좋은 소식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2019년 6월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과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기를 바랐으나 문 대통령은 완강하게 참석하려고 했고 가능하면 (남북미) 3자 회동으로 만들려고 했다”면서 그 과정을 자세히 기술했다.

 

볼턴에 따르면, 판문점 회담 당일인 6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은 여러 차례 문 대통령의 참석을 거절했다. 문 대통령은“김정은이 한국 땅에 들어섰을 때 내가 없으면 적절하지 않아 보일 것”이라면서 “김정은에게 인사를 하고 그를 트럼프에게 넘겨준 뒤 떠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문 대통령 생각을 전날 밤에 타진했지만 북한 측이 거절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나는 문 대통령이 참석하길 바라지만 북한의 요청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애둘러 거절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그간 대통령이 DMZ를 방문한 적이 많지만 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이 함께 가는 것은 처음”이라며 계속 동행을 원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서 “김정은에게 할 말이 있고 경호처가 일정을 조율하고 있어 그들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문 대통령에게 “나를 서울에서 DMZ로 배웅하고 회담 후에 오산 공군기지에서 다시 만나도 된다”고 또 한 번 ‘3자 회동’을 거절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DMZ 내 관측초소(OP 올렛)까지 동행한 뒤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결정하자”고 했고, 결국 판문점 자유의집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을 안내함으로써 남·북·미 정상 간 3자 회동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그 시간은 4분 정도에 불과했다.

 

 

* 비핵화 협상보다 사진 촬영과 언론 반응에 골몰한 트럼프

 

볼턴은 북미 정상외교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은 협상의 본질적 내용보다는 언론의 주목을 끄는 데 있었으며, 대북 외교는 완전한 실패라고 규정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세 차례 만남에서 “사진 촬영과 언론 반응에 더 신경을 썼다”며 “그런 회담이 미국의 협상 입장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거의 혹은 전혀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는 엄청난 주목과 많은 것을 얻었지만, 미국 자체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은 전략적 실수”라고 비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관계에서도 개인적인 정치적 이익을 국가적 전략과 국익보다 앞세웠던 것처럼,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자신의 홍보와 정치적 이익에만 골몰하면서 미국의 국익은 뒤로 밀린 북미 대화의 민낯을 볼턴은 이 책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볼턴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게 ‘낚였다’(hooked)고 비판했다. 그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정상회담을 갖는 데 필사적이었다”면서 “우리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사령관인 김정은에게 트럼프 대통령과 자유로운 회담을 제공함으로써 그를 정당화하고 있었다”며 “나는 김정은을 만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열의에 가슴이 아팠다”고 썼다. 또 그는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원한 것을 가졌고,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원한 것을 가졌다”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관에 대한 비대칭성을 보여줬다. 그는 개인적 이익과 국가적 이익을 구분할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볼턴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을 놓고 ‘브루클린 다리(Brooklyn bridge)를 판 것’(이 표현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조지 C 파커라는 유명한 사기꾼이 자신이 소유하지도 않은 브루클린 다리와 매디슨 스퀘어 가든 등 뉴욕의 명물을 가짜로 팔며 사기행각을 벌인 데서 유래한 것으로 ‘한강물을 판 봉이 김선달’처럼 남을 속이는 행위를 일컫는다)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상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분명히 금지돼 있지만 마치 북한이 핵실험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구도가 설정돼 버렸음을 꼬집은 것이다. 그는 “김 위원장은 오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포함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으면서 안보리 결의를 위반할 수 있었다”며 “ICBM을 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브루클린 다리를 팔았지만, 트럼프는 이를 (김정은에게 속아 넘어간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결정과 관련해서 볼턴은 “김정은이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축소하거나 폐지하기를 원한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에 대해 장군들을 무시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면서 심지어 김정은에게 “미국이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게 해줬다”는 말까지 했으며 이에 “김정은은 환하게 웃었다”고 전했다.

 

2019년 2월 27일부터 이틀 동안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과 관련해서도 볼턴은 코언 청문회 개최라는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개인적인 상황과 언론의 관심을 염두에 두고 ‘노딜(no deal)’ 결정이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당시 빅딜과 스몰딜, ‘협상장 밖으로 걸어 나가기’ 등 세 가지의 선택지를 가졌는데, 이 가운데 스몰딜은 제재 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즉시 거부했고, 빅딜은 김정은이 핵 포기에 대한 전략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뤄지지 못했으며, 남은 것은 협상장 밖으로 걸어 나가는 옵션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신에게 등을 돌린 옛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의 청문회를 보느라 밤을 새운 트럼프 대통령은 짜증이 난 상태였고, 어떻게 하면 청문회 기사에 비해 더 큰 기사가 될지에 대해 궁금해한 후에, 보다 극적이고 다른 협상에서 지렛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걸어 나가기’(no deal)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또 볼턴은 회담이 결렬된 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비행기로 북한까지 바래다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김 위원장이 웃으면서 “그럴 수 없다”고 말한 사실도 공개했다.

 

2019년 6월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의 결정도 사전에 어떤 참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볼턴은 회고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이 3차 정상회담을 요청했다’, ‘김 위원장이 나를 만나기를 몹시 원했다’고 말한 데 대해 “이 모든 것은 허튼소리이다. 만나기를 몹시 바란 쪽이 누군지는 확실하다”며 실질적 의제 없이 언론의 주목과 개인적 이해관계를 위해 국익이 걸린 국가적 결정을 아무런 협의나 준비 없이 내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이고 독단적 결정을 비판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부터 북한과의 협상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대신 자신의 홍보와 개인적 관심에 따른 외교에 집중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전 보좌관에게 “별 내용 없는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승리를 선언한 다음 이 동네를 떠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가 북한과의 비핵화 세부사항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자기 홍보에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또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엘튼 존의 ‘로켓 맨’ CD를 김 위원장에게 선물하는 데 집착했다고 폭로했다. 2018년 7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 이행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김정은을 ‘로켓맨’ 또는 ‘리틀 로켓맨’이라고 불러왔던 자신이 사인한 CD를 건네면서 서로의 친분을 확인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에서 끝내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CD는 전달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마치 폼페이오 장관이 김 위원장을 못 만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며 “이후에도 로켓 맨 CD 전달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우선 순위였다”고 회고했다.

 

한편, 이 책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동맹의 전략적 중요성은 간과한 채, 오로지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미연합훈련과 주한미군 주둔을 바라보고 강한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한미연합훈련 축소 내지 폐지를 희망하자, 연합훈련을 가리켜 ‘도발적이고 시간과 돈의 낭비’라며 양측이 선의(善意)로 협상하는 동안 훈련은 없을 것이라며 ‘워게임(war game) 중단’을 선언했다고 밝혔다. 이에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이 자신에게 “6개월 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중국의 항의 때문에 그 훈련들을 거의 취소할 뻔했다”는 비화도 덧붙였다. 또 싱가포르 회담 1개월 후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평양 방문에서 빈손으로 돌아오자, ‘짜증’이 절정에 달한 트펌프 대통령은 전화 보고를 받던 중 ‘전쟁 연습'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왜 한국전에 나가 싸웠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여전히 한반도에 그토록 많은 병력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계속 중얼거리면서 “우리는 얼간이(chumps)가 되는 것을 끝낼 것”이라고 했다고 볼턴은 전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하노이에서 너무 까다롭게 굴었던 게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워게임‘에 단 10센트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과 요구는 더욱 구체화했고,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볼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4월 백악관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의 대미 TV 수출로 미국이 연 40억 달러를 잃고 있으며 주한미군 기지 비용으로 연 50억 달러를 지출한다”며 한국에 더 많은 분담금을 압박했다. 또 그해 7월 볼턴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차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선 “80억 달러(일본)와 50억 달러(한국)를 얻어내는 방식은 모든 미군을 철수한다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볼턴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추가 보고를 받던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돈 달라고 하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라며 “(북한) 미사일 때문에 50억 달러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대목도 등장한다.

 

 

* 핵 보유를 고수하며 결과를 낙관한 김정은의 전략적 판단 실수

 

볼턴은 이 책에서 북한 김정은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핵 포기를 배제한 채, 트럼프 대통령을 공략해서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와 보상을 이끌어내는 단일한 전략을 갖고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아무런 합의 없이 ‘걸어 나갈 수 있다(no deal)’는 미국의 협상 전략을 간파하고 이에 재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합의에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구체적으로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미국이 제시한 세 가지 제안을 모두 거부하며 회담 결렬을 자초했다고 볼턴은 주장했다. 김정은이 ‘영변 핵시설과 핵심 대북제재 전체를 맞바꾼다’는 전략을 집요하게 고집하다가 결국 빈손으로 평양에 돌아갔다는 것이다.

 

우선 북한은 ‘비핵화 로드맵 및 비핵화에 대한 정의(definition) 합의’와 이에 대한 미국의 보상 시작을 골자로 한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실무안’을 거부했다. 볼턴은 이를 “마치 북한이 써준 듯한 제안이었다”고 맹비난했음에도 비건 대표가 ‘북미 합의 초안’을 북한에 독단적으로 건네고 실무협상에서 북한을 대상으로 전방위 설득에 나섰지만, 김정은은 이 제안을 정상회담에서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으로 북한은 자신들이 보유 중인 핵 관련 무기 및 시설 리스트를 신고하면 보상을 줄 수 있다는 백악관의 ‘빅딜 안’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볼턴에 따르면, 김정은은 회담 전날 만찬과 단독회담에서 ‘영변 폐쇄-제재 해제’ 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서 영변 핵시설을 내놓는 것이 얼마나 큰 양보인지에 대해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영변 카드 외에) 다른 것을 더할 수는 없느냐. 예를 들면 제재 전체의 해제가 아닌 일부 완화 같은 것 말이다”라고 물었다. 볼턴은 이 순간이 회담 중 최악이었다면서 “만약 김정은이 이에 대해 ‘예스’했다면 미국에 재앙과도 같은 거래를 하게 됐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행히도 김정은은 “그렇게 되면 나는 없는 게 없다”고 답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미사일 제거”를 제안했지만 김정은은 “단계적으로 간다면 결국엔 포괄적인 그림으로 나아갈 것”이라면서 ‘영변-제재 해제’ 방안을 재차 고집했다.

볼턴은 “이 같은 ‘실랑이’가 이후로도 계속됐으며, 끝내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가) 막다른 길에 도달했고, 현 만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불가하다”고 인정하면서 하노이 결렬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또, 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이 ‘진전이 있었다’는 ‘하노이 성명’이라도 내고 싶어했다고 주장했다.

 

볼턴은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의 감정에 호소하는 영리한 작전을 폈지만 먹혀들지 않았고, ‘아무런 합의 없이 걸어 나갈 수 있다’는 미국의 협상 전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김정은은 영변만 내놓으면 트럼프가 양보할 것이라고 착각했지만, 트럼프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영변 외에 추가로 내놓을 것이 없냐”는 트럼프의 질문에 “영변이 북한에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아느냐는 말만 반복”하다가 결국 협상 타결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볼턴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북미 비핵화 협상이 ‘북한 비핵화’라는 본질적 내용에 대한 진정성이나 충분한 준비 없이, 남·북·미 정상들 각자의 개인적 욕심이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집착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기루 같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앞장서 전파하면서 남북 간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정권 강화에 이용하는 데 주력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아 재선되는 데 골몰했으며, 김정은은 이런 트럼프를 이용해 톱다운 방식의 협상으로 대북제재 해제를 얻어내고 핵을 보유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 비핵화는 실종되고 한반도는 다시 북한이 군사적 행동을 위협하는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볼턴이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들은 대북 강경파로서 그가 가진 정치적 시각과 사실관계 확인 및 주관적인 해석으로 인한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남·북·미 정상들이 각자의 정치적인 계산을 앞세우면서 문 대통령은 명확히 정의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과도하게 보증하면서 계속해서 트럼프 대통령을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장에 끌어들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내용보다 사진 촬영과 언론 반응에 더 신경을 썼으며, 김정은은 협상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요구로 일관한 정황들이 북한 비핵화 협상의 실패를 가져왔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6월 판문점 미·북 정상회동 직후 ‘핵 동결’로 북핵 협상을 종결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볼턴이 회고록에서 밝힌 것처럼, 향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재개됐을 때, ‘북한 비핵화’와는 거리가 먼 정치적 담합으로 한반도와 우리 국민이 또다시 핵무기의 공포 속에 떨게 될지도 모른다. 또, 틈만 나면 왜 한국을 지켜주느냐면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주한미군 철수를 입에 달고 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회심의 카드로 주한미군 감축을 결정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문재인 정권이 또다시 ‘가짜 비핵화 쇼’에 올인하는 것을 막고, 지난 70년 가까이 전쟁 없는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준 든든한 울타리이자 대한민국의 3대 기둥 중의 하나인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지켜내야 하는 핵심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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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7월07일 10시06분
  • 최종수정 2020년07월07일 11시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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