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續)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9> 각하, 유치원생도 9시에 나가는데…(下)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7월09일 16시40분
  • 최종수정 2024년07월04일 17시20분

작성자

메타정보

  • 2

본문

 

 <…우리는 우리를 이끄는 지도자와 그 집단에 대해 야박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들이 힘들어 울어야 국민이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건… 정책이나 전문가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회지도층이 국민보다 힘들지 않고 편하게 살기 때문이다.> (졸저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중)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일찍 일어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서울시장일 때 서울시청을 출입했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한 뒤에 출근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가 몇 시에 출근하는지 체크한 적은 없지만, 해외 출장을 다녀오는 패턴을 보면 대체로 사실인 것 같다. 귀국 비행기 시간을 가능한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잡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천공항 도착 후 여유가 있으면 관사에 들러 샤워하고 출근하고, 여유가 없으면 바로 출근했다. 이 때문에 함께 갔던 하급 공무원들과 출입 기자들의 불만이 꽤 있었는데, 국장급 이상 자기 방이 있는 간부들이야 좀 힘들어도 방에서 자면 되지만 하급 공무원들은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자들도 불만인 게, 분명히 출장 기간(마지막 날)이긴 한데 새벽에 도착했으니 그날 출근을 할지 쉬어야 할지 애매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반반 정도 선택이 나뉜 것 같다.

 

  리더가 모두 MB처럼 부지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각자 자기 스타일이 있는 것이고, 또 출근 시간이 능력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최악의 리더가 '부지런한데 머리 나쁜 사람'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혹자는 정말 별것도 아닌 것 갖고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대통령이 있는 곳이 집무실이지, 집무실이 따로 있냐고 할 수도 있다. (근데 이 말 과거 탄핵당하셨던 분 옹호한 쪽에서 했던 말 같다) 또 대통령 차는 신호대기가 없기에 대통령실 도착까지 10분도 안 걸린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일요일 오전 T맵에서 아크로비스타~삼각지역까지 17분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신호대기가 없다면 10분도 안 걸릴 것이다.)

 

  그런데 벌써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로 304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가장 어이없어했던 것 중 하나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출근을 안 하고 관저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2018년 3월 28일 발표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의혹에 관한 동아일보 기사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세월호가 침몰하던 시간에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기소)은 청와대 관저 침실에 있었다. 국가안보실장이 보고를 하려고 2차례 휴대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받지 않았고, 비서관이 관저 내실에 들어가 박 전 대통령을 침실 밖으로 불러낸 뒤에야 국가안보실장이 전화 보고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조 골든타임은 이미 지난 시점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에 따르면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는 참사 당일 오전 9시 19분경 TV 뉴스 속보를 보고 세월호 사고를 처음 알게 됐다. 오전 8시 52분 세월호가 30도 가량 기울어지고 나서 27분이 지났을 때였다. 오전 10시경 김장수 전 대통령국가안보실장(70·불구속 기소)은 상황 보고서 1보 초안을 전달받고 박 전 대통령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받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은 안봉근 전 비서관(52·구속 기소)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에게 보고될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말했다. 신인호 위기관리센터장은 오전 10시 12∼13분 상황병에게 보고서를 관저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상황병은 보고서를 들고 관저까지 뛰어갔다. 도착할 때까지 7분이 걸렸다. 보고서는 경호관을 거쳐 내실 근무자인 김모 씨(71·여)에게 전달됐다. 김 씨는 평소처럼 보고서를 침실 앞 탁자에 올려놨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보고서를 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안 전 비서관은 오전 10시 12분경 청와대 본관에서 차를 타고 관저로 갔다. 10시 20분경 도착해 관저로 들어간 안 전 비서관은 침실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을 수차례 불렀다. 그 소리를 듣고 침실 밖으로 나온 박 전 대통령에게 안 전 비서관은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합니다”라고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래요?”라고 말한 뒤 침실로 들어가 김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전 10시 22분경이었다. 앞서 오전 10시 17분경 108도까지 기울어 전복된 세월호는 오전 10시 반 끝내 침몰했다. …(중략)…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관저에 집무실은 없었다. 전자결재를 할 수 있는 시설과 침실 옆 응접실에 회의할 공간이 있었다고 한다. (후략)>

 

  참사에 대한 대처도 너무 무능했지만, 당시 사람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실망했던 것은 어떻게 휴일도 아닌 평일에 출근을 안 하고 관저에 있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출근하든 안 하든 업무 자체는 지장이 없을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근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을 대하는 태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관저가 청와대 안에 있고 근무하는 본관과 가깝다고 해도 집과 일터는 다르다. 임금님도 침실인 강녕전(康寧殿)에서 나와 사정전(思政殿)에서 일했다. 근무 시간도 마찬가지다. 비교 대상이 너무 어마어마하지만, 다음은 조선 임금님들의 하루다.

 

오전 5시: 기상. 죽 한 사발 정도의 간단한 식사.

오전 6~9시: 6품관 이상의 관리들과의 정식 조회인 조참(매월 5, 11, 21, 25일), 조회가 없는 날은 6품관 이상의 신료들과의 회의인 상참(약식 조회), 아침 경연인 조강(朝講), 여러 보고를 듣는 시사(視事) 시간.

오전 9시경: 아침 식사

아침 식사 후~정오: 오전 업무

점심 식사 후 낮 경연인 주강(晝講) 및 오후 업무

오후 6시경 저녁 식사 후 저녁 경연인 석강(夕講), 휴식 및 독서, 경우에 따라 밤 경연인 야대(夜對)

오후 11시경: 취침

 

  이 일과가 경이로운 것은 국가를 책임진 자가 어떤 자세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어떻게 임금님하고 비교하냐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뭐가 다른가? 국가를 책임지고 운영하는 최고 통치자라는 점은 같지 않나. 여야를 가리지 않고 늘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는 말이 나온 것은 역대 대통령들이 제왕처럼 군림했다는 방증이다. 권력은 왕처럼 행사하면서 책무는 버겁다고?

중국 북송 때 정치가인 범중엄(范仲淹)이 쓴 악양루기(岳陽樓記)에 선우후락(先憂後樂)이라는 말이 있다. ‘천하의 근심보다 앞서 근심하고 천하의 즐김보다 나중에 즐긴다’란 뜻인데, 늘 백성을 보살피고 걱정하는 위정자의 자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왕도 사람인데 세종대왕이 아니라면 스스로 좋아서 저런 살인적인 일과를 지켰을 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대체로 유지돼 온 것은 한 나라를 책임진 자라면 어떤 마음과 자세로 국정에 임해야 하는지 대부분 임금님이 동의하고, 또 신하와 백성이 원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9시 출근이라니. 유치원 아이들과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대통령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아마도 그런 탓이 아닌가 싶다. 임금이 태평한 태평성대 봤나. 

<ifsPOST>​ 

2
  • 기사입력 2024년07월09일 16시40분
  • 최종수정 2024년07월04일 17시20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