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의 시대정신(zeitgeist) <4> 위워크 파산과 카카오의 추락 : 유니콘은 어쩌다 탐욕의 상징이 되었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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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전작 《일각수의 꿈》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기묘한 벽에 둘러싸인 도시, 그곳에는 뿔이 하나 있는 짐승인 일각수(一角獸), 즉 유니콘이 산다. 차가운 강물에 발굽을 씻고 석양에 물든 돌길 위에서 태고의 기억을 향해 머리를 드는 정결하고 신비로운 존재다.
유니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크테시아스가 썼다. 저서 《인디카》에 나온다. 강인하고 빨라서 그 어떤 동물도 따라잡을 수 없다. 창과 화살을 동원하여 죽일 수는 있지만 산 채로 잡는 건 불가능하다. 싸우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잡히지 않는 유니콘의 고고함은 잉글랜드에 대항하던 스코틀랜드의 상징이 된다. 오늘날 영국 왕실 문장에 잉글랜드를 의미하는 사자와 스코틀랜드를 뜻하는 유니콘이 마주하게 된 이유다. 지난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 절차가 유니콘 작전(Operation Unicorn)으로 명명된 이유이기도 하다.
난폭한 유니콘이 오직 처녀 앞에서만 온순해진다고 하여 중세 기독교 세계관에 이르면 성모 마리아의 도상(Icon)이 된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신화에서 문학까지, 유니콘은 인류에게 있어 절대 길들여지지 않는 고결함과 완벽한 선(善), 잊을 수 없는 꿈의 형상이었다.
순수와 고귀의 상징이던 유니콘에 부와 욕망의 이미지를 씌운 건 21세기 기업과 언론이다. 우버, 에어비앤비 등의 혁신기업들이 상장하기도 전에 대규모의 투자를 받아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언론은 이들을 ‘유니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신조어는 2013년 미국의 벤처투자자 에이린 리(Aileen Lee)에 의해 ‘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정의된다.
전설 속 유니콘처럼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만큼 희귀하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용어지만, 어찌된 일인지 요즘은 너도나도 유니콘의 이름을 달고 오만한 뿔을 자랑한다. 유니콘이 흔해지자 유니콘의 열 배 가치를 지닌 데카콘(decacorn), 백 배 가치를 지닌 헥토콘(hectocorn)까지 등장했다. 당근마켓은 유니콘이고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헥토콘이다.
2010년 미국 맨해튼에서 시작한 공유오피스 기업 위워크(wework)는 한때 유니콘의 열 배 이상의 가치를 지닌 데카콘이었다. 4년 전 기업 가치는 무려 470억 달러(약 62조 원)였다. 그러나 2019년 상장에 앞서 투자설명서가 공개되자 어이없는 실체가 드러났다. 매출 1달러를 벌기 위해 2달러를 쓰고 있었다. 시장은 냉담했고 상장은 실패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2년 후 간신히 상장했지만 거듭된 경영난으로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주가는 99% 폭락했다. 지난 11월 6일, 뉴저지주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며 껍데기뿐이었던 위워크 신화는 결국 막을 내린다. 블룸버그 통신은 “역사에 남을 몰락”이라고 평했다.
몰락의 핵심은 창업자 애덤 뉴먼(Adam Neumann)의 부도덕이다. 그는 회사의 성장보다는 개인적인 부의 축적에 몰두했다. 위워크의 ‘We’를 상표 등록한 후 회사에 팔고 자신의 부동산을 위워크에 임대해 임대수익을 벌어들이는 등 이해충돌을 서슴지 않았다. 기업공개 과정에서 수천 명의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22조 원을 투자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 많은 투자자가 엄청난 자산을 잃는 동안, 그는 전용 제트기에서 마리화나 파티를 벌이고 호화 저택을 사들이는데 1조 원 이상을 썼다. 경영실패로 축출되면서도 17억 달러(약 2조 2천억 원)의 보상금을 챙겼다.
유니콘의 타락은 바다 건너 위워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1월 13일, 주가 시세조종 혐의로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구속기소되면서 대한민국 1세대 유니콘, 카카오의 몰락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이 위기의 저변에도 도덕적 해이가 깔려 있다. 고속 성장 과정에서 혁신이 아닌 돈벌이에만 급급했다. 미용실, 꽃 배달, 대리운전에까지 손을 뻗어 골목상권을 침해하고,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 후 쪼개기 상장으로 주주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 카카오페이 임원 여덟 명이 상장 한 달 만에 878억 원의 스톡옵션을 매각한 먹튀 행각까지 벌였다. 그 사이 주가는 무너져내렸다. 2년 전 시가총액 3위를 달리며 ‘국민주’로 불렸던 카카오의 추락에 200만 소액주주들의 한숨이 깊다. 이쯤 되면 유니콘이 아니라 고운 노래로 뱃사람을 유혹해 깊은 바다에 침몰시키는 세이렌(Siren)에 가깝다.
사흘에 한 개씩 유니콘이 탄생하던 2020년, 증권가에는 PDR(Price to Dream Ratio)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꿈 대비 주가 비율’이란 말이다. PER(Price-Earning Ratio, 주가수익비율)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높은 주가지만, 꿈에 비하면 절대 높지 않다며 삭막한 증권가를 한때 낭만으로 채웠던 단어다.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는 신생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그들을 유니콘으로 비상하게 한 건 그들의 혁신과 비전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꿈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위워크와 카카오를 비롯한 많은 유니콘의 타락은 그 믿음에 대한 배신이기에 더 씁쓸하다.
카를 융(Carl Gustav Jung)에 의하면 상징은 “명백한 의미 이상의 무의식적 함의를 지닌 무언가”다. 기호와는 달리 하나의 의미로 정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신호등의 색이 기호라면 십자가는 상징이다. 십자가는 구원을 상징할 수도, 죄악에 대한 응징을 상징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가 오랜 세월 집단적으로 가져온 이미지의 원형을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니콘의 이름을 잭팟과 혼동하고 있는 이들에게, 유니콘의 이름을 빌려 거짓과 탐욕의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있는 이들에게 그 이름의 가치를 돌아보기를 권한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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