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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전쟁 부른 쌀 산업, 지속 가능한 미래의 선택은? <8> 쌀의 선택, 사회적 잉여와 권력의 탄생 ②볍씨의 한반도 전래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7월03일 16시36분

작성자

  • 최양부
  • 흙살림 고문, 전 대통령 농림해양수석비서관

메타정보

  • 3

본문

 ‘반도체가 쌀’이 된 21세기에도 우리가 아직도 ‘쌀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반도를 쌀(白米)의 나라로 만들고 한민족을 쌀에 붙잡힌 쌀을 위한, 쌀에 의한 쌀의 나라로 만든 볍씨는 언제 어떻게 한반도에 전해졌으며, 우리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벼(쌀)농사를 시작하게 되었을까?1) 

 

‘청주 소로리볍씨’의 갑작스러운 출현과 그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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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0월 21일 자 BBC NEWS 보도 기사>

 

  2003년 10월 21일 BBC NEWS는 “세계에서 ‘오래된’ 볍씨 발견”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2)

 핵심을 간추리면 다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한국 고고학자 이융조, 우종윤 (충북대학교) 들이 탄소연대측정 결 15,000년 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탄화미 59톨을 대한민국 충북 소로리에서 발견했다.

  둘째 이 고대 벼 (The ancient rice)는 ‘순화벼(domesticated rice)’4) 그동안 알려진 ‘벼재배가 약 12,000년 전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에 5) 이는 1998년 4월 대한민국 충북 (청주) 소로리에서 발굴된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라는 놀라운 소식을 처음으로 세계에 알린 역사적 보도였다. 당시 BBC 기사의3)

 의문을 제기할 뿐 아니라 벼재배 시작 시기도 끌어올렸다. 

  셋째 그러나 유전자 검사 결과 이 초기 볍씨 표본 (the early rice sample)은 현대 재배벼와 유전적으로 달라 연구자들에게 벼의 진화 과정에 대한 추적연구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볍씨가 발견된 대한민국 중부지역은 아시아 석기시대(Stone Age) 6) 사람들의 발전에 대한 이해에 가장 중요한 곳 중 한 곳이 되었다. 이상을 다시 한 줄로 정리하면 “청주 소로리볍씨는 15,000년 된 세계 최고 순화벼로 기존의 벼재배의 중국기원설에 의문을 제기하며, 유전적으로 현대 재배벼와 달라 벼 진화 추적연구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로 요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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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2004년 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콜린 렌프류와 폴 반(Colin Renfrew, Paul Bahn)이 공저한 고고학 교과서 ‘고고학: 이론, 방법 그리고 응용 (제4판) (Archaeology: Theories, Methods and Practice, Fourth Edition)에 7) 

 그 이전까지 세계 최고의 벼로 인정받아온 중국 벼를 8) 밀어내고 청주 소로리볍씨가 ‘15,000년(13,000 BC) 된 세계 최초의 순화벼’로 실리게 된 것이다. 이는 청주 소로리볍씨가 세계적인 정평을 가진 고고학 교과서에 실린다는 것은 그만큼 세계적 고고학자들의 공인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청주 소로리볍씨의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그동안 ‘세계 최고의 볍씨, 벼재배의 기원지’로 인정받아온 온 중국의 위상에 의문이 제기되자 중국 학자들이 많이 당혹(?)해했을 것이란 점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9)그러나 ‘한반도의 벼 재배와 볍씨는 중국으로부터10)​ 전래 되었다’는 입장을 정설(定說)로 믿고 있던 우리 고고학자들도 당혹해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주 최근(2023.5.12.)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교수)은 “벼농사 중국 양쯔강 유역 기원설과 한반도 전파설”에 대해 한 언론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11)

 

  “야생의 벼는 대체로 빙하기가 끝난 직후인 1만 년쯤 전에 중국 남부 양쯔강 유역에서 처음 재배되기 시작했다.12) 그리고 약 7000년 전부터 논농사가 시작되면서 쌀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재배종으로 바뀌는데, 이때부터 자포니카 종이 선택되었다...한편, 중국 근처에 있는 한국의 경우 청주 소로리에서 나온 볍씨를 들어서 구석기시대인 1만5000년 전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관련 증거가 부족하다. 13) 또한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는 신석기시대에서도 여러 곡물과 함께 볍씨가 종종 발견된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쌀농사를 짓는 지금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나라에 논농사가 본격적으로 전해진 때는 약 3000년 전으로 산둥반도와 랴오둥반도를 거쳐서 벼농사가 남한 일대로 널리 확산되면서다...남한으로 들어온 쌀농사가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지역은 3000년 전 금강과 호남의 너른 평야가 있는 지역이다. 고고학자는 이 최초의 쌀농사꾼을 송국리문화라고 부른다.” 

 

    그보다 먼저 2006년 안승모(원광대 교수)는14) 일본에서 개최된 한 학술대회 발표 논문 ‘재배벼의 기원과 한반도로의 전래-벼자료를 중심으로’에서 15)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아시아 재배벼의 조선종(祖先種)인 보통야생벼(O. sativa rufipogon)에는 다년생과 일년생이 있다. 다년생은 중국 남부에, 일년생은 남아시아에 주로 분포한다. 1990년대부터 재배벼의 두 생태형인 인디카와 쟈포니카가 각기 일년생과 대년생 보통 야생벼에서 기원하였다는 재배벼 기원의 이원설 또는 다원설이 DNA 분석을 통해 새롭게 대두되었다...결국 현생 벼를 이용한 DNA 분석은 재배벼의 쟈포니카는 중국에서, 인디카는 남아사이와 동남아를 포함한 아열대 아시아에서 다원적으로 기원하였다...고대벼의 DNA분석에서도 쟈포니카 중국 양쯔강 기원설이 입증되었다 16)

...한반도 중부의 청원 소로리의 13,000~15,000년 전 토탄층에서 볍시가 출토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벼라고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야생벼의 서식지가 아니며 중국에서도 순화형의 재배벼는 6천년전 경부터 출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로리 출토 재배벼의 연대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소로리를 제외하면 한반도에서 재배벼는 5,000년전 경부터 출현한다...기원전 3,000년 경부터 한반도 서해안에 벼재배가 출현하였다면 한반도에는 야생벼가 자생하지 않기에 벼재배는 분명 중국에서 도래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2009년에는 ‘한국고고학보’에 실린 논문 ‘청원 소로리 토탄층 출토 벼씨재고’라는 논문에서 17)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청원 소로리...토탄층 발굴 결과 12,500-14,620bp의 연대치가 보고된 중부 토탄층에서 모두 18립의 볍씨가 검출되었다. 조사단은...소로리벼는 순화초기 단계의 벼로 한국 재배벼의 조상이며, 소로리는 재배벼 기원지의 한 곳이라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중국과 일본에서의...야생벼 출현과 재배벼 순화 과정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기 주장을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잠정적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소로리벼의 DNA 분석은 고DNA 분석에서 요구되는 절차를 따르지 않았기에 신뢰할 수 없다. 소로리 중부 토탄층은...여전히 벼가 서식하기 어려운 한랭한 기후이다. 소로리 볍씨는 망(芒)이 없고 낟알이 크며 탈락 부위가 거친 점에서 재배벼일 가능성이 크다. 양자강 유역과 동중국해에서 벼는 14,000년 전 이후에 출현하고 도작은 홀로세에 시작되기에 소로리벼가 재배벼라면 중부 토탄층과 동일한 시기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만약 소로리벼가 야생벼라면 빙간기로 전환되는 15,000~14,500년 전의 자료일 것이나, 토탄층에서 벼 식물규산체가 검출되지 않아 현지 재배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반도에는 야생벼가 서식하지 않고 소로리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벼 자료는 5천년 전 무렵의 가와지벼이기 때문에 설령 소로리벼가 중부 토탄층 시기 것이라도 1만년 가까운 공백이 있는 소로리벼가 한국 재배벼의 조상이 될 수는 없다...필자는 여전히 소로리 토탄층에서 검출된 볍씨가 현지에서 재배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며 이후 1만 년 이상 한반도에서 벼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 재배벼의 조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청주 소로리볍씨에 대해 BBC가 보도하고 세계적 권위를 가진 고고학 교과서에 수록된 사실 자체를 차치하고라도 청주 소로리볍씨는 1998년 4월 발굴 이후부터 그동안 중국기원설과 중국전파설을 주장해온 중국과 한국 고고학자라는 ‘거대한 암초’에 부딪혀 현재까지 지난 25년간 그것이 가진 역사적 의미와 고고학적 가치를 철저하게 부정당하거나 의심받고 외면받으며 마치 ‘발굴되어서는 안 될 볍씨’처럼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그들의 학문적 신조가 된 ‘중국기원설과 중국전파설’이 의심받게 된 것 자체를 묵과할 수 없는 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시라도 그들의 불신론의 기저에는 우리 사학계에 뿌리내리고 있는 중국과 일본 사학자들의 대한민국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기록들에 대한 철저한 불신과 부정과 왜곡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마저 들기도 한다. 문화재로 지정할지를 놓고도 소로리볍씨는 번번이 거절당해왔다. 

  청주 소로리볍씨의 출현은 BBC 보도가 지적한 것처럼 지금까지 알려진 순화벼와 재배벼에 관한 고고학적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역사적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세계적 권위의 고고학 교과서 저자들이 그동안 알려진 세계 최고의 볍씨로 인정받아온 중국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소로리 볍씨를 수록하기로 한 결단을 내린 것도 간단치 만은 않은 사건이다. 이는 마치 그동안 세계 최초로 알려진 1448년경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로 인쇄된 ‘구텐베르그 성경’을 밀어내고 18) 세계 최초가 된 1377년(고려 우왕 3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直指, 'Jikji')로 불리는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이라는 불경의 발견에 19) 비견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청주 소로리볍씨’ 발굴의 역사적 의미와 고고학적 가치

 

  그렇다면 ‘청주 소로리볍씨’가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불신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소로리볍씨는 의미 없고 가치 없는 볍씨인가? 소로리볍씨에 대한 불신은 과연 타당한가? 도대체 소로리볍씨는 언제, 어떻게 발굴되었으며 그동안 과학적 객관성을 인정받기 위한 어떠한 조사연구와 검증이 이루어졌는가? 우리는 청주 소로리볍씨의 출현과 그것이 가진 역사적, 고고학적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8년 4월 충청북도 청주 소로리에서 세계 최고의 볍씨로 판명된 소로리볍씨가 ‘홀연히’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 1992-1994년간 청주 소로리 일대에 오창과학산업단지 조성계획이 수립되면서 1994년부터 충북대학교 박물관팀에 의한 개발 전 사전 지표 조사를 실시되었다. 1997년 11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6개월간 토탄층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한 이융조, 우종윤 충북대 발굴 조사팀은 볍씨 127톨을 찾아냈다. 

  당시 볍씨를 정밀조사 한 허문회 교수(서울대, 통일 볍씨를 개발한 작물 육종학자) 등은 20) 유사벼(109톨)와 고대벼(순화벼) 18톨 (쟈포니카 형 17톨과 인디카형 1톨)로 구분하고 이 볍씨들은 유전적으로 야생벼는 아니며 그렇다고 현대 재배벼와 다른 그러나 일부 그 특징을 가진 고대 순화벼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소로리볍씨는 하나의 단일종이 아닌 유사벼와 순화벼(쟈포니카와 인디카) 등 3종 이상의 다른 품종이 한꺼번에 한 장소에서 발견된 특이한 발굴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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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2001, 토탄과 유사벼)와21) 2차(2002, 토탄에 박힌 고대벼)에22) 걸쳐 진행된 탄소연대 교차측정 결과는 청주 소로리볍씨는 놀랍게도 모두가 구석기 말기에 해당하는 1만 5,000년~1만 7,000년 전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밝혀졌다. 청주 소로리볍씨는 한반도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출토된 볍씨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는 중국 후난성 출토 볍씨를 23) 밀어내고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로 판명이 난 것이다

  

  발굴 볍씨를 정밀 분석한 박태식 박사(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는 조사 가능한 볍씨 13톨 중 4톨에서 잘린 흔적을 찾아냈다.24) 그런데 같은 층에서 아래 <그림>과 같이 ‘홈날연모’라는 구석기시대 돌칼이 같이 발굴되고 돌칼에서 벼를 자르는데 사용한 흔적을 찾아냈다. 이에 대해 이융조 교수는 “소로리 사람이 벼를 자르는 과정에서 벼의 일부가 늪지에 떨어진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고대인이 한반도에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소로리 볍씨 발견의 역사적 의미를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25)abd9239b2ce94e3969523eb21afa5e82_1688350

 그때까지만 해도 한반도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볍씨는 1994년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 가와지 유적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5020년 전의 ‘가와지볍씨’였다. 26) 이융조 교수 등은 청주 소로리볍씨가 ‘재배 이전의 순화벼’라고 2003년 세계고고학회에 보고했다.27)

 청주 소로리볍씨는 한반도에서 벼농사 시작 시기를 신석기시대에서 구석기시대로까지 끌어 올렸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야생벼가 아니라 고대 순화 초기의 재배 벼라는 사실은 지금까지 믿어 온 세계 최초 재배벼의 ‘중국기원설’과 한반도 재배벼 조상의  ‘중국전래설’ 모두를 의심하게 한다고 BBC는 보도했다.

  그러나 중국기원설과 중국전파설을 믿는 학자들은 오히려 역으로 “소로리볍씨가 15,000년 전의 볍씨라고 하면 그때는 구석기 말기 빙하기로 아열대 작물인 벼가 한반도의 추운 기상 조건에서 발아, 성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고, 그리고 야생벼인지, 재배벼인지도 분명하지 않다”고 비판하며 소로리볍씨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냉해 조건에서 벼의 발아실험 결과 발아가 가능다는 것이 밝혔지고, 소로리볍씨는 야생벼는 아니고 현대 재배벼와의 유전적 유사성을 39.6%로 가진 순화 초기 단계의 고대벼라고 했다.28)

 

  한편 청주 소로리볍씨를 발굴 조사해온 이융조 이사장은 이상의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하나의 가설’을 제기했다. “소로리에서 가와지에 이르는 볍씨의 분포 변화를 고려할 때, 소로리 벼가 한반도에서 지배적인 벼 계통(쟈포니카)임을 보여준다며 소로리 벼가 현재 한반도 벼 계통의 조상(progenitor)일 수도 있다” 그리고 소로리볍씨 중 소위 쟈포니카 또는 인디카종으로 분류된 순화벼는 엄밀하게 보면 현대적 쟈포니카 혹은 인디카 재배벼와 유전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재배된 벼’라는 의미로 ‘오리자 사티바 코레카(Oryza Sativa Coreca)’라고 부를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29)

 

  그렇다고 소로리볍씨 발굴을 두고 ‘한반도, 재배벼 기원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융조 이사장은 한반도를 벼농사의 기원지라고 할 수 있으려면 한반도에서 자라는 야생벼를 순화시켜 재배벼로 품종을 개량시켰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만한 유물이 발굴되어여 하는데 그렇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안타깝게도 한반도는 야생벼의 서식지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청주 소로리볍씨가 초기 재배벼, 즉 순화벼의 기원지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 했다. “벼농사의 기원이라고 하면 본질적으로 야생벼가 재배벼로 변화한 곳이 어디냐는 질문과 같은 뜻인데 야생벼가 아열대 작물로 한반도 내에서 자생하지 않는 것을 볼 때 벼농사의 기원이 한국일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30)  이는 청주 소로리볍씨는 어딘가에서 순화되고 재배된 고대 원시 볍씨가 ‘진정한 기원지’로부터 그곳에 살던 고대인이 한반도로 이주해 오면서 가지고 왔을 것으로 유추하게 한다.31)

 더욱이 소로리볍씨와 가와지볍씨 사이에는 엄연하게 10,000년의 긴 시간 차이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두 볍씨 간 존재하는 유전적 차이 등을 ‘이어줄 중간 연결고리 (missing link)’가 발견되기 전까지 소로리볍씨가 한반도 벼의 조상 벼 될 수도 있다는 견해는 가설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청주 소로리볍씨가 15,000~17,000년 전의 고대 순화 볍씨라는 ‘검증된 사실’ 자체가 부정될 수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재배벼의 중국대륙기원설과 한반도 전파설을 의심하게 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 없게 한다고 볼 수 있다.  

 

청주 소로리볍씨의 한반도 유입 가설

 

  그렇다면 청주 소로리볍씨는 언제, 어디서 한반도에 전래 되었을까? 이에 대해 2009년 박태식 박사 등은 좌편의 <그림>과 같이 1만 5,000년~1만 7,000년 전 한반도와 황해가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되어있던 당시 남방계인이 해안선을 따라 북동쪽으로 이동하면서 한반도 금강 유역 일대로 진출할 때 함께 가지고 온 볍씨를 재배한 흔적을 소로리에 남겼을 것이란 ‘옛 금강-소로리볏길 (아래 그림의 가장 오른쪽 선) 가설’을 제기했다.32) 이는 중국 대륙이 아닌 남⸱동남아시아 어딘가에서 야생벼의 순화가 이루어진 재배를 위한 벼의 순화가 시작된 ‘진정한 기원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설’을 성립할 수 있게 한다. 

  

  충북대학교 박물관 소로리볍씨관에 전시된 중국대륙으로부터 고대벼 한반도 전파경로를 표시한 우(右)편의 <지도>에는 소로리와 가와지가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것도 흥미롭다. 33) 이는 한편으로는 중국과 한국 학계의 청주 소로리볍씨에 대한 부정에 대한 ‘숨은 저항의 표시’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소로리볍씨는 중국대륙이 아닌 남⸱동남아시아지역 어딘가에서 유래 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주 소로리볍씨의 기원지가 어디이고, 세계 최고의 볍씨로 인정받는 고대 볍씨를 가지고 한반도 소로리로 들어 온 고대인들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벼의 진화론 관점에서 어떻게 볼지는 여전히 식물고고학계의 숙제로 남아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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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이후 지난 25년간 소로리볍씨를 둘러싼 충북대학교 발굴팀과 한국 고고학계 간 진행되어온 논쟁사를 보면서 불현듯 40년도 더 된 오래전에 학문연구가 무엇이고 지식이란 무엇이며 과학적 연구 방법은 무엇인지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34) 쓰면서 접했던 아래와 같은 칼 포퍼 (Karl Popper)의 과학적 지식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떤 과학적 이론도 최종적 진리(the final truth) 위에 서 있을 수는 없다. 기껏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관찰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다거나, 지금까지 알려진 대안보다 더 정교한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는 등의 지지를 받고 있을 뿐이다. 이론은 더 나은 이론에 의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35)

 

  기존의 이론이나 지식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나 관찰이 이루어지면 그 자리가 흔들리고 새로운 발견에 의해 대체될 수 있을 뿐 학문계에서는 ‘최종적 진리’란 없다. 모든 가설이나 이론은 새로운 관찰이나 발견, 가설이 나타날 때까지 잠정적인 상태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학문하는 사람은 항상 겸허하고 열린 마음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야 한다. 청주 소로리볍씨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일부 중국과 한국의 고고학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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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쌀농사의 한반도 기원과 전개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한 시간 여행을 떠나면서 한편으로 너무 멀리 나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농정연구 전문가를 자처하며 한평생 쌀을 붙잡고 살아왔으면서도 정작 우리 농정의 근간인 벼와 쌀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기회에 알아보자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게 되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그 길은 지금까지 올라보지 못한 험준한 산을 오르는 산행길이었다. 

2) Dr. David Whitehouse, BBC News online science editor, World’s ‘Oldest’ rice found, BBC NEWS, 21 Octber, 2003

3) 기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Scientists have found the oldest known domesticated rice. The handful of 15,000-year-old burnt grains was discovered by archaeologists in Korea. Their age challenges the accepted view that rice cultivation originated in China about 12,000 years ago. The rice is genetically different from the modern food crop, which will allow researchers to trace its evolution. Today's rice is the primary food for over half the world's population, with 576,280,000 tonnes produced in 2002. Rice is especially important in Asia, where it is responsible for almost a third of all calorific intake  Tracer of evolution The oldest known rice was discovered by Lee Yung-jo and Woo Jong-yoon of Chungbuk National University in South Korea. They found the ancient grains during excavations in the village of Sorori in the Chungbuk Province. Radioactive dating of the 59 grains of carbonised rice has pushed back the date for the earliest known cultivation of the plant. DNA analysis shows the early rice sample to be different from the modern intensively farmed varieties, thereby offering scientists the opportunity to study the evolution of one of the world's principal food sources. The region in central Korea where the grains were found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sites for understanding the development of Stone Age man in Asia.“ 

4) “순화(馴化, domestication)는 야생 동·식물을 사람에게 유용한 가축·작물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개체 선발과 도태 등을 통해 야생 동·식물을 길들이는 것이다. 순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5) “청주 소로리 볍씨가 발견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는 97년 중국 후난성(湖南省) 위찬옌(玉蟾岩) 유적에서 출토된 볍씨다. 이 볍씨는 약 1만 2000년 전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일보, 2017,5.24. (최종권), [굿모닝 내셔널]인류 최초 쌀 기원지 기념 조형물이 청주에 들어선 사연은? | 중앙일보 (joongang.co.kr)

6)“석기시대는 인간이 돌을 주요한 도구로 사용한 시대로, 보통...구석기, 중석기, 신석기 시대로 구분한다. 이 시기는...역사를 기록하기 이전이라는 뜻의 선사시대(先史時代, Prehistory)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대다...구석기 시대는 260만 년~300만 년 전부터 시작되어, 지역에 따라 9000년~1만 5천 년 전까지다...이 시대는 주로 수렵과 채집을 통해 식량을 얻었다. 이 시대 특성상 '야생에서 곡식 수확'으로 식단의 일부를 구성하는 일이 가능했다...따라서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다시 식물이 자라나고 다시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겠지만, 그 과정(농경)을 인위적으로 하는 노력을 투여할 필요가 없었고 거기에 전념할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서인지 먹을 것이 많이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한 곳에 정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현생 인류라 볼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쯤 아프리카에서 등장했으며, 10만 년 이후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으로 진출을 시작했다...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의 시작은 대략 기원전 8000~12000년경으로 보고 있으며, 당연히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한국 사학계는 기원전 4000~3000년경에 한반도에 농경(신석기 혁명)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기초적인 농경이 슬슬 시작되어 조, 피, 수수 등의 잡곡으로 약간의 농경 농업 생활을 하기도 했다...이 당시에는 관개기술이나 파종법 등 농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신석기 후기에 들어서도 농경은 조악한 형태와 소규모로 할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인 농경(벼농사)은 아무래도 철제 농기구 사용과 관개수로 정비에 노동력 동원이 가능한 계급제와 국가 제도가 정비된 청동기, 초기 철기 시대 이후의 일이다.,.동아시아의 신석기 시대의 개시는 상당히 이른 편인데, 이는 동아시아의 최초의 토기 제작 시기가 후기 구석기까지 올라가기 때문이다...한반도의 경우 절대연대가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양양 오산리와 제주도 고산리에서 신석기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약 1만 년 전에 등장한 제주도 고산리식 토기는 제주도에서만 한정되었을뿐더러 그 후 몇 천 년 동안에 존재한 토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신석기시대로 편년해야 할지 논란이 되고 있다. 고산리식 토기의 연대가 과연 10,000년 언저리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 상태이다...” 석기 시대 - 나무위키 (namu.wiki) 

7) Colin Renfrew, Paul Bahn 은 ’린 렌프류 , 폴 반 저자 · 이희준 번역 ‘현대 고고학의 이해 (제4판)’, 사회평론, 2006‘ 으로 번역 되어 국내에서도 출판되었다.

8)중앙일보, 2017,5.24. (최종권), [굿모닝 내셔널]인류 최초 쌀 기원지 기념 조형물이 청주에 들어선 사연은? | 중앙일보 (joongang.co.kr)

​9) “ 중국 고고학자 류지이 (劉志一)는 2003년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대략 1만5000년전으로 연대측정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조충소기(彫忠小技)’, ‘우인절적 국제대완소(愚人節的 國際大玩笑).’ 라고 비하했다고 한다. ‘조충소기’는 ‘벌레를 새기는 보잘 것 없는 솜씨’라는 뜻으로 남의 글귀를 토막토막 따다가 맞추는 서투른 재간을 일컫고, ‘우인절적 국제대완소’는 ‘만우절(우인절)의 국제적인 웃음거리’라는 뜻이다. 그는 자국의 학술지 논문에서 ‘한국 학자들이 국제적으로 장난쳤다’는 등의 원색적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홀연히 나타난 1만5000년전 '청주 소로리 볍씨'의 정체 - 경향신문 (khan.co.kr) 2019

10) 사실 고대의 중국 대륙은 오늘날 중국의 기원이 되는 황하 이남의 화이허 혹은  회수(淮水) 강 유역인 중국 내륙에 진출한 화하족(華夏族)과 황하 이북과 만주와 요동일대를 지배한 선비족, 동남부지역과 양쯔강 일대는 동이족 등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재배벼의 ‘중국기원설’이라는 표현 자체가 적절한 지 의문시 된다. 중국은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고 부르는 오랑캐에 둘러 쌓여 소수지역을 자치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동북공정 등의 이름으로 이들의 지역과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공자의 춘추시대 이후 지금까지 줄기차게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이 아닌 ‘중국대륙 기원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볍씨의 기원이되는 후난성은 양쯔강 유역의 남만의 땅으로 중국의 땅도, 중국인이란 화하족도 아니었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성찰과 조사 연구가 필요한 지점이 아닌가 한다. 

11) 벼농사 매개로 성공적인 공동체 일궈낸 ‘쌀밥의 힘’[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동아일보 (donga.com)  2023-05-12 03:00

12) ”1973년과 1978년의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저장성 위야오 시의 하모도 유적(河姆渡文化)에 의하면 장강 (양쯔강) 문명은 기원 전 6000년~기원 전 5000년 경으로 추정되며 대량의 볍씨 등의 벼농사의 흔적이 발견되어 하모도 유적은 황하 문명과는 뚜렷하게 계통이 다른 독자적 문명으로 지금까지의 중국 문명이 황하 문명이라고 하는 공식뿐만 아니라, 고대 문명이 세계 4대 문명이라고 하는 공식도 타파되어 당시의 정설을 크게 뒤집는 일이 되었다. 초기 단계에서는 벼농사가 중심이며, 밭농사 중심의 황하 문명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모두 독자적인 농경문화를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장강 문명의 발견으로 벼(자포니카 쌀)의 원산이 장강 중류 지역으로 거의 확정되어 벼농사의 발상도 여기라고 볼 수 있다.“ 황하문명과 장강문명, https://historyday11.tistory.com, 2019.2.17. 그러나 나의 견해로는 황하문명의 중심 세력을 형성하는 화하족은 자신들의 나라라고 부르는 중국을 포위하고 있는 민족들을 동이,서융, 남만, 북적 오랑캐라 칭하고 자신들과 차별화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장강유역에서 벼농사를 일으킨 민족은 화하족이 아닌 남만 동이족이라는 점에서 벼농사의 기원은 중국도, 중국인도 아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오히려 벼농사의 기원은 중국대륙의 양쯔강 일대에서 사는 남만이라 불리운 동이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13) 만약 그렇다면 강 교수는 ‘소로리볍씨에 대한 탄소연대 교차 측정결과는 관련 증거가 될 수 없고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데 사실이 그러한지 궁금하다.  

14) 안승모는 1993년 영국 런던대학교 고고학 연구소에서 ‘아시아 재배벼의 기원과 분화, 전파에 관한 기존 연구에 관한 생물학적, 고고학적 증거 재검토’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했다. 

15)안승모, ‘재배벼의 기원과 한반도의 전래-벼자료를 중심으로’ 西都原考古博物館, 2006, 『日韓交流展 稻の來た道』, pp.70-86.

16)안 교수의 견해도 근본적으로 강 교수와 동일하게 13)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17)안승모, 2009, 「청원 소로리 토탄층 출토 볍씨 재고」『한국고고학보』 70집, 한국고고학회, pp.192-237. 농경 기원과 식물고고학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18)요하네스 구텐베르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19)직지심체요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20)서학수(영남대학교 교수), 박태식(작물시험장 박사), 조용구(충북대학교 교수) 등이 참여. 소로리볍씨의 의미 < 세계속의 소로리볍씨 < 소로리볍씨관 - 소로리볍씨 (cheongju.go.kr)

21) 2001년 미국 연대 측정기관인 지오크론과 서울대 가속기질량분석시스템(AMS) 연구실의 교차검증 결과 1만 2890년 전~1만 4090년전의 볍씨로 밝혀졌다. 

22)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김경자 박사(지질조사연구실)와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의 이융조 이사장, 우종윤 원장, 그리고 미국 애리조나대학 연구자가 참여한 연구팀은 소로리 볍씨 유물에 대해 미국 애리조나대학에 있는 ‘미국과학재단(NSF) 애리조나 가속기질량분석(AMS) 연구소’에서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출토된 토탄볍씨와 토탄은 각각 1만2520년(±150년)과 1만2552년(±9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국제 저널 <핵 계측기기와 방법: 물리학 연구 B>에 발표한 논문('한국 소로리 고대 볍씨의 방사성 탄소 연대')애서 밝혔다. 사이언스온 - “소로리 고대벼도 1만2500년 전 것” 확인.."연대 논란 해소" (hani.co.kr)

23)중국 후난(湖南)성 옥천암 동굴에서 출토된 1만년 전의 볍씨. 쌀의 기원 중국 아닌 한국입니다. 청주 소로리볍씨 알고 계신가요?? ^^ 중국보다 4,000년 앞선 가장 오랜된 볍씨. (tistory.com)

24)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홀연히 나타난 1만5000년전 '청주 소로리 볍씨'의 정체 - 경향신문 (khan.co.kr) 2019.12.3

25) 위와 같음 

26) “가와지볍씨, 한국 벼농사기원 청동기서 신석기로 소급” (tistory.com) 2013, 12.11; 한반도 신석기 벼농사 증거 '고양시 볍씨' 기념탑 세운다 | 연합뉴스 (yna.co.kr)

27)YouTube, 동양일보TV 2022,.6.21, <사람풍경> ‘청주 소로리볍씨’연구 20여년...쌀의 기원을 밝혀내다-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오철우, 2013, 사이언스온 - “소로리 고대벼도 1만2500년 전 것” 확인.."연대 논란 해소" (hani.co.kr)

28) [학명; 한국의 고대벼] , 청원 소로리 볍씨. 순화벼 , 순화볍씨 , / 가와지볍씨. 재배벼 , 재배볍씨: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9)동아일보, 2014.5.14. [충북]“세계 最古 소로리 볍씨 아시나요?”|동아일보 (donga.com), YouTube, 동양일보TV 2022,.6.21, <사람풍경> ‘청주 소로리볍씨’연구 20여년...쌀의 기원을 밝혀내다-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김경자 박사(지질조사연구실)와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의 이융조 이사장, 우종윤 원장, 그리고 미국 애리조나대학 연구자가 참여한 연구팀은 최근 국제 저널 <핵 계측기기와 방법: 물리학 연구 B>에 '한국 소로리 고대 볍씨의 방사성 탄소 연대' 라는 제목의 논문발표, 사이언스온 - “소로리 고대벼도 1만2500년 전 것” 확인.."연대 논란 해소" (hani.co.kr), 

30) 벼 - 나무위키 (namu.wiki)

31) 이용조 이사장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라는 표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소로리에서 선사시대 볍씨가 출토됐다면 그 이전에 어딘가에도 볍씨가 존재했을 것이고...더 오래된 볍씨가 발굴될 수 있기에, 소로리 볍씨는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지 벼의 기원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농경 생활을 살피고, 한반도 벼의 기원을 살피려면 더 많은 수로 출토되는 '유사벼'에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에서는 고대벼보다 유사벼가 훨씬 더 중요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유사벼가 선사시대에 관해 더 많은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유사벼는 한반도의 벼 기원 연구에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32) 박태식, “고대 한반도에서 재배된 벼의 전래 경로에 대한 고찰,”한국작물학회지 54(1), 2009: 119-123; 박태식, 소로리볍씨 논쟁 마침표 찍나 - 충북과 나의 연결고리 충북일보 (inews365.com) 2010.3.7.

33) 고고학적 관점 < 벼농사의 기원 < 소로리볍씨관 - 소로리볍씨 (cheongju.go.kr)

34) Choe, Yang Boo, An Essay on the Idea and Logic of Agricultural Economics,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Missouri, August 1977

35) “He saw that no theory could ever be relied on to be the final truth. The most we can ever say is that it is supported by every observation so far, and yields more, and more precise predictions than any known alternatives. It is still replaceable by a better theory.” Karl Popper, Bryan Magee, The Viking Press, 19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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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7월03일 16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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