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국제정세] ⑦ 미국 정세와 한미관계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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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0-특집호-제41호]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대해 명시적인 승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선거를 둘러싼 혼란이 모두 마무리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내년 1월 20일 바이든 당선자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당선자는 이미 주요 외교안보 담당자를 내정하였다. 트럼프 정부 때와는 달리 바이든 당선자의 행보는 매우 예측 가능한 수순을 밟고 있으며, 내정된 인사들 역시 세간의 예측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2016년에는 과연 워싱턴 경험이 없던 그가 도대체 어떠한 외교안보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한반도와 관련하여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으므로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파악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용할만한 인사는 누구인지, 누가 한반도 문제를 담당하게 될지 모든 것이 안개 속에 있었고, 심지어 한반도 문제를 다룰 국무부의 동아태 차관보를 임명하는 데에는 1년반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도 하였다.
반면, 바이든 당선자의 경우 앞으로 어떠한 인사들이 기용될지, 어떠한 외교안보 방향을 추구하게 될지 예측이 어렵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예상이 가능한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응하는 우리의 외교안보 정책은 무엇이 될 것인지 하는 부분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2021년 미국의 정세와 한미관계를 전망해보고자 한다.
바이든 정부의 동맹 중시 정책
바이든 당선자는 11월 24일(현지시간) 새 행정부의 외교안보팀 지명자를 소개하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안보팀은 "미국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세계에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주도할 준비가 돼 있다"라며 "미국은 동맹과 협력할 때 최강이라는 나의 핵심 신념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국제사회 주도권 회복과 동맹 강화를 향한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동맹 중시는 단순히 동맹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맹들이 미국의 정책 방향에 동의하고 참여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안보의 주축인 동맹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과는 달리 바이든 당선자는 동맹과의 관계, 그리고 동맹 사이의 관계에 대해 보다 많은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비민주주의 국가들의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에 대해 동맹국들과의 연대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동맹을 존중한다는 것과 동맹과의 연대를 강조한다는 것은 두 가지 다른 의미라는 점이다. 동맹과의 연대를 중요시하는 바이든 정부는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에 동맹국들이 동참하기를 강력히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처럼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적극적 참여를 요구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생존전략에 대한 고민은 커질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우리가 추구하는 이익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미국의 새 행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하게 될 부분은 한미일 3국 사이의 안보 협력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이 지소미아와 같은 이미 확립된 제도 수준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이상 갈등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차이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 정부 당시에도 한일간 문제 해결을 위해 클린턴 국무장관이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등 일본을 압박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일간 합의가 파기된 이후 한일간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미국은 한국의 책임이 보다 크다고 보고 있으며, 특히 앞으로 들어설 미국 행정부와 가까운 인사들의 인식 또한 그렇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정할 필요가 있다.
보다 더 큰 차원에서 보아야 할 것은 바이든 당선인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문제를 이념과 체제 차이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취임 100일 이내에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상회의를 미국에서 개최하겠다고 하였다. 코로나 문제가 어느 정도 빨리 통제되느냐라는 현실적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중국과 같은 비민주주의 국가와 대별되는 이러한 개념의 회의는 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 소위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이름의 전략을 추진한 우리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2021년 초반 우리의 외교 과제는 바이든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이 문제를 추진하려고 하는지 파악하는 데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가 남북 관계 개선의 기회로 보고 있는 동경 올림픽 역시 이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상회의 의제와 성명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
이번 선거를 앞두고 한국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북한 핵 문제 해결에 더 낫다는 의견들이 많이 나왔다. 이것은 첫째,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위원장과의 직접 협상이 바이든 당선인이 이야기한 실무협상 위주의 접근법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믿음, 둘째, 바이든 당선인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 셋째, 바이든 행정부의 한반도 라인 구성 및 정책 검토에 시간이 걸리게 되므로 협상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 이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2018년 싱가포르 협상부터 하노이 이후, 그리고 2019년 10월 스톡홀름 협상 결렬의 상황을 보면 미국의 대북정책,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탑다운 접근법이 북한과의 협상이나 관계 진전을 이끌었다기보다 북한이 협상에 나오겠다고 한 부분이 미국과 북한 사이에 협상이 이루어진 주요 요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2019년 하노이 이후에는 아무런 조건 없는 김정은과의 만남이 본인에게 정치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실무협상을 계속해서 강조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의 북한 정책도 북한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협상을 하겠다고 할 경우, 바이든이 김정은에 대해 무슨 단어를 사용했건, 미국에 대북 라인이 갖춰지지 않았건, 미국은 어떻게든 협상을 이끌어 낼 팀을 만들어 보낼 것이다. 그렇게 쓸 수 있는 인재의 풀은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 보다 훨씬 많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토니 블링큰(Antony Blinken)의 2018년 뉴욕타임즈 칼럼과 인터뷰는 바이든 정부에서의 대북 접근이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접근법이 될 가능성이 있지 않는가 하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블링큰이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게리 세이모어(Gary Samore)와 로버트 아인혼(Robert Einhorn)을 포함하여 군축론적 관점에서 점진적인 해법을 주장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들의 주장은 트럼프 정부, 혹은 국제사회가 추진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즉 북한이 이미 생산해 놓은 핵무기와 핵물질까지 폐기하는 최종상태에 대한 협상이 북한의 거부로 합의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결국 북한은 그 시간동안 더욱 많은 핵물질을 생산하게 될 것이고 핵 능력은 고도화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단계적인 합의를 통해 점진적인 북한의 핵능력 동결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들의 의견은 타당한 점이 있고, 또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이란과의 핵 합의를 이루었기 때문에 현실적 합의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이 군축론적 관점을 지켜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의 현 상황이 이란과 다르다는 측면이다. 일부에서는 블링큰이 이란 핵합의를 북한 비핵화 협상의 모델로 삼을 수 있다라고 말한 점을 들어 소위 ‘스몰딜’을 지향할 수 있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은 북한과 달리 핵실험을 했거나, 핵물질을 이미 생산을 해 놓았거나, 핵무기를 생산한 적이 없다라는 점에서 이란과 국제사회의 합의가 ‘스몰딜’이라고 정의하기가 곤란하다. 이란의 핵개발 상황을 보면 JCPOA는 스몰딜이 아니라 이란의 핵프로그램 전체에 대한 협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와 이미 생산해 놓은 핵물질을 논외로 한 채 미래의 핵생산능력만을 대상으로 하는 군축론적 관점에서의 협상, 즉 북한 핵능력 중 일부만을 제한하는 스몰딜은 북한을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합의의 결과가 북한을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은 미국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힘든 합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둘째, 마찬가지 이유에서 북한이 최종상태에 대한 합의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최종상태에 대한 합의 없이 중간지점을 목표로 하는 합의를 진행하게 될 경우, 중간지점 이후에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군축론적 관점에서는 일단 비핵화의 일부라도 진행하게 되면 관성에 따라 계속하여 비핵화가 진행될 가능성을 주장하나, 이는 북한이 이미 생산해 놓은 핵무기와 핵물질을 대상으로 한 협상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셋째, 이론적으로 군축론적 관점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으나, 현실적으로 합의되기 어렵다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동결을 조건으로 미국과 국제사회가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군축론을 주장하는 학자들 중에서는 동결의 대가로 한미훈련의 중단을 교환하는 소위 동결대 동결 (freeze for freeze)을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이미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군사 훈련의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에 이는 더 이상 북한이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 되었다. 또, 군축론을 주장하는 학자 및 전문가들도 현 시점에서 북한이 원하는 제재 완화를 받아줄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를 한다. 동결이 최종적인 지점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최종적 비핵화로 가기 위해서는 제재의 상당 부분을 남겨두어야 하고, 북한의 경제적 계산을 바꾸기 위한 제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소득이 발생하는 소위 소득발생 부분에 대한 제재 (money generating sanctions)는 완화해 줄 수 없다는 점에 대해 동의한다. 이들이 북한 핵시설의 검증가능한 동결의 대가로 제공하자고 주장하는 제재 부분은 북한이 돈을 사용해야 하는 제제 (money spending sanctions), 즉 사치품 수입 금지에 대한 제재라든지, 정제유 수입 제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 내지 해제해 주는 것이다. 아마도 북한의 입장이 지금보다 후퇴할 경우에는 이러한 협상안에 대해 북한이 합의할 가능성도 있겠으나, 현 시점에서 이러한 합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시사점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은 매우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서 트럼프 정부와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이 예측 가능한 외교안보 환경이 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외교안보의 외부 환경의 변화,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줬듯이 미국의 국내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외교안보 정책이 어떻게 타협되고 결정될지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바이든 정부의 기본적인 인식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있어야만 우리의 생존 전략에 대한 고민이 가능하다.
미국이 현재 동맹 관계에 대해, 그리고 중국, 북한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은 명확하다. 그러한 인식을 정책화하는 과정에서 개별정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협조의 수준은 매번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미국이 어떠한 방식으로 동맹국들과 파트너국가들에 연대에 동참하도록 할 것인지 파악해야 할 것이다. 전반적인 방향에 대해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개별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긴밀한 협조를 통해 각 시점이 이익의 극대화를 해야 할 시점인지 손실의 최소화를 추구해야 할 시점인지 판별할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이 요구된다.
또, 한반도 중심, 특히 남북 관계 개선을 중심으로 국제관계를 보려는 우리와 그것보다 더 큰 차원의 구조적 문제, 미중 간의 체제 경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미국과는 우선순위에서 차이가 생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바이든 취임 초반 이러한 우선순위의 차이를 어떻게 조절해나갈지 외교 역량을 동원해 분석 및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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