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이 보여 주는 지도자‧충신‧간신의 귀감들 <19> 다스리기를 잘 한 南寧도독 韦仁寿(AD624)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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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수나라말기 경조사람 위인수는 촉군 사법서좌였는데 初隋末京兆韦仁寿为蜀郡司法书佐
다루었던 사형수가 시장에 와서는 所论囚至市
서쪽 방향으로 위인수를 향해 예불을 올리고는 죽었다. 犹西向为仁寿礼佛,然后死。
당이 일어난 뒤 찬홍달이 서남쪽 오랑캐를 이끌고 들어오자 唐兴,爨弘达帅西南夷内附
조정에서는 사신을 보내 다독거렸지만 朝廷遣使抚之,
그 부류들은 모두 매우 탐욕스러워서 类皆贪纵
변방 주민들에게 걱정거리였으며 远民患之
더러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有叛者。
위인수는 당시 수주도독장사였는데 仁寿时为巂州都督长史,
황제 이세연이 그 명성을 듣고 上闻其名,
검교남녕주도독으로 임명하여 월과 수지역을 의탁하였는데 命检校南宁州都督 寄
治越巂,
부임한 지 일 년이 되자 그 지역이 안정되었다. 使之岁一至其地慰抚之。
위인수는 성격이 관대하고 후박하였으며 仁寿性宽厚
도량을 잘 헤아렸는데 임명을 받자 有识度,既受命,
장병 5백명을 데리고 서이하로 들어가 将兵五百人至西洱河,
수 천리를 두루 다니면서 힘쓰자 周历数千里,
야만 오랑캐 추장들이 풍문을 듣고 귀속하여 蛮、夷豪帅皆望风归附
위인수를 만나 뵈었다. 来见仁寿。
위인수는 황제의 위임을 받은 바에 따라 일곱 주와 15현을 두고 仁寿承制置七州、十五县,
그 추장을 자사, 현령으로 임명하였으며 各以其豪帅为刺史、县令
법령이 맑고 엄숙했기 때문에 만족, 이족이 기쁘게 승복하였다. 法令清肃,蛮、夷悦服。
장차 돌아오려고 하자 추장이 말하기를 将还,豪帅皆曰:
“천자께서 공을 남녕도독으로 보내셨는데 天子遣公都督南宁
무엇 때문에 급히 돌아가려 하십니까? 何为遽去?”
위인수는 성곽 해자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사직하는 하는 것이라고 했다.
仁寿以城池未立为辞。
만족이족은 즉시 서로 주동이 되어 위인수를 위해 성곽해자를 짓고
蛮夷即相帅为仁寿筑城
청사도 세웠으며 십여 일 만에 완성했다. 立廨舍,旬日而就。
위인수가 말하기를 仁寿乃曰:
“나는 명령을 받아 순찰하며 안정시키는 역할만 받았소 吾受诏但令巡抚
마음대로 머물 수는 없소 不敢擅留。”
만이들은 울면서 환송했는데 蛮、夷号泣送之
각기 자제들을 인질로 함께 보냈다. 因各遣子弟入贡
임술일 위인수가 조정으로 돌아오자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壬戌,仁寿还朝,上大悦
남녕에 옮겨 주둔하며 군사를 가지고 방어하게 했다. 命仁寿徙镇南宁,以兵戍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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