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38) 歲寒之友(세한지우)의 나무, 동백나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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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맨 처음 소개하려고 하는 나무는 겨울나무로 잘 알려진 동백나무입니다. 동백나무는 넓은 잎 상록수들을 대표하는 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전에 이 칼럼에서 이런 넓은 잎 상록수들이 겨울에 수분이 증발하여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잎 표면에 반질반질한 밀랍을 바른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동백나무를 다루기 전에 약간 옆길로 나가는 것이긴 하지만, 나뭇잎을 통한 수분 증발과 관련한 과학상식 한 가지만 다루고자 합니다. 나무는 초록 나뭇잎에서 공기 중에서 채집한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길어 올린 물을 원료로 하고 햇빛을 에너지로 삼아 광합성이란 화학작용을 함으로써 나무 자신은 물론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먹여 살리는 포도당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뿌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물을 길어 올려 잎으로 전해주는 것인데, 과학적으로는 나뭇잎들이 이 과정에서 광합성에 쓰이는 수량의 50배 내지 200배의 물을 공기 중으로 증발해 버린다고 합니다. (과학용어로는 蒸散(증산) 작용이라고 하네요.) 기공이라는 작은 구멍을 통해서이지요. 이 기공들이 늘어서 있는 모양을 보고 나무 종류를 구분하기도 합니다.
50-200배라면 대단한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실은 이렇게 공기 중으로 증산하는 수분이 광합성이란 화학작용의 부산물로 열이 발생하기도 하고 여름에 내리쬐는 햇볕으로 달구어지기도 해서 쉬 뜨거워지는 나뭇잎 자체의 온도를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겨울철에는 그런 증산 작용이 오히려 나무에서 온기를 더 빼앗은 역할을 할 것이니 이것만은 막아야 하겠지요. 그래서 낙엽수들은 잎을 떨어뜨려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동백나무 같은 상록수는 잎 표면을 밀랍으로 발라서 수분 증발을 최소화하려고 하는 셈입니다.
동백나무를 이야기하고 싶을 때면, 필자는 어릴 때 할머니, 어머니들이 이 나무 기름을 머리에 바르고 참빗으로 싹싹 빗은 뒤에 머리 뒷부분에 쪽을 짓고 거기에 비녀를 꽂았던 기억이 납니다. 머리에 까만 윤이 나게 하는 동백기름.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에게 참으로 귀하게 여겨졌던 물품이었지요.
그 동백기름이 주는 이미지처럼 동백나무는 척 보기에도 온몸에 기름을 잔뜩 머금고 있는 모습입니다. 표면이 반질반질한 두꺼운 잎, 그리고 기름을 잔뜩 머금은 동글동글한 열매 등 모든 것이.
동백꽃 열매는 잘 익으면 터져서 삼각으로 갈라지고 그 안에서 잣보다는 조금 큰 열매들이 드러난다고 합니다. 필자는 이 사실도 모르고 2019년 11월 14일 새벽에 부산 이기대를 산책하는 도중에 이 열매를 발견하고 (동백나무 같은데 이상한 열매를 달고 있어서 궁금해 하면서) 사진에도 담고 열매도 주워왔는데 의도하지 않았지만 식물 채집을 제대로 한 것 같아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이 열매의 속을 모아서 만든 기름이 바로 동백기름이라고 하네요.
겨울에 그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이 동백나무는 아쉽게도 자생적으로 자랄 수 있는 한계 지역을 구분 짓는 선인 북쪽 한계선이 고창 선운사라고 하듯이 그 이상 북쪽에서는 보기 힘든 나무입니다. 반면에 남쪽 해안가에는 해운대 동백섬, 여수 오동도를 비롯하여 동백나무가 많은 섬들이 수두룩합니다. 동백나무의 원래 고향은 일년내내 살기 좋은 동남아시아라고 합니다만, 동아시아 3국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도 발견되는데 겨울에도 온화한 해안가를 선호하는 것이지요. 이 나무는 서양에는 없었는데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선교사 Kamell이란 사람이 이 지역을 여행하다가 가져가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명도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camellia가 되었다고 하네요. 서양의 문익점이라고 할까요.
원로 수목학자 임경빈 선생은 그의 책 나무백과에서, 겨울 울릉도에서 산 위에는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눈이 쌓이는데 바닷가에는 빨간 동백꽃들이 피어 있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동백나무가 歲寒之友(세한지우)라 불러도 손색없는 나무라고 묘사한 바 있습니다.
그렇게 한겨울부터 피는 (이른 봄인 3-4월까지 피기도 하지만) 동백꽃은 꽃자루가 거의 없다시피 가지에 바싹 붙어 피었다가 꽃송이 전체가 떨어지는 까닭에 그 처절함을 노래하는 시와 노래가 많습니다. 요즘 코로나로 시름에 잠긴 나라를 달래주는 것으로, 어느 방송에서든 경쟁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들을 들 수 있을텐데, 트로트의 원조 가수라면 바로 이미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자의 가장 큰 히트곡을 꼽으라면 역시 ‘동백아가씨’인데 바로 이런 바닷가 섬마을의 (또 다른 히트곡 섬마을 선생님도 있습니다만) 아가씨가 아니었을까 하고 상상해 봅니다. 이 노래 중에서도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라는 소절은 동백꽃의 특징을 문학적으로 가장 잘 그려낸 구절이란 생각도 듭니다. 빨갛게 피었다가 갑자기 통째로 떨어져 버리는 그 특징을 말입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 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기다리네 동백 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동백나무의 한자 이름은 椿(춘)으로 쓰는데, 이 椿 자는 남의 부친을 높여 부를 때 쓰는 ‘椿府丈(춘부장)’이라는 말에 쓰이는 만큼 동백나무의 격이 예로부터 상당히 높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춘희는 동명의 알렉산더 뒤마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주인공 비올레타가 사교계에 나올 때 달고 나오던 꽃이 바로 동백꽃이었다고 하여 붙여진 제목이라고 합니다.
동백나무의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鳥媒花(조매화)’라는 점입니다. 한겨울에 꽃을 피우는지라 곤충을 만나기가 힘든데, 동박새라고 불리는 새가 이 나무의 수정을 돕고 있지요. 동백나무와 동박새의 이러한 보기 드문 상생의 관계를 그려낸 전설도 있다고 합니다.
본래 동백나무는 통꽃 모양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 특징입니다만, 요즘에는 개량해서 장미꽃처럼 몇 겹의 꽃잎을 단 동백나무도 있고, 흰색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산다화라고 부르는 애기동백이라는 나무는 꽃잎을 펼쳐서 피우는 점에서나, 대체로 가을에 피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원래의 동백나무와는 차이가 있지요.
이 나무의 꽃핀 가장 인상적인 모습들은 2015년 3월 28일 부산에서 열린 IDA 국제회의에 참석한 후 토요일 아침을 이용하여 부산시 기장군 소재 해동용궁사에서 해운대 해수욕장까지에 이르는 12km를 걸으면서 해안가에서 좋은 사진을 찍을 기회를 가졌습니다. 예쁘기가 장미 못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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