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시평<19> 문화가 중심인 나라: 문화민주주의와 문화의 민주화를 넘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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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취임 후 출근길 인터뷰에서 "문화가 중심인 시대에 정말 문화가 중심이 되도록 해보고 싶다"라고 의지를 보이며 문화의 힘이 전 부처 정책에 녹아들게 하겠다고 소신을 밝힌 바 있다. 문화부 직원들에겐 통념을 깨고 사고를 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관료적 태도를 탈피하고 창의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문화가 중심인 나라’라는 관용구는 이미 익숙한 정책과제 중 하나이지만 아직도 문화는 국가정책의 주변부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간 ‘문화의 세기’니 ‘문화융성’이니 ‘문화산업’이니 하는 키워드와 함께 어떤 형태로든지 문화의 중요성은 관념적으로라도 국민의 인식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최근 K-컬처의 국제적 위상도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흔쾌히 문화 선전국임을 자부하기엔 갈 길이 먼 느낌이다. ‘문화가 중심인 나라’의 언급은 이제 경제적 수준에 걸맞은 명실상부한 문화선진국임을 드러내는 일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라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인식된다.
우리는 말할 때마다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한다. 과거 우수한 문화적 전통을 가진 나라임엔 틀림없다. 밑도 끝도 없이 한류 문화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닐 테니까. 한류 문화의 성장은 한편으로 국가의 경제력이 문화적 저력과 맞물려 잠재되어 있던 씨앗들이 발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한류는 우리가 국내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해외의 관심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면 국내에선 이에 대한 실상을 그저 뉴스나 정보로만 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화가 산업이 되고 국가 경제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는 사실엔 관념적으로 수긍하지만, 여전히 정치나 경제 분야에선 체감치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란 인류학적 개념으로부터 예술적 개념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의 방식과 상징행위를 지칭하는 수다한 정의를 가지며,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의 일체성, 문화산업의 원천 등 무한한 정신적 물질적 가치를 가진 것이지만 정치적으로는 협소하게 오용되는 것이 상례이다. 문화는 정치적 도구이거나, 삶의 여기(餘技) 또는 장식품 정도로 치부되기도 한다. 국가의 예산 규모나 예산 삭감 시 우선순위로 처리하는 방식 등이 이를 방증한다.
문화가 중심인 나라는 어떤 국가일까? 문화의 핵심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창의력과 자유의 가치가 존중되는 국가이며 개인과 사회의 상징적 상호작용인 문화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역동성을 가지고 국민의 문화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 국가의 모든 영역에서 정부의 정책의 구심력이 되고 정책의 상수가 되는 그런 사회가 아닌가 한다. 과거와 달리 우리 사회에 문화적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차 확산하고 있다. 역설적인 사례가 되겠지만 사회적 큰 논쟁거리가 되었던 문화계 블랙 리스트의 문제는 그 방증이 될 것이다. 문화적으로 미성숙한 사회에서는 문화예술의 영향력은 정치이념과 결부되면서 특정한 계파의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있다. 문화가 중심이 되는 성숙한 사회에서는 사회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둘러싼 끊임없는 담론이 출현하며 이들 간에 건강한 논쟁과 사회적 평가를 통해 정책적 과제와 연동된다.
우리 사회에는 과연 문화예술과 관련한 정책적 담론은 무엇일까? 관점에 따라 다양한 문제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 명시적이진 않지만, 사회 변화에 부응한 대표적 담론이 있다면, 20세기 후반부터 서구에서 제기되어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 ‘문화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Culture)’와 ‘문화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양자 모두 민주주의와 문화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나 서로 입장을 달리한다.
전자는 창작과 작품, 내용에 중점을 두며 문화에 대한 고전적이고 보편주의적인 정의, 양질의 문화,위대한 고급문화의 진흥에 중점을 두며 이러한 문화예술 활동 영역에서 개개인이 더 많은 참여와 접근성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문화 향유의 권리와 관련되며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요인으로 인해 이전에 어려웠던 예술과 문화 활동에 대한 참여와 접근성을 개인들에게 제공하는 문제에 주된 관심을 가진다.
후자는 좀 더 포괄적인 사회 및 정치적 철학적 개념으로, 문화와 예술이 민주적 프로세스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하여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것은 예술과 문화의 생산과 소비, 의사 결정 및 정책에 대한 민주적 참여를 강조한다. 문화민주주의는 예술과 문화가 사회의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반영하며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약하면, 문화의 민주화는 양질의 문화 활동에 대한 개인 참여와 접근성 확대에 중점으로 두며, 문화민주주의는 문화적 다양성 등 예술이 민주적 프로세스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더 포괄적인 개념을 나타낸다. 문화의 민주화는 문화민주주의를 향한 하나의 경향 또는 이념으로 볼 수 있다.
참여정부 이후 나타난 일반적 경향이 있다면, 이전에 수혜를 받지 못했던 아마추어나 소외 계층 등 다양한 계층들에게 수혜와 접근성을 넓히는 문화민주주의 효과를 거두었지만, 의도적으로 엘리트 문화를 배제하거나, 결과적이긴 하지만 상업적인 대중문화나 엔터테인먼트가 강조된 측면이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오랫동안 정체된 논의를 통해 진정한 문화의 민주화를 제한한 점이 있다. 이러한 문제는 문화 민주주의적 차원의 새로운 담론을 생산해내지 못했다는 치명적 오류를 지적할 수 있다. 현재는 이러한 문화민주주의 담론의 대세에 순치되어 문화적 민주화를 위한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보인다. 문화민주주의는 국내의 편협한 진영 간의 논리를 넘어서 좀 더 큰 틀에서 사회 변화를 대비한 미래지향적이며 전 지구적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며 문화가 중심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영국의 문화예술정책이 제시하는 바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영국의 ACE(Art Council England)는 2010년부터 2020까지 10년간 ‘모든 이들에게 위대한 예술과 문화를(great art and culture for everyone) ’ 이란 구호를 내걸고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라는 문화민주주의의 담론과 ‘위대한 예술과 문화’ 라는 문화의 민주화 담론을 포괄한 정책적 함의를 가진 것이었다. 문화예술의 수월성과 창조영역의 전문성을 중시하면서도 이를 모든 국민에게 향유, 소비하도록 하는 방안을 목표로 삼아 결국은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담론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지혜를 발휘했다.
ACE는 뒤이어 2030까지의 ‘창조하자(Let’s Create)’ 라는 목표를 설정하면서 미래의 창의성과 문화를 위한 야심 찬 행보를 보인다. 오랫동안 테이트모던의 관장을 역임한 ACE의 니콜라스 세로타(Nicholas Serota) 위원장은 “문화에 의해 변화된 국가를 창조함으로써 국민들 모두에게 활력과 영감을 주며, 즐겁고 삶을 풍요롭고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함을 제공하도록” 하는 기관의 목표를 설정했다. 그야말로 문화예술을 통해 국가를 변화시켜보자는 거대한 계획이다. 그는 창의성과 문화를 핵심 가치로 삼고, 지역 경제와 재능, 건강과 웰빙, 미래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원하는 데 있어 문화의 역할에 대한 국가적 인식을 활성화한다.
아울러 지방 및 중앙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박물관, 도서관, 예술 기관의 모든 종사자들을 위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이들의 활동을 통해 모든 국민의 삶을 개선코자 한다. 예술가와 문화 단체는 국제 교류의 혜택을 계속 누리게 하며, 더 넓은 세계와의 관계를 재정의하고자 한다. 점점 더 다양해지는 영국의 문화를 국가의 자산으로 삼아, 국제적 이점을 제공하여 그들로 하여금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대화하고 협력하도록 장려한다.
문화가 중심이 되는 나라를 위해서는 창의성과 문화적 가치를 가장 존중하며, 국가의 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새롭게 세팅해야 하는 과제를 인식해야 한다. 과감하게 미래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우리의 문화를 바라보는 야심 찬 비전이 필요하다. 문화민주주의를 위해 문화의 민주화의 다양한 과제들을 치열하게 논의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적 담론을 만들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2040년과 2050년의 위대한 예술가, 공연가, 작가와 큐레이터는 지금 육성되어야 합니다. 그들에 대한 우리의 투자는 본질적으로 문화와 창의성을 핵심으로 하여 더 밝고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미래에 대한 투자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세로타 위원장의 자신감, 우리도 충분히 가져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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