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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조력존엄사” 논의의 전망과 과제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7월31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07월27일 10시32분

작성자

  • 이일학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의료윤리학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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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최근 한국에서도 조력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2022년 6월 15일에는 국회에서 조력존엄사 법안이 발의되었고, 지난 2023년 7월 12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조력존엄사에 대한 인권적 쟁점을 발표했다. 

 

1. “존엄사?” 

 

입법부와 생명윤리학계에서 언급되는 바 ‘조력존엄사’는 말기 환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의사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법문에 활용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개념이라면 행위 자체를 최대한 중립적으로 기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다른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력존엄사는 우리 사회가 그간 보여왔던 존엄사(death with dignity)라는 용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활용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존엄이라는 모두가 긍정하는 가치가 담기게 되면 조력존엄사는 가치를 실현하는 행위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만 넓히게 되면 같은 행위를 전통적으로 ‘의사조력자살(assisted suicide)’이라는 어휘로 표현해 왔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자살은 어느 문화권에서도 긍정하기 어려운 개념이며 조력자살은 자살방조를 연상시킨다. 

 

존엄한 죽음과 자살이라는 양극단은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기를 어렵게 만들기에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은 북미에서는 최근 행위 자체를 묘사하는 용어로 의사조력죽음이라는 표현으로 자살을 대치했고 최근의 관련 입법논의에서는 MAID/PAID(medical/physician aids in dying)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어로 직접 번역한다면 ‘죽음의 과정에 제공되는 의료적 도움’ 정도가 될 수 있을 터인데 이는 자격을 갖춘 의료인이 환자가 임종하는 과정에서 의학적으로 개입하는 행위를 강조하는 용어다. 이는 입법과정에서 행위 자체를 중립적으로 기술하기 위한 노력이겠다. 한국에서도 이런 사려 깊은 접근이 입법가들에게 요청되는 것일 텐데 그런 점에서 ‘조력존엄사’라는 용어를 선택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본 컬럼에서 필자는 사회적 논의에 필요한 중요한 측면을 반영하는 동시에 가치-중립적인 용어로 ‘조력죽음’을 사용할 것이다. 그런데 조력죽음은 의학적 개입과 그 결과 발생하는 죽음의 현상을 전체적으로 담는 개념이라서 입법과정에서 구체적인 행위를 지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이를 수용할 것인지도 정해져 있지 않고, 수용한다 해도 어떤 행위를 그 과정에서 정당한 행위로 간주할 것인지 논의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어서 죽음에 이르는 의료행위를 지칭하는 용어를 제안하기는 어렵다. 

 

2. 조력죽음: 조건과 구성요소 

 

적절한 이름짓기는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우선 이 절에서는 외국 사례에서 언급되는 구성요소와 조건을 살펴볼 것이지만 잊지 말고 고려해야 할 것은 그것이 시행되는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이다. 그 측면은 이 컬럼의 후반에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만(최근 독일),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등의 국가는 조력죽음을 인정하고 있고,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은 조력죽음보다 훨씬 적극적인 의학적 개입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들 국가의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최소한의 조력죽음의 구성요소는 (1) 환자의 조건(신체적, 정신적 상태, 환자의 자발성), (2) 조력죽음에 관련된 환자 평가, 처방, 이행 등의 절차, (3) 제3자 감독 등 안전장치이다. 

 

(1) 환자의 조건 

 

조력죽음은 환자가 죽음을 앞두고 받는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절차와 의료행위다. 따라서 환자가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고통이 사망에 이르는 기간 동안 환자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낮출 것이 의학적으로 확정되어야 한다. 이런 의학적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환자가 자신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돌봄 행위의 일부로 조력죽음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환자의 조건이다.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환자는 말기 환자이어야 한다.

- 환자는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 환자는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데 강압을 받지 않아야 한다.

 

(2) 조력죽음의 절차 

 

조력죽음은 앞에서 언급한대로 절차에 관한 것이다. 그 절차는 환자 평가로 시작된다. 환자의 병기(말기),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평가(의사결정능력, 정보를 제공받고 이해했는지 여부, 자발성, 강압이 없음)로 시작된다. 추가적인 평가를 통해 엄격하게 적용할 것인지 등의 구체화도 필요하다. 이렇게 환자가 조력죽음을 진정한 의미에서 선택하고 요청했다면 의료진은 이 요청을 공식화하고 (서식작성, 관련 기관 등록 등), 이어진 돌봄 과정에 반영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조력죽음 선택을 공식화 한 후라도 필요한 의료행위는 제공된다는 것이다. 이후 적절한 시점에 환자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약물 처방을 받고(그 복용법 등도 함께 교육받는다), 지정된 기관에서 조제된 약물을 수령한다. 환자가 약물을 복용하고 사망한 후 과정 역시 어렵지만 정립되어야 하는 절차인데 의료기관 외에서 사망한, 변사로 처리되지 않도록 법제도가 준비되어야 한다.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전문가에 의한 환자 평가

- 조력죽음의 선택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선택/결정) 

-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한 돌봄의 지속 

- 조력죽음 약물의 처방

- 조력죽음 약물의 조제 및 수령

- 조력죽음의 이행 

 

(3) 안전장치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의 엄중함을 고려할 때 그 과정에 필요한 주의를 공식화하고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안전장치는 법적, 윤리적으로 합리적인 결정이 내려지도록 보장하는 동시에 환자의 결정이 적절한 방식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하고, 추후 검토하여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국가에 따라서 사전심의를 담당하는 위원회, 조력죽음 조력자, 그리고 기록보관조직 등의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3. 윤리적 논쟁 

 

오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조력죽음을 제도화한 국가들은 위에서 언급한 환자조건, 절차, 그리고 안전장치를 정교하게 고안하고 그 이행 과정을 공개하여 사회적 이해를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준비과정의 핵심에는 조력죽음을 그 해당 사회에서 수용할 것인가 하는 윤리적인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조력죽음은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반대로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라는 반대 의견도 있다. 조력죽음 논쟁의 핵심은 이 관행이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인지, 아니면 죽음을 재촉하는 것인지 하는 판단의 문제다. 찬성자들은 말기 환자는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조력죽음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자들은 조력죽음이 죽음을 재촉하는 행위이며, 이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1) 말기 환자의 권리

 

임종을 앞둔 환자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는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조력죽음은 죽음에 관련하여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 ‘자신의 죽음을 가족에게 알릴 권리’, ‘자신의 죽음을 영적으로 준비할 권리’, ‘자신의 죽음을 존엄하게 맞이할 권리’ 등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된다. 

 

환자가 이런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그를 돌보는 의료진과 생활을 공유하는 가족에게 어떤 의무를 부과하는 것인데, 환자의 죽음과 관련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은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며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상담과 정서적 지지 등으로 도와야 한다. 가족은 환자의 죽음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사회는 환자의 죽음을 존중하고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영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환자의 조력죽음 선택이 이행될 수 있도록 절차와 의료시스템을 마련할 의무가 존재한다. 

 

(2) 죽음을 재촉하는 사회문화 

 

조력죽음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은 말기환자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리가 언급되고 시행되는 사회적 환경의 문제점을 향한다. 조력죽음이 혹시 사회적 비난에서 면제된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인인구의 자살률이 극단적으로 높은 한국 사회에서 병로한 환자들이, 그리고 간병살인과 같은 현상이 종종 신문지상을 장식할 정도로 돌봄 부담이 큰 사회에서 부양책임을 진 가족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몰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생애말기돌봄에 대한 관심이 말잔치에 끝나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다. 생애말기 돌봄은 그 대상의 삶의 맥락과 방식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환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동시에 지속가능한 품위있는, 지속적인 서비스로 제공되어야 한다. 이런 생애말기돌봄 전략이 구상되거나 시도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급되는 조력죽음이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를 분명히 평가하라는 것이다. 

 

4. 조력죽음은 생애말기돌봄의 한 부분이다. 

 

필자는 말기환자의 권리를 실현하는 작업이 우리 사회문화의 현실 때문에 유보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조력죽음과 생애말기돌봄의 제공은 분리되어 이해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보다 가능한 최선의 생애말기돌봄이 제공되는 과정에서는 조력죽음 선택권이 환자에게 열려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의식이 따른다. 대체 한국 사회에는 최선의 생애말기돌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는가? ‘호스피스가 좋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면 죽음을 앞두고 혼란이 적다’ 가 우리 사회의 정직한 초상화는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조력죽음의 제도화를 이야기하고 홍보할 생각인가? 조력죽음은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할 요구다. 가족을 위해 살고 가족에게 노년을 위탁하는 오래된 모델이 효력을 상실하여 생애말기돌봄을 받을 사람이나 제공할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좋은 생애말기돌봄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에서 사회로 돌봄 부담의 핵심을 옮길 때, 실상은 이 과정에서 개인이 그 부담을 얼마나 나눌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기는 것이라면,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고 실현할 수 있는 돌봄을 그려내는 작업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것이 없다면 조력죽음은 항상 성급한 정책이 된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 국민들은 소중한 권리를 무시당한채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죽음은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 되어야 마땅할 터인데. 

 

5.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입법시도는 어떤 의미에서든 좋은 기회임이 분명하다. 특히 사회가 대화의 장에 나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우리가 수행할 대화는 다음의 목적을 향하게 될 것이다. 

 

먼저 조력죽음 절차를 규제할 수 있는 조력죽음 법안을 논의한다. 논의가 우선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외국의 사례 조사, 국민의 의향에 대한 수준 높은 조사와 분석, 정보에 근거한 사회적 합의과정 등이 경험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사회적 담론은 조력죽음 교육을 포함한 생애말기돌봄에 대한 교육으로 이어져 국민의 이해를 높이는데도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당장 제도화되는 것과 무관하게 국민들의 궁금증이나 혼선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조력죽음 상담 기관을 설치하여 조력죽음와 관련된 상담을 제공하는 일이다. 

 

조력죽음은 어느날 법을 만드는 것으로 제도화되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이뤄지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삶의 태도, 서로에 대한 우리의 애정과 관심의 실천이 공고화되어 그 결과물이 법안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조력죽음 논쟁은 윤리적, 법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복잡한 문제이며, 결국 조력죽음를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쉽지 않지만, 환자의 권리 보호와 죽음의 재촉이라는 두 가지 쟁점을 모두 고려해서 결정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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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7월31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07월27일 10시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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