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가보지 않은 길, 탄소중립…대선후보들은 관심도 없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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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 문명이 가져온 기후변화의 지구 대재앙
“지옥을 왜 불로 묘사하는지 알 것 같다.”
미국 북서부 새크라멘토에서 살고 있는 지인이 전해온 말이다. 지난여름 미국과 캐나다 서부에 섭씨 50도 폭염이 덮쳐 강 속 물고기가 말 그대로 타 죽었다. 지난 7월 열돔에 갇히면서 일어난 한반도의 폭염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폭염 한파 가뭄 홍수 등 기상이변은 코로나와 함께 인류의 ‘뉴노멀’이 되었다. 제러미 리프킨 같은 문명비평가는 코로나19도 아시아의 야생동물 식용 때문이 아니라 “화석연료 문명이 가져온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단언한다. 기후변화로 동물의 서식지와 식생에 변화가 일어나 바이러스가 풀려나고 있다는 의미다.
곳곳에서 전해지는 기상이변을 보면 우리가 진정 불지옥으로 가는 ‘화국(火國)열차’에 탑승하지 않았나 싶다. 환경 다큐멘터리 작가 마크 라이너스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6도 상승하면 메탄가스와 물이 합성되면서 만들어진 메탄하이드레이트 분출로 대폭발이 일어나며 바닷물이 끓고,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다.
이보다 좀 더 현실적 시나리오로 과학자들은 섭씨 4도 상승이 우리의 미래라고 경고한다. 환경단체도 아닌 세계은행(IBRD)도 2012년 ‘세계는 왜 섭씨 4도 상승을 피해야 하는가’라는 보고서에서 4도가 상승하면 과거 500만 연간 지구상에서 볼 수 없었던 기온이 관측되고, 동식물의 40%가 멸종위기에 처하며 대부분의 경작지에서 작물 생산이 급감하는가 하면, 그린란드 빙하는 전부 녹아내린다고 한다. 그 시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결과만은 확실하다.
IPCC, ‘넷제로(Net zero)’ 권고…2050년까지 CO₂배출량과 흡수량 같게
이 열차를 멈출 마지막 기회가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2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2015년의 파리기후협정이다. 그런데 2도 달성이 어려워 다시 0.5도가 내려갔다. 2018년 인천에서 개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만장일치로 채택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통해 2050년까지 ‘넷제로(Net zero)’를 권고했다. 2050년까지 대기 중 인간 활동에 의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키고 숲 복원과 이산화탄소 흡수 저장을 통해 배출량과 흡수량이 제로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난 4월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세계기후정상회의까지 131개국이 넷제로 동참을, 7월까지 137개국이 동참을 선언했다. 탄소배출량 세계7위인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2017년 대비 24.4%를 감축한다는 목표를 설정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적 흐름에 발맞추어 지금보다 상향 조정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10월말까지 내놓겠다고 밝혔다.
국가단위 뿐만이 아니다. 애플 구글 BMW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RE100(재생에너지 전력사용)을 선언했다. 우리나라에서도 SK와 LG 등이 RE100 동참을 선언한데 이어 현대자동차는 최근 ‘하이드로젠 웨이브’로의 비전을 선포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ESG경영을 강조하는 것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는 일은 인류생존이 걸린 당위이며 하고 말고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다.
늦어도 너무 늦은 우리의 대응…지난 8월 말에야 ‘탄소중립 녹색성장기본법’ 입법
지금 우리는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 갈아타는 문명사의 대전환기에 서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산업과 일자리, 개개인의 삶의 방식에 엄청난 충격파를 일으킬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에 대한 일반의 무관심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이명박 정부 때 녹색성장기본법으로 탈(脫)탄소 이행을 위한 법률적 제도적 기반을 갖춰놓고도 목표대로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못하다보니 정부의 탈탄소 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이 이런 무관심의 이유가 될 수 있겠다.
헌법에 “국가는 기후위기와 싸운다.”는 조항을 시민 주도로 넣으려는 프랑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지난 8월31일에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기본법’이 통과됐다. 늦어도 엄청 늦은 대응이지만 그나마 여당의 단독 처리로 정치권의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 것이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뒤늦게 발족해 2050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NDC 상향조정안을 마련 중이지만 감축목표를 올릴 것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실제 달성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산업계 간에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갈등 속에서 탄소중립 청구서를 쥐게 될 국민의 목소리를 잘 들리지 않는다.
탄소중립이 일반 국민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몇 가지 이유
탄소중립이 일반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배경에는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탄소중립 비전이 2050년을 목표로 하고 있어 당장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져 있고, 둘째 탄소중립(carbon neutrality)이라는 용어가 어렵고 그 이행수단에 관한 논의는 골치 아프게 느껴질 수 있다. 셋째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안락한 생활방식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확실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서 현재를 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런 공통적인 요인 말고 탄소중립 이슈를 ‘중립적으로’ 보지 못하는 우리의 정치현실도 문제다. 여야 대선주자들이 기후에너지부 신설, 태양광 배터리 친환경 자동차 지원 등을 공약하고 있으나 발언을 살펴봐도 탄소중립이 가져올 진정한 변화상을 이해하고 있는 이가 없다. 여당은 ‘녹색성장’ 지우기와 탈원전 옹호에 급급하고, 야당은 탄소중립이란 용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탈원전 정책의 정당성이나 원자력 비중, 혹은 석탄발전소 폐쇄 여부만 갖고 다툴 뿐 전기요금 상승, 탄소세 도입 등 국민부담 증가나 성장률 하락 가능성 등을 정직하게 말해주는 정치인이 없다. 기후변화에 대항해 싸우려면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하며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가야할 길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다. 야당의 한 정치인은 “지금 정부가 정하는 NDC를 다음 정부에서 바꾸면 된다.”고 말했다. 국제기구에 보고하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도 정권 입맛에 따라 이리저리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차기 정부 최대현안 ‘탄소중립’, 정치권은 “이해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탄소중립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생활의 낭비요인을 줄이는데서 나아가 화석연료에 의지해 살아온 삶의 방식을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환자로 비유하지만 한두 가지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체질 자체를 건강 체질로 바꿔야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나라에선 온실가스 감축의 충격파가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전환, 탄소흡수 산림 조성, 대체육(代替肉) 소비, 친환경차 확대, 대중교통 활성화, 건물과 주택의 에너지효율 개선 등 다양한 대응이 필요하지만 이 가운데 국민들의 동의와 협력 없이 해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국민은 온실가스 배출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요컨대 문제는 탄소중립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이며 어떻게 국민과 함께 할 것인가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정치인, 특히 대통령의 의지다. 온실가스 배출 2위인 미국의 공화당 정부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교토의정서를 탈퇴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정을 탈퇴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첫날 가장 먼저 한일이 파리기후협정에 서명한 것은 이것이 그만큼 중요한 대통령 어젠다이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는 문재인 정부가 마련하지만 그 이행과 실천은 내년에 어떤 정권이 들어와도 그 정권의 몫이 될 것이다.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인 탄소중립 과제가 차기 대통령의 어깨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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