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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75) 나무의 역설 3: ‘개’로 시작한다고 못났을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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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9월24일 17시00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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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말로 나무나 식물의 이름을 정할 때 원래 종류를 닮았는데 조금 더 작거나 조금 덜 튼튼하거나 즉 조금 못하다고 원래 이름에 붙이는 접두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필자가 파악하고 있는 접두어만 하더라도 ‘개, 물, 산, 좀, 쇠, 돌, 새, 석, 졸, 쥐, 가’ 등 10개가 넘습니다. 여기에 더 비하하는 표현인 ‘쥐꼬리’ ‘거지’ ‘난장이’ ‘벼룩이’ 등을 붙인 이름들도 심심찮게 발견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쓰이는 접두어가 ‘개’가 아닌가 싶습니다. 식물도감 등에서 ‘개’라는 접두어가 붙은 식물들을 필자도 다 알지는 못합니다만, 필자가 파악하고 있는 이름만 하더라도 개나리, 개동백나무, 개망초, 개머루, 개밀, 개별꽃, 개복숭아나무, 개비자나무, 개살구나무, 개서어나무, 개쑥부쟁이, 개양귀비, 개오동나무, 개옻나무, 개이깔나무, 개회나무 등 참으로 많습니다. 나리와는 모양이나 식물의 크기가 매우 달라서 서로 비교가 불가능한 개나리를 별도로 하더라도 그렇지요. 물론 이 중에는 공식 이름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이명으로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포함한 것입니다. (개복숭아나무, 개동백나무 등) 

 

원래 ‘개’라는 접두어를 붙여서 식물의 이름을 붙일 때 우리 조상들은 자신들 가까이에서 늘 보던 것이나, 혹은 이미 자신들이 재배하는 나무나 식물들을 원래 종류라고 생각하고 야생에서 발견하는 것에 이 접두어를 붙인 경우가 제법 많은 것 같습니다. 작거나 못하다는 생각을 염두에 둔 것은 물론이지요. 개살구, 개복숭아, 개머루, 개밀 등이 그런 경우이지요. 이들의 열매는 너무 작거나 단맛이 적어서 식용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요. 

 

사람들이 나무나 식물에서 기대하는 성질을 (특히 독성을) 가지지 않은 종류에도 이 접두어를 붙인 경우도 있는데 개양귀비, 개옻나무 등이 그런 경우인 것 같습니다.

완전히 다른 종류인데 비슷한 쓰임새가 있다고 엉뚱하게 ‘개’라는 접두어를 얻은 나무의 경우는 생강나무와 개오동나무를 들 수 있습니다. 생강나무는 그 열매를 짜서 기름을 얻었는데 그 기름을 질 좋은 동백나무 기름 대신에 쓰는 바람에 강원도 등 북쪽에서 개동백나무라고도 불리고 있지요. 나무는 전혀 다른데 큰 잎이 오동나무와 닮았다고 ‘개’자를 접두어로 얻은 개오동나무도 억울한 케이스인 것 같습니다.​ 

 

여하튼 대체로 조금 못하거나 야생의 종류에 ‘개’라는 접두어를 붙인다고 하지만, 그런 ‘개’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것이 적당하지 못한 종류들도 있습니다. 오히려 더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꽃의 경우는 더 예쁘기도 하고 잎을 더 오래 간직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풀꽃이나 나무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첫 번째는 개별꽃이라는 녀석입니다. 봄에 피는 별꽃과 개별꽃은 모두 작은 꽃을 피우는 식물들인데, 필자가 봄에 이 꽃들을 소개하면 누구나 개별꽃을 더 예쁘다고 합니다. 별꽃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하얀 꽃잎을 가진 귀여운 녀석입니다만, 꽃보다는 이리저리 갈라져서 자라는 줄기와 꽃받침이 더 눈에 잘 띄어서 꽃의 사랑스러움을 감상하기가 어려운 녀석이지요. 반면에 개별꽃은 별꽃에 비해 훨씬 더 큰 하얀 꽃잎을 펼치고는 그 위로 내민 수술의 보라색 꽃밥이 각각의 꽃잎 위로 드리우는데 그 모습은 제법 예쁘다는 탄성을 지르기에 충분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예쁜 꽃은 ‘개’라는 접두어를 얻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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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1일 남한산성 개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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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0일 남한산성 개별꽃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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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0일 탄천 지류 야탑천변 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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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 집 화분 속에서 피어난 별꽃

 

그 두 번째는 개망초라는 녀석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개망초라는 존재를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이 녀석은 여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꽃을 피우는 풀꽃이지요. 가늘고 작은 흰 꽃잎을 원 모양으로 빙 둘러 달고는 그 가운데에 흔히들 ‘계란 노른자’라고 표현하는 꽃밥을 잔뜩 안고 있는 꽃입니다. 이 개망초는 망초라는 녀석에 접두어를 붙인 이름인데, 왜 이 꽃에 그런 접두어가 붙었어야 했는지 참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기실 망초는 긴 줄기 위로 참으로 넓고 큰 꽃대를 펼치고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꽃들을 한 무리 피우는 녀석입니다. 약간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키는 크고 꽃은 꽃이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지요. 이 망초라는 녀석은 제거해도 제거해도 다시 자라나는 강한 생명력을 발휘해서 농민들이 ‘이 망할 풀 같으니라구!’라고 언급된 데서 그 이름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 식물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은 좀 지나치다 치더라도, 그 망초에 대비해서 작지만 사랑스러운 꽃들을 피우는 개망초가 ‘개’라는 접두어를 얻은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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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 탄쳔변의 개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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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4일 코이카 개망초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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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태봉산 기슭 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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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8일 탄천의 망초

 

마지막으로 가장 어이없는 사례로 개이깔나무를 소개하려 합니다. 실은 이 나무는 히말라야시다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상록수로서 그 수형이 품위가 있어 거의 모든 대학교 캠퍼스에 심어져 있는 나무이지요. 그런데 이 나무의 잎들이 한 다발씩 모여 나는 모양이 진짜 이깔나무와 닮았다고 이 ‘개’라는 접두어를 얻었습니다. 이깔나무는 소나무와 비슷한 녀석이 가을이면 잎을 떨구고 봄에 새 잎을 갈아입는다고 해서 잎갈나무로 불리다가 발음하기 쉬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소나무 잎을 닮았다고 낙엽 지는 소나무 즉, 낙엽송이라고도 불리지요. 이 나무도 큰 군락을 이루면 제법 콘 모양의 수형을 이루며 자라서 운치가 있는 나무이기는 합니다. 작은 솔방울들이 조롱조롱 달리면 그 모습도 관상의 가치를 높여주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잎을 간다는 사실을 장점이라고 볼 수는 없었기에 이깔나무라는 이름을 붙였을텐데, 그 이름에다 한 다발씩 달리는 잎모양이 비슷한 상록수, 즉, 좀처럼 잎을 갈지 않는 나무인 히말라야시다에 ‘개’라는 접두어를 붙여 개이깔나무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히말라야시다는 솔방울도 제법 큰 계란 모양으로 달려서 이깔나무와는 매우 다른 품종인 것을 알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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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7일 원광대 히말라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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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일 분당 중앙공원 히말라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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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6일 프랑스 몽소공원의 히말라야시다와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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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6일 광주 두리봉 이깔나무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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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일 청계산 이깔나무 (낙엽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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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0일 청계산 이깔나무 (새잎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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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9일 청계산 이깔나무 (위의 낙엽지는 나무들의 푸른 모습)

 

여하튼 ‘개’라는 접두어가 붙었다고 해서 항상 못생겼거나 조금 좋지 않은 성질을 가진 식물이라고 판단하기는 곤란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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