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택정책> (15) 외국의 사례(Ⅱ) 아일랜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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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아일랜드에서는 주택 부족으로 사회적 위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아일랜드는 미국 기업의 해외기지로서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경제가 호조를 보이는 시점에는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주택건설도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경제위기로 모든 것이 역전되었다. 미국과의 긴밀한 경제적 관계로 인하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이 과정에서 주택가격이 폭락하고 말았다. 주택가격 급락은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특히 심각한 주택 수급 불균형이 야기되었고 결국 주택 부족 문제로 이어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임대주택 부족이다. 불황과 주택가격 폭락으로 집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노숙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였다. 아일랜드가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간단히 정리하기로 하자.
아일랜드는 유럽 국가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나라였다. 마땅한 제조업이 없는 데다 국토도 협소하고 영국과의 갈등으로 인하여 정치적으로도 불안정이 이어지는 등 경제적 여건이 과히 좋지 않았다. 이러한 배경으로 아일랜드는 사회보장이 상당히 취약한 편이다. 이에 따라 국민들이 자체적으로 노후 보장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주택은 그 활용도가 매우 높다. 즉 아일랜드에서는 주택을 단순히 생활하는 공간을 넘어 투자자산인 동시에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한 안전판으로 인식하는 성향이 높다.
아일랜드에서는 이러한 풍토를 바탕으로 주택을 투자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주택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만연할 뿐만 아니라 정당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정책에도 반영되고 있다. 정부는 주택과 관련하여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고수하고 있다. 주택가격을 관리하고자 시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택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역할도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주택 공급에 있어서는 민간개발업자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아일랜드는 전형적인 시장 의존적 주택정책을 펼치는 나라라고 하겠다.
아일랜드의 주택 문제는 다음 그림을 통해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래 그림은 주택 완공설적을 나타내고 있다. 주택이 2006년에는 9만호가 공급되었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8천호 수준으로 위축되었다. 주택의 자연적 멸실을 감안하면 현재 완공 주택수는 멸실 주택 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략적으로 아일랜드의 주택 수는 200만호 정도이다. 자연 멸실율을 0.5%로 가정하면 매년 약 1만호의 주택이 사라지게 된다. 신규 완공 주택 8천호로서는 멸실로 인한 주택 수요마저 맞출 수 없다.
아일랜드에서 최근 주택 공급이 이와 같이 급격하게 준 배경을 살피는 것이 아래 서술의 핵심이 될 것이다. 주택 공급이 급격히 위축된 직접적 배경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990년대로 돌아가야 한다. 아일랜드가 본격적인 경제발전을 추진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사실 이 단계에서부터 주택과 관련한 불균형이 누적되어 왔다.
1. 주택문제의 기원
아일랜드가 1990년대부터 추진한 소위 신자유주의식 경제개혁이 지금의 주택 문제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앵글로 국가들은 시장 중심적 경제운용방식을 채택하는 개혁을 추진하였다. 아일랜드도 이 추세에 따라 주택과 토지의 공급에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는 대신 민간의 기능을 확충하는 방식을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주택과 관련한 경제활동에 대하여 금융부문의 지원이 이루어지지만 이 역시 민간 주도로 진행되도록 하였다.
민간의 주도권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은 토지 분양 조치로부터 비롯되었다. 공공부문에서 소유하고 있던 토지의 상당 부분을 민간에 분양하였다. 1970년대에만 하더라도 공공부문에서 전체 토지의 30% 정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와서는 공공부문 보유 토지 비중이 9%로 낮아졌다. 이와 같이 토지를 민간에 분양한 것은 재정 합리화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공익적 목표나 사명 등을 감안하지 않고 모든 사안을 이윤이나 재무적 문제로 환원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이 적용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부 민간사업자들에게 토지 보유 집중도가 매우 높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나중에 주택경기가 활황을 보일 당시 토지 가격이 폭등하는 배경이 되었고 주택 건설 부진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아일랜드에서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등 주택경기가 활발해진 것은 본격적인 경제성장 전략을 추진한 1990년대 이후의 시기이다. 1990년대 초 아일랜드는 적극적인 대외개방을 통한 성장 전략을 택하였다. 외국 자본의 유치가 핵심이었다. EU 통합을 앞두고 유럽 지역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던 미국 기업들, 특히 정보통신기술에 종사하는 세계적 기업 상당수가 아일랜드를 거점으로 삼았다. 노동력은 풍부하지만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리고 아일랜드 정부가 파격적인 법인세 인하 등의 혜택을 제공한 데다 아일랜드의 시장 중시 분위기 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외국 자본의 적극적 유치로 아일랜드 경제는 연평균 9% 이상의 고도성장을 구가하게 되었다. 당시 아일랜드의 경제 성장세가 1970~80년대 아시아의 네 마리 용과 닮았다는 점에서 아일랜드 경제를 “셀틱 호랑이(the Celtic Tiger)”라고 불렀다. 고도성장은 아일랜드 국민들 입장에서는 빠른 임금 상승의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소비가 대폭 늘었고 해외여행도 급증하는 등 사회적으로 낙관적인 분위기가 널리 형성되었다. 그리고 소득 상승을 배경으로 주택 구입 여력도 크게 신장되었다.
이에 더하여 1999년 유럽통화동맹(the European Monetary Union, EMU)의 발족이 아일랜드에게는 금융 제약을 없애는 계기가 되었다. EMU 발족으로 유로화를 사용하게 된 아일랜드는 금리가 종전에 비해 대폭 낮아졌고 환위험도 제거되었다. 그리고 금융기관들이 해외로부터 자금을 차입하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다. 금융여건이 개선되면서 은행들은 대출을 확대하는 전략을 택하였다. 최초 주택구입자에게는 주택가격의 100%까지 대출을 하는 등 적극적인 금융중개활동을 전개하였다.
소득 상승과 금융 여건의 개선을 바탕으로 주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였다. 게다가 잠재적 주택 구매자마저 대폭 늘었다. 아일랜드 소재 외국 기업에 근무할 외국인들이 대거 입국한 데다 국내적으로도 가구의 분화가 급격히 진행되었다. 1990년대 초와 2006년 사이에 인구가 20% 증가하고 가구 수도 43%나 늘어났다(Kitchin 2015). 이 결과 주택수요가 폭증하였고 자연적으로 주택가격이 급등하였다.
* Kitchin, Rob, Rory Hearne, and Cian O’Callaghan, "Housing in Ireland: From Crisis to Crisis," NIRSA(National Institute for Regional and Spatial Analysis), Working Paper Series, No. 77, February 2015.
아울러 토지에 대한 투기도 만연하였고 토지가격도 큰 폭으로 뛰었다.
주택 가격 급등으로 주택공급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높은 주택 가격으로 주택건설의 수익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그래프에서 2006년 9만 채 이상의 주택이 공급된 것은 이런 요인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과거 신규 주택공급은 연평균 2만 채 정도였다. 따라서 2000년대 중반의 9만 채에 달하는 공급량은 엄청난 수준에 해당한다. 2000년대 중반의 주택투자는 GDP의 15%에 달할 정도였다.
실제로 당시 주택은 과잉 공급된 것으로 평가되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후 빈집이 23만 채에 달하였다. 총주택 200만호의 10%가 넘는 수준이었다(Kitchin 2015). 통상적인 빈집 비율 5~6%를 감안하더라도 5% 이상 과다 공급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완공되지 못한 건축중인 건물도 상당수에 달하였다.
주택경기의 과열은 주택의 과다 공급과 같은 주택부문의 문제만 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주택의 공급과 수요에 금융이 개입하면서 금융 불균형이 누적되는 과정도 동반되었다. 문제는 이 현상들을 문제점으로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주택수요자 입장에서는 주택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주택 구입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대출에 의존하여야 했기 때문에 가계부채가 대폭 늘었다. 주택건설업자들도 소요 자금을 은행으로부터 차입하여 충당하였다. 대출 수요가 확대된 반면 대출 재원이 부족하였던 은행들은 해외 차입에 의존하여 자금을 조달하였다. 결과적으로 은행들의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문제가 누적되고 있었는데도 당국이나 미디어 등에서는 이런 현상들을 경계하기보다 오히려 경축하는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현상들은 선진국을 따라 잡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부작용 정도로 치부하고 말았다. 그리고 자산가격의 상승이 국민들로 하여금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하리라고 믿고 있었다. 주택과 연관되어 여러 가지 유형의 불균형이 누적되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여러 유형의 불균형에 대처하고자 하는 의지가 당연히 없었고 마땅한 역할이나 대책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2000년대 주택 공급이 급증한 것은 그 이전 시기의 주택 부족 문제를 감안하면 염려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유례없는 주택 건설이 진행된 것은 달리 보아야 했다. 주택 수요는 어느 정도 한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주택 수요가 충족되었는지 여부를 점검하여야 했는데 당시로서는 이러한 시도가 전혀 없었다. 통계 부족 등 국가 운영에 필요한 기반이 형성되지 않은 것도 원인이지만 주택경기 활황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당시의 풍조나 정책적 태도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RIAGG 2017).
* RIAGG(Royal Irish Academy Geosciences and Geographical Sciences Committee), "The Dynamics of Housing Markets and Housing Provision in Ireland," Expert Statement, June 2017.
정부의 자유방임적 태도는 비단 주택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도 극히 부진하였다. 사실 당시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서 아일랜드 정부의 재정이 상당히 건실해졌다. 세수 기반이 확대된 것이 주요 배경이었다. 하지만 늘어난 조세 수입을 합당한 용도, 예를 들면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등에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대도시에서는 사회간접자본의 미비로 근로자 각자가 교통편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여야 했다. 도심에서 거리가 먼 교외로 이사 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해외 이주자와 지방으로부터의 인구 유입 등에 더하여 이 요인마저 가세함으로써 대도시 인구 집중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리고 대도시의 주택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2. 경제위기 발발과 주택시장의 붕괴
2007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부실 징조가 가시화되면서 아일랜드의 주택가격도 상승세를 멈추었다. 그리고 2008년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셀틱 타이거 시절에 축적된 온갖 불균형이 한꺼번에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는 주택가격 하락으로 대표되는데 2008년 주택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여 2012년까지 줄곧 하락하였다. 수도 더블린의 경우 그 하락폭이 57%에 달하였다.
주택가격의 폭락은 가계 및 주택부문에 대한 대출 등과 연계하여 은행 부실로 이어졌다. 전반적인 경기 위축으로 실업이 늘어났는데 실직자의 상당수가 주택대출을 사용하고 있었다. 대출 상환 능력을 상실한 데다 주택가격 폭락으로 매각을 통한 상환도 불가능해졌다. 주택시장의 분위기 변화로 주택에 대한 수요가 형성되지 않아 매각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각되더라고 낮아진 주택가격으로는 대출금을 모두 상환하기가 불가능해졌다. 2013년 주택대출 연체율이 27%까지 상승하였고 주택의 50% 정도는 시장가격이 대출금액을 밑돌았다.
주택대출의 상당 부분이 부실채권이 되었고 은행들은 지급불능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부실채권정리기관을 설립하여 은행의 대출채권을 매입하고 IMF 등으로부터 850억 유로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받고 나서야 금융시장이 진정되었다. 아일랜드 은행들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관련 상품에 직접 노출되지 않았다. 순전히 국내 문제로 인하여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것도 주택 부문과 결부한 대출 때문이었다.
3. 경기 회복기 이후 상황
금융위기 발발로 주택 건설이 급격히 위축되는 것은 당연하다. 주택가격 폭락으로 신규 주택 건설은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2013년 이후 경기가 회복되고 나서도 주택건설이 지속적으로 위축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주택 부족 문제의 직접적 원인이다.
2013년 이후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경기 회복을 계기로 대도시 집중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다. 그리고 더블린 지역에서는 또 다른 유형의 주택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주택가격은 크게 오르지 않지만 임대료가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것이다. 바로 주택 부족 문제가 표면화된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고 회복 국면에 진입하였음에도 주택 공급이 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장애요인이 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주택가격이 여전히 낮은 상태여서 주택건설업자의 입장에서는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주택 수요자 입장에서는 주택을 소유하기보다는 임대주택에 살려는 경향이 강하다. 주택 매입 수요가 없기 때문에 주택가격이 상승하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이 상황에서도 아일랜드 정부는 시장 중심적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설령 적극적 개입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민간부문의 주택건설을 촉진하기 위한 마땅한 정책수단이 없는 실정이기는 하다. 아일랜드 정부가 주택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건축업자에게 조세 감면을 제공하는 정도인데 이 정도의 대책으로서는 주택 건설을 확대할 유인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주택건설과 관련하여 개발부담금 등을 납부하여야 하고 주택거래에서는 부가가치세, 등록세, 기타 세금을 납부하여야 한다. 그리고 건설 관련 인허가 규제가 여전하다. 이에 더하여 건설인력의 부족, 건설업체들에 대한 금융 지원 미비 등의 문제도 심각하다.
이런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민간에 의한 주택 공급 확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지경이다.
그리고 토지 부족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주택부족 문제가 가시화되면 공공부문 보유 토지를 택지로 전용하는 등 토지 공급을 확대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토지를 민간에 이미 매각한 상태이므로 공공부문에 의한 택지 공급에는 제한이 따른다. 민간 보유 토지는 거래가 원활하지 못하다. 위기 이전의 시기에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 토지가 많은데 현재의 시장 가격이 종전 거래가격에 미치지 못하는 데다 토지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토지거래가 활발하지 못하고 소위 토지 잠김 현상(land hoarding)이 나타나고 있다.주1)(Healy and Goldrick-Kelly 2017)
주1)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공한지세(the Vacant Site Levy)를 2018년부터 부과하기로 하였다.
* Healy, Tom, and Paul Goldrick-Kelly, “Ireland’s Housing Emergency - Time for a Game Changer,” NERI Working Paper Series, Working Paper, No 41, 2017.
금융위기 이후에도 아일랜드 정부는 주택 수급의 조절에는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주택 공급을 위축시키는 정책들을 추진하였다.
아일랜드는 경제 상황과 재정 상태가 악화됨에 따라 긴축예산을 편성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주택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였다. 이것이 현재의 주택부족 문제를 야기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되었다. 금융위기 이후 민간 주택건설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공공주택 건설을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 방향으로 예산이 집행되었다. 삭감된 주택 관련 예산도 장기적 용도로는 사용되지 못하였다. 주택사정 악화로 임대료 보조 등 경상비 형태의 지출에 우선적으로 충당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공공주택 건설을 하기 위한 예산은 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공공주택 건설은 더욱 위축되었다. 본래부터 공공임대주택 건설은 부진하였다. 2007년 이전 약 10년 동안 공공주택 건설은 4만 8천 채에 불과하였다. 이에 비해 공공주택 입주 대기자가 1999년에는 3만 9천명 수준이었으나 2011년에는 9만 8천명까지 대폭 늘어났다. 그런데 금융위기 이후에는 공공주택 건설은 더욱 위축되었고 주택부족 문제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임대주택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현재로서는 개인적 차원에서 주택을 소유하기보다는 임대주택에 살려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10년 전 주택가격 하락으로 막대한 손해를 본 사람들이 더 이상 주택을 보유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순재산가치(시장가격 - 대출금)가 마이너스인 주택들이 많다. 그리고 주택대출 연체 문제가 충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 구입 수요가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대신 임대 수요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4. 최근의 문제와 시사점
아일랜드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주택의 수급 균형이 한번 어긋나게 되면 재차 균형을 이루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공급 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실제 공급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주2)
우리나라에서도 주택공급을 인위적으로 줄인 적이 있는데 이것이 현재의 공공주택 부족 현상을 야기하지 않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순수한 시장기능에 의존하여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아일랜드에도 민간 공공주택임대사업자들이 있다.주3)
주 Approved Housing Bodies (AHBs)라고 하는데 통상적으로는 주택조합(Housing Associations)이나 조합식주택공급자(cooperative housing providers) 등으로 불린다.
정부는 이들을 활용하고자 하지만 효과를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기구들의 자금 동원력이나 주택건설 능력 등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여러 면에서 지원을 제공하지 않으면 이들이 주택을 공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주택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그 주체가 정부냐 혹은 시장이냐 하는 것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적용하여서는 안 된다고 본다. 주택문제는 여러 요인들과 결부하여 종합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당국에서는 정부로 인하여 주택 문제가 심화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등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파악하는 전향적이고 적극적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한편 아일랜드는 주택문제에 대하여 지나치게 시장 의존적인 정책을 펼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행태는 마치 정치 이념에 입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아일랜드 사례를 보면 주택문제와 같이 복잡한 문제일수록 다양한 관점이나 시각을 적용할 수 있는 신축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종규는 누구?
한국은행(1980-2015년) 출신으로 IMF 선임연구원과 금융결제원 상무이사를 거쳐 지금은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경영대학과 미 하와이대학 대학원(경제학박사)을 졸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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