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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망하게 하는 확실한 법칙-혼군 #16-1 : 전한前漢의 창읍왕 유하(BC92-BC52) <H>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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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10월01일 16시50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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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져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둘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끝으로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

 

 

★<26> 곽광을 몰아내려는 상관안 연합세력 모략(BC80) 

 

무제의 유언을 받은 상관걸과 자신의 딸이 소제의 황후가 된 상관안 부자는 이미 존귀한 몸이 되었는데 그렇게 되는 데에는 성덕장공주(=악읍공주,무제의 딸)의 도움이 컸다. 성덕장공주는 애인 정외인이 후작으로 책봉되기를 바랐지만 곽광이 끝내 거절했다. 정외인을 광록대부로 시키기 위해서 소제를 뵙고자 했지만 그 또한 곽광에게 거절당했다. 이 일로 인해 성덕장공주는 곽광을 몹시 증오하게 되었다. 상관걸과 상관안 또한 정외인을 위해 자리를 구해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자 미안하고 침울해 있었다. 

 

이 때 상관걸의 장인이 평소 아끼는 충국이라는 사람이 궁궐의료책임자, 즉 태의감으로 있었는데 이 자가 함부로 궁궐에 난입하며 소동을 부리다가 하옥당하여 죽게 되었다. 사형집핵 기간인 겨울이 이미 다 지나갔으므로 사형집행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성덕장공주는 말 24필을 내고 충국의 죄를 속죄해 주기를 요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 일로 상관걸 부자는 성덕공주에게 크게 고마움을 느꼈으며 곽광에 대한 원한은 한층 더 깊어졌다.   

 

무제 당시 상관걸의 지위는 구경으로 곽광보다 높았는데 부자가 다 장군이 되고 황후가 상관안의 딸이 되면서 비록 곽광이 황후의 외조부였지만 조정의 권한을 독점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정권 다툼을 하게 되었다. 연왕 유단도 황제의 형으로써 크게 중용되지 못한 것에 대해 곽광에게 불만이 깊었다. 어사대부 상홍양도 국가를 위해 주세, 염철세를 거두어 재정을 충족하게 하는 공으로 들떠서 자제를 입신시키려 하면서 마음대로 들어주지 않는 곽광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이때부터 성덕공주와 상관부자와 상홍양이 당을 만들며 서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연왕 유단은 종손지라는 사람과 10여 명을 함께 보내 그들에게 금은보화를 뇌물로 바쳤다. 

 

(*) 상관안 연합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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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걸은 거짓으로 연왕의 편지라고 하면서 곽광이 우림군을 무술훈련한다고 하면서 도로에서 황제만이 할 수 있는 경필을 행하고 하늘을 살피는 태관도 두었다고 말했다. 이 모두 곽광이 황제 자리를 탐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어서 이렇게 씌여있었다.

 

    “ 소무가 흉노에게 붙들려 20년 가까이 항복하지 않았는데도 

      전속국이라는 직책 밖에 못 받았고  

      대장군의 장사 유창은 아무런 공도 없이 수속도위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멋대로 막부교위의 숫자를 늘여

      곽광은 정권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는데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신 유단은 원컨대 연나라 와의 부새를 돌려드리고

      들어가서 숙위를 하면서 간신들의 음모를 세심히 살펴보겠습니다.” 

 

마침 곽광이 휴가를 위해 궁궐을 떠나 집으로 갈 때 상관걸은 그 편지를 황제에게 올려 보내고 상홍양이 여러 대신들과 함께 곽광을 체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편지를 살펴 본 황제는 곽광 체포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곽광이 그 소식을 듣고 급히 궁궐로 돌아왔지만 접견실에서 곽광을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황제가 물었다.

 

     “대장군은 어디에 있는가?”

 

좌장군 상관걸이 대답했다.

 

     “ 연왕이 그의 죄를 고발한 관계로 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황제가 명령했다.

 

    “ 대장군을 들여보내라.”

곽광이 들어와 관을 벗고 머리를 숙여 사죄했다. 황제가 말했다.

 

    “ 장군은 관을 다시 쓰라.

      짐은 그 편지가 위조된 것을 알고 있다. 

      장군은 아무 죄가 없다.”

 

곽광이 다시 물었다.

 

    “ 폐하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

 

소제가 말했다. 

 

    “ 장군이 낭관을 시험한 것은 얼마 전 일이고

      교위를 훈련시킨 것은 열흘이 안 되었다.

      수 천리 밖에 있는 연왕이 어떻게 알 수가 있었겠는가?

      또 장군이 잘못을 저지른다면 교위 따위가 왜 필요하겠는가? ”

 

열네 살짜리 황제의 예리한 논리에 온 조정이 놀라고 감탄했다. 편지를 올렸던 자들이 황망히 도망갔지만 급히 추적하여 다 붙잡았다. 상관걸 등은 자신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서둘러 덮으려고 했다.

 

     “ 별 일 아니니 더 수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황제는 상관걸의 요청을 묵살했다. 그 후에 상관걸의 무리들 중에 곽광을 참소한 자가 있었으므로 황제가 매우 노하여 말했다.

 

     “ 대장군은 충신이다.

       선제께서 짐을 보필할 것을 위촉하셨다.

       감히 그를 훼예하는 자들은 모두 죄를 물을 것이다.” 

 

이후 상관걸 등은 다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당나라 때 재상 이덕유는 소제를 이렇게 칭찬했다.

 

      “ 군주의 덕이란 지극히 총명(至明)함보다 나은 것이 없다.

        밝음으로 사악함을 꿰뚫어 보니 백가지 사악함이 모두 막히게 되는 것이다.  

        한소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주나라 성왕은 덕에 있어서 다소 부끄러움이 있었고

        고조나 문제나 경제 또한 소제같지 못하였다.

        성왕은 관숙이나 채숙이 유언비어를 (잘못) 믿어서 

        주공이 화를 피하여 동쪽으로 도망가게끔 하였고,

        한고조는 진평이 위나라를 떠나 초나라를 배반하였다는 말을 듣고

        복심신하를 버리려고 하였으며

        한 문제는 계포가 술 때문에 가까이하면 안 된다는 말을 믿고 

        고굉같은 그를 고향으로 돌려보냈고

        가생이 권한을 남용한다고 믿어 현신을 멀리하였다.

        경제는 조착만 주살하면 혼란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서 삼공을 주륙하였다.

        소위 ” 여우같은 의심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은 

               참언하는 적신의 입에서 나온다“ 하였다.(执狐疑之心,来谗贼之口)

        소제가 이윤과 여상과 같은 보좌를 얻었으니

        성왕이나 강왕과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상관걸은 성덕장공주에게 곽광을 초청하여 술을 마시게 한 다음 틈을 타서 격살하고 황제를 폐한 뒤 연왕을 황제로 옹립하는 모의를 꾸몄다. 연왕 단은 역마를 통해 서로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상관걸에게 왕 자리를 내릴 것이며 주변에서 호응하는 호걸들이 수천 명이나 된다고 떠들어댔다. 유단은 연나라 재상 평이 말했다.

 

    ” 대왕께서 전에 유택과 함께 모의를 했는데   

      일을 이루기도 전에 발각이 나는 바람에 실패했습니다.

      그건 평소 유택이 과장이 심하고 타인을 능멸하기 좋아하는 성미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좌장군(상관걸)은 가볍고 변덕스러우며

      거기장군 상관안은 교만하다고 들었습니다..  

      신은 유택 때 실패한 것과 같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대왕에게 배반할까 두렵습니다.“

 

유단이 말했다.

 

    ” 전에 한 남자가 궁궐을 찾아와 스스로 태자라고 했었다.

      장안 안의 백성들이 위험하다고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멈추게 할 수가 없었네.

      대장군(곽광)이 두려워하며 병사를 이끌고 진을 쳐 대비했었다.

      나는 무제의 장자이고 

      천하가 믿는 사람이니 어찌 배반할 것을 걱정하겠는가“

  

그 후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 성덕장공주가 말해 오기를 오직 대장군과 우장군 왕망만 걱정될 뿐이라고 했소. 

     지금 우장군은 죽었고 승상은 병들었으니  

     다행히 일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오.

     징소할 날이 멀지 않았소.“

 

여러 신하들에게 옷을 갈아입게 하였다. 

 

상관안은 연왕을 오도록 꾄 뒤죽이고 황제를 폐위시킬 계획을 세웠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 황후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상관안이 말했다.

 

    ” 사슴을 쫓은 다음 개는 당연히 토끼가 되는 법 아니냐.

      황후라는 위치를 이용했으니  

      인주의 생각이 바뀐 마당에 다시 가족이 되고 싶은들 어찌 가능하겠는가.

      그건 백 년에 한 번이나 있을 일이다.“ 

 

그때 성덕장공주 가인의 아버지이며 농지를 관리하는 연창이라는 사람이 상관안의 음모를 알게 되어 몰래 대사농 양창에게 알려주었다. 양창은 평소 근신하고 조심하는 사람이어서 말을 꺼내지 못하고 병석에 눕고서 간대부 두연년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고 두연년은 즉시 곽광에게 보고했다.    

 

9월에 황제는 승상부에 조서를 내려서 손종지와 상관걸, 상관안, 상홍양, 정외인 무리를 잡아들였고 아울러 그들의 모든 종족을 멸족시켰다. 장공주는 자살을 택했다. 

연왕이 그 소식을 듣고  재상 평에게 물었다.

 

    ” 일이 그르쳤는데 군사를 일으켜야 하는가?“

 

평이 말했다.

 

    ”좌장군은 이미 죽었고 백성들이 모두 역모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발동하시면 안 됩니다.“

 

연왕은 한동안 번민하다가 술상을 차린 다음 군신과 비빈을 모아 이별의 술을 마셨다. 황제가 유단을 꾸짖자 유단은 비단 끈으로 목을 매고 죽었다. 왕후와 비빈 등 같이 목을 매고 죽은 사람이 이십 여명이 되었다.  

황제는 가엽게 여겨서 그 장자 유건을 서인으로 내려 목숨을 살려 주었고 죽은 유단은 자왕이라는 시호를 내려 주었다. 상관안의 딸 황후는 나이가 어렸고 또 역모에 가담하지도 않았으며 곽광의 외손녀였기에 폐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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