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對)중국 전략: ‘경쟁적 접근’ 함의와 파장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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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0-7월호-제12호] (7.1)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 |
전 세계는 지금 코로나19 팬데믹과의 전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 파장은 BC(Before Corona, 코로나 이전)와 AC(After Corona, 코로나 이후)라는 표현이 등장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국제정치적으로 이전에는 상상치 못했던 여러 가지 변화들을 초래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초래한 국제질서의 변화는 매우 다양하지만, 한국의 안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사태로는 미중 간의 패권경쟁 가속화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는 이미 그 이전부터 진행 중이던 미중 패권경쟁을 더욱 악화시킬 전망이다. 미중 갈등 심화는 글로벌 리더십의 약화와 탈-G2 현상 가속화로 이어질 것이다. 코로나19 발생 원인론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은 기 진행 중이던 무역전쟁에서 환율전쟁, 채권전쟁으로 확전되고, 기술패권경쟁을 넘어 여론전, 심리전 등 전방위적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코로나19와의 전쟁 와중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향후 전략 및 정책 방향을 담은 보고서를 공개했다. 동 보고서에서 미국은 중국에 대해 협력보다는 공개 압박과 봉쇄전략 등의 ‘경쟁적 접근(competitive approach)’을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사실상 양국 간 ‘신냉전’을 선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1)
뿐만 아니라 미국은 코로나19에 대한 중국 책임론과 안보 위협 등을 거론하며, 경제번영네트워크(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를 비롯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구상을 가속하며 동맹의 참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코로나19를 계기로 미‧중 간 디커플링 가능성 우려는 더욱 커졌으며 세계는 반중국과 친중국 진영으로 양분될 가능성이 점차 커지는 상황이다.
백악관 보고서의 ‘경쟁적 접근’ 선언
미국의 기본적인 대중국 인식은 지난 40여년간의 대중 포용정책이 중국을 긍정적인 방향—개방된 체제, 기존 국제질서 순응, 법치, 민주주의 가치 수용 등—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힘만 키워서 결국 오늘날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로 만들었다는 실패론에 근거한다. 즉, 중국을 국제경제체제 속으로 견인하고 중국을 포용하면 기존 민주주의 규칙기반 국제질서에 순응하도록 해서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못된 전제였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관여 정책 하에서 최대의 혜택을 받은 국가이지만 갈수록 기존 국제체제와 룰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자신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창출하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시진핑의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중국몽’ 슬로건을 앞세워 대외적으로는 더욱 공세적인 외교, 대내적으로는 더욱 강화되는 권위주의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결국 시진핑의 이러한 정책은 오히려 미국에게 대중국 압박을 강화할 모든 구실을 제공했고, 공화‧민주 초당파적인 대중국 강경론으로 귀착된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대중국 인식은 2017년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에 반영되었고, 2018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유명한 허드슨연구소 연설, 그리고 최근 이를 총정리한 백악관 보고서로 나오게 된 것이다.
백악관의 중국 전략 보고서는 우선 지난 40여년간 미국의 대중국 관여정책에 대한 실망감으로 시작하고 있다. 즉, 미국은 중국에 대한 심층적인 관여가 정치‧경제의 근본적 개방을 초래하고, 중국이 이를 통해 건설적이고 책임 있는 이해상관자로 변모하기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이 제기하는 도전은 전방위적이다.
첫째, 우선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취하는 국가주도 보호무역주의와 국가자본주의의 위험성이 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 되었을 때 국제사회는 중국이 경제개혁을 통해 시장경제 및 자유무역 체제로 전환되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미 무역대표부(USTR)의 판단에 의하면 중국은 거래하는 미국 기업에 대해 기술이전 강요, 미국 기업들에 대한 기술규제, 중국 기업들에 대해 미국 기업들로부터의 기술획득 강요, 불법적인 사이버 침해 묵인 및 지원 등 불공정한 관행을 지속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 구상도 국제적인 통상 표준과 관행을 벗어나 매우 불투명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둘째, 미국적 가치에 대한 도전이다. 중국은 이미 2013년 시진핑 주석의 연설에서 미중관계를 ‘장기적인 갈등과 협력의 체제경쟁’으로 규정하고 결국 자본주의는 망하고 사회주의는 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진핑 시대 들어 부쩍 강조되기 시작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에다 민족주의, 일당독재, 국가주도 경제, 공산당에 대한 개인적 자유의 복속 등을 특징으로 한다. 국제적으로는 ‘인류운명공동체’ 건설이라는 미명하에 중국 나름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추진하려 한다.
중국의 당-국가체제는 다양한 프로파간다 수단을 광범위하게 활용할 뿐 아니라 신장-위구르 지역 같은 소수민족 지역에 대한 탄압, 종교적 박해도 만연한 현상이다. 중국 공산당이 주도하는 각종 전위조직들은 미국 내 대학이나 싱크탱크, 언론인, 학자들은 물론 주‧연방 공무원들을 친중국 세력으로 포섭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셋째, 안보적 도전이다. 중국 공산당은 타국 내정에 대한 불간섭,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을 주장하지만 황해(서해), 동‧남중국해, 대만해협, 중-인 국경지역 등에서 선제적이고 강압적인 군사‧준군사 행동을 실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군융합(Military-Civil Fusion) 전략에 따라 중국 군대는 민간분야의 자원에 제약 없이 접근이 가능하다. 글로벌 정보통신 기술 산업을 지배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국가사이버안보법(National Cyber Security Law) 같은 불공정‧차별적 관행에 반영돼 있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 정보통신 관련 사업을 하는 외국기업들은 중국공산당이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데이터 현지화 조치를 따르라고 강요받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우선 미중관계의 본질이 전략적 경쟁(strategic competition)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미국의 국익을 방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은 이제 중국 공산당이 오래전부터 내부적으로 규정했듯이 미중관계가 근본적으로 ‘강대국 경쟁(great power competition)’이라는 점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 공산당이 법치(rule-of-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by-law)를 동일시하는 것을 거부하며, 대테러와 압제, 대의정치와 전제정치, 시장기반 경쟁과 국가주도 중상주의를 등가로 취급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미국은 중국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규칙기반 국제질서를 더 약화시키려는 추가적인 행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대중국 경쟁적 접근은 불가피하게 중국에 대한 관여도 포함하겠지만, 미국의 관여는 선별적이고 성과지향적 방식으로 이행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은 미국의 네 가지 국가이익을 수호하고 확대하는 데 적용될 것이다.
한국에 대한 함의와 대응
미‧중 전략경쟁이 아시아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군사안보적 충돌의 위험성이다. 현재 미중 간에 가장 첨예하게 충돌할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는 남중국해, 대만, 홍콩, 북한 등이 꼽힌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와 인종차별 시위로 국내정치의 홍역을 치르는 동안 남중국해에서의 군사활동을 조용히 강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국면에서 홍콩은 베이징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계기로 아시아의 핵심 안보문제로 급격이 떠오르고 있다. 지난 5월 28일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는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초안이 표결 처리되었다. 이로써 중국은 1997년 홍콩 회귀 당시에 천명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 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한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 수준 높은 자치를 누린다는 고도자치(高度自治)라는 약속을 사실상 폐기했다.
둘째, 경제 분야에서는 미‧중 경제권의 디커플링과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상이 초래할 경제적 파장을 주목해야 한다. 키스 크라크(Keith Krach) 미 국무부 경제성장‧에너지‧환경 담당 차관의 언론 브리핑에 따르면 EPN은 미국 정부가 초안을 준비 중인 경제안보전략(Economic National Security Strategy)의 핵심으로서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미국의 경제 경쟁력 강화, 혹은 미국 경제의 터보차지(turbocharge), 둘째, 미국 자산의 보호(safeguard America’s assets), 셋째, 경제번영네트워크 등이다.
EPN의 내용과 원리는 사실상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을 통한 ‘신뢰하는 파트너’들과의 반중 경제동맹과 개념상 상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PN의 일차적 대상으로는 영국, 호주, 인도,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이스라엘, 대만, 한국, 베트남 등이 거론된다. 요컨대, EPN은 미국 기업들에게 탈중국을 촉구하는 한편, 미국으로의 회귀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 그들의 인력과 생산시설을 좀 더 미국에 우호적인 EPN 참여 국가들로 이전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미‧중 경제권의 디커플링과 EPN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는 시각이 다수 견해이다.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은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미‧중 양국에게는 물론 글로벌 경제 전체에도 부정적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오늘날 대다수의 서구 기업들은 중국의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세계의 대기업들은 중국 이외의 대안이 신뢰할 수 없거나 더 많은 비용이 요구될 경우 중국의 공장을 단번에 폐쇄하지는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의 최대 소비처는 바로 중국이므로 탈중국할 유인이 별로 없다. 따라서 현실은 실제 디커플링, 즉 중국의 공급망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기보다는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China+1’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이 악화될 경우 두 나라 사이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인가?
이는 아주 오래된 질문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숙제와도 같다. 미중 간에는 갈등과 협력이 상시적으로 반복돼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이 성급하게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은 비록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입장이지만 지금처럼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 쪽으로 올인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한국의 외교안보 환경이 지금처럼 불확실한 적이 없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불확실성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장기적으로 중국의 방향성에 대한 의구심이다. 미국은 중국의 변화 가능성에 회의적인데, 과연 우리는 중국이 좋은 방향으로 변할 것이라고 믿는가?
둘째, 트럼프 이후 미국의 향배이다. 금년말 대선에서 트럼프가 낙선한다고 해도 과연 미국이 트럼프 이전, 우리가 알던 미국으로 돌아갈지는 의문이다.
셋째, 6.15 이전으로 돌아간 남북관계의 불확실성이다. 6.15 공동선언을 계승한 것이 판문점선언, 9.19 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이다. 최근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참히 폭파함으로써 한반도의 시계를 6.15 이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로써 북한은 남한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나름대로 전략적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이며, 남북관계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흔을 남겼다.
이런 삼중의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의 안보는 미국과의 동맹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트럼프 이후 미국의 동맹정책도 변화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동북아를 놓고 보면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중국의 지분도 헤아려야 한다. 경제 측면에서는 무역은 중국 중심으로, 금융은 미국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리스크를 주의해야 한다. 갈수록 안보와 경제도 얽혀 안미경중(安美經中)은 더 이상 유지 가능한 외교태세가 아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한국의 대응은 미‧중 사이에서 가능한 한 이슈별로 ‘포지티브 헤징(positive hedging)’ 태세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전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겉으로는 인도-태평양전략을 강조하지만, 다수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걷힐 때까지 당분간은 한국의 입장을 완전히 어느 한 쪽으로 고착시키는 결정을 내리지 말고 상황을 관망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과도한 중국 공급망 의존을 벗어나기 위한 다변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의 선택은 미국 연합 네트워크 대 중국 연합 네트워크 사이의 선택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미국, 중국 가리지 않고 전 세계 모든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지만 선택이 불가피하다면 중국이 아니라 미국 주도의 네트워크가 우리에게 이익이다. 이는 결국은 가치와 체제의 문제로 귀착된다. 한국은 미국식 체제를 버리고 중국식 체제를 따를 용의가 있는가? 미국의 패권이 작동하고 동맹이 유지되는 한 해답은 자명하다. 미국의 네트워크를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갈 길이다. 다만 그럴 경우에 초래될 각종 리스크를 미리 점검해서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ifsPOST>
주1): The White House, “United States Strategic Approach to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May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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