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가 메모한 여의도의 모든 것 <36> 달아달아 밝은 달아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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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용산으로 이전했다. 국민과 소통하고 참모들과 격의 없이 자주 만나기 위해서란다. 그런데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국민과 소통이 안 되고 참모들을 만날 수 없는 게 청와대의 건물 구조와 위치 때문이냐는 것이다.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물론 청와대를 구중궁궐이라고 부르기는 한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서 참모들이 일하는 여민관까지 도보로 10분 이상 걸리기 때문에 보고 대기 시간을 고려하면 30분 이상 걸려 수시로 만나는 게 어렵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같은 건물에 있어서 수시로 만나는 미국 백악관과 비교를 한다.
그냥 청와대가 너무 낡고 불편해서 다른 곳에서 일하고 싶어서라고 한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국민과 참모들과의 소통 때문이라면… 좀 아닌 것 같다. 지도자의 소통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국민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청와대가 구중궁궐이라 국민과 소통이 안 된다는 건 왕조시대 이야기고, 지금은 인터넷이 다 들어가는데 구중궁궐이 어디 있나? 대통령이 인터넷으로 뉴스만 봐도 국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원하는지, 뭐가 잘못됐는지 다 알 수 있다. 청와대가 구중궁궐이라 국민과 소통이 안 된다니?
참모들과의 만남도 그렇다. 난 정말 10분 정도의 거리가 그렇게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먼 거리인지 잘 모르겠다. 물론 대통령과 가까이 있는 게 더 낫기는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됐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 재임 중에 참모들이 일하는 여민관에 대통령 집무실을 하나 더 만들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집무실과 여민관 집무실을 모두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면 ‘참모들과 수시로 만나기 위해서’라는 청와대 이전 이유도 사실상 아니지 않나.
‘청와대 이전’이란 말이 나오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권력을 잡은 자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그들만의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불통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청와대 구중궁궐’이라는 말로 표현됐고, 그래서 구중궁궐을 나오라는 말은 소통하라는 뜻이지 진짜 이사 가라는 게 아니다. 그걸 이사 가는 것으로만 생각하다니…. 대통령이 자기 생각만 고집하지 않고, 국민의 다양한 소리를 듣고, 참모들도 반대 의견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제기할 수 있는 회의 문화를 만들었다면 청와대 이전이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의 오만과 고집, 내로남불을 지적하는 말을 왜 건물 문제로 돌릴까.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청와대를 이전해 이제는 같은 건물에서 수시로 참모들을 만나기는 하는데, 대통령이 여전히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Yes man 참모들만 있다면 이전 한들 무슨 의미인가 말이다. 늘 자기 생각만 강요하고, 정권의 입장만 강변하던 사람들이 사무실 위치를 바꾸고 한 건물에 있으면 자세가 바뀌나? 회의장을 투명 유리로 만들어 전 국민이 볼 수 있게 한들, 그 안에서 밀어붙이기, 고집불통 정책이 논의되고 다른 말은 한마디 꺼내지도 못한다면 그 투명한 회의 공개가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사무실을 옮겨서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다면 세상에 안 바뀔 조직이 어디 있을까. 청와대를 옮기는 게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진짜 소통이 뭔지 고민 한번 안 해봤다는 방증 아닌가. 국민이 보고 싶어 하는 건 달이다. 당신들의 손가락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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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23년 8월 펴낸 책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도서출판 북트리 刊>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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