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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가 메모한 여의도의 모든 것 <42> 벽에 ○칠할 때까지 의원 하겠다는 건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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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1월29일 16시48분
  • 최종수정 2023년09월12일 11시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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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서쪽에서 떴나?”

“그러게, 이게 웬일이야?”


 2020년 8월 13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회는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이란 이름의 당 정강·정책을 발표했다. 기본소득을 정강·정책 1호로 명시하고, 경제민주화, 광역·기초의회 통폐합 등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늘 그랬듯이 포장은 그럴듯했지만 사실 대부분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했다. 


‘부모의 지위와 힘을 이용하여 아무런 노력 없이 누리는 특혜를 타파하고, 모든 공직자는 예외 없이 병역기피, 체납과 탈세, 각종 범죄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엄격한 공정의 기준을 마련한다’ ‘경제적 능력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맞춤형 교육의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든다’ 등 좋은 말은 많은데, 당헌·당규, 정강·정책이 나빠서 망한 정당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게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정치개혁 차원에서 국회의원 ‘4선 연임 금지’를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4선 연임 금지란, 말 그대로 국회의원을 연속으로는 3번까지만 하고 4번은 못 한다는 것이다. 


 이건 많이 신선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날 발표된 내용 중 유일하게 주목받았다. 당연히 기자들의 질문도 많았는데, 김병민 정강정책개정특위 위원장은 백브리핑에서 “만약 진지한 토론을 통해 법안이 통과될 상황이 오게 되면(이 말은 굉장히 교묘하다. 이유는 뒤에 설명한다.) 대한민국 정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여러 주에 한해서 연방과 하원에 대한 의원들 연임제한 규정을 담은 여러 선례가 존재한다. 국민 눈높이를 바탕으로 정치가 반드시 혁신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담았다”라고 말했다. 


 쉬운 일이 아닌 만큼 말도 강했다. 그는 “(당내에서) 반발 목소리뿐 아니라 적극 도입해야한다는 찬성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리 사회 변화 발전에 대해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포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 “정무적 판단이나 정치적 고려 없이 우리 당의 처절한 변화, 오직 국민을 위해서 이 당의 뿌리부터 변하는 모습을 가져가자는 메시지를 담아 정책과 강령을 만들었다”라고 강조했다. 이 4선 연임 금지 추진이 주목받은 것은 다른 혁신안과 달리 국회 통과니 여야 합의니 하는 복잡한 과정 없이 미래통합당 자체적으로 공천 제도를 마련해 시행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말했지만, 언론이 사설까지 쓰는 등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런데… 염소 뿔 오래 묵힌다고 쇠뿔 되지 않는다. ‘혹시나?’는 역시 ‘역시나…’였다. 제 버릇 어디로 가겠나.


 야심만만하게 발표했지만 4선 연임 금지안은 정강·정책 및 당헌·당규 개정안 가결을 위한 상임전국위원회에 올리지도 못하고 삭제됐다. 안건을 올려서 부결된 것도 아니고, 발표만 하고 스스로 올리지도 않은 것이다. 이유는… 내부 반발 때문이었다. 3선 이상 중진들은 물론이고 초선들조차 “4선 연임 제한은 세계 정당사에 유례가 없는 일”, “당의 소중한 자산을 훼손하고 대여 투쟁의 전투력 약화를 초래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는데 이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4선 연임 금지뿐만 아니라 함께 발표했던 ‘광역·기초의회 통폐합’도 삭제됐다.)


 사실 이 ‘4선 연임 금지’는 보기에만 그럴듯할 뿐, 자세히 보면 혁신안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3선이든, 4선이든 현재 의원은 모두 초선으로 간주해 적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적용되는 시점은 2024년 차기 총선이 아니라 2032년 총선부터다. 초선 의원조차 12년 후에도 계속하고 싶은 생각에 반대하니, 3, 4선 중진들이야 말해 뭣할까. 사실 나는 비대위가 애초부터 이 안을 보여주기식 안건으로 던졌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지만, 김병민 정강정책개정특위 위원장은 백브리핑에서 “만약 진지한 토론을 통해 법안이 통과될 상황이 오게 되면 대한민국 정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법 제정을 전제로 한 말이다. 정리하자면 '우리 먼저, 자체적으로 공천을 통해 시행하겠다‘가 아니라 ’법안을 제출한 뒤 민주당과 합의해 통과되면, 그때 시행하겠다‘는 말이다. 이게 뭔가? 4선 연임 금지가 당의 정강·정책에 명기하겠다면, 법 통과와 무관하게 스스로 제도를 만들어 공천에서 배제하면 되는데. 


 나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4선 연임 금지 추진을 무산시킨 당내 의원들을 보며 속으로 ‘저 바보들이…’하며 엄청나게 속을 태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4선 연임 금지를 정강·정책에 명기하면 국민과 여론의 찬사를 받을 것이다. 그래 놓고 법 제정을 추진하는데 민주당이 찬성할 리가 없다. 모든 책임은 민주당에 돌아가고 자신들은 손해 볼 게 없다. 그런데 그 고차 방정식을 이해 못 해 스스로 삭제하고 욕을 먹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데 나는 여의도에서는 정신병도 분명히 전염병이라고 확신한다. 미래통합당의 해프닝이 벌어진 지 1년 반도 안 지난 2022년 1월, 더불어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회가 ‘동일 지역구 4선 연임 금지 원칙’을 담은 혁신안을 발표했다. 요지는 당헌·당규를 바꿔 한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한 의원들을 2024년 22대 총선부터 다른 지역구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정치권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치 신인들에게 길을 터주자”라는 취지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도 읽는 데 힘들 테니 결론부터 말하자. 이 글을 쓰는 2023년 2월까지도 당헌·당규는 바뀌지 않고 있다. 발표 시점을 보면 왜 그런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했는지 짐작이 간다. 두 달 후가 20대 대선(3월 9일)이었으니 말이다.

 

 기가 막힌 건(한두 개가 아니지만) 당시 혁신안을 발표한 ○○○ 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장은 스스로 이 내용이 담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꼼수가 가관이다. 개정안에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있어 같은 선거구에서 직전 선거까지 3회 연속 당선된 사람은 같은 선거구에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다’라고 해 놓고, 부칙에 ‘이 법 시행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은 제49조 제7항의 개정 규정에 따른 횟수 산정을 할 경우 최초 당선된 것으로 본다’라고 명기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애초 혁신안 발표 때 말한 것처럼 적용 시점이 2024년 22대 총선이 아니고 앞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처럼 2032년부터다. 이건 꼼수라고 부를 수도 없고, 거의 사기 행태다. 워낙 말이 안 됐는지, 당내 반발이 심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 의원은 이 개정안을 발의 일주일도 안 돼 스스로 철회했다.

<ifsPOST>​ 

 ※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23년 8월 펴낸 책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도서출판 북트리 刊>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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